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Date 2007/04/15 13:00:45
Name 네로울프
Subject "이 멋진 세계로 나를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트리플 러츠, 트리플 토우, 트리플 악셀, 플립. 스파이럴...

알지도 못하는 단어들이었습니다.

동계 올림픽이나 중계하면 어쩌다 TV에서 스쳐가듯 보게

되는 종목이었죠. 그나마도 좀 이쁘다 싶은 선수나 나오면

조금 보지 그도 아니면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었죠.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건지, 누가 잘하는지, 무엇을

해야 되는 건지, 어떤 기준으로 점수가 매겨지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점프 해서 회전을 많이 하면 잘하는

거고, 그러다 넘어지면 못하는 것인가 보다 했죠.

그리고 알지 못하는 외국 선수들만 나오는 경기, 우리나라는

잘 못하는 경기.

스케이트 타고 춤추는 것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었죠.

저 것도 스포츠인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기도 했습니다.

저에겐 그 것이 바로 피겨 스케이팅이란 종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던 제가 제법 저 것은 플립 점프이고, 저건 토우

점프고, 트리플과 더블의 콤비네이션이 어쩌고, 스파이럴이

안정적이고 너무 우아해, 따위의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그래봐야 귀동냥, 눈동냥에 어설픈 눈어림일 뿐이지만 말입

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얼음 위를 수 놓는 그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마치 작은 몸 주위의 공기가 멈춘듯한,

너울거리는 옷자락 주변으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그 매혹감에 가슴이 떨리는 감동을 느끼게 됐습니다.


전혀 기대하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던 하지만 너무나도

매혹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로의 초대.

그 것이 바로 여리고 어린 소녀에게서 제가 뜻밖에도 받은 선물

이었습니다.


흙탕물 위에 핀 한 송이 연꽃이란 말이 무색치 않을 정도로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오른 기적같은 기량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녀와 경쟁하는 세계가 얼마나 치열한지, 그 속의 다른 선수

들이 얼마나 훌륭한 환경에서 기량을 다지고 있는지도 들었

습니다. 참 대견하고 또 그만큼 안스럽고 그리고 왠지 많이

미안합니다.


몇 번의 영광을 흐뭇하게 지켜봤고, 오늘의 작은 좌절 또한

역시 아릿한 마음으로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그걸 과연

좌절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세계 피겨 선수권

3위를 말이죠. 섵부른 팬이 짧은 사이 건방진 기준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면 그 건 좌절이 아니라 또 하나의 영광이라

불리워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어느날인가 다시 예전처럼 TV에서 피켜 스케이팅 중계를

만나게 될겁니다. 어쩌면 당신의 활약 덕에 좀 더 자주 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이제 예전과 달리  그냥 스치듯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리진 않을 겁니다. 좀 더 자세히 그리고

집중을 해서 경기를 지켜보게 되겠죠.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많이 피겨 스케이팅에 대해 알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은 소녀의 경기를 더욱 더 기다리게 되겠죠.


아! 이런 저런 설익은 감상이나 기대를 떠나 정말 내가 그녀

에게 해야할 것은 감사를 표하는 일일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세계, 또 다른 아름다움과 매혹과 우아함 그리고

즐거움 속으로 나를 이끌어준 것에 대한 감사. 그리고 두근거

림과 환희, 알싸함의 시간들을 안겨준 것에 대한 감사.


그 어떤 때보다 바로 오늘 밤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김연아양, 이 멋진 세계로 나를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조금 타이밍이 맞지 않는 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연아양이 피겨 싱글 세계 선수권에서 3위에 입상한 날 밤에
끄적거렸던 글인데요.
한 번 글을 쓰면 제가 다니는 몇 게시판에 두루 올리는 짓을 하는데
마침 이 당시엔 피지알 게시판이 닫혀 있었네요.
한 발 늦게 버릇처럼 피지알에도 올립니다.
* anistar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04-19 14:04)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바람이시작되
07/04/15 13:30
수정 아이콘
후아.. 글읽으면서 소름이 돋는게.. 제가 느낀 감정이랑 모이리 흡사한건지요..;;
피겨스케이팅.. 어릴때는 저게 무슨 스포츠지.. 하는 마음도 있었죠.. 그만큼 다른 스포츠랑 다르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도 힘들었다는 건데요..

얼마전부터 조금의 관심을 갖게 해준 연아양 덕에.. 정말 오랜만에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전율이라는걸 느껴보았네요..

좋은글 잘 봤습니다~
07/04/15 14:14
수정 아이콘
정말 비인기 스포츠라도, 조국 스타하나만 나오면은 갑자기 인기 스포츠가 된다는것을 확인시켜주었죠..
아이스버그
07/04/15 17:18
수정 아이콘
피겨가 인기인 일본에서의 라이벌 아사다 마오의 1/20정도의 돈을 버는 김연아 안습... 그나마 국민은행 CF라도 건졌으니...
07/04/15 20:12
수정 아이콘
멋진 글 감사합니다. ^^
저도 님과 비슷하네요.
CoNd.XellOs
07/04/15 21:36
수정 아이콘
멋진 글이네요 ^^
なるほど
07/04/15 23:44
수정 아이콘
저는 저번 동계올림픽 금메달 딴 선수 연기보다가 전율이 들어서 그때부터 피겨 좋아하는데요. 그 선수 이름이 누구였죠?
아라카와 시즈카??였던가---
연아짱
07/04/16 00:17
수정 아이콘
시즈카 아라카와 맞습니다.
패러독스
07/04/16 00:34
수정 아이콘
어디서 본 글 같았는데 역시 엠팍에서 활동 하신 분이셨네요 ^^
목동저그
07/04/16 01:31
수정 아이콘
요새 문근영을 제치고 국민여동생으로 떠오르는 분이죠ㅋ 국민남동생 박태환 군도 그렇고 비인기 종목에서 이런 세계적 스타들이 나오는 게 반갑군요^^;;
07/04/16 03:53
수정 아이콘
까따리나 비트 아줌마의 빅팬이었습니다....
그녀의 카르멘은 잊을 수 없는 연기였죠.
김연아양의 이번 연기는
저에게 까따리나 아줌마의 그림자를 잊게 해줬습니다.
오래간만에 전율을 느껴서 참 기뻤습니다.
박인제
07/04/16 09:51
수정 아이콘
그런데 김연아선수는 이번에 그렇게 좋은활약을하고 일약대스타가 됐는데도..
여러회사에서 스폰서가 되겠다고하는 박태환선수에비해서..
김연아선수는 스폰해주겠다는곳이 한군데도 안나타났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CF도 찍고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습니다.
집도 잡혀서 그돈으로 대회나갔다는얘기가있던데..
어서 스폰서가 잡히길..
IntiFadA
07/04/16 10:16
수정 아이콘
저도 카타리나 비트의 피겨 연기를 어려서 보고... 사랑에 빠졌던 기분이 문득 떠오르네요... 몇 살 때였더라...^^;;
07/04/16 16:09
수정 아이콘
같은 동작을 해도 왠지 더 우아해 보이죠. 팔다리가 길고 가늘어서 그런 건가.
연아양 덕에 건너고 건너서 요즘 미국 주니어에서 한창인 캐럴라인 쟁(!?) 후덜덜한 연기도 보고, 네로울프님 말씀대로 좋은 곳에 초대를 받은 기분입니다.
말다했죠~
07/04/19 22:55
수정 아이콘
초반에 트리플 하길래. 트리플 넥서스나. 혹은 3해처리 얘기하시는줄 알았습니다.
07/04/20 13:05
수정 아이콘
말다했죠~// 개그...도 아니고 저두 그런생각을 .. ㅡ,ㅡ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489 난 동족전이 좋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26] Zwei9322 07/04/18 9322
488 "이 멋진 세계로 나를 초대해줘서 고마워요." [15] 네로울프11200 07/04/15 11200
487 FP를 이용한 게임단 평가입니다. [19] ClassicMild9574 07/04/14 9574
486 허영무. 부지런함의 미학. [19] 김성수14560 07/04/03 14560
485 3인의 무사 - 오영종, 박지호, 김택용 [20] 나주임10693 07/04/02 10693
484 양방송사 개인대회 순위포인트를 통한 '랭킹' [27] 信主NISSI12411 07/04/01 12411
483 FP(Force Point) - 선수들의 포스를 측정해 보자! [40] ClassicMild11549 07/04/01 11549
482 김택용 빌드의 비밀 [42] 체념토스18677 07/03/31 18677
481 광통령, 그리고 어느 반란군 지도자의 이야기 (3) - 끝 [35] 글곰11205 07/03/11 11205
480 [추리소설] 협회와 IEG는 중계권에 대해서 얼마나 준비를 했을까? [40] 스갤칼럼가12508 07/03/10 12508
479 쉬어 가는 글 – PGR, 피지알러들에 대한 믿음2, 그리고… [20] probe9450 07/03/08 9450
478 드라마 [9] 공룡9298 07/03/05 9298
477 마에스트로의 지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35] 연아짱17783 07/03/05 17783
476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13] 초코머핀~*11740 07/03/02 11740
475 MSL 결승전에 대한 짧은 분석. [3] JokeR_11379 07/03/04 11379
474 일주일의 드라마 - StarCraft League, Must Go On. [4] The xian8808 07/03/04 8808
473 [설레발] 광통령, 그리고 어느 반란군 지도자의 이야기 (2) [30] 글곰11827 07/03/03 11827
472 최연성과 마재윤은 닮았다. [17] seed12289 07/03/02 12289
471 마재윤선수의 '뮤탈 7마리' (in Longinus2) [48] 체념토스18539 07/02/28 18539
470 잃어버린 낭만을 회고하며... 가림토 김동수 [21] 옹정^^10575 07/02/27 10575
469 임요환의 패러다임 그리고 마재윤의 패러다임 [20] 사탕한봉지11910 07/02/27 11910
467 제 관점에서 바라본, 마재윤의 테란전 운영 [27] A.COLE13363 07/02/25 13363
466 마재윤을 낚은 진영수의 나악시 두번 [30] 김연우15424 07/02/25 15424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