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6/06/17 16:50:34
Name sylent
Subject [sylent의 B급칼럼] 한동욱의 ‘테란 살리기’
[sylent의 B급칼럼]은 월드컵보다 스타리그를 좋아하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물량전 보다는 깜짝 아이디어가 녹아있는 ‘올인’ 전략에 환호하는 sylent(박종화)와 그에 못지않게 스타리그를 사랑하지만, 안정적인 그리고 정석적인 플레이 스타일이 정착되는 그날을 꿈꾸며 맵과 종족의 밸런스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강조하는 왕일(김현준)이 나눈 스타리그에 대한 솔직담백한 대화를 가공해 포장한 B급 담론이다.


[sylent의 B급칼럼] 한동욱의 ‘테란 살리기’

적어도 저그 플레이어를 상대하는 ‘황제’ 임요환 선수의 경기력은 관중의 상식을 가볍게 넘어서고 있었다. 일일이 기억해내기 힘들 만큼 많은 명승부 속에서, 우리의 언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테란의 극을 보여주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미려(美麗)했던 운영과 운용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무뎌져갔다. “한 때는 태산보다 큰 존재였으나 다시 보면 작은 동산의 둔덕이기도 한 것 같고, 분명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거목 같았는데 이제는 미세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연약한 갈대 같기도 하다.” 신인 줄 알았던 그들도 알고 보니 인간이었다.

대안은 물량이었다. ‘천재’ 이윤열 선수와 ‘괴물’ 최연성 선수는 뛰어난 생산력을 기반으로 스타리그 판을 쥐락펴락 할 수 있었다. 소수 바이오닉 압박에 이은 빠른 앞마당, 단단한 방어 라인 구축 그리고 대규모 병력의 순회공연. boxer-style의 치명적인 중독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팬들은 이들이 제시하는 방법론에 끝내 동의하지 못하고, 임요환 선수의 부침(浮沈)과 함께 웃고 울어 왔다.

수많은 팬들이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1st]의 결승에 도달한 ‘포스트 임요환’ 한동욱 선수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손끝이 빚어낸 멋진 경기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의 바이오닉 운영에서 최고의 ‘그래플러’였던 임요환 선수의 향기가 배어나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기의 테란들

양대 방송사를 통틀어 이번 시즌 4강 진출자들의 종족별 구성은 2테란(한동욱, 전상욱), 4저그(조용호, 홍진호, 변은종, 마재윤), 2프토(강민, 박용욱)이다. 게다가 온게임넷은 테란 대 저그로, MBC게임은 저그 대 저그로 지난 결승을 치룬 바 있다. 한동안 숨고르기 중이던 저그 군단이 기지개를 펴고 있는 것이다.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1st]를 돌아 보면 테란의 위기가 더욱 가시적으로 다가온다. 최연성 선수와 변길섭 선수는 저그전 2패로 24강 탈락했고, 임요환 선수와 염보성 선수 그리고 변형태 선수 역시 각각 16강과 8강에서 저그에게 밀려나고 말았다.

박성준(MBC게임) 선수부터 시작되어 박태민 선수와 최근의 조용호 선수, 마재윤 선수로 이어져온 저그 플레이어들의 아우라가 바야흐로 테란 플레이어들의 발목을 낚아채기 시작한 것일까. 한동욱 선수의 등장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이런 저그 플레이어들의 약진과 궤를 함께 하고 있다.


거칠 테란

테란 플레이어들은 저그의 병력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며 전투의 임계점(臨界點)을 찾는데 주력한다. 저글링과 러커의 비율과 규모를 측정한 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바이오닉 병력에게 교전을 지시 할 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한동욱 선수의 강력한 장점(이자 때론 자신의 목을 겨누는 양날의 검)은 이 임계점을 무시하는 ‘자신감’에 있다. 믿을 수 없는 바이오닉 컨트롤과 더불어 강한 자신감을 양손에 쥔 한동욱 선수의 이도류(二刀流)는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전투를 공멸 혹은 작은 승리로 이끌고 있다. 실제로 경기 중 펼쳐지는 교전에서 한동욱 선수의 마린과 파이어뱃이 피해를 입지 않고 저그의 병력을 잡아내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다. 하지만 해설자들은 대단한 컨트롤이라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다.

이런 거친 운용은 테란의 또다른 기대주 염보성 선수의 경기에서도 종종 확인이 되는데, 이는 임요환 선수와 이윤열 선수, 그리고 최연성 선수가 (그 운영의 지향점은 달랐을지언정) 생산된 병력을 가능한 오래 생존시키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철학을 품고 있다. 비길 것 같은 전투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질것 같은 전투를 비기는 한동욱 선수의 기세는, 테란과 저그가 오랜 기간 동안 암묵적으로 동의해왔던 교전 ‘타이밍’을 무시한다.


한동욱의 ‘테란 살리기‘

한동욱 선수의 경기가 기대되는 것은, 풍선껌처럼 질질 늘어지며 언제 끝날 줄 모르는 고통스럽고 지루한 경기 양상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동욱 선수가 단기전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반대로 자신의 약점인 ‘베슬 관리’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마재윤 선수와 함께 저그 군단의 투톱을 지키고 있는 ‘저그 신동’ 조용호 선수의 넓은 운영은 상대적으로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뿐인 구름사다리 위에 두 명의 패왕은 존재할 수 없는 법. 화력을 초중반에 집중하여 조용호 선수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갈수만 있다면 임요환, 변길섭, 이윤열, 서지훈, 최연성 선수에 이은 여섯 번째 제왕에 등극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모든 테란 플레이어들의 부활을 독려하는 신호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by sylent, e-sports 저널리즘.



* 천마도사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6-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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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주니어
06/06/17 16:55
수정 아이콘
한동욱 선수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번 리그 운이 장난 아니게 좋더군요. 물론 실력도 받쳐주니깐 운도 작용하는것이지만요. 한동욱선수의 3:2승리가 예상되어지네요.
06/06/17 16:59
수정 아이콘
한동욱선수가 이번 리그동안에 운이 좋았었나요? 그동안의 결승진출과정을 살펴보면 닫히려 하는 문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거칠게 열고 올라왔다는 생각이 드는 험난한 과정이었습니다. 그걸 운으로 볼수는 없다고 봅니다.
06/06/17 17:00
수정 아이콘
재밌어요.
KORvsKTF 에이스결정전에서의 그 한동욱, 조용호 선수의 포스를 감안한다면 정말 명경기가 매경기마다 속출할꺼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듭니다. 헐헐헐~

뭐 대략 3:2승부로 한동욱선수가 이길꺼같네요.
06/06/17 17:00
수정 아이콘
한동욱 선수 프로토스 한번 만났어야 했는데.. 결승전은 저도 한동욱 선수가 좀 유리할 것 같네요. 저그의 독주 속에 테란과 프로토스가 고전하는 양상이네요. 프로토스야 원래 강한 적이 없었고, (마이큐브랑 한게임때를 제외하면) 테란은 저그의 선전에 요새 약간 주춤하고 있네요.
06/06/17 17:02
수정 아이콘
프로토스 거의 안만난건 조금 운이 작용한감이 있죠...
06/06/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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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토스 안 만난건 저그가 너무 많기 때문... 저그가 테란과 할만해지고 프로토스는 다 잡아버리니 저그가 독주하고 있는 중입니다.
06/06/17 17:08
수정 아이콘
한동욱선수 예전부터 저그전은 명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그와 반비례로 프로토스에겐 약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었지요.
이번 결승전은 한동욱선수가 유리할 듯 싶지만 조용호선수의 선전 기대합니다.
06/06/17 17:17
수정 아이콘
뭐랄까요 저번 마재윤vs전상욱도 그렇고 여기 대부분 테란만 응원하시는것같음...아무튼 조용호선수도 마재윤 못지않게 다양한빌드를 테란전에서 구사하는 (심지어 퀸의 인스네어까지) 선수이기에 초반에 공격적인
한동욱상대로 충분히 좋은 빌드,운영을 선보일것같고 에결에서의 1승이 많은 도움이 되었을듯하네요...
체념토스
06/06/17 17:41
수정 아이콘
저번 시즌 토스 꽤 잡았었는데...
06/06/17 17:54
수정 아이콘
저번 시즌에선 오영종 선수를 이기고 16강에서 박지호 선수에게 1패 했지요. 3,4위전에서 다시 만나선 3:0 셧아웃을 당했구요..
한동욱 선수는 다전제에서의 프로토스전 검증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단판제에서는 박정석, 박용욱, 김성제, 오영종 선수 등등을 잡아내었죠!
shOt★V
06/06/17 18:59
수정 아이콘
<비길 것 같은 전투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질것 같은 전투를 비기는 한동욱 선수의 기세는, 테란과 저그가 오랜 기간 동안 암묵적으로 동의해왔던 교전 ‘타이밍’을 무시한다. > 이 문장이 와닿네요..한동욱 선수를 가장 잘 표현한 문장중의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슈퍼주니어
06/06/17 19:01
수정 아이콘
스겔에서 한동욱선수 vs플토 전적이 있는데 박정석 선수뺴고 왠만한 프로토스한테 심하게 밀리더군요. 승률이 30%정도... 임요환선수보다 저그전은 더 잘하지만 플토전은 더 못하는 것 같네요.
06/06/17 19:30
수정 아이콘
이번시즌 한동욱선수가 강민선수 한번만나고 플토를 안만난건 운이 좋았다고 할수있습니다만...저번시즌엔 저그를 한명도 못만났었죠...운이 좋을때도 있어야죠...
라구요
06/06/17 20:39
수정 아이콘
멋진글이다.. Ace Gogo...
06/06/17 23:42
수정 아이콘
사일런트(이렇게 읽는게 맞나요?) 님의 B급 칼럼..
올라올때마다 정말 재밌게 잘 봅니다... 글 정말 잘쓰씨네요~
Den_Zang
06/06/18 03:04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잘 읽었어요~
The Drizzle
06/06/18 10:40
수정 아이콘
오랜만에 뵙네요~
영양가 있는글 좋습니다!
마술사
06/06/18 15:47
수정 아이콘
운이 좋은면이 조금은 있었죠
예를들면 8강에서 저그전을 한 후 바로 4일후에 홍진호선수와 4강전을 했죠.
홍진호선수는 8강에서 저그전을 한 후 바로 4일후에 한동욱선수와 4강전을 해야 했구요.


하지만 이정도 운은 예전 임요환선수의 라그나로크연속경기 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ㅁ-;
이런 면에서도 포스트 임요환 답다고 해야 하나요?-_-;

그렇다고 당시의 임요환선수의 실력을 의심했던 사람은 한명도 없었듯...적어도 지금의 한동욱선수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듯 합니다.
특히 8강, 4강에서 초반의 강력한 압박, 바이오닉 컨트롤과 대규모 운영 등 약점이 보이질 않았죠. 한동욱선수와 조용호선수의 멋진 결승경기 기대합니다
김혜미
06/06/18 16:14
수정 아이콘
궁금한게 하나있는데..sylent님 글보면 항상 위에 sylent님과 왕일님이 나눈 대화를 가공패 포장했다고 써있는데요.. 정작 글내용보면 sylent님
개인의견만 들어가있는것아닌가요...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거랍니다.
06/06/18 16:36
수정 아이콘
김혜미님 // 거의 대부분의 글은, 왕일님과의 대화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왕일님이 스타리그를 관통하는 흐름을 읽어내는 재주가 워낙 좋은 분이라서요. :^)
06/06/19 11:00
수정 아이콘
음.. 글쎄요. 그다지 흐름을 잘 읽어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데요.... ㅠ.ㅠ 더구나 글재주는 정말 형편 없죠.. -_-;;
로얄로더
06/06/20 00:09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봤습니다 !
06/06/21 00:18
수정 아이콘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가끔 들어와서 이런 글 하나 읽으면 뿌듯해져서 돌아간다지요.^^
바다밑
06/06/22 13:23
수정 아이콘
좋아하는선수에대한 간결한이야기...라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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