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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2/29 17:14:08
Name 사람되고싶다
Subject [정치] 미중 패권전쟁? 신냉전? 아니, 다극화되는 세계


0. 서론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국제정치상황은 아무래도 미중갈등입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제재하고 공급망 디커플링을 시도하면서 딱 그 중간에 낀 우리나라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서 관련 이슈를 다룰 땐 항상 미국과 중국에 초점을 맞춥니다. '패권전쟁'이라는 용어에서 보듯이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두고 다툰다든지, '신냉전'과 같은 용어는 옛 소련과의 냉전처럼 서로 확실히 편을 갈라 싸우는, 중간 지대 쟁탈전 같은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거기다 우리나라는 서방세력에 속해있고 외신 또한 그쪽에 의존하다보니 서구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뭔가 이해가 안되거나 오해하는 일이 많습니다. '인도는 쿼드에 가입한 미국편인데 왜 러시아랑 친해?', '사우디가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붙었구나!', '당연히 우크라이나가 피해자인데 왜 제3세계는 시큰둥할까?'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프레임이 친미니 친중이니 하는 걸로 귀결되기 십상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현 국제정세를 미중 간의 갈등으로만 보는 프레임은 너무나도 좁습니다. 실제로는 '미국, 유럽이 꽉 잡고 있던 국제질서에 균열이 가고 있다'에 가깝습니다. 미중갈등은 그러한 흐름의 큰 갈래일 뿐입니다. 미중갈등에만 집중하면 앞으로의 정세를 오판하기 쉽고 우리나라의 운신이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관련한 내용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1. 여태까지의 세계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진영,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진영으로 나뉘어 냉전을 벌였습니다. 서로는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안보의 위협으로 간주했습니다. 각 이념은 서로를 용납할 수 없었고, 전세계가 미국과 소련의 전쟁터가 됩니다. 세계는 각 진영으로 철저히 나뉘었고, 진영 내의 질서는 각각의 큰형님인 미국, 소련이 꽉 잡고 나머지는 이를 따랐습니다. 물론 이때도 유고슬라비아, 인도같이 양쪽에 속하지 않은 제3세계, 비동맹주의 국가들이 존재하였지만 이들의 존재감은 옅었습니다.

소련 붕괴 후에는 냉전이 종식되고 자유진영이 헤게모니를 거머쥡니다. 이념, 정치제도, 경제체제 등 모든 부분에서 서구의 것은 ['정답']이되었고 자연스레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됩니다. WTO같은 국제기구가 출범하여 자유무역주의를 전세계에 전파하고, 신자유주의가 득세합니다. 미국은 그 중심에서 이념과 압도적인 경제력, 군사력, 국제기구를 바탕으로 전세계를 관리하는 '세계의 경찰'이 됩니다. 전세계가 이 질서에 순응했습니다. 대안이던 공산주의는 망했고, 수입대체 자국산업 보호를 주장하던 제3세계 국가들은 변변찮은 상태였으며,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같이 자유무역을 받아들여 급속도로 발전한 '자본주의의 모범생'을 전세계가 목도했습니다. '정답'이 명확해진 이상 이를 따라야지요. 민주주의와 인권, 경제발전에 반대할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게 마음에 안들어도 지원받기 위해서는 서구의 지배를 받는 국제기구의 말을 따라야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돈주머니와 이념을 통해 세계는 통합되어 세계화가 이루어집니다. 경쟁자였던 러시아, 중국까지도요. 그리고 중국은 그 질서 내에서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2. 현재 세계 질서의 균열

이렇게 서구가 꽉 잡고 있던 세계의 질서가 슬슬 힘을 잃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서구세력의 성장 둔화입니다. 20세기 중후반에 미국과 유럽은 성장했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라면서 노동가능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었고, 인구가 늘면 자연히 상품, 서비스 수요가 늘며 경제가 성장합니다. 이런 호황 속에 서구는 저부가가치산업을 개도국에 넘겼고, 그 여력을 통해 신산업을 개척하며 앞서나갔습니다. 그런데 이제 선진국들은 저출산 고령화로 성장이 정체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저부가가치 조립공장 수준이던 개도국들이 슬슬 기술을 축적해 자신들의 경쟁자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원래 마음이 넉넉할 때는 인심이 후하지만 쪼들릴 때는 악화됩니다. 괜히 저들에 넘긴 제조업 일자리가 눈에 아른거립니다. 세계화의 흐름에서 패배한 자들이 불만을 품고, 보호주의를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선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유럽에서도 극우정당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둘째]는 중국의 부상입니다. 이전에는 발전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인권, 자유주의가 정답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난했던 중국이 매우 짧은 시간만에 미국과 어깨를 겨누는 패권국으로 우뚝섭니다. 이전에 급진적으로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여러 개도국들은 부작용에 휘청이며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권위주의 독재 체제였기에 더욱 일사분란하게, 효율적으로 부강해졌다는 인식이 자리잡습니다. 더 이상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자유화'는 정답이 아니게 됩니다. 중국은 가난한 나라들의 워너비가 됩니다.

체제 뿐만 아닙니다. 중국은 '일대일로'를 주창하며 AIIB 등을 세워 다른 개도국들을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세계은행, IMF 등 서구의 국제기구는 돈 빌려주면서 온갖 깐깐한 태클은 다 겁니다. 무슨 인권이니, 민주주의니, 효율성이 어쩌니, 보조금을 폐지하라니 등. 예전에는 돈 빌릴 구석이 거기밖에 없었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따랐는데, 이제는 별 귀찮은 조건 없이 척척 돈을 빌려주는 뒷배가 등장한 겁니다. 서구에서는 이를 '빚의 함정'이니 어쩌니 하면서 극도로 부정적이지만 돈 빌리는 개도국 입장에선 기가 찹니다. 지들은 지갑 열 생각도 안하면서 쫑알쫑알 태클만 건다고요.

[셋째]는 제3세계의 성장입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빈부격차 등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으나 어쨌든 전세계의 경제성장을 가져왔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이 전세계 GDP의 40%, 서구세계는 60%를 차지했습니다. 그런데 현재 미국의 GDP는 전세계의 25%에 불과합니다. 옛날에 물건을 팔 시장은 부유한 미국, 유럽 정도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 둘은 매우 크고 중요한 시장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중국, 아세안 등 타 세력의 경제력도 올라왔습니다. 굳이 서구시장에만 집착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 된 겁니다. 나라에 따라서는 서구보다 비서구와의 교역 비중이 더 높은 경우도 부지기수이죠.

마지막으로 [넷째]는 미국의 고립주의 대두입니다. 사실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셰일 혁명을 통해 에너지 자립에 성공했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미국의 해외의 관심이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기간 수렁에 빠져 있었던 아프간에서 철군하고, 보호주의를 부르짖으며 동맹마저 뜯어먹으려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 됐습니다. 트럼프라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유권자들이 이제 굳이 해외에 개입하고 싶어하지 않아합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 어찌어찌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하고 있지만, 40%가 넘는 미국인들은 미국의 지원이 과다하다, 그냥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 인정하고 전쟁 끝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국은 원래부터 고립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인데, 이게 다시 도지고 있는 겁니다. 왜 굳이 미국이 힘들게 돈 들여서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합니까? 돈 아깝게. 미국인들은 이제 슬슬 세계에서 발을 빼고싶어합니다.


정리하자면 결국 서구의 힘은 약화 됐고, 미국은 점점 고립주의로 선회하고 있으며, 자체적인 경제력과 새로운 돈줄이 생긴 제3세계는 굳이 서구에 매달릴 필요가 없어진 겁니다.



3. 각 국가의 대응

그렇다면 이제 미국은 완전히 패권을 잃고 중국이 미국을 대체하게 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최강대국이고, 경제는 번영 중이며, 높은 출산율과 이민으로 인구구조도 견실하고, 과학기술력과 신산업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미국은 계속 최강대국으로 군림할 거에요. 그리고 세계의 경찰 노릇이 하기 싫단 거지 자기 나와바리를 털리고 싶단 뜻은 아닙니다. 단지 이제 보호비를 뜯겠죠. 그리고 중국은 어디까지나 이 미국 주도 질서에 저항하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거지 미국처럼 패권을 노릴 수 있는 역량이 안됩니다. 중국은 에너지, 식량이 자급이 안되는 나라인데 바다는 미국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공급망이니, 해양수송로 걱정을 할 때 중국도 똑같이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국의 목표는 자기 나와바리에서 미국을 축출해내는 건데 쉽지 않죠.

아무튼 미국은 슬슬 손을 빼려 하고, 중국은 깜냥이 안됩니다. 미국의 질서에 안주하던 국가들은 슬슬 자기 나와바리가 걱정되기 시작합니다. 미국이 완전히 떠나진 않겠지만, 예전만큼 적극적으로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을 거란 거죠. 그러니까 자기 주변은 자기가 정리하려 합니다.

대표적으로 사우디를 들 수 있습니다. 사우디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우방이었으나 미국은 중동에서 발을 빼려합니다. 결국 중동의 안정을 자기가 신경써야 할 때가 온겁니다.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전에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손을 잡거나, 이스라엘 하마스 전쟁 전에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려던 것도 다 이런 맥락입니다. 사우디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편을 바꾼 게 아닙니다. 그저 이제 미국 품안에서 벗어나 자기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도를 볼까요? 인도는 쿼드에 가입했습니다. 인도 입장에서도 중국은 위협이거든요. 근데 이게 인도가 미국 편에 섰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그냥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러시아 제재에는 미온적이죠. 러시아는 서구의 적이지 인도의 적이 아닙니다. 그래서 덕분에 싼값에 석유도 사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인도는 원래부터 인도양의 섬나라들, 아프리카를 원조하며 지역 내 맹주가 되고싶어했습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 미중 갈등, 신재생으로의 이행은 땡큐입니다. 공급망 재편으로 중국 공장들 받아먹을 수 있으니까요. 중국은 태국, 인도네시아에 적극적으로 전기차 공장, 밸류체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도 예전처럼 자원만 통째로 팔던 것에서 벗어나, 니켈 원광 수출을 금지하고 자국 내에서 공장 짓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현대나 LG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죠. 예전 같았으면 WTO니 뭐니 시끄러웠을텐데 이젠 그런 거 없죠. 다들 그러는데요 뭘. 여기도 마찬가지로 미중 편을 왜 정합니까? 돈만 잘 벌면 장땡인데.

그 외에도 NATO면서 맨날 미국, 유럽과 갈등하는 터키, 중국에 원자재와 대두를 바가지 씌어서 팔아먹는 브라질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자적으로 미중 사이에서 자기 살 길 찾아가고 있는 거죠. 그래서인지 많은 나라들이 아프리카로 많이 구애합니다. 마지막 남은 성장하는 시장이고, 줄어가는 서구 대신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니까요.


정리해보겠습니다. 미국이 꽉 잡고 있던 국제질서가 느슨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굳이 전세계에 신경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옛날엔 미국이 다 했다면 이젠 각국의 운신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중국과 갈등을 겪지만 예전 냉전기와는 다르게 철저하게 편을 갈라 싸우는 것도 아닙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이미 너무 많이 연결 돼 버려서. 무슨 이념이나 종교 갈등도 아니고, 그저 그 중간에서 자기 살 길 찾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코노미스트에선 이렇게 중간에서 간보는 대표적인 나라를 모아서 T25(Transactional 25)라고 명명하더군요.

물론 이게 무작정 좋은 일은 아닙니다. 뒷치닥거리 해줄 사람이 사라졌단 뜻이니까요.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들수록 거기 눌려 살던 놈들이 활개를 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도,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도, 후티 반군이 홍해 통행을 막는 것도. 예전 같으면 서슬퍼런 미국의 감독 아래 일어나지 않았거나, 일어나도 금방 미국이 처리했을 일들이 이젠 자꾸 벌어지고, 수습도 안됩니다. 이제는 미국이 아니라 각자가 돈 내서 이 문제를 해결해내야합니다. 얼마 전까지 사이좋게 수출하던 나라에서 엿을 날리고 우리 물건에 관세를 때립니다. 골치가 아픕니다.




4. 한국은?

한국은 세계화에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근데 이제 그 판이 깨져버렸습니다. 단순히 미국 중국 사이에서의 공급망 문제만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미국 형님이 알아서 자유무역이나 시장개방이니 이념 설파하고 다녀, WTO 운영해, 우리가 물건 팔아먹을 무역로에 해적이나 문제 생기면 군대 보내서 해결해, 다 좋았습니다. 우린 그런 귀찮은 일 할 거 없이 그냥 물건만 싸고 질좋게 만들면 그만이었습니다. 수입, 수출은 그냥 돈만 주면 되는 거 아니었던가요? 한국은 원래 국가 규모에 비해서 국제적인 책임을 이행을 잘 안하는 나라였습니다. 뒤에서 돈이나 벌었지.

이제는 아닙니다. 우리 수출시장은 물건만 보낸다고 다가 아닙니다. 갑자기 관세장벽 올리고 자기네 나라에 공장 지으라고 합니다. 어떻게 물건 겨우 팔면 불안해진 무역로에서 해적이든 반군이든 터져서 통행이 막힙니다. 생각 없이 물건 팔던 나라에서 전쟁 일으켜서 국제 제재 맞고 우리 수출도 끊깁니다. 우리가 필요한 원자재는 발주 넣어놨더니 자기네 나라에서 부족하다고 수출금지 때리네?

살기 위해선 이제 우리가 해결해야합니다. 단순히 기업이 열심히 노력해서 시장을 진출하는 게 아니라 국가 단위의 외교 문제가 됩니다. 공급망을 관리하기 위해선 우리도 청해부대 등을 보내 무역로를 보호해야합니다. 이제 수입할 물건도 단순히 '시장에서 사온다'가 아니라 '공급망 관리' 관점으로 봐야합니다. 필수 원자재는 언제든지 뒤통수 맞을 수 있으니 공급망을 다양화하고, 아예 우리가 딴 나라와 전략적으로 협력해서 개발해내야합니다.

제가 보는 뉴스레터에서는 이 상황을 '[작은 머리]를 가진 플레이어가 늘어났다'고 표현하더군요. 옛날엔 미국, 소련 등 큰 머리가 모든 판을 짰다면, 지금은 각 지역 내의 '작은 머리', 리더를 자임하는 국가들을 하나하나 상대해가야 한다고요. 그리고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선 우리도 우리만의 비전, 시선을 가져야합니다. 중소기업이래도 사장과 대화가 잘 통하는 건 똑같은 사장이지 직원이 아니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이 나아갈 방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서구와의 협력 강화입니다. 우리나라는 누가 뭐래도 미국 중심의 민주주의 진영입니다. 미중 사이의 선택의 시기가 온다느니 하는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정부 수립 이래로 한 번도 미국의 동맹이 아닌 적이 없었습니다. 국제 사회의 인식도 마찬가지고요. 단지 중국의 심기를 굳이 나서서 건드릴 필요는 없을 뿐입니다.

어쨌든 서구는 중국과 마찰을 겪고 있고 탈중국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는 호재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중국은 우리나라의 시장이 아니라 비슷한 품목을 생산하는 경쟁자에 가깝거든요. 그런데 최소한 미국, 유럽 시장에서는 어느정도 어드밴티지를 먹고 들어가는 겁니다. 물론 이게 옛날처럼 자유롭게 막 물건 팔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나 유럽이나 똑같이 보호주의, 자국우선주의를 주창하고 있으니까요. 더럽고 아니꼬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좋은 시절은 지나갔는 걸요. 최대한 거기에 공장을 짓든, 외교적으로 돈독히 하든 협력하여 최대한 시장을 사수해야합니다. 그러면서 미국이 우리 경쟁자인 중국 반도체를 계속 조져주면 좋죠. 우리만으로는 중국을 견제할 수 없으니 동맹에 의존해야죠.

[둘째]는 제3세계와의 협력 강화입니다. 이전에 많은 국가들의 운신의 폭이 늘어났다고 말씀 드렸고,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데 이게 꼭 '우리가 독자적으로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틀(중국 견제)에서 미국의 뜻을 따르되, 미국이 그닥 신경쓰지 않는 부분에서 우리가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예 중국이나 중국 동맹의 편을 드는 건 불가능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간보는 친구들과는 친해질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대표적으로 아세안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사실 이렇게만 말하면 기존의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한다'랑 뭐가 다르냐 싶겠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시장을 찾는 게 아니라 외교적, 전략적 파트너를 만든다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처럼 TPP 같은 아예 독자적인 판을 짠다거나, 적극적인 해외 원조를 통해 개도국에 인프라 개발을 지원하거나, 적극적인 합작, 투자, 비자 완화 등으로 서로 간의 교류를 늘리는 등으로요. 개별 사안 별로 건건이 손익을 따져서 처리하기 보단 큰 틀에서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수립해야겠죠. 일정 부분 손해를 보더라도 신뢰를 쌓아야지요. 여태 우리는 너무 돈 벌기에만 급급했는데, 이제는 돈을 위해서도 그 이상을 신경써야겠죠.

그리고 세계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비록 우리는 그 중요성 때문에 미국, 중국에만 신경 쓰는 경향이 있는데, 현재 중동에서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친환경, 재생에너지 투자라든지 당장은 우리랑 관련 없어도 미래에 먹거리가 될 수 있을 것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협력해야할 겁니다.




5. 마무리

국제사회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는 아직도 친중이니 친미니 하는 좁은 프레임에 갇혀있고 좁은 동북아에만 눈이 집중 돼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이런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더 넓은, 국제적인 안목으로 행동해야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어째서인지 우리는 옛날보다 더욱 우리만의 시야를 잃어가는 느낌이더라고요. '외신'이라 일컫는 영미권 매체만 받아 쓰고 그쪽 시각만으로 바라보는데 우리는 그들 편이되, 그들이 아닙니다. 우리만의 시야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태까지 우리나라는 외교적으로 개별 사안은 잘 처리해내는데, 큰그림을 그려내는데는 좀 미약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럴 역량도 필요도 없었으니. 아무래도 제국을 경영하던 나라와 아닌 나라의 차이겠죠. 앞으로는 점점 잘 해내면 좋겠습니다.

사실 제가 다루기에는 굉장히 큰 담론이고 세부적으로는 논쟁의 여지가 많을 것 같습니다. 여러 곳에서 읽은 내용들을 최대한 정리하였는데 제가 부족하다보니 일부 왜곡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다들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에 부족하지만 써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여러분의 생각이나 오류 지적은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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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네임을바꾸다
23/12/29 17:24
수정 아이콘
잘 할 수 있을까요?
흠흠흠
23/12/29 17:26
수정 아이콘
한국은 앞으로 고령화가 심해지며 성장이 둔화되고 세계에서의 존재감이 많이 줄어들텐데

이제 와서 독자적인 플레이어 역할을 할수 있을지....

다음 먹거리로 찍어둔 동남아는 이제 인도네시아가 대빵 역할 하려는거 같고

최태원씨 말대로 한일경제공동체를 설립해 세계경제 룰을 만드는쪽에 서자 이런거도 정작 일본입장에서는 별로 실익을 못느끼는거 같고

그냥 하던데로 서구 입장에 맞춰 가는거 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사람되고싶다
23/12/29 17:32
수정 아이콘
그래서 지금 고점일 때 호감작 좀 많이 해놔야 하는 거긴 합니다. 시간 좀 지나면 국내 사안만으로도 골골댈거라...
사실 제가 생각하기엔 독자적인 플레이어가 된 건 막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지원 끊긴 대학생 같은 느낌인지라... 살기 위해서는 알바라도 하고 매달려야죠 뭐... 서구도 옛날만큼 호의적으로 교역해주지도 않을테니 어떻게든 살길 찾아나가려고 발악하자 정도에 가깝습니다.
라방백
23/12/29 17:35
수정 아이콘
좋은 글입니다. 저는 항상 밝은 미래만을 예상하고 싶기에 미래로 가면 갈수록 각 나라들이 자기 나라의 이익만 도모하는건 일부 정치인들의 의도이지 실제 국민의 의도가 아니게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지금이야 미국도 고립주의로 가는게 국내에서 표받을려고 하는거임에도 불구하구요.
이유는 AI의 발전입니다. 이미 스마트폰이 전세계 방방곡곡 보급이 된 상황이라 전세계 누구든 AI의 막강한 파워를 받을 수 있는 시기가 되면 국가의 차이, 언어의 차이, 학력의 차이가 더 이상 차별화요소가 되기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차이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이 있냐 없냐 밖에 없지 않을까요? 국제화라는 말도 좀 애매해질거구요. 그때도 고립주의로 문을 걸어잠그고 우리나라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할지 전세계 누구든 말도 통하겠다 서서히 AI가 만들어놓은 세계비빔밥에 쓰까질지 기대가 되네요.
23/12/29 17:46
수정 아이콘
최근에 본 일본,대만,싱가폴의 관점도 흥미로웠습니다.
라멜로
23/12/29 17:4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최근의 국제정세를 한 마디로 하면 각자도생의 시대 아닐까요

옛날 글에서 세계화가 되고 모든 사람들이 거리와 언어에 제한받지 않는 실시간 대화가 가능해지면
지역 인종 종교의 갈등이 없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진정한 의미의 하나의 지구가 될 것이다 라는 구절을 봤는데

결과는 정반대였네요
제이킹
23/12/29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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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정부들이 미중 사이에서 애매한 포지션을 취하거나 심지어 좀더 친중국적인 느낌일때 차라리 확고한 동맹인 미국과 가까이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우린 여전히 북한과 대치중이기 때문에 국방안보를 생각하면 친미가 확실한 답이라고 생각했죠. 당시 제 식견이 얼마나 좁았는지 깨닫게하는 글이네요.
물론 당시에도 우리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을 알고있기에 쉬운 일이 아닌 걸 알고있었죠. 근데 하도 중국이 하는 행동들이 아니꼬아서 트럼프처럼 화끈하게 하면 속이 좀 후련할 것 같았죠 ㅠㅠ 우리처럼 경제 자립이 힘든 나라는 어쩔수 없나봅니다.
이제38개월인 딸이 살아갈 미래는 어떨지 걱정입니다.
사브리자나
23/12/29 21:48
수정 아이콘
모든 역대 한국 정부는 확고한 친미(박정희 정권 때 핵개발 갈등정도빼고는)였지만
친미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체로 기존보다 더더 미국에 붙지 않으면 친중이라는 말이 많더군요.
현 상황이 디폴트가 아닌데도요.
말씀하신 바가 맞고 외교는 롤게임이 아니라 같은 블루팀이어도 바로 텔타고 로밍와주고 cs양보를 안 해준다는 게 문제점이죠.
No.99 AaronJudge
23/12/2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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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고 인상깊은 글이네요…

‘지원 끊긴 대학생’이라는 말이 와닿습니다

어쩌겠어요…..이대로는 지속불가능하게 생겼는데
뭐라도 해야지..
23/12/2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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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됨) 영미권의 시각이 우리의 것이 아닌 건 확실합니다. 우리도 우리의 시각으로 세계를 봐야죠.
다만 서구의 시각이 아닌 '독자적인 시각'이라 주장되는 시각이 과연 독자적인 시각일까? 서구도 이미 훑어봤는데 이건 아니라서 폐기된/예선탈락한 시각에 불과한 건 아닐까 곱씹어봐야 할 거 같습니다. 서구의 특정한 입장/성향의 견해들이 '서구 아닌 우리의 시각'으로 포대갈이된 듯 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저는 주장자의 배경을 봅니다. 특정 지역에 대한 지역전문가가 하는 주장(예컨대 아랍어 능통자가 중동 얘기한다던지)은 귀담아 듣습니다만, 영어 등 서구의 언어 밖에 못하는 사람이 전세계급 주제로 평론을 늘어놓으면서 서구의 시각에서 벗어난 어쩌구하면 제낍니다. 서구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자료도 수집할 수 없는 주제에 무슨 독자적인 시각입니까.
라이엇
23/12/29 18:54
수정 아이콘
우리나라는 이제 쓰임이 다한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라는 양측이 퇴장하고 새로운 세대가 권력을 잡아야 어디로든 나아갈 원동력이 생길꺼 같네요.
저 두 세대가 지배하고 있는 동안 우리나라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이념논쟁에 빠져있으니까요.
나는바보다
23/12/29 18:59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23/12/29 19:17
수정 아이콘
(수정됨) 역설적이지만 외부가 혼란스러울수록 내부 역량이 더 중요해집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인데 생각보다 갈라파고스 같은 면이 많습니다. 질문 시간에 아무도 손 안 들고 눈치만 보는 문화,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아서 기자들이 욕을 많이 먹었죠. 그런데 기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 내부적으로 질문하는 문화가 매우 약합니다. 사람 간의 진솔한 대화나 논의는 술을 마셔야만 가능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옛날엔 식스시그마, 요즘은 애자일, 두려움 없는 조직, 학습하는 조직 이런거 가져와서 형식만 갈아 끼우고 정작 제대로 된 질문과 피드백은 하지 못합니다. 해외 건설분야는 제대로 된 PM 능력 없이 사업 수주하다가 손해를 보기도 했고, 조선업은 해양플랜트에서 큰 실패를 겪었습니다.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요.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의 문제해결 능력이 부족한 겁니다. 세계가 다극화 되면 변화의 속도도 점점 빨라집니다. 군대식 운영으로는 더 이상 따라가기 벅찬 시기가 올 겁니다.

최근에 발간된 [우리는 미국을 모른다]라는 책을 추천드립니다. 앞으로의 세계 정세 속에서 한국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입니다. 이 책 저자도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워싱턴DC는) 불특정 다수의 군중이 몰려들기 때문에 질문 경쟁 역시 치열하다. 질문 내용은 그 사람이 얼마나 사안에 대해 공부했는 지를 파악하는 척도다. 좋은 질문은 워싱턴에서 인맥 형성의 첫걸음이다. 행사가 끝난 뒤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질문이었다. 나는 A상원의원 보좌관인데 한국의 핵무장 여론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알고 싶다. 언제 시간 내달라."" 이런 식입니다.

롤로 비유해도 괜찮을 것 같네요. 라인전 이기고 리드하고 있을 때는 게임이 단순합니다. 굳이 많은 질문을 하면서 고민할 필요 없이 하던거 그대로 잘해서 게임을 굳히면 됩니다. 그게 곧 승리공식이니까요. 그런데 골드 밀리고 있으면 고민이 늘어나죠. 이길려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서 만회 전술을 구성해야 합니다. 갱을 가더라도 아무 라인이나 가면 안 됩니다. 생각을 하고 가야죠. 한정된 자원을 원딜이나 미드 중 캐리력 있는 쪽에 몰아줘야 합니다. 적당히 살은 주되 뼈는 안 주는 운영이 필요하고요.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좋은 질문이 많이 생길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마샬스피커
23/12/29 20:29
수정 아이콘
2022년초부터 동일한 스탠스의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고 그 땐 뭔 뚱딴지 같은 소리냐 했는데 요새는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것 같네요.
중요하게 봐야하는건 미 대선이고, 그 과정에서 벌어질 미국 내부의 엄청난 갈등입니다. [다가오는 폭풍과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참고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의외로 잘해낸다면 한국의 미래는 사실상 중국의 번국이 되는 것입니다. 중국의 목표는 미국 패권의 대체가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지역패권국이 되는 것이죠.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성공만 한다면 한국의 미래는.. 지금도 중국 그늘에서 자유롭지 않죠. 중국은 너무 큽니다. 죽든, 살든 한국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겠죠. 방안의 코끼리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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