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1/07/22 13:29:33
Name Geradeaus
Subject [일반] 결정론의 제반 문제

1.


결정론이란, 매 순간에 물리적으로 가능한 미래가 정확히 하나 있다는 명제를 말합니다.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결정론의 정의는 다양한 양태를 보입니다. 심리적인 결정론에서 부터 물리적인 결정론, 신학적 결정론 등등. 결국, 결정론의 정의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서 논의의 방향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이 글에서는 '매 순간에 물리적으로 가능한 미래가 정확히 하나 있다'는 정의로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결정론은 크게 볼 때 두 가지 철학적인 문제와 결부됩니다. 하나는 자유의지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  책임의 문제입니다. 제가 결정론에 관한 철학적 논쟁을 깊이 있게 아는 것은 아니라서, 이 주제와 관련된 모든 철학적 입장을 아우르지는 못합니다. 논의의 범주를 제한시켜,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관계' , ' 결정론과 책임의 관계' 에 관해 쓰고자 합니다.



2. 결정론과 자유의지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불가능하다는 견해는 다음의 논증을 지지합니다.

1) 만일 결정론이 참이면, 사람들의 행위는 행위자의 존재 이전에 발생했거나 행해진 사건이나 사태들에 의해
    인과적으로 불가피하게 이루어 진다.
2) 만일 행위마다 이런 식으로 인과적으로 불가피하게 이루어진다면, 어떠한 사람도 달리 행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적어도 때로는 달리 행할 수 있었을 때만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지닌다.
4) 그러므로 결정론이 참이라면, 아무도 자유의지를 지니지 못한다.


데닛은 이러한 양립불가능성의 논증은 '불가피성'의 의미에 대한 착오에 기인한다고 말합니다. 그에 따르면, 시스템은 설계적 수준(design level)과 물리적 수준(physical level)으로 구분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시스템을 이런 구분에 의해서 생각해 볼 때, 불가피성이 위 논증에서 어떻게 잘못 사용되고 있는지가 밝혀질 수 있습니다. 설계적 수준과 물리적 수준의 차이점이 무엇인가? 에 대해서는 감이 잘 안올 수 있습니다. 간단한 예를 통해서 생각해 봅시다.


콘웨이가 만든 라이프 게임에서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

꺼진 공간 :
* 각 공간을 기준으로 8개의 공간 안에 세 개의 이웃이 있다면 켜진다.

켜진 공간:
* 각 공간에 하나의 이웃만 있거나, 아무 이웃도 없다면 꺼진다. (마치 세포가 외로움 때문에 죽는 것처럼)
* 각 공간에 4개의 이웃이 있거나, 그보다 많은 이웃이 있다면 꺼진다. (마치 세포가 인구의 과잉으로 죽는 것처럼)
* 각 공간에 2개의 이웃이 있거나, 3개의 이웃이 있다면 상태를 유지한다.




가장 간단한 형태입니다. 이 상태에서는 게임을 진행하더라도 계속 똑같은 상태를 유지합니다.
만일 우리 우주가 이런 상태라면 지루하기 짝이 없을 겁니다.


라이프 게임의 다양한 형태들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해 주세요. 동영상을 일일이 편집해서 링크하려다가,
정리 잘 된 글이 있어서 대체합니다.

http://blog.naver.com/robyn09?Redirect=Log&logNo=140094822247

라이프 세계의 더 복잡한 형태들을 보면, 어떤 형태들은 수 세대에 걸쳐서 변화하기도 하고, 어떤 형태들은 새로 생성되기도 하며, 심지어 회피와 포식에 비유할 만한 모습도 발견됩니다.

라이프 세계는 결정론적 세계의 단순한 모델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론적인 세계에서도, '자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즉, 물리적 수준- 초기 조건에 따라 배열된 픽셀의 수준에서 모든 양상은 그 자체로 결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라이프 세계의 초기에 픽셀들의 배열을 설정하는 순간, 그 이후의 양상은 모두 결정됩니다.) 설계적 수준- 초기 조건을 설계하는 존재의 관점에서 볼 때, 어떤 문제들은 회피가 가능합니다.


물론 라이프 세계에서 자유란 보잘 것 없는 수준임에 분명하지만, 초기 조건을 설계하는 설계적 수준의 관점에서 조망할 때 어떤 문제들은 회피가 가능하다는 점을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데닛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즉, 결정론과 자유의지 간 양립불가능성 논증에서 사용되는 불가피성이라는 개념이, 범주 오류에 해당한다는 점입니다.


라이프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연 법칙이라는 초기 조건에 의해 지배되는 행위자 입니다. 존재론적 차원에서 라이프 세계의 픽셀들과 비슷한 지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초기 조건에 의해 결정되어 있고, 그러한 조건의 불가피한 인과적 사슬에 묶인 존재일까요? 아닙니다. 저의 수준 낮은 어휘력으로 정리하자면, 우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조건들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데닛의 생각이 흥미로운 점은 양립불가능성의 명제를 깨는 수단으로 다윈주의적 관점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라이프 세계의 설계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은 '자연'입니다. 자연선택의 과정은 행위자 수준에서 더 높은 자유도를 가지도록, 특정 상황에서 회피할 수 있는 능력을 진화해 가도록 유도될 수 있습니다. 장대익 교수의 깔끔한 문장을 인용합니다.


"사실, 회피 능력은 수십억년에 걸친 진화의 산물이다. 자연계에는 이런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생명체들이 무수히 많다. 하지만 인간의 회피 능력은 독특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황 A에서는 Z를 하라'는 식의 행위 규칙만을 탑재한 것이 아니라, 가능한 여러 선택지들을 비교하고 행동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데닛은 인공지능학자 드레처의 구분법에 따라 전자를 '상황-행위 기계', 후자를 '선택 기계'라고 부른다. 물론 선택 기계는 상황-행위 기계에 비해 더 많은 자유도를 갖고 있게 된다. 자연계에서 인간은 최고 품질의 선택 기계다. "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가능한가에 대해서 데닛은 설득력 있는 논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양립가능성을 주장하는 학자로 데닛이 유일한 것은 아닙니다. 다른 논증들 - 예컨데 자유를 원인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 강제나 강요로부터의 자유로 새긴다면 양립가능하다는 - 도 있지만, 적어도 불가피성의 교리에 대한 반박에 있어서 만큼은 데닛이 더 설득력있는 논증을 펼치는 것으로 보입니다.


불가피성의 교리를 넘어서면, 결정론적 세계에서의 '가능성'이란 개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 결정론이 참이면 당신의 미래도 고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은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결정론이 참이면 당신의 본성도 고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을 말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나머지 세계와의 상호작용에 반응하여 본성을 변화시키도록 설계된 실체가 되도록 진화했기에 우리 본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결정론에 대한 잘못된 걱정이 야기되는 것은 고정된 본성을 지닌다는 것과 고정된 미래를 지닌다는 것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 혼동은 우주에 대한 두 관점을 동시에 고수하려고 할 때 생긴다.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눈 앞에 펼쳐 보는 '신의 눈' 관점과 우주 안에서 살아가는 행위자의 관점이 그것이다. 시간을 초월한 신의 눈 관점으로 보면 변하는 것은 없으며- 우주의 역사 전체가 '동시에' 펼쳐진다 - 비결정론적 우주 조차도 궤적들이 가지를 뻗어 가는 정적인 나무와 다름없다. 살아가는 행위자의 관점에서 보면, 만물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하고 행위자들도 그런 변화에 맞추어 변한다. 하지만 물론 우리에게 모든 변화가 다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이 있으며, 후자 중에는 통탄할 만한 것들도 있다. 우리 세계에 잘못된 것들이 많긴 하지만, 결정론은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 설령 우리 세계가 결정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 (데닛, 자유는 진화한다, 142)


말하자면, 데닛은 결정론의 명제 - 어느 한 순간에 가능한 미래는 단 하나뿐이다 - 를 협소한 의미의 결정론으로 보고, 과거는 '고정'되어 있더라도 미래는 '열려' 있을 수 있다는 색다른 결정론으로 나아갑니다.


결정론이 불가피성을 야기한다는 주장, 결정론이 인간의 가능성을 봉쇄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데닛이 충분한 반론을 펼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결정론이 참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자유의지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경험적 차원에서 증명 가능한가는 이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자유, 혹은 자유의지에 대해서 자연과학적, 경험적 차원의 토대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현재 수준의 과학이 확정적인 대답을 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에 대해서 다윈주의적으로 접근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진화심리학은 학문의 발전단계로 보자면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자유가 경험적 차원에서 뒷받침 될 수 있으며, 그러한 토대 위에서 자유의 개념을 재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철학이 공허한 사변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길이 될 것입니다.



3. 결정론과 책임


결정론과 자유의지에 관한 논쟁은, 형법학에서 책임주의가 가지는 의의에 대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형법에서 책임은 사회학이나 철학에서 말하는 책임의 의미와는 다소 다릅니다. 그것은 가벌성의 근거, 가벌성의 한계로서의 의미를 가집니다. 즉, "책임 없는 형벌 없다" 라고 할 때, 책임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데,  첫째로는 형벌은 책임을 전제한다는 것과, 둘째로는 형벌은 책임의 한도를 초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책임주의는 형법도그마틱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게 됩니다. (법학에서 도그마틱이란 철학에서 공리와 비슷한 의미로 새기면 됩니다. 이는 일종의 건축물-오랜 세월에 걸쳐 세밀하게 조직된 이론의 건축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


책임주의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지닌다는 전제를 토대로 삼고 있습니다.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합법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을 택했을 때 그에 따른 책임으로서 형벌을 부과한다는 것이 책임주의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경우에 책임주의의 토대가 흔들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책임주의가 토대로 삼고 있는 자유의지가 오로지 형이상학에 근거할 뿐, 경험적 차원에서 근거를 지니지 못한다는 점은, 책임주의에 대한 반대자들의 공격 논거 중 하나로 기능했습니다.


결정론에 관한 논쟁, 자유의지의 가능성에 관한 논쟁으로부터 형법학이 흔들림 없는 토대를 구성하기 위한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책임주의 자체를 포기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도 있고, 책임주의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에는 결정론에 입각해 자유의지를 부정하는 주장에 대해서 충분한 반박을 내놓아야 할 거증책임을 지게 될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로 나아간 예로는 히르쉬(Hans Joachim Hirsch)를 들 수 있습니다. 그가 1994년에 쓴 논문, "책임원칙과 책임원칙의 형법적 기능"의 핵심 내용을 인용합니다.


"법질서는 현실세계에 의존되어 있지만, 법학은 자연과학이 아니다. 법학은 오히려 사회적 생활현상에 지향되어 있다. 법이 인간에게 미쳐야 한다면, 법은 인간이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 처럼 되어야 한다. "

"법질서에 관한 결정적인 문제는 의사자유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여부의 문제가 아니다. 결정적인 것은 공동체 내에서 어떤 표상이 지배적인지, 사람이 어떠한 세계상에 따라서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지의 문제이다. ... 중략... 우리가 행동결정에 있어서 비결정적이라고 느끼고 이에 따라 살아간다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심재우 편저, 책임형법론 )



결국 히르쉬는 자유의지가 경험적, 자연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사회현실에서 인간이 스스로 비결정적으로 살아가고 이해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히르쉬의 견해는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논쟁을 겉으로는 피해갈 수 있는 듯 보이지만, 사회현실에서 인간이 지니는 근거가 불분명한 '표상'을 책임주의의 정당화 논거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빈약한 논증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는 자유의지가 국가를 위해 필요한 허구라고 보는 입장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형법도그마틱은 순수한 법이론이 아니며, 전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경험적 차원에서 뒷받침될 필요가 있습니다.


책임주의 자체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 사람의 대표적인 예로는 야콥스(Günter Jakobs)가 있습니다.  그는 책임주의를 포기하고 그 자리를 '일반예방'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반예방이란, 간단히 말하면 일반인에게 영향을 줌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야콥스는 책임원칙만으로는 형벌의 종류와 양을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결국 규범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정도, 사회가 균형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정도만으로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강성 결정론을 지지하는 철학자들은 자유의지도 없으며, 도덕적인 책임도 없다고 주장하는데, 야콥스의 주장은 이런 입장과 일맥상통합니다. 즉, 규범위반에 대한 제재는 도덕적인 책임 위반에 따른 '윤리적 비난'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회적 필요성'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콥스의 주장의 난점은 그가 일반예방의 구체적 내용으로 전개한 비례성원칙이, 응보형법이나 결과형법에서 더 잘 실현될 수 있다는 점과, 일반예방에 기초하더라도 형벌의 종류와 양을 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법위반과 국가의 제재 사이에는 적합한 비례관계가 있어야 하지만, 어느 정도가 적합한 비례관계인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고, 나찌시대의 목적형법 -국가적 목적에 의해 형벌이 정해지는 -의 위험성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사회적 필요성은 유동적이고, 권력자에 의해 이용되기 쉬운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책임주의가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더 명확히 알아갈수록 책임의 경계도 더 명확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뇌가 신경조직이 선천적으로 이상 배열되어 범죄적 경향을 나타낸다고 가정한다면, 그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가 의 문제는 그 사람이 가지는 자유의 조건을 파악하는 정도에 따라서 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범죄적 경향이 선천적인 신경조직이상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몰랐을 당시에는, 다른 사람과 동일한 처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반면, 그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졌고, 법정에서 이를 근거로 무죄를 주장한다면, 범죄를 저지르도록 '결정'되어 있었고, 달리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책임을 면제해야 하는 것일까요? 만약 그런 신경조직이상에 대한 치료법 A가 있었고, 이 치료법을 받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그 당시의 과학으로 밝혀져 있었다면, 행위자는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없음을 주장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각 개인이 가지는 자유의 정도, 재사회화의 가능성 등을 경험적 차원에서 더 명확히 파악할수록, 부과하는 책임도 더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4.


현재 수준에서 자유의지가 존재하는가 여부는 아직까지는 확정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의지란 개념이 다소 불명확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연구해 가다 보면 그 실체에 어느 정도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어쨌든 이 글을 쓰게 된 주요 동기는 결정론과 운명론이 무관하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함이었고, 자유의지에 대한 제 관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정리하고자 한 것도 있습니다.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빠뜨린 부분도 많다는 점, 감안해 주시길 바랍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츄츄호랑이
11/07/22 14:14
수정 아이콘
결정론과 자유 의지가 양립한다는 설명이 이해가 잘 안 돼요. 라이프게임에서 결과가 초기 조건에 종속된다는 점에서 결정론에 대한 예가 될 수 있다는 건 이해했는데, 여기에서 어떻게 자유 의지가 발현한다는 거에요?
Geradeaus
11/07/22 14:54
수정 아이콘
아, 그리고 그림은 익플에서는 보이는데 크롬에선 안 보이네요 ;
츄츄호랑이
11/07/22 15:19
수정 아이콘
라이프 세계에서 픽셀들이 행위자처럼 행동한다는 건 초기조건에서 이미 결정되어 있는 거잖아요. 라이프세계가 실제 세계처럼 복잡하진다면, 분명 의식(consciousness)이 생겨날 수 있겠지만, 전 단계의 물리적 법칙에 복속된다면 자유 의지(free will)이라고 할 수 없는 거 아닐까요? 의식을 뇌의 전기작용이 아니라 물리세계와는 다른 어떠한 것이라고 보면 모르겠지만. [m]
츄츄호랑이
11/07/22 17:29
수정 아이콘
으 제 생각이 다르다기보다는 본문 내용을 잘 이해못한거같아요. 의지에 자유라는 수식어를 붙이려면 설령 라플라스의 악마가 있더라도 세계의 변화 모습을 예측할 수 없다고 보거든요. 주관적으로는 의식과 의지가 생기도록 결정되어있다고 해도, 그것이 자유로운 의지라고 할 수 있나요? 복잡한 부분을 제가 단순화시켜 오해하는 것 같기도 하구... 곰곰 생각해봐야겠어요. 생각할 수 있는 들을 써주셔서 감사해요.^^ [m]
11/07/22 18:15
수정 아이콘
좋은글같아요! 맛폰이라가독이힘든데 집가서정독하고싶어요지우거나하지는말아주세요:) [m]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0462 [일반] [KBO]전반기 팀별 이야기 해봐요(댓글로 이어가는거 어떨까요?) [38] 아우구스투스3695 11/07/22 3695 0
30460 [일반] 삼성 사후지원 안 좋다는 말도 이제 옛말이네요. [32] Physiallergy6755 11/07/22 6755 0
30459 [일반] 키워드로 고른 노래 -고등어- [2] 마실3964 11/07/22 3964 0
30458 [일반] 결정론의 제반 문제 [12] Geradeaus4419 11/07/22 4419 0
30457 [일반] 정신 번쩍 들게 될 블랙박스 사고영상 [37] viper6951 11/07/22 6951 0
30456 [일반] 태어나서 처음 좌절해본 오늘입니다.(운전면허관련) [35] 비내리는숲6397 11/07/22 6397 0
30455 [일반] 이 두곡 간의 연관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 붉은바다4483 11/07/22 4483 0
30453 [일반] 애프터스쿨 블루의 뮤직비디오와 틴탑의 티저가 공개되었습니다. [6] 세우실3738 11/07/22 3738 0
30452 [일반] 서울에서 나만의 공간 마련하기.. 우울하네요 [12] 어떤날5009 11/07/22 5009 0
30451 [일반] 항상 고맙고 오늘 다시 들어갑니다. [8] 영웅과몽상가4390 11/07/22 4390 0
30450 [일반] BEAUTY [4] 루미큐브6276 11/07/22 6276 0
30449 [일반] 기자인지 소설가인지... [4] christal4724 11/07/22 4724 0
30445 [일반] 지금 100분 토론 보고 계신분 계시나요? [14] 시크릿전효성5794 11/07/22 5794 0
30444 [일반] 방금 성수동 구두가게를 봤습니다. [1] 영웅과몽상가5161 11/07/21 5161 0
30443 [일반] [야구]국내 해설진에 대한 불만 [265] 레몬커피7792 11/07/21 7792 0
30442 [일반] 1년차 동원예비군을 다녀왔습니다. [35] dokzu14489 11/07/21 14489 0
30441 [일반] 다혈질에 대한 소고와 푸념 [15] 고구마줄기무��4751 11/07/21 4751 0
30440 [일반] 이런 습관어떤가요? [10] 영웅과몽상가4732 11/07/21 4732 0
30439 [일반] 어떤 야구선수를 좋아하세요? [88] 럼블5301 11/07/21 5301 0
30437 [일반] 삼성라이온스 카도쿠라 웨이버공시 [57] Jolie6724 11/07/21 6724 0
30436 [일반] 1%의 어떤것 [89] realist7340 11/07/21 7340 0
30435 [일반] 어빌리티 [8] Ariossimo3883 11/07/21 3883 0
30432 [일반] 옴므의 신곡 "뻔한 사랑 노래"가 표절 시비에 휘말렸네요. [35] 정군5439 11/07/21 5439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