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2012/01/14 22:38:11
Name VKRKO
Subject [청구야담]별에 기도하던 세 노인(坐草堂三老禳星) - VKRKO의 오늘의 괴담
옛날 선조 임금 때 1584년 1월에 한양 선비 이생이 강릉에 일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걸음이 느린 말을 타고 피곤하게 길을 가다 깊숙한 두메 산골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사람은 사람대로 지치고 말은 말대로 피곤한데, 날은 저무는데 머무를 곳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다행히 숲 속에서 한 목동을 만나게 되어 길을 물었더니, 목동은 언덕 너머를 가르키며 말했다.

[이 언덕을 넘어가면 아무개 양반집이 있습니다. 그 곳을 빼면 주변에 사람 사는 곳은 없습니다.]

선비가 목동의 말을 따라 언덕을 넘어갔더니 세칸짜리 초가집 한 채가 있었다.



그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어떤 한 노인이 나왔는데, 나이는 60여세 정도였고 머리에는 다 떨어진 모관을 쓰고 있었고 한 소년이 옆에서 노인을 모시고 있었다.

노인이 선비를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다.

[이렇게 깊은 시골에 손님께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선비가 산에 왔다 길을 잃어버린 사정을 설명하자 노인은 그 집에서 묵고 가는 것을 허락했다.

그리고 노인은 조용히 앉아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곰곰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선비 또한 가볍게 말을 하기 어려운 분위기여서 그냥 방 한 쪽 모퉁이에 앉아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시중을 들던 소년이 저녁밥을 차려와서 먹었다.

황혼녘이 되자 노인은 소년에게 말했다.

[날이 벌써 저물었는데도 아직까지 오지 않는다니 몹시 이상하구나. 네가 문을 열고 멀리 내다보거라.]



소년이 문을 열고 멀리 바라보더니 말했다.

[지금 막 앞 시냇가를 건너 오십니다.]

노인은 눈을 크게 뜨고 선비를 보며 말했다.



[부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옆에서 입을 열어서는 안 됩니다.]

잠시 뒤 두 사람이 왔는데, 한 사람은 평범한 선비였고 다른 한 사람은 스님 옷을 입은 늙은 스님이었다.

방에 들어온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입을 다물었다.



노인은 소년에게 정화수 한 그릇을 떠오게 해서 소반 위에 올리고 향로에 향을 살랐다.

그 후 세 사람이 모두 북쪽으로 꿇어 앉아 주문 같은 것을 한참 외웠는데 선비는 아무리 들어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기를 몇시간 하다가 노인이 소년을 불러 말했다.



[문 밖에 나가 하늘의 별을 올려다 보거라.]

소년이 밖으로 나갔다 곧 들어와서 말했다.

[별 하나가 지금 동쪽에서 떨어져서, 그 빛이 온 땅을 밝히고 있습니다.]



노인과 두 손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한참 동안 응시하다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하늘이 내린 수명이니 이것을 어찌하겠는가!]

선비가 묵묵히 그 모습을 바라보다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어서 엉겁결에 물었다.



[주인께서는 무슨 일로 한숨을 쉬십니까?]

[숙헌이 곧 죽게 생겼기에 내가 이 두 손님과 함께 하늘에 기도하며 경을 외어서 그 분의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했던 것이라오. 운이 좋아야만 했는데, 끝내 아무런 효험이 없겠습니다. 조금 전 별이 떨어졌으니 이미 숙헌을 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비가 물었다.



[숙헌이 누구입니까?]

[율곡 이이라는 분이오.]

[제가 이번달 초에 서울에서 출발할 때 그 분은 병조판서를 맡고 있었고 몸도 건강하셨는데요?]



[7, 8년 뒤 왜구가 우리나라를 침범할텐데, 숙헌이 살아 계신다면 그 난리를 능히 막을 수 있겠지만 지금은 돌아가시게 되었으니 우리백성들은 모두 고깃조각이 될 것입니다. 살아날 방도가 없습니다.]

조금 뒤 두 손님이 집을 나서는데 안색이 정말 처참했다.

선비가 물었다.



[나라가 그렇게 난리를 맞게 된다면 저같은 불쌍한 선비는 어떻게 해야 목숨을 건질 수 있겠습니까?]

노인이 말했다.

[만약 충청남도 당진이나 면천으로 간다면 화를 면할 수 있을 겁니다.]



선비가 또 물었다.

[저 두 손님은 누구십니까?]

[선비 분의 이름은 말해 줄 수 없고, 스님은 바로 백제 때 고승인 검단대사님입니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다른 곳에 퍼트리면 안 됩니다.]



선비가 한양에 돌아와 수소문해보니 과연 율곡 이이가 별이 떨어지던 날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선비는 곧 충청남도로 가족과 함께 이사를 해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고 한다.



원문 및 번역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17







영어/일본어 및 기타 언어 구사자 중 괴담 번역 도와주실 분, 괴담에 일러스트 그려주실 삽화가분 모십니다.
트위터 @vkrko 구독하시면 매일 괴담이 올라갈 때마다 가장 빨리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 VK's Epitaph(http://vkepitaph.tistory.com)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http://cafe.naver.com/theepitaph)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테페리안
12/01/15 15:27
수정 아이콘
아니... 왜구가 쳐들어와 나라가 난리가 난다는데 선비라는 자가 나라를 구할 생각은 안 하고....
12/01/25 09:17
수정 아이콘
이런 야담을 보면 임진왜란을 예언한 기인들이 참 많은데 왜 막지를 못했을까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49 [번역괴담][2ch괴담]도토리 줍기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5540 12/02/10 5540
348 [번역괴담][2ch괴담]오소레 산의 돌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5923 12/02/09 5923
347 [청구야담]베옷 입은 노인의 영험한 예언(料倭寇麻衣明見) - VKRKO의 오늘의 괴담 VKRKO 5741 12/02/08 5741
346 [번역괴담][2ch괴담]트라우마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748 12/02/06 5748
345 [번역괴담][2ch괴담]목을 매단 사람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7270 12/02/05 7270
344 [번역괴담][2ch괴담]싱글벙글 아줌마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5891 12/02/04 5891
343 [번역괴담][2ch괴담]바다에서 온 사람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859 12/02/02 5859
342 [청구야담]왜란을 예견한 류거사(劫倭僧柳居士明識)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418 12/02/01 5418
341 [번역괴담][2ch괴담]다리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665 12/01/31 5665
340 [번역괴담][2ch괴담]벽장 속의 아줌마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6005 12/01/30 6005
339 [실화괴담][한국괴담]어느 한여름 날의 기묘한 사건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6536 12/01/29 6536
338 [번역괴담][2ch괴담]화장실의 안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5196 12/01/28 5196
337 [번역괴담][2ch괴담]웃는 소녀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552 12/01/26 5552
336 [청구야담]가난한 선비와 선전관 유진항(赦窮儒柳統使受報)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5529 12/01/25 5529
335 [청구야담]이유가 귀신을 쫓아내다(逐邪鬼婦人獲生)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5575 12/01/24 5575
334 [번역괴담][2ch괴담]저주의 키홀더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9135 12/01/21 9135
333 [번역괴담][2ch괴담]현실로 나타난 꿈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6071 12/01/20 6071
332 [번역괴담][2ch괴담]한밤의 드라이브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5315 12/01/19 5315
331 [번역괴담][2ch괴담]빨간 구두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5131 12/01/18 5131
330 [청구야담]네 선비의 관상(會琳宮四儒問相)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5481 12/01/17 5481
329 [번역괴담][2ch괴담]맨발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5256 12/01/16 5256
328 [실화괴담][한국괴담]천장에서 나타난 귀신 - VKRKO의 오늘의 괴담 [6] VKRKO 6016 12/01/15 6016
327 [청구야담]별에 기도하던 세 노인(坐草堂三老禳星)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5861 12/01/14 586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