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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5/27 11:25:08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로마대법전으로 보는 기독교의 위세 (수정됨)
로마대법전은 서기 6세기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기존에 있었던 법령을 취합하고, 자신이 새로 만든 법까지 추가하여 편찬한 법전입니다. 3개의 서문과 함께 총 1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로마대법전은 오늘날의 법개념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 각 관직의 기능을 세세히 설명하는 부분이 있을뿐만 아니라 민사와 형사 관련 여러 원칙과 정의(definition)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로마대법전의 전문을 본 적이 없었는데, 영어로 모두 번역한 사이트가 있더군요. 조금 읽어보니 사실 가장 놀라운 것은 다름 아닌 대법전을 통해 구현된 기독교의 힘이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헌법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로마대법전에서 굳이 헌법에 해당하는 부분을 떼어낸다면 제1권일 것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제1권의 1조부터 13조까지는 종교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여기서 로마제국은 법으로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 제국의 모든 신민은 사도 베드로가 로마인들에게 가져다준 신앙을 믿어야 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같은 위엄으로 일체를 이루고 있음을 믿는다 (삼위일체). 이 믿음에서 벗어나는 모든 이들은 이단이다. 
- 이 신앙은 앞으로 "가톨릭(Katholikos)"이라고 부른다
- 이단과 배교자는 강력 처벌한다 
**단, 이단과 배교자는 처벌하는데 아예 이교도(pagan)는 어떻게 하는지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로마제국의 정체성은 기독교가 되었다는 사실을 법조문으로 확인할 수 있고, 기독교신앙에서 벗어나는 이들은 법으로 처벌하는 대상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의 일환으로 교회가 여러 의무와 세금을 면제받는다는 점도 명시하고 있어 확실히 교회를 특수하고 우월한 지위로 격상시켰습니다. 재미있는 건 교회를 위해서 일하는 자도 면세혜택을 받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주교"의 권능입니다. 

주교(Episcopos)는 상인들이 초과이익을 얻지 않는지 감독하고, 또 도시의 식량공급 및 수로보수 등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감독할 권한이 있었고, 또 민사에 대해서 판결을 내릴 권한이 있었습니다 (형사에 대해서는 권한 없음).

정부에 속한 세속관료들의 업무와 일부 권한이 중복되거나 이들이 자기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독하는 권한을 갇고 있었는데, 소련으로 치면 정치장교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해당 권한은 유스티니아누스가 부여한 것이 아니라 로마제국이 과거 기독교를 국교로 삼으면서 부여한, 즉 서로마 지역에서도 유효한 법령들이었는데, 이를 보면 서유럽 지역에서 서로마 멸망 후 권력이 가톨릭 교회에 집중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는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제국을 완전히 집어삼킬 수 있었던 것인가입니다. 콘스탄티누스 시대에도 기독교는 제국의 다수가 아니었고, 황제 율리아누스 같은 경우는 오히려 고대 종교를 다시 복원하려고 했는데 그 이후 제국의 황제들은 줄곧 기독교를 제국에 강제하고자 노력했고, 법령으로도 문서화시켰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서로 혈연으로 이어진 경우가 극히 드물었고 많은 경우 쿠데타와 찬탈로 계승되었습니다. 기독교 국교화 이후 150~200년이 지난 서기 6세기까지 기독교에 비판적인 귀족가문 출신 역사가들이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새로이 황제에 등극하는 사람들이 제국의 기독교화를 롤백시키고 유턴시키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는데 역대 황제들은 모두 강력한 기독교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권좌에 오르고자 하는 이들은 반드시 기독교도의 협조를 구해야만 했던 것인가? 그럼 왜 그랬던 것인가? 이 점도 흥미로운 논쟁거리일 듯합니다.  

여담이지만, 기독교화된 로마제국은 "매춘"을 정말 죄악시했던 모양입니다. 여성 노예에게 매춘을 강요하는 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는 즉시 자유민이 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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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트에리노
20/05/27 11:45
수정 아이콘
모든 국가는 시민들의 암묵적 지지 하에 이루어지죠. 이미 기독교가 시민사회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진 상태에서 제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기독교를 적극적으로 제국의 도구로서 사용하는 것 뿐이었을 겁니다.
20/05/27 12:38
수정 아이콘
기독교야 말로 제국에 어울리는 종교니까요. 어디 출신의 누구라도 믿을 수 있고 오히려 그걸 권장하고, 사회 구성원들 모두 기독교인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죠.
예수가 괜히 신이 아닙니다. 저는 성경적인 신성은 부정하지만 예수 정도의 새로운 생각을 해내고 실천한 사람이면 신 시켜줘도 된다고 봐요.
웅진프리
20/05/27 12:49
수정 아이콘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 이전부터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후기 로마로 가면 로마의 경제 핵심 지역이 과거 그리스 지역이 되는데
이 그리스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었죠 심지어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딸과 부인도 기독교를 믿었으니까요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한테 관용적인 입장을 취한것도 기독교 세력의 지지를 내심 얻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교리적인 측면에서 기독교는 여타 로마 종교들보다 좀 더 체계적인 이론을 가졌고
로마 종교처럼 한정적인 지역이 아닌 전세계를 아우르는 보편 종교이기 때문에 확장 속도가 급속도로 빨랐다고 봅니다
웅진프리
20/05/27 12:55
수정 아이콘
아 그리고 이미 율리아누스때가 되면 기독교는 보편적인 로마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율리아누스가 텅 빈 로마 사원을 보면서 한탄하는 것 부터가 이미 게임이 끝난 상태였죠
애초에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기독교인이였고 따라서 황제가 기독교인들이 되는것도 당연한 상황이였죠
따라서 대다수의 황제가 강력한 기독교 정책을 추구한 이유는 황제의 지지도를 높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황제 그 자신이 기독교인 신자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자는 기독교에게 좀 더 우호적인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높죠
물론 그때도 로마 그리스 사상을 믿는 사람이 소수 있었긴 했지만 로마 제국 전체로 볼때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이들은 점차 역사속에 뒷길로 사라지게 됩니다
코비코비
20/05/27 17:21
수정 아이콘
로마 황제가 교황의역할을 겸하지 않았나요? 시민의 지지와 존경을 받을수 있는 수단을 포기하기 어려웠을거라고 봅니다
VictoryFood
20/05/27 19:46
수정 아이콘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정치가 아닌 종교로 통합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고대 중국도 황제는 천자로 하늘의 자손이며 사직을 통해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정일치 사회라고 볼 수도 있죠.
서양의 도시국가도 모두 도시마다 수호신이 있었구요.
근대에 사람들의 이성을 믿기 전에 사람들은 같은 종교로 공동체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05/28 18:29
수정 아이콘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또한 지배라는 것이 남들과 차별화된 정당성이나 권위를 창출한다는 것이 정말 힘든 일이니까요.
한국만 해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성리학에 힘입어 진정한 중앙집권제가 시작되었다는 걸 보면 통치와 정당성이라는 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죠.
유럽열강도 정통성 문제가 해결되어서 일찍 중앙집권화가 성공한 나라가 앞서나갔구요.

정통성도 정통성이지만, 그 마찬가지 공동체 문제라는 게 통치권력에 있어서는,
신민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세속을 넘어서최고의 영적인 권위, 1주일에 한 번씩 나오는 개꿀같은 인구체크, 결혼 이혼 출생 사망 등 국가가 원하는 기본적인 인구통제를 아주 자발적이고 자연스럽게 실시, 신의 대리자가 곳곳에 배치되어서 신민들에게 주는 정서적 안정, 수시로 실시되는 도덕교육, 국가가 바라는 먹물 양성소
이런 것들이 종교적 열정이라는 이름하에 통치권력이 권력인 듯 아닌 듯 통제인 듯 아닌 듯 이중의 변신술을 구사하면서 자발적인 인력수급과 열정노동을 하니까 참으로 편리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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