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제갈량과 제갈근은 상당히 데면데면한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익양대치 당시 제갈근이 유비에게 사자로 왔을때 그는 동생 제갈량과 공적인 얘기외에 사적인 잡담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보통 제갈량, 제갈근 형제의 공사 구분을 칭송하는 에피소드입니다만, 실제로는 두 사람이 사적으로 공유하는게 별로 없어서일수도 있습니다. 전 두 사람이 절대 친하지 않았을거라 생각합니다.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을 살펴 보지요, 제갈근은 일찍이 어린 시절부터 낙양에 유학가 학문을 익혔습니다. 반면 제갈량은 고아가 되어 고향에 남겨 졌습니다. 나이도 7살이나 차이가 나는데다가 유년기에서부터 떨어져 지냈으니 제갈량 입장에선 큰형이 그렇게 친근한 가족처럼 느껴지진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제갈근은 난리를 만나 혼자 고향을 떠나 강동으로 들어갑니다. 이 시절 형제의 고향인 서주 낭야에서 벌어진 난리는 역시 조조의 서주대학살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제갈근은 서주대학살이 한창이던 193년에서 194년에 강동으로 들어간 셈인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손아래 누이동생들과 남동생 두명을 버려두고 혼자 강동으로 떠나 버렸습니다. 폐허가 된 서주에서 남은 가족들의 뒷바라지는 숙부 제갈현이 도맡아 해야했죠. 당시 12살에서 13살이었던 소년 제갈량이 가족을 버리고 강동으로 혼자 들어간 20대 형을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글을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이후 제갈량은 숙부를 따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형주에 정작합니다. 숙부 제갈현은 형의 자식들을 열심히 뒷바라지 해줍니다. 형주에서 인맥을 쌓아 조카딸들을 형주의 명문가에 시집 보냈고 제갈량과 제갈균이 학문을 익히고 농사를 지어 먹고 살 기반을 마련해 주고  세상을 떠납니다. 제갈량 입장에선 제갈현은 아버지 같은 분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제갈현이 이렇게 형주에 정착하고 조카들의 기반을 마련해 줄때 큰 형 제갈근은 동생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않습니다. 손권의 빈객이 되어 벼슬살이를 하면서도 그는 제갈량이 유비에게 출사할때까지 두 동생에게 뭘 지원해 준적이 없습니다. 제갈량은 누구의 도움없이 혼자서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아야 했죠. 아마 장판파에서 노숙이 '나는 자유(제갈근)의 친구요'라면서 친근하게 굴었을때 제갈량은 겉으로는 일단 손권과 동맹을 맺어야 했기에 표정관리를 했겠지만 속으로는 '아 그러십니까'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아마 제갈량이 강동에 사신으로 갔을때 아마 처음에는 둘 다 얼굴도 제대로 못 알아봤을겁니다. 당시 제갈량의 27년 인생에서 절반 가량인 13~14년 동안 뭐 도와준것도 없이 강동에서 혼자 잘 먹고 잘 살며 그동안 얼굴도 비친적 없는 형을 알아볼리가 없었을테고, 제갈근은 고향에서 혼자 도망쳤을때 10대 초반이었던 어린아이가 이제 장성한 선비가 되서 돌아왔으니 당연히 얼굴을 알아볼리가 없겠죠. 아마 서로 같이 있기도 매우 불편했을겁니다. 손권이 제갈량이 마음에 들어 니가 형이니까 동생을 설득해서 나를 섬기게 해달라라고 부탁했을때 제갈근은 동생은 의리가 있어 유비를 떠나지 않을것이라고 말했다지만 전 개인적으로 동생을 설득시킬 자신도 제갈근에게 없었다고 봅니다. 10년 넘게 여동생들이 시집을 가던 말던 신경도 안 쓰던 사람이 갑자기 십 몇년만에 딱 나타난 남동생을 우리편 하자고 설득한다? 아마도 손권은 제갈근과 제갈량의 사이를 몰라서 저런 말을 했을거라 봅니다. 그리고 적벽대전이 끝나고 제갈량은 바로 유비가 접수한 형남 4군을 관리하러 떠났고 익양대치 이후 두번 다시 형을 만나지 않고 편지만 교환했을 뿐입니다.

이후 제갈량이 제갈근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냥 다 사무적인 얘기들 뿐입니다. 친형에게 보낸다기엔 놀랄 정도로 공적인 얘기만 하고 있죠. 영안에 있는 백이병은 선제의 정예군사입니다, 조운이 잔도공사 하는데 고생하고 있습니다, 수양소곡에 길을 뚫었으니 진창을 치면 오나라에 위군이 전력 집중 못할 겁니다, 진진, 은례, 손진은 이런 사람입니다...이런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형의 아들로 자신의 양자가 된 제갈교에 대해서도 '제갈교가 이러저러한 공적인 임무를 수행중입니다'라고 해버리죠. 거의 제갈량은 제갈근을 대 오나라 전보용으로 쓴 느낌이죠. 아마 육손이나 노숙이 친형 제갈근보다 친했을겁니다. 그나마 제갈량이 제갈근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적 감정을 털어 놓은게 바로 외동아들 제갈첨의 칭찬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외에 두 사람간의 사적 연결은 제갈량의 양자로 입적된 제갈교 정도만 빼고는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봅니다.

이렇게 살펴보면 멀리 떨어진 혈육은 남만도 못하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