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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11/13 16:29:10
Name Neanderthal
Subject [일반] 마녀사냥...
1589년 늦은 8월의 어느 날, 수십 척의 배가 덴마크를 출발해서 거칠기로 악명이 높은 북해를 거쳐서 스코틀랜드로 떠납니다. 그 선단에는 14살 난 공주가 타고 있었고 스코틀랜드에는 그녀의 남편이 될 제임스 6세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덴마크 공주 안나(한나)는 제임스 6세와 정략결혼을 하게 된 몸이었습니다. 안나 공주가 타고 있던 선단을 이끌던 사람은 페테르 뭉크라는 제독이었습니다.



Anna of Denmark


선단이 북해를 건너는 동안은 별 다른 일이 없었는데 거의 목적지인 스코틀랜드에 도착할 때쯤 되어서 갑자기 돌풍이 불어 닥칩니다. 두 차례나 항구에 정박하려고 했지만 두 번다 강력한 돌풍이 불어서 선단을 바다로 밀어내 버리지요. 이상하리만치 강력한 폭우와 강풍은 결국 선단을 목적지에서 한참 떨어진 현재의 노르웨이 지역으로 밀어내 버리고 맙니다. 뭉크는 생각했습니다. 원래 북해야 바다가 거칠고 바람이 세기로 유명하지만 자신들을 노르웨이까지 표류하게 만든 그 바람은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상하리만치 강력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그 강력한 비바람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마녀들이 술수를 써서 일으킨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세 번째로 스코틀랜드에 상륙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역시나 이번에도 또 강력한 돌풍이 불어 닥쳤고 선단 전체가 강력한 바람과 거친 파도 위에서 정처 없이 이리저리 휩쓸렸습니다. 심지어 뭉크와 공주가 타고 있던 배에서는 밧줄로 단단히 고정시켜 놓았던 함포가 줄이 끊어지면서 갑판을 덮쳐서 8명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자칫 잘못했으면 공주마저 목숨을 잃을 뻔 했지요.

돌풍은 거의 가라앉을 뻔한 배를 다시 노르웨이 해안으로 밀어버렸습니다. 그들이 노르웨이에 도착했을 때는 엎친 데 겹친 격으로 결빙성 폭풍(ice storm)이 불어 닥쳐서 그들은 일단 노르웨이에 정박한 채 발이 묶이고 맙니다. 요즘 같으면 아이폰 6s 플러스라도 꺼내서 미래의 남편이 있는 스코틀랜드로 국제전화라도 한 통 때렸을 텐데 당시는 아이폰은 고사하고 어른폰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공주는 비탄에 빠졌고 일행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때 한 용감한 덴마크 선원이 메신저를 자처했습니다. 그 선원은 혈혈단신으로 북해를 건너서 스코틀랜드에 도착하고 난 후 제임스 6세를 만나서 미래의 신부가 겪은 고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왕은 구조 선단을 꾸려서 직접 노르웨이로 출발하지요. 하지만 이 여정 역시 쉽지는 않아서 10월 20일에 출발한 선단은 11월 19일이 되어서야 노르웨이에 당도하게 됩니다.



제임스 6세...


신랑 신부는 드디어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 있는 난관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요. 이제 그 둘은 다시 스코틀랜드로 넘어가야 했지요. 에든버러로 돌아가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게 원칙이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두 사람이 무사히 스코틀랜드로 돌아갈 수 있을 지도 불분명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둘은 일단 오슬로에서 급하게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소식을 들은 스웨덴 왕이 자신의 군대 400명을 보내서 이들을 호위하게 했고 그들은 스웨덴 왕국의 영토를 지나서 다시 스코틀랜드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왕과 왕비가 바다를 건너려고만 하면 날씨가 이상하게 나빠지면서 종종 발목을 잡곤 했습니다. 결국 잉글랜드의 해군 선단이 출동해서야 마침내 왕과 왕비는 영국섬에 다시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에든버러로 돌아온 시점은 1590년 5월이었습니다. 덴마크의 안나 공주 입장에서는 거의 9개월에 걸친 대장정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당시 유럽을 휩쓸고 있던 마녀사냥에 대해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이런 일을 겪고 나자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는 지난 고난은 자신과 새로운 왕비가 서로 만나는 것을 막고자 하고 더 나아가서 자신과 왕비를 살해하고자 한 마녀들의 소행이 분명하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자, 이제 사냥을 하는 것은 정해졌습니다. 마녀만 있으면 됐지요. 늙은 산파였던 아그네스 샘슨(Agnes Sampson)이라는 여성이 마녀로 낙인이 찍혔고 제임스 피안이라는 학교 교사가 주모자로 체포되게 됩니다. 이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이 마녀라는 낙인 하에 처형이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아그네스 샘슨은 모진 고문을 당합니다. 아그네스 샘슨은 이러한 모진 고문에 못 이겨 결국 자신이 마녀이고 모든 돌풍과 비바람, 높은 파도와 안개를 자신이 마법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실토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임스 6세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진실한 죄의 실토가 아니라 고문을 피하기 위해 그냥 하는 거짓 자백이라고 그녀를 추궁했습니다. 사실 제임스 6세는 주군으로서 사람들에게 자신이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고 신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런 모습 자체가 연극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아그네스 샘슨은 왕과 독대를 청합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자신이 진짜 마녀임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왕과 왕비가 오슬로에서 결혼식을 거행했을 때 왕이 왕비에게 비밀스럽게 속삭인 말을 직접 왕 앞에서 다시 재현해 보였고 자신이 이러한 일을 꾸미게 된 것은 [악마가 왕을 싫어해서 그를 북해의 찬 바다 속에 수장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사탄이 그를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음모를 꾸몄다는 요지였습니다.] 사실 이 자백이야말로 제임스 6세가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이었습니다. 이로서 그는 악의 세계에 맞서 기독교 세상을 수호하는 가장 중요한 수호자로서 부상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다른 존재도 아니고 악마가 그를 최고의 적으로 여긴다지 않습니까? (이 제임스 6세는 나중에 잉글랜드도 함께 통치하게 되면서 제임스 1세가 되고 그 유명한 킹 제임스 성경을 편찬하게 됩니다.)

1591년의 추운 겨울 어느 날, 에든버러 성에서 아그네스 샘슨은 화형을 당하게 됩니다. 아그네스 샘슨의 처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시기에 유럽에서 횡횡했던 많은 마녀사냥들은 사실 이 시기의 급작스런 기후변화와 관련이 깊다고 합니다. 이 당시는 현재의 기상학자들이 작은 빙하기(the Little Ice Age)라고 불리던 시기로 많은 비가 내리고 평균 기온이 하락하고 혹독한 겨울이 계속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날씨가 좋지 않다보니 계속해서 곡식농사가 망하면서 남녀노소,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거기다가 흑사병 같은 질병들도 창궐하면서 유럽에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갑자기 기후가 나빠지고 병이 창궐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던 사람들은 늘 그렇듯 사회의 가장 약자들에게 화살을 돌리게 되고 그게 바로 마녀사냥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논리적으로 이해를 할 수가 없으니 억지 논리라도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결국 마녀사냥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의 광기가 가장 약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분출이 된 것에 불과했지요. 학자들에 따르면 이 시기에 적어도 마녀사냥이라는 명목 하에 약 5만 건 정도의 처형이 이루어졌고 그 가운데 약 80% 정도가 현재의 독일 지역에서 자행되었다고 합니다. 희생자들의 약 80%가 여성들이었고 이렇게 여성들이 많이 처형된 배경에는 여성들이 악마의 유혹에 더 쉽게 넘어간다는, 성경속의 이브 이야기에서부터 내려오는 가정이 바탕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과학 기술로도 하지 못하는 기후와 날씨의 변화를 그 당시 힘없는 과부, 노파, 천민 출신의 여성들이 무슨 재주로 만들어냈겠습니까? 그저 눈먼 인간들의 광기에 애꿎은 사람들이 희생이 된 비극이었을 뿐이었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는 날씨나 기후에 있어서는 100% 수동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도 가뭄이 극심한 곳에 비구름을 만들어서 비를 내리게 할 수도 없고 커다란 피해가 예상되는 허리케인의 진로를 임의로 바꿀 수도 없지요. 지진을 예측하지도 못합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많은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것을 볼 때 우리는 여전히 집주인(지구)의 호의에 기대여야 하만 되는 세입자(호모 사피엔스)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방 빼!!!...--;;;


이 글은 Cynthia Barnett의 책 [Rain: A Natural and Cultural History]를 참고로 해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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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과열무
15/11/13 16:43
수정 아이콘
본문 중

...사람들은 늘 그렇듯 사회의 가장 약자들에게 화살을 돌리게 되고 그게 바로 마녀사냥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하아. 인류라는 존재가 사라지기 전까지 계속 반복할 듯 싶네요.
15/11/13 16:48
수정 아이콘
22 그렇겠죠.
겨울삼각형
15/11/13 16:51
수정 아이콘
제임스6세 아닌가요? 소곤소곤....

암튼 덕분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동군연합이 되면서.. 지금의 영국의 기반이 되죠.

그리고 이분은 정통 가톨릭이 아닌 성공회를 강조해서... 기존 가톨릭 신도들의 반감을사서 암살기도도 경험하죠
(브이 포 벤데타로 알려진 가이포크스의 궁전 폭발시도)
Neanderthal
15/11/13 16:53
수정 아이콘
6세 맞네요...눈에 뭐기 씌였는 지 로마자를 착각했네요... --;;;
15/11/13 17:06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
파르티타
15/11/13 17:17
수정 아이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15/11/13 17:41
수정 아이콘
그러니까 그 마녀의 후손이 정글러라는거죠?
Neanderthal
15/11/13 17:45
수정 아이콘
그런데 그 정글러라는 말이 누구를 지칭하는 건가요?...제가 이런 데 좀 어두워서...--;;;
-안군-
15/11/13 18:28
수정 아이콘
아, LOL에서 정치질의 희생자는 항상 정글러라는 뜻입니다.
이기면 내탓, 지면 정글러탓. 크크크...
혜장선보윤태지하
15/11/13 17:57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그게 마녀건, 유태인이건, 종북좌파건, 그들(?)에게는 늘, 사회에 존재할 필요 없는 집단이 필요한 것 같네요.
구라리오
15/11/13 18:06
수정 아이콘
필요는 창조의 어머니!
없으면 만들어 냅니다.
아니네요. 만들지는 않습니다.
항상 언제나 어디에나 존재하는 소수자들을 취사 선택합니다?!
-안군-
15/11/13 18:14
수정 아이콘
사람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면, 그 불만이 지도자에게 쏟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통, 민란이나 혁명 등의 형태로 나타나게 돼죠. 이럴 때 가장 효율적인게, 그 분노를 어딘가로 돌리게 하는겁니다.

역사적으로 이런 일은 끝없이 일어났죠..
로마시대 초창기에는 기독교인들을 박해했고, 마녀사냥, 유태인 학살, 남경대학살, 문화혁명, 서북청년단, 4.3사건, 5.18...... 정글러(?)
근래 있었던 민노당 해체나, 일베의 행태들이나, 여혐, 남혐, 맘충... 어찌보면 다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식론자
15/11/13 19:11
수정 아이콘
마녀사냥이 특정시대에만, 특정종교 때문에만, 특정인물 때문에만 일어난 특이한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편견들을 자주 보게 되죠. 본문에 나온대로 사람들은 늘 그렇듯 사회의 가장 약자들에게 화살을 돌리게 되어 있는데 말이죠.
속마음
15/11/13 19:16
수정 아이콘
중국에서 비를 내리는 미사일을 쏜다는 얘길 들은적이 있는데 그건 정체가 뭘까요...
schatten
15/11/13 19:45
수정 아이콘
사회의 약자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마녀사냥은 그 자체로 섬뜩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걸 이용해서 자신의 입지를 굳힐 수 있는 그 정치적 '기술'이 놀랍네요...

사실 이런 일은 일상 생활 속에서도 빈번히 일어나지 않나요? 크크크 심지어 어떤 분은 '보통 은따 있는 반이 단합 더 잘 된다'는 말씀까지 하시더라고요. 무서운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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