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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02/03 01:30:23
Name 지구와달
Subject [일반] 사하라사막 입구 다녀온 이야기
살다보면 참... 뭐라 썰을 풀어야할지 판단하기 힘든 이벤트들이 있습니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이벤트여서 그럴 수도 있고,
좋음과 싫음이 정확히 같은 양으로 섞인 이벤트여서 그럴 수도 있고,
너무나 벅찬 경험이어서 감히 문자 따위로 남기기 어려운 이벤트여서 그럴 수도 있죠.

아래 글은 제가 지난 12월, 사하라 사막에 다녀온 직후 모로코 어느 숙소에서 쓴 일기인데 혼자보기 아까운 경험이라 한번 올려봅니다.
저는 일기장에 존댓말을 쓰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격 떨어지는 문체 이해바랍니다.


12월 18일.
아브델이 새벽 6시 반부터 문자를 보내 깨운다.
일어나야해. 너 사막가려면 7시에는 출발해야해.
물론 나는 그 전에 이미 긴장과 흥분으로 깨어 있었다.
어둑한 아침에 16인승? 미니 버스가 숙소 앞으로 왔다.
브라질 커플들 4명, 오스트리아 남자, 튀니지 남자, 프랑스 여자, 호주 모녀 3명, 일본 남자, 네덜란드-한국인 부부... 총 15명이 멤버가 되어
(나중에 알고 보니) 겁나게 멀고 먼 사하라로 출발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버스 안에서 나는 저렇게 신이 나서 화장도 이쁘게하고 셀카를 찍어댔었지...

미니버스는 한참을 달려 마라케시 시내를 빠져나가 구불구불 아틀라스 산맥을 지난다.
이때,
벌써부터 호주 여자 한 명이 미니버스 뒷좌석에서 토하기 시작했다. -_-

여자는 토하고, 그러면 버스는 잠시 멈췄다가 출발하고, 출발하면 여자는 또 토하고, 또 잠시 멈추고. 나를 포함 모두가 냄새를 맡고 토하지않기위해 정신줄을 빠짝 잡으며  눈 쌓인 아틀라스 산맥을 지나고, 미국 서부 영화에 나올 법한 황량한 길을 지나고, 시골 마을을 지나고... 버스는 계속 달린다.

식사 시간이 되면 버스를 멈추고 꾸스꾸스나 따진이나 모로컨 샐러드 등을 먹는다. 그리고 또 달린다. 왕좌의 게임 촬영지도 지나고 초원도 지나고 들도 지나고 산도 지나고...
3g는 커녕 핸드폰 통화도 안되는 곳을 계속 달린다.

몸과 마음과 머리카락이 버스에 쩔은 채로 시골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 밤은 여기서 자고 내일 또 간단다.
내가 배정받은 방은 삼백 몇호였던 것 같은데 열쇠를 받아들고 올라가보니 옥탑방이다.
진짜 옥탑이다. 방 문을 열면 마당이었으니까.크크.

그리고 이 곳에서 나는 인생 최고의 수면 추위(?)를 경험하게 된다.
살면서 밤이 추웠던 적은 많았다.
돈 없는 대학시절, 막차를 놓친 크리스마스 이브가 너무 추웠었고, 밤새 술을 퍼마시던 야외 포장마차가 술김에도 너무 추웠었다.

그런데 이건...
이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나는 더 이상 용돈을 타서 쓰는 이십대도 아니고, 지금은 술을 퍼마실 수도 없는 뭔가 잇쓸람스러운 상황이니까. -_-
호텔(?)은 진짜, 정말, 무지하게 추웠다.
난방시설이 전무하여 방 문을 열고 하늘을 보나(옥탑방이니까) 방 문을 닫고 있으나 방 안의 온도는 같았다.
나는 얼음같은 물에 간신히 세수만 하고
내복 두 겹, 패딩, 기모 후드 티를 껴입고 담요 두 장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잠시 후에 일어나서 최후의 바람막이까지 껴입고 다시 공기가 1g도 새지 않도록 담요를 세팅하고 누웠다.
내 눈에 흐르는 이것은 눈물일까, 눈의 물일까...
그 와중에 방문 밖에서 올려다 본 하늘은(다시 말하지만 옥탑방이니까) 너무나 아름답더라.
소금을 흩어 놓은 듯, 과자 부스러기가 흩어진 듯 크기도 거리도 밝기도 다른 수 많은 별들이 온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별자리는 전혀 모르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뭐가 은하수인지 단번에 알겠던데...

같은 방을 쓰게 된 프랑스 여자가 담요 두 개를 덮지 말고 최대한 침대 속으로 들어가란다. 그치만 그렇게 하면 등이 추운걸? 했더니 들어가서 등을 부비부비하면 그게 더 따뜻하단다.
그래? 너네 나라도 여기처럼 온돌이 아니니까 니가 나보단 경험이 많겠지,뭐. 생각하고 여자가 시키는대로 했다. 그랬더니 침대 속의 기온이 1도 정도 오른 것 같다. 올.

그렇게 인생 최고의 추운 밤이 지나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참 거만했다.

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몸이 힘들면 알량한 돈으로 해결을 해왔다.
버스타기 힘들면 택시를 타고,
택시도 귀찮으면 내 차를 가지고 가서 주차비를 냈다.
더운 여름에는 이번 달은 전기세 많이 내지 뭐, 하면서 에어콘을 밤새 틀었고,
추운 날에 밖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 때는 너무나 당연하게 따뜻한 커피 숍에서 라떼를 마셨다.

진짜 알량한 사치였다.
그런데 그 알량한 사치도 못 부릴 때가 있는거다.
지금 내가 돈을 줄게 히터를 틀어달라고 해도 안되는 거고, 나 비싼 호텔로 데려다줘 라고 해도 안되는 거다.
그냥. 여섯 겹의 옷을 입고 이 밤을 버텨야 하는거다.

긴 밤이 지나 역시 아침이 오고 전 세계 사람들이 와글와글 섞여 모로칸식 아침을 먹었다. 화덕에 구운 빵을 말한다. 당연히 세수는 생략한다. 이도 안닦았다. 손과 얼굴이 얼까봐.
그리고 또 버스에 올라 달린다. 벌판을 거치고, 붉은 황토 마을을 거치고, 양탄자 가게를 거치고, 한참을 달려 드디어 메르가주에 도착했다.

사하라 사막.    

내가 너 보려고 이렇게 쩔은 얼굴로 33시간을 달려왔쪄...

낙타를 타고 미숫가루보다 고운 붉은 모래를 밟으며  사막에 있는 텐트에 도착했다.

해가 지고 달이 뜨기 전 하늘.
어제 옥상에서 본 하늘보다 수백 배 커진 느낌이다. 하늘은 온통 맛소금같은 별로 덮여 있었다.

채사장 말이 맞다.
난 하늘을 보자마자 북두칠성이 뭔지 찾았고 카시오페이아가 뭔지 알았다. 책에서만 보고 실제로는 본 적이 없는데 그냥 알았다. 내가 별자리 모양을 더 알았다면 금새 더 찾았을거다.
사막에서는 그냥 보인다.

따진을 먹고
아랍어가 유창한 튀니지 남자의 부탁으로 사막의 베르베르인들이 모닥불을 피워주었다. 망가진 나무상자를 태우고 낙타똥도 태운다. 정말 추웠다. 어제에 이어 여섯겹의 옷을 입은 나는 차라리 모닥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각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모닥불 근처에 모였다.
이런 위아더월드 튀니지 남자같으니라고! 나라별로 돌아가며 노래를 하게되었다.
나와 친구는 코리아 대표로 캐롤을 불렀고, 어떤  중국 남자는 노래 가사 중간중간에 '차이나'를 넣어가며 불러 대륙의 민족주의를 유감없이 보여주어 모두가 빵 터졌다.
오스트리아 사람과 이란 사람의 노래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들도 처음 만져보는 것이 분명할, 모로코의 타악기를 두드리며 멋지게 노래한다.
그렇게 사하라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일기 요약.
사막은 춥습니다. 사막은 겁나 멉니다. 그럼에도 별을 보러 갈 가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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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격수
17/02/03 02:15
수정 아이콘
저는 일기장에 존댓말을 쓰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 여기서 빵터졌어요 크크
지구와달
17/02/03 06:22
수정 아이콘
네 저랑 개그코드가 비슷하신.크크
세인트루이스
17/02/03 02:27
수정 아이콘
인도 사막에서 담요 덮고 잘 기회가 있었는데 정말 살면서 제일 추운 밤이었습니다...
지구와달
17/02/03 06:23
수정 아이콘
인도 사막은 안가봤지만. 살면서 제일 추운 밤. 확 와닿네요.
아라가키
17/02/03 02:48
수정 아이콘
오잉 사막도 추운거였군요 ; 전혀 몰랐습니다
지구와달
17/02/03 06:25
수정 아이콘
정말 춥습니다. 땅에서 스물스물 한기가 진짜. 으. 도망갈 곳도 없습니다.ㅜ
아틸라
17/02/03 02:55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지구와달
17/02/03 06:26
수정 아이콘
지금 다시 읽어보니 막 쓴 일기인데. 감사합니다. 크
예쁜여친있는남자
17/02/03 03:33
수정 아이콘
으아 사막 진짜 가보고싶어요. 유우니 소금사막 다녀왔었는데 진짜 사막이 또 보고싶더군요. 혹시 사진 있으신지??
지구와달
17/02/03 06:29
수정 아이콘
사막의 아름다움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눈으로 담아야지...하고 사진을 안찍었는데 후회하는 중입니다. 역시 남는건 사진인가봐요ㅜ 소금사막다녀오셨군요. 저의 다음 타겟인데! 부럽습니당
17/02/03 07:07
수정 아이콘
저는 와디럼에 다녀왔는데 그래도 여긴 밤에 선선한 정도라 야외에서 잘 정도였거든요. 모래사막이 아니라설까요. 저도 언젠가 사하라에 가보고싶네요.
지구와달
17/02/03 16:57
수정 아이콘
네, 모래사막이 아니면 덜 춥다고 들었어요 저도 와디럼가보고싶네요^^
에프케이
17/02/03 07:29
수정 아이콘
예전에 피지알에 몽골 고비사막 여행 후기를 올린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도 사막의 밤에 게르천막에서 버티는건 너무 추워서 혹독할지경이라고 했는데 다른 사막도 매한가지군요 크크
저도 기회가 닿으면 사하라를 가보고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지구와달
17/02/03 16:59
수정 아이콘
저도 게르천막과 비슷한 곳에서ㅜㅜ 고비사막 후기 찾아봐야겠네요 ~ 몽골다녀오신분들 대부분 만족도가 크시더군요
17/02/03 08:21
수정 아이콘
3월에 모로코 갑니다.
저에겐 오리털침낭이 있지요!
수회의 배낭여행 경험상 겨울은 어디가도 침낭입니다.
지구와달
17/02/03 17:00
수정 아이콘
진짜 침낭꼭가져가야해요 전 다음엔 전기담요도 챙겨갈겁니다 꼭.
17/02/03 08:27
수정 아이콘
인도 쿠리사막에 간 적이 있는데 여기도 되게 춥더라구요
지구와달
17/02/03 17:02
수정 아이콘
견문이 짧아 쿠리사막은 못들어봤는데. 인도에 사막이라...허허 듣기만해도 고생문이..;;
아점화한틱
17/02/03 08:48
수정 아이콘
뭐랄까 필력이 귀여우시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남극다녀오신분도그렇고 굉장히 색다른 여행지를 다녀오신분들이 꽤 있군요 크크
지구와달
17/02/03 17:03
수정 아이콘
외모도 귀엽습;;;; 크크 감사합니당
세상을보고올게
17/02/03 10:10
수정 아이콘
지대넓얕 들으시나봐요.
그러고보니 저는 pgr에서 누군가가 소개해주신 과학하고 앉아있네로 팟캐스트 입문했네요.
지구와달
17/02/03 17:04
수정 아이콘
오. 지대넓얕 정말 좋아합니다. 반갑습니다.
17/02/03 10:16
수정 아이콘
글을 참 맛깔나게 쓰시네요 ^^ 요즘 긴 글을 잘 못 읽는데.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지구와달
17/02/03 17:05
수정 아이콘
정말 감사합니다. 그냥 막쓴 일기인데. 어쩐지 자랑하고싶었어요 크크
살려야한다
17/02/03 12:22
수정 아이콘
마침 엊그제 사막(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에서 자고 왔는데 반갑네요 크크
지구와달
17/02/03 17:06
수정 아이콘
겨울에 사막....무사히 돌아오신걸 축하드립니다,동지여.^^
골든글러브
17/02/03 12:36
수정 아이콘
사진! 사진없습니까? 사막의 하늘이 너무 궁금하네요. 재밌는글 감사합니다~
지구와달
17/02/03 17:07
수정 아이콘
낮에는 그냥 윈도우 바탕화면의 그것이고 밤엔 핸펀으로 사진이 안찍혀요.ㅜ 재밌게읽어주셔서감사합니다.
αυρα
17/02/03 12:48
수정 아이콘
메르주가 가는 2박3일 투어인 듯 하네요. 붉은 사막은 대단합니다. ( 저는 돌아가지 않고, 따로 메르주가에 머물기도 했어요. 이건 좀 비추... )
이 투어는, 숙박과 교통이 제공되고 점심을 제외하고 식사도 제공되서, 가성비가 어마어마하게 좋습니다.(저는 100달러 이하였습니다. 호가는 거의 1.5~2배 정도 합니다만...)
이렇게 붉은 사막을 만나기도 힘들거니와 말씀하신 왕좌의 게임(뿐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막도시의) 촬영지도 매우 좋고... 특히 모로코 도시의 치터들을 벗어나 시골사람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저에겐 모로코 사람들이, 이집트나 쿠바인들 등등 보다 훨씬 쎄더군요...)

저 포함 아무도 그 미니버스에서 토하거나 멀미한 사람은 없었는데... 음... 뭐.. 산을 끼고 돌고도는 길이라 많이 구불거리긴 합니다만...
모로코는 참 힘들었는데, 되돌아보면 참 즐겁기도 했고... 그 색들은 도무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언젠가 또 가겠죠?...

아.. 별자리 어플들이 꽤나 있습니다. 저는 써 본적이 없지만 증강현실처럼 하늘에 찍으면 알려주는 녀석들도 있고

본 글과 별도로
.사하라는. 튀니지,알제리 등등에서도 접근 가능합니다. ( 튀니지에는 스타워즈 촬영장이 그대로 있습죠 ) 만, 메르주가가 가장 임팩트있습니다. 저 붉은 사막 때문에
.사막에서 별이 잘 보인다는 데... 제 경험상 최고는 전혀 엉뚱하게도, 라오스 시판돈(강에 있는 섬들)이었습니다. ( 제가 간 작은 섬은, 밤엔 전기가 아예 없었죠. 별빛에 책읽었습니다. MSG 무첨가입니다. ) 고비,우유니,기타 등등과의 비교를 거부합니다(누구맘대로?)
.사막러버로서... 좀 특이한 사막은.. 그 동네는 이집트 바하리아 사막(하얀 사막입니다. 정확히는 석회. 좋은 한국분이 투어도 하시죠), 물론 남미는 우유니(소금사막)과 더불어 브라질에 있는 lencois maranhenses(호수 사막? 정도)나 제리 근처에 있는 역시 사막위의 호수들

연이어 여행글이 올라오네요. 갈 때가 된건가...
지구와달
17/02/03 17:09
수정 아이콘
진짜다...!!진짜가 나타났다...!!! 크크 정말 사막러버이신가보네요. 별빛에 책읽는 경험은 정말 엄청나군요!
바람이라
17/02/03 13:36
수정 아이콘
올해 알제리 사하라 사막 북부로 촬영갈 일이 두 번이나 있어서 그런지 남 일 같지가 않네요 ㅠㅠ
한 이 주 씩 있어야 되는데 지금은 마냥 그냥 촬영이지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은 나중가면 진짜 추울 듯...
지구와달
17/02/03 17:12
수정 아이콘
오 촬영하러가시는군요. 2주라니...단디 무장하고 멋진 경험하고오셔용~^^ 정말 춥습니다. 정말 춥습니다.
바람이라
17/02/03 19:42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히트텍과 겨울잠바를 가져가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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