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7/01/24 09:18:04
Name aura
Subject [일반]  <단편?> 카페, 그녀 -44 (부제 : 연애하고 싶으시죠?)

날이 엄청 춥네요.


- - - -


언제부터였을까?
소희가 날 좋아한 것이.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고백받는다는 것은 분명 기쁘고, 설레는 일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손끝에 맴돌았다.


- 저희는 자리 파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세요. 먼저 들어가볼게요. 오늘 즐거웠어요.
"아."


문득 확인한 폰에는 수영이의 톡이 와있었다.
잔뜩 분위기가 뒤숭숭한 채로 끝났을 수영이 쪽을 생각하니 그제야 잊고 있던 미안함이 몰려왔다.


- 다시 들어가보려고 했는데... 다들 헤어졌어? 오늘은 나때문에 미안해.
   다음에 볼때는 진짜 재밌게 놀자.


"하아."


한숨이 절로 쉬어진다.
소희의 감정... 수영이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내 감정까지.
온갖 것들이 내 속에서 뒤섞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어지러운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마침내 집 앞 놀이터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도저히 놀이터의 미끄럼틀을, 그네들을 지나칠 수가 없었다.


홀린듯이 미끄럼틀과 그네에 앉아 사색에 잠겨들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소희가 나를 좋아한 것은.
차라리 장난이었다고, 지금이라도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깔깔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희의 반응을 돌이켜보면 절대 장난일 리 없다고 생각한다.
생전 나조차 처음보는 모습이었으니까. 그런 진지한 소희의 모습이 장난이었을 리 없으니까.


은소희가 나를 좋아한다. 그러면 이현우 너는 어때?
소꿉친구로서 소희라면 누구보다 좋아한다. 여자로서는?
모르겠다. 단순히 좋다 싫다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당장이라도 소희가 내 앞에 나타난다면 나는 그녀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주어야할까?
역시 모르겠다.


"하아..."
"무슨 한숨을 그렇게 크게 쉬어? 땅 꺼지겠네."


순간 소희 같은 말투에 흠칫 놀라 뒤를 보니, 소희 대신 서있는 것은 소민이였다.


"소민이냐..."
"뭐야 형. 그 미지근한 반응은?"


평소라면 보자마자 소민이를 잔뜩 귀여워(?)해줬겠지만, 오늘은 영 내키지 않는다.


"무슨일 있었지?"
"응?"
"있네. 있어."


소민이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뭔 일은 무슨. 그건 그렇고 너 아직 몸도 성치 않은 애가 이렇게 혼자 돌아다녀도 되는거야?"
"나야 뭐 건강하지! 건강빼면 시체라고."
"깁스한 다리로 잘도 그런 말 한다."


소민이의 능청스러운 태도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 남매는 항상 이런 느낌이구나 싶다.
사람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재주를 가졌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인데 형. 누나도 그렇고... 나한테 다 말해봐."
"소희가? 아, 집에 들어갔어?"
"들어오자마자 그런 누나는 처음이었다고... 딱 봐도 오늘 무슨 일이 있긴 있었구나 싶더라니까."


설마 눈물을 흘리며, 잔뜩 퉁퉁 부은 얼굴로 들어왔다던가...?


"문도 쿵쿵 닫고 잔뜩 화가 난 것 같아서, 방에서 혼자 뭘 부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아무리 그래도 소희가 울고불고 질질 짤리가 없지. 이럴 때 마저 당당하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하아. 그러니까... 소민아..."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 소민이에게 툭 털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오늘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늘어놓았다.
마침내 소희가 짜증 가득한 고백을 내뱉던 부분에서 소민이는 '맙소사!'하고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형도 진짜 큰일이다.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
"내가 눈치가 없다니?"


군대에서도 눈치로 먹고 살던 사람인데!


"아니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여자에 대해서만 이렇게 둔할 수가 있는거야?
  이러고도 여자친구는 잘 만나온 거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
"형 진짜로 우리 누나가 형 좋아하는 거 몰랐어?"


진짜 몰랐는데요...


"어."
"내가 아니어도 그렇게 누나가 눈치를 줬는데도?"
"..."
"세상에 이 형 좀 봐라? 형! 우리 누나가 형 말고 다른 사람한테 쿠키니, 음식이니 요리해주는 거 봤어?"
"저번에... 소희가 우리 과실에 놀러왔을 때?"
"아오, 그건 형이 있으니까 그런거고, 나랑 형빼고 다른 남자한테 해주는거 봤냐고."


그러고보니, 없는 것 같다.


"그게 아니어도 참... 형처럼 남자를 편하게 대하는 경우도 없는데..."
"나야, 소꿉친구니까 그렇다고 생각했지."
"소꿉친구여도 그렇지, 곰곰이 생각해봐, 우리 누나가 형한테 외모적으로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잖아. 소꿉친구한테 굳이 그래야할 이유가 있나?
  좋아하니까 그런거지. 여자가 매번 그렇게 치장을 하고 누굴 만나는 건 굉장히 정성이 많이 필요한 일이라고."


소민이 얘기를 듣고 있자니 할 말이 없다.
구구절절 다 맞는 소리니까. 그러고보니 대강입은 소희의 모습을 본 기억이 어렸을 적부터 한 번도 없다.


"언제부터지.."
"언제부터긴 아주 오래 전 부터지..."
"그렇다고 하기에는 중간 중간 남자친구도 잘 만났던 것 같은데..."
"그야, 그건 우리 누나의 소심한 복수랄까. 형이 여자친구가 생기니까.. 말도 못하고?
  물론 하나도 소용없는 짓이었지만, 애초에 우리 누나를 조금이라도 쪼잔하고 소심하게 만드는 건
  세상에 형 하나밖에 없단 말이지."


그래서였나. 소희가 유독 연애를 해도 길게 못가고 금방 금방 헤어졌던 건?
매번 벌써 헤어졌냐는 물음에 '질렸어~'라고 해맑게 답하던 소희의 모습 뒤에는 그런 면이
숨겨져 있던 걸까.


소민이와 얘기를 하고 나면 조금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뭐랄까... 갑갑한 것 조금 나아졌지만, 보이지 않는 부담이 조금 생겼다고나 할까.


"어찌됐든 누나가 형한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던 이상 언젠가 이런 날이 올줄 알았지."
"하아."
"솔직히 말하면 난 형이 우리 누나랑 사귀었으면 좋겠어."
"?"
"늘 말했듯이 나한테 매형이 생긴다면, 형밖에 생각나지 않으니까?"


배려심 많고 한 편으로는 유약해 보이는 소민이었지만, 이럴때는 제 누나와 남매 아니랄까봐 똑 부러진다.
항상 당당하고, 밝게 빛나는 뭔가가 느껴진다.


"이만 나는 들어가볼게. 누나나 내가 당장 어떻게 말해도 없던 감정이 생기는 건 아닐테니까.
  그래도 우리 누나만한 여자도 없어. 성격이 좀 괴퍅해서 그렇지. 형이 누나를 거절한다고 해도
  원망같은 건 안하니까, 다만 많이 고민하고 고민해서 누나에게 대답해줘."
"다리는 아픈데, 부축해줄게."
"됐어. 형은 여기서 고민 좀 많이 하고와. 같이 가다 누나한테 걸리면 쁘락치 소리 들을까 겁난다."


얘는 언제 이런 말을 배워서는.
혼자 용케 집으로 들어가는 소민이가 사라지고 그대로 그네에 주저 앉는다.
그렇게 하얀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44끝


45에 계속.

  
- - -

어쩌면 금방 완결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간만에 연참이네요. 매번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한걸음
17/01/24 09:45
수정 아이콘
소설분위기가 확 달라지기 시작하는군요ㅜㅜ
17/01/24 09:52
수정 아이콘
이제 결말을 향해 가야죠! 좀 걸리겠지만..
17/01/24 17:43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17/01/24 18:17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17/01/25 10:40
수정 아이콘
이틀동안 다 읽었습니다.

소희가 안타깝지만.. 저는 수영이가 젤 좋네요~
17/01/25 10:57
수정 아이콘
이틀이나 걸리셨나요.

생각해보면 제가 썼지만 분량이 꽤 되는 것 같습니다.
처음 구상하고 쓸 때만 해도 이렇게까지 길게 쓸 생각은 없었는데...(제 역량 부족인 듯 합니다. 흑흑)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70178 [일반] 오늘자 정치 유우머 [41] 삭제됨10897 17/01/24 10897 2
70177 [일반] 이재명, 박원순, 김부겸 공동정부 추진 합의 [163] 그러지말자13585 17/01/24 13585 1
70176 [일반] 반기문 전 총장, 한기총 방문 (동성애 관련 질문 본문추가) [289] jjohny=쿠마14478 17/01/24 14478 2
70175 [일반] 반기문 조카 10여년 병역기피 ‘지명수배’ 드러나 [86] ZeroOne11492 17/01/24 11492 0
70174 [일반]  <단편?> 카페, 그녀 -44 (부제 : 연애하고 싶으시죠?) [6] aura4738 17/01/24 4738 2
70173 [일반] [단독] 롯데-이대호, 4년 총액 150억원 최종 합의 [41] 킹보검8937 17/01/24 8937 1
70172 [일반] 전안법이 시행된다고 합니다. [48] 김율13454 17/01/24 13454 1
70170 [일반] 30대의 옷 구매 노하우 [31] 바람과별13580 17/01/23 13580 2
70169 [일반] '후쿠시마의 김치아줌마' 정현실 교수 전주 방문, 주민 50명 후쿠시마 초청 [10] 군디츠마라8892 17/01/23 8892 0
70168 [일반] 무너진 김기춘, 문화계 블랙리스트 존재 시인. 그런데....? [52] 독수리의습격12499 17/01/23 12499 7
70167 [일반] 이것은 정치(?) 영화 스포츠의 3단 콤비네이션 뉴스 [25] 바스테트8206 17/01/23 8206 0
70166 [일반] 트럼프의 '언론과의 전쟁' (Feat. 대안적 사실) [27] 텅트7083 17/01/23 7083 3
70165 [일반] 차지철 경호실장의 권세 [13] 로사9822 17/01/23 9822 7
70164 [일반] <단편?> 카페, 그녀 -43 (부제 : 연애하고 싶으시죠?) [9] aura4543 17/01/23 4543 5
70163 [일반] 황교안 대행이 신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39] The xian9642 17/01/23 9642 0
70162 [일반] 탄핵심판 관련 박근혜의 꼼수 [52] 강가딘9801 17/01/23 9801 1
70161 [일반] 박원순이 말하는 촛불경선 [72] ZeroOne8564 17/01/23 8564 1
70160 [일반] 문재인 후보님도 박원순 시장님처럼 서울대 폐지론에 동참하는 모습이네요,, [190] BetterThanYesterday13912 17/01/23 13912 0
70159 [일반] 이재명 "집권땐 박근혜, 이재용 사면 없다. 재벌해체로 공정사회" [46] 레스터8849 17/01/23 8849 5
70158 [일반] 과연 지금의 인구가 유지되는 것이 좋을까? [91] 삭제됨9967 17/01/23 9967 2
70157 [일반]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 소손(발화)현상 원인 공식발표 [56] Neanderthal10344 17/01/23 10344 0
70155 [일반] [KBL] (스압) 1617 올스타전 직관 관람기 [12] ll Apink ll5687 17/01/23 5687 6
70154 [일반] 오늘자 리얼미터 대선주자 & 정당지지율조사 [72] Lv312185 17/01/23 12185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