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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2/08 17:17:24
Name realwealth
Subject [일반] 신성각과 하루키 (수정됨)
건강검진 결과 상담 예약을 했던
서울메디케어에 가려고
공덕에 도착했는데, 좀 시간이 남았네요.
그냥 스타벅스에서 시간 때우고 있을까 하면서
네이버 지도로 스벅을 찾았는데,
예전에 저장해 두었던 신성각이 눈에 들어옵니다.
사실 30분 전에 대충 김밥을 먹었는데,
공덕 올 일이 많지 않기도 해서 더 가보고 싶네요.

점심시간이 꽤 지났고,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고 알고 있어서,
전화를 걸어볼까 하다가,
걷고 싶기도 해서,
산책 겸 무작정 지도를 보고 출발했어요.
오르막길에 꽤 됩니다. 이런…

도착했습니다.
외관이 허허허
진짜 오래되고 작은 곳이구나.

원래 거의 항상 줄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무도 없네요.
닫은거 같은데?
하면서 문을 밀어봅니다.
식사 되나요??
짜장 하나 남았어요~~
와~~~!!! 재수~~!!

간짜장이 원래 목적이지만,
짜장으로 만족해야죠.

주방에서 면을 수타 도마 위에 탕탕탕
수타하시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립니다.  

정말 작은 가게(테이블 4개)여서 주방이 바로 앞에 있고,
눈 앞에 보입니다.

새로운 소리가 납니다.
그리고 석유 냄새가 나요.
펌프질 하는 소리네요.

정말 옛날에 봤던
펌프질하면서 불을 올리는
석유곤로?로 하시는 것 같아요.
웍질 소리가 끝나고, 접시가 나왔네요.

밀가루와 물만 쓴다고 들었는데,
역시 새하얀 면이에요.

간짜장 재료가
조금 남아서,
짜장 옆에 간짜장도
같이 만들어 주셨어요.
어찌 제 마음을 아시고,
간짜장과 짜장을 같이 먹을 수 있다니~~
슥삭슥삭 비벼서 입에 넣어요.

음???
잉???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웃음이 나요.
정말 신기한 맛입니다.
기름맛이 좀 신선한 것 같고,
단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네요.
처음 느끼는 맛이에요.

옛날 짜장이라고 해서
제가 어렸을 때 먹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전혀 기억 나지 않으니, 처음이라고 해도 되겠죠?

정말 특이한데,,,,
맛이…
있어요.
엄청 맛있다~~!!
는 아닙니다.
그런데, 매력이 있어요.

내공이 없어서 설명이 안되는데,
잘 만든 음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맛있게 잘 다 먹었습니다.
사장님이 단무지 더 가져다 주시면서
맛이 어떠냐고 물어보십니다.
맛있다고 말씀 드렸더니,

씨익~~ 웃으시면서 아닐건데요? 하시네요. 흐흐흐
즐겁게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여름에는 2달씩 문닫고 쉬기도 하신다고
꼭 전화해보고 오라고, 명함도 하나 챙겨 주십니다.

건강 검진 결과 상담을 하고,
저녁 약속이 있어서
스벅에서 시간을 때우면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찾아봅니다.

맛상무가 신성각을 갔네요.
큭큭큭
저랑 같은 표정을 지어요.
웃으면서 짜장을 먹네요.
당황스러운 웃음,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이게 말이 돼?
짜장면 계의 평냉이라고 한다네요.

그동안 수없이 많았을 훈수와 지적에도
꿋꿋하게 자신의 음식을 고수하는 고집이 느껴지는 멋이 있는 간짜장이다._맛상무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을 짓게 할 수는 없다’,
쉽게 말하면 그런 뜻이 된다.
가게를 경영하고 있을 때도 대체로 같은 방침이었다.
가게에는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그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상당히 좋은 가게다.
마음에 든다. 또 오고 싶다’라고 생각해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열 명 중에 한 명이 단골이 되어준다면 경영은 이루어진다.
거꾸로 말하면 열 명 중 아홉 명의 마음에는 들지 않는다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서 경영자는 명확한 자세와 철학 같은 것을 기치로 내걸고,
그것을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비바람을 견디며 유지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가게를 경영하면서 내가 몸소 체득한 것이었다.
_'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하루키

길을 나섭니다.
영광보쌈이 바로 옆이네요.
이곳도 보통 줄을 서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마지막 한 테이블이 남았어요.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네요.
어쩌면 평범함이 특별함일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김장김치와 집에서 앞다리살로 만든 수육 같네요.

오늘 모임은
이전 팀의 선배 1명과,
이직한 후배 1명과 만난
회사 기반 지인 모임이었습니다.

예의 지킬 줄 알고,
책 읽는 거 좋아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에요.
문득 나와 성향이 맞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맛있는 음식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며 잘 놀다 집으로 갑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인간관계에도
하루키의 경영론?과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홉명의 마음에는 들지 않아도, 한 명의 마음에 들면,
아홉명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한 명만 마음에 들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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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08 17:33
수정 아이콘
글을 참 잘쓰십니다.
덕분에 기분좋게 읽고갑니다
realwealth
23/12/09 14:35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3/12/08 19:46
수정 아이콘
제목보고 눈을 순간 의심했어요. 신성각? 내가 아는 그 신성각인가?
작성자께서 맘이 넉넉하고 여유로우신 분이라 참 따뜻하고 훈훈하게 적어주셨네요.
신성각 간짜장은 솔직히 비추합니다. 눈코입은 짜장이라고 하는데 뇌에서 이게 머야? 하는 맛. 차라리 탕수육은 먹을만해요.
일찍 문 닫고 카드도 안 되고, 밖에 줄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줄 서는 자리도 옹색해서 불편하고
무언가 편안히 먹을수 없는 가게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벽에 바퀴벌레 기어다니는데 그걸 보고도 그냥 암소리 못하고 얼른 먹고 나와야 하는 개인적으로는 두 번은 가고 싶지 않은 곳입니다.
realwealth
23/12/09 14:33
수정 아이콘
실망이 크셨나봐요.
오픈 전 부터 줄이 있고,
내부가 좁고, 테이블도 적고,
재료 떨어지면 금방 문닫고,
심지어 가끔은 한 달씩이나 휴업을 하기도 하고,
현금만 되고(입금은 가능),
불편함이 많은 가게인 것 같습니다.
맛도 호불호가 많이 갈릴 것 같아요.
입에 넣는 순간, 이게 뭐지?????
설탕과 조미료를 거의 안 쓰고, 면도 강화제 안 쓰고요.
저는 알고 갔는데도, 당황했다는.....
호 보다는 불호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는 맛있게 먹었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식당 추천은 아니고요.
님처럼 얼마나 많은 분들이 수십년 간 지적과 비판을 했을까요.
제가 마지막이라서 몇 마디 나눴는데, 사장님도 잘 알고 계시더라고요.
제가 들었던 생각은 자기 주관을 고수하는 것에 관한 것이에요.
철학을 만들고, 그 철학에 공감하는 소수의 매니아가 생기고, 그것을 낙으로 삼아서 다시 철학을 유지하는 것에 관한,
그 부분을 위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23/12/09 07:25
수정 아이콘
저도 점점 나이가 드니 성향 맞는 사람들이 점점 귀해진다는 생각을 합니다. 맞다 생각했는데 점점 아닌걸 깨달을 때의 실망감도 점점 커지고요. 지금 주변에서 언제 보든 편한사람들에게 항상 잘해야겠습니다.
realwealth
23/12/09 14:36
수정 아이콘
가까운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콩탕망탕
23/12/09 10:44
수정 아이콘
향기로운 차 한잔을 마신 느낌의 글이네요
realwealth
23/12/09 14:35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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