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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4/04/01 21:59:20
Name meson
Subject [일반] [패러디] [눈마새 스포] 케생전 (수정됨)
원저자: 현성장고(jgo8****) http://blog.naver.com/jgo87/140030064649 / https://cafe.naver.com/bloodbird/24781
*일러두기*
- 본 글은, 연암의 '허생전'과 이영도의 '눈물을 마시는 새'의 패러디입니다.
- 기본 골격은 허생전에 두고 있으며, 허생전의 토대는, 교육인적자원부의 '고등학교 국어 (하)' (7차 교육과정)에 실린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 글이 미숙하므로, 여러 분들에게 더욱 더 좋은 패러디의 아이디어가 떠올라, '이것은 이렇게 바꾸는게 나을텐데' 하고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 네티켓에 따라 출처와 저자가 명시된다면 펌은 허용입니다.

(위 지침에 따라 일부 내용을 수정 및 가필한 버전입니다. 4월 1일이길래 한 번 올려봅니다.)


* * *


케생은 카라보라(佧羅保拏)에 살았다. 곧장 한계선(限界線) 가에 닿으면, 사막 너머로 오래된 심장탑이 서 있고, 그 심장탑을 향하여 사립문이 열렸는데, 두어 칸 초가는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케생은 나가 고기만 좋아하고, 그의 처는 혹 딸려오는 사이커를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당신은 평생 나가(那伽)를 멸종시킬 수 없는데, 고기는 먹어 무엇합니까?”

케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아직 사냥을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그럼 전사 일이라도 못하시나요?”

“전사 일은 스스로 팽개치고 나온 걸 어떻게 하겠소?”

“그럼 왕은 못하시나요?”

“왕은 눈물을 마실 줄 모르는 걸 어떻게 하겠소?”

처는 왈칵 성을 내며 소리쳤다.

“밤낮으로 밀림을 쏘다니더니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전사 일도 못한다, 왕도 못 한다면, 도둑질이라도 못 하시나요?”

케생은 먹던 나가를 내려놓고 일어나면서,

“아깝다. 내가 당초 나가 살육으로 천 년을 기약했는데, 인제 칠백 년인걸······.”

하고 휙 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케생은 시중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바로 유료도로(有料道路)로 나가서 지나가는 당원들을 붙들고 물었다.

“누가 이 북부에서 제일 부자요?”

대선사(大禪師)를 말해주는 이가 있어서, 케생이 곧 하인샤 대사원을 찾아갔다. 케생은 대선사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내가 집이 가난해서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금편 만 닢을 뀌어주시기 바랍니다.”

대선사는,

“그러시오.”

하고 당장 만 닢을 내주었다. 케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대사원의 행자와 승려들이 케생을 보니 거지였다. 칼걸이는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머리는 산발에 허름한 방풍복을 걸쳤고, 코에서는 맑은 콧물이 흘렀다. 케생이 나가자, 모두들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저이를 아시나요?”

“모르지.”

“아니, 이제 하루아침에,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금편 만 닢을 그냥 내던져버리고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대선사가 말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으레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저 객은 행색은 허술하지만,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안 준다면 모르되, 이왕 금편 만 닢을 주는 마당에 성명은 물어 무엇하겠느냐?”

케생은 금편 만 닢을 입수하자,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즈믄누리로 내려갔다. 즈믄누리는 딱정벌레가 어르신과 마주치는 도시요, 도깨비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거기서 스라블과 머리돌은 물론 하수언·기픈골·구마리 등에서 온 도깨비 장사들을 모조리 호미걸이로 메다꽂았다. 케생이 씨름판을 몽땅 판막음했기 때문에 온 도깨비가 씨름을 할 수 없는 형편에 이르렀다. 얼마 안 가서, 도깨비들의 닦달에 못 이긴 즈믄누리의 성주가 케생에게 열 배나 싼 값으로 도깨비 감투를 팔아 주게 되었다. 케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호미걸이 하나로 온갖 씨름꾼들의 승패를 좌우했으니, 도깨비들의 실력을 알 만하구나.”

그는 다시 도깨비 감투, 망건, 말총 따위를 가지고 발케네에 건너가서 감투를 죄다 팔아치우면서 말했다.

“몇 해 지나면 감투 안의 사람들이 더는 투명해지지 못할 것이다.”

케생이 이렇게 말하고 얼마 안 가서 과연 도깨비 감투 값이 백 배나 폭락하였다.



케생은 딱정벌레 하나를 사서 말을 물었다.

-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 있습지요.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날려가서 어떤 빈 섬에 닿았습지요. 아마 페시론 섬인가 될 겁니다. 불에 탔던지라 짐승들이 익어 있고, 땅이 화전에 가까우며, 물고기들이 하늘을 날더이다.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 자네가 만약 나를 그곳에 데려다 준다면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

라고 수어로 전하니, 딱정벌레가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그 섬에 이르렀다. 케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고는 실망하여 손을 내저었다.

-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무엇을 해 보겠는가?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단지 부가옹(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딱정벌레의 말이었다.

- 지배자가 있으면 사람은 절로 모인다네. 눈물을 못 마실까 두렵지, 지배당하고 싶은 사람들이야 못 찾을 것이 있겠나?

이때, 한계선(限界線)에 제왕병자(帝王病者) 등속의 무뢰배 수천 명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각 지방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토벌을 벌였으나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무뢰배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케생이 한계선 곳곳을 찾아가서 그 무리의 제왕병자들을 달래었다.

“천 명이 천 닢을 빼앗아 와서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일인당 한 닢이지요.”

“모두 배필이 있소?”

“없소.”

“논밭은 있소?”

제왕병자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땅이 있고 가족이 있는 자가 무엇 때문에 괴롭게 방랑 생활을 한단 말이오?”

“정말 그렇다면, 왜 반려를 얻고, 집을 짓고, 소를 사서 논밭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그럼 무뢰배 취급도 안 받고 살면서,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돌아다녀도 잡힐까 걱정을 않고 길이 의식의 요족(饒足)을 누릴 텐데.”

“아니, 왜 바라지 않겠소? 다만 돈이 없어 못할 뿐이지요.”

케생은 웃으며 말했다.

“왕국을 세우려고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할 수 있소. 모월 모일에 높새바람 탑에 나와 보오.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모두 돈을 실은 딱정벌레이니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케생이 제왕병자들과 언약하고 돌아가자, 무리마다 모두 그를 미친놈이라고 비웃었다.

모월 모일, 무뢰배들이 높새바람 탑에 나가 보았더니, 과연 케생이 삼십만 닢의 금편을 싣고 온 것이었다.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케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오직 대왕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너희들, 힘껏 짊어지고 가거라.”

이에, 무뢰배들이 다투어 금편을 짊어졌으나, 한 사람이 백 닢 이상을 지지 못했다.

“너희들, 힘이 한껏 백 닢도 못 지면서 무슨 건국을 하겠느냐? 인제 너희들이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이름이 반역자의 장부에 올랐으니, 갈 곳이 없다.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사람이 백 닢씩 가지고 가서 배우자 하나, 소 한 필을 거느리고 오너라.”

케생의 말에 무뢰배들은 모두 좋다고 흩어져 갔다.

케생은 몸소 이천 명이 일 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무뢰배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드디어 다들 딱정벌레에 싣고 페시론 섬으로 들어갔다. 케생이 제왕병자를 몽땅 쓸어 가서 북부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대[竹]를 엮어 울을 만들었다. 불에 탔던 땅이라 백곡이 잘 자라서, 한 해나 세 해만큼 걸러 짓지 않아도 한 줄기에 열일곱 이삭이 달렸다. 삼 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 나머지를 모두 딱정벌레에 싣고 규리하(嘄離廈)로 가져가서 팔았다. 규리하라는 곳은 삼십만여 호나 되는 아라짓의 속주(屬州)이다. 그 지방이 한참 흉년이 들어서 구휼하고 금편 백만 닢을 얻게 되었다.

케생이 탄식하면서,

“이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

하고 이에 남녀 이천 명을 모아놓고 말했다.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먼저 부(富)하게 한 연휴에 따로 문자를 만들고 왕국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더니라. 그런데 왕이 되면 눈물을 마시고 죽으니, 나는 이제 여기를 떠나련다.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으로 검술을 익히고, 하루라도 먼저 난 나가의 생명을 빼앗게 하여라.”

딱정벌레를 타고 날아오르면서,

“그러지 않으면 금을 얻을 수 없으렷다.”

하고 금편 오십만 닢을 키보렌 가운데 뿌리며,

“숲이 띄엄띄엄하면 이에 죽을 나가가 있겠지. 백만 닢은 우리 북부에서도 무기가 되거늘, 하물며 이런 키보렌에서랴!”

했다. 그리고는 돌아와 운수(雲水)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딱정벌레에 태우면서,

“이 섬에 제왕병을 없애야 되지.”

했다.



케생은 북부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그러고도 금편이 십만 닢이 남았다.

“이건 대선사에게 갚을 것이다.”

케생이 가서 대선사를 보고,

“나를 알아보시겠소?”

하고 묻자, 대선사는 놀라 말했다.

“그대의 안색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혹시 금편 만 닢을 실패보지 않았소?”

케생이 웃으며,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당신들 일이오. 금편 만 닢이 어찌 나가 고기만 하겠소?”

하고 금편 십만 닢을 대선사에게 내놓았다.

“내가 하루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나가 살육을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당신에게 만 닢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대선사는 대경해서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케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당신은 나를 하늘치로 만들려는가?”

하고는 곡차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대선사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케생이 카라보라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한 늙은 군령자가 사막 가에서 배회하는 것을 보고 대선사가 말을 걸었다.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케생원 댁입지요. 가난한 형편에 나가 고기만 좋아하더니, 하루아침에 집을 나가서 5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으시고, 시방 부인이 혼자 사는데,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대선사는 비로소 그의 성이 케씨라는 것을 알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얼마 뒤에, 대선사는 받은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주려 했으나, 케생은 받지 않고 거절하였다.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백만 닢을 버리고 십만 닢을 받겠소?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옷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왜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대선사가 케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대선사는 그때부터 케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몸소 찾아가 도와주었다. 케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

하였고, 혹 나가를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서로 곡차를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두 사람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어느 날, 대선사가 5년 동안에 어떻게 백만 닢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케생이 대답하기를,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이 북부란 곳은 배가 남부와 통하질 않고, 극연왕이 놓은 길조차 보전을 못해서,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무릇, 금편이 천 닢이라면 적은 돈이라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없지만,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 닢이 열이라,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이것은 보통 이(利)를 취하는 방법으로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대개 만 닢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감투면 감투 전부, 딱정벌레면 딱정벌레를 전부,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마치 총총한 그물로 훑어 내듯 할 수 있지요. 도깨비들에게서 나는 만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이것을 가져다가 혈기방장한 인간들에게 비싼 값에 팔면, 도깨비들에게는 장난감이었던 것이 무시무시한 용도로 쓰일 것이매,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후세에 당국자들이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반드시 이 땅을 병들게 만들 것이오.”

“처음에 내가 선뜻 만 닢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케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능히 만 닢을 지닌 사람치고는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닢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어찌 주지 않았겠소? 이미 만 닢을 빌린 다음에는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대선사가 이번에는 딴 이야기를 꺼냈다.

“방금 북부 사람들이 대확장 전쟁에서 나가들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어 보고자 하니,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인재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선생의 그 재주로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우선, 가이너 카쉬냅 같은 분은 온 세상을 덮어 버릴 만한 인물이었건만 글만 쓰다가 홀연히 사라졌고, 저 레콘 장사들 같은 부류는 산을 뽑아 버릴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제각기 숙원만 쫓아서 소요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의 집정자들은 가히 알 만한 것들이지요. 나는 장사를 잘하는 사람이라, 내가 번 돈이 족히 마립간들의 머리를 살 만하였으되, 키보렌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나가를 사냥하기 위해서였지요.”

대선사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왔다.



대선사는 본래 규리하 변경백과 잘 아는 사이였다. 변경백이 당시 군대를 모으며 대선사에게 위항(委巷)이나 여염(閭閻)에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대선사가 케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변경백은 깜짝 놀라면서,

“기이하다. 그게 정말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

하고 묻는 것이었다.

“소승이 그분과 상종해서 삼 년이 자나도록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니다.”

“그인 이인(異人)이야. 자네와 같이 가 보세.”

밤에 규리하 변경백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대선사만 데리고 걸어서 케생을 찾아갔다. 대선사는 변경백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혼자 먼저 들어가서, 케생을 보고 규리하 변경백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케생은 못 들은 체하고,

“당신이 차고 온 아르히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

했다.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대선사는 변경백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케생은 대꾸도 않다가 야심해서 비로소 손을 부르게 하는 것이었다. 변경백이 방에 들어와도 케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규리하 변경백은 몸둘 곳을 몰라하며 규리하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케생은 손을 저으며 막았다.

“밤은 짧은데 말이 기니 듣기에 지루하다.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변경백이오.”

“그렇다면 너는 사람들의 신임을 받는 장수로군. 내가 옛날의 복수왕(復讎王)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네가 만민을 설득해서 왕으로 삼을 수 있겠느냐?”

규리하 변경백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

했다.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

하고 케생은 외면하다가, 규리하 변경백의 간청에 못 이겨 말을 이었다.

“사르마크[殺幕] 가문의 준걸들이 왕국에 미련이 있다고 하여, 그 자손들이 많이 북부 각지로 망명해 가서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니, 너는 군웅들에게 청하여 종실(宗室)의 젊은이들을 내어 모두 그들에게 혼인시키고, 훈척(勳戚) 권귀(權貴)의 집을 빼앗아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규리하 변경백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렵습니다.”

했다.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무릇,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면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안 되고, 남쪽으로 나가를 치려면 먼저 길잡이를 보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지금 페시론의 갑충사들이 대륙에 나와서 옛 사냥꾼들의 기술을 익히고 있는데, 비나간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도움을 주어 그들이 키탈저에 정착한 터이다. 진실로 전통왕, 극연왕 때처럼 키탈저 사냥꾼들을 인정해 만민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그중 날래고 지략 있는 자들에게 청해 키보렌을 몰래 출입하게 하면, 저들도 반드시 군웅들이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북부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머리를 깎고 군인의 옷을 입혀서, 그중 일부는 아라짓 전사로 임명하여 대적자를 맡게 하고, 또 일부는 군령들을 전령받게 하여 요술쟁이를 맡게 하면서, 저 나가들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세 선민 종족이 하나로 결탁한다면,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여러 군장 중에서 구해도 왕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잘 되면 대확장 전쟁 이전까지 될 것이고, 못 되어도 더 이상 왕을 잃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규리하 변경백이 힘없이 말했다.

“군웅들이 모두 은근히 주도권을 다투는데, 누가 함부로 만민회의를 주최하고 아라짓 전사를 임명할 수 있겠습니까?”

케생은 크게 꾸짖어 말했다.

“소위 지배자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왕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 추장이니 마립간이니 뽐내다니,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북부는 아득히 넓으니 왕이라도 있어야 일통(一統)이 가능한 것이고, 사람들을 한데 모아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주퀘도 같은 효웅도 끝내 해내지 못한 일인데, 대체 무엇을 탐내어 주도권이라 한단 말인가? 영웅왕(英雄王)은 나가를 베기 위해서 자신의 팔을 아끼지 않았고, 야명왕(夜明王)은 나가를 막기 위해서 하고토 천도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옛 아라짓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그까짓 주도권 하나를 다투고, 또 장차 장졸들을 이끌며 앞장서 싸우면서 불사의 적들과 칼날을 맞대야 할 판국에 서로 견제하는 것조차 그치지 않고 딴에 정치가라고 한단 말인가?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장수라 하겠는가? 명성이 자자한 변경백이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

하고 좌우를 돌아보며 바라기를 찾아서 찌르려 했다. 규리하 변경백은 놀라서 대도로 막았으나 대도가 부서지기에 일어나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이튿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집은 대선풍에 휩싸여 있고, 케생은 간 곳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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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치블루
24/04/01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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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건 허생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적재적소에 잘 쓰셨네요!
人在江湖身不由己
24/04/01 22:15
수정 아이콘
나늬? 난데스까?
24/04/02 08:26
수정 아이콘
유쾌하게 읽었습니다.
24/04/02 16:2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사실 유쾌하기로는 원본이 더하긴 합니다.
마나님
24/04/02 09:26
수정 아이콘
재밌어요~ 추천 더 달려야 되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숭이손
24/04/02 09:45
수정 아이콘
나가는 그저 술안주일 뿐 ㅋㅋㅋㅋㅋㅋ 재밌게 읽었습니다
호루라기장인
24/04/02 11:02
수정 아이콘
덕력과 필력이 대단하시네요! 드릴건 추천뿐
24/04/02 16:31
수정 아이콘
추천 감사합니다.
저도 써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만, 허생전이 참 엄청난 필력이 담긴 글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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