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회계,총무가 니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냐"

저는 한 중소기업에 회계쪽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이제 딱 1년이 되었습니다.
사실 보고서고 뭐고 만들던 경험은 대학교때 과제 내던거 외에는 없었고, 과는 회계였으나 그동안 허송세월 보내면서
일했던건 그와는 전혀 무관한 일들 이었죠. 그냥 신입 입사자 였습니다.

사수는 여자분이신데, 이분도 이 업무를 그전부터 계속 해왔던 분이 아니어서
나보다 니가 더 잘할거다. 라는 식으로 업무를 넘겨주셨고,
뭐 당시에 자신감밖에 없었던 저는 "세상에 못하는게 어딨어!"하면서 다 받아서 했습니다.

오자마자 할줄 아는게 하나도 없는데 쌓여있는 일감들을 없에가면서..
그래도 어떻게든 해본다고 하다가 이런저런 욕 먹어가면서 1년이 지났네요.
총무,회계라는 일이 항상 똑같은 일이 돌아가는 일이라 익숙해지면 금새 편해질거다. 할일이 없다 사실, 초반에만 바쁜거다.
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래 지금은 힘들지만 이거 다 떨궈내면 편해지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2월을 버티고 3월 버티고 4월 버텼습니다.

그렇게 일은 없애가는데, 일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갔습니다. 잡잡일은 몽땅 맡게 되었습니다.
총무가 해야할 일 이라고 합니다. 군소리 없이 다 했습니다. 매일매일을 아 이거 없에야 하는데,, 일 이거 없에야 하는데.. 보고해야하는데..
하면서 살았습니다. 매일매일 과제가 밀려있는 것 처럼..

그와중에 꼼꼼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실수들은 윗분들에게 실망감을 계속해서 안겼습니다.
뭘 알아야 하지.. 누가 알려주던가.. 누가 체크를 좀 해줄수는 없나.. 라는 생각은 다 핑계였고, 결국 제가 꼼꼼하지 못해서 라는 결론만 나왔습니다.
근데 그게 바뀌면 지금까지 실수를 안했겠죠.. 암만봐도 안보이던 실수들은 꼭 보고를 올리면 터지게 되더군요.
그렇게 계속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분명 편해져야 하는데 편해지지가 않습니다. 일은 손에 익어야 하는데, 보고서 하나 작성하는데 하루종일 걸립니다.

1년을 연애한번 신경안쓰고, 그렇게 좋아하던 야구도 안보고, 해축은 스코어만 보고 그러고 살았습니다.
자신감은 제로에 늘상 갈굼으로 인해 주눅들고 다니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내가 봐도 한심하더군요. 게다가 지방이라 뚜벅이인 저에게 차안사냐는 압박은 매일매일 엄청나게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2017년을 맞이해 차도 사고, 매일매일 야근도 평소보다 더욱 더 했습니다. 일을 깔끔하게 없애고 싶어서
9시 퇴근하던걸 11시 12시, 새벽2시 3시에 퇴근하고 하는데, 일이 줄지를 않습니다. 평소 일과시간에는 아예 제 일을 안하고
뒤치닥거리만 하다가, 6시부터 일을 하고..

근데 웃긴게 그럼 그동안 뭘했냐 라고 하면 할말이 없더라구요. 내가 도대체 평소에는 뭘 하는거지?
주변에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키는걸 하는것 같은데.. 보면 그렇다고 내업무가 아니라고 볼수도 없고.. 그러자니 내업무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다 어제 상무님께서 부르시더군요.
사실 인간적으로는 너에게 신뢰가 있다. 근데 일적으로는 너에게 신뢰가 전혀 안간다. 너 이 일이 적성에 맞다고 보냐
아니면 다른 보직으로 가는게 어떠냐. 라고 하셨습니다.

하..... 뭔가 1년이 부정당한 느낌을 가장 먼저 받았습니다.
그동안 내가 한건 다 헛짓거리였구나.. 생각도 들었구요.

일이 줄질않아서 야근하고 할때는 그동안 내가 없에놓은 이 일들이 너무 아까워서 못 그만두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근데 맨날 11시 12시에 퇴근하니까 "이거 내가 왜 이러고 살아야 하는거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IT계열 빡세게 돌아가는 현실도 생각하면서 "그사람들도 이렇게 일하니까 나도 그려려니 하자" 하면서도
애초에 계열이 다르고 연봉이 다른데 왜 그렇게 해야되지? 생각도 들었습니다.

상무님은 그러면서 그런얘기도 했습니다.
이건 너를 나가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열심히 하라는 소리다.
너 여기 그만두면 어딜가도 취직못한다. 절대 그만둘 생각은 하지마라.
나갈거면 여기서 인정 받고 나가라.

회계,총무로 왔는데 이거 관두고 다른 부서로 가라는거 그만두라는 소리 아닌가요..?..
그런 뜻이 아니어도 그렇게 느껴지는걸 어떻게 해야 할런지..

그소리를 듣고 나와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시간을 보니 9시였습니다. 도저히 못 버틸꺼같아서 술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출근을 했습니다. 출근해야 하는건 아니지만 일이 쌓여있어서 조금이라도 없에려고 나갔죠.
그러다 상무님이 출근한사람들 저녁먹자고 해서 먼저 부르는 터라 먼저 만났습니다.

"어제 한 얘기 기분 나쁘지 않았냐"
"아닙니다. 제가 모자라서 그런건데요"
"그건 굉장히 기분 나빠야 하는건데"

..... 뭘 어쩌라는 건지.. 그럼 기분 나쁘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던 건가..

.. 제가 스스로를 생각을 해도 회계,총무 일이 저랑 맞지 않는거 같다 매일매일 생각을 합니다.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이 아닌터라, 놓치는 부분도 많은데, 이건 모든 전반적으로 챙겨야 되는게 너무 많더라구요.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는 기존 형식에다가 데이터만 넣었더니, 넌 발전이 없다. 쓰레기같은거만 만들고 있다. 소리를 들어서
매번 하나씩 추가해서 보고서를 만들다보니, 이젠 제가 뭘 만들어 놓은건지도 알수없게 되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좌천같은 이 현실을 받아드리기엔 너무나 기분이 안좋습니다.
좁디좁은 회사에서 저는 뭐가 될 것이며, 다른 일을 한다고 실수가 안나오겠냐 라는 생각도 들구요.

그만둘까 생각도 계속 했는데.. 청년실업이 사상최대로 증가하고 있는 이 지옥같은 현실에서
내세울만한 스펙도 없는 상태인 나이 33세가 되버린 제가 다른 어디를 갈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계속해서 들었습니다.

... 진짜 한심스럽고 병신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구나.. 남들은 다들 능력쌓고 결혼준비하고 있는데
결혼은 돈없어서 애초에 포기하고, 일이라도 열심히 하자고 인생 포기하고 야근하면서 다녔더니 지금까지한건 갈아엎어야 하고..

.... 인생을 정말 잘못살았구나.. .. 잘못살았어.. 생각 뿐이네요.

이제 앞으로 어찌해야할까... 참.. 막막합니다.
그만둘까... 타부서로 가야 할까.. ..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