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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10/16 03:16:51
Name 신불해
Subject 이브라힘 파샤 - 메흐메드 알리의 꿈을 이루게 해주다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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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흐메드 알리(Mehmet Al 1769-1849)




딱히 무슨 중동사 등에 별 관심이 없더라도 한번쯤 이름은 들어보고, 한번 정도는 저 초상화를 보았을법한 인물로 이집트의 메흐메드 알리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보통은 주로 '무함마드 알리' 로 더 유명할테구요. 하다못해 전설적 복싱 선수 '무하마드 알리' 와 비슷한 이름이라 검색하다가 잘못 검색해서라도 한번쯤은 보았을 인물입니다. '무함마드 알리' 라는 것은 아랍어로 불렀을때 이름인데, 이 인물은 실제로는 터키어 사용자 였기에 '메흐메드 알리' 로 부르기도 하구요.





아무튼 이 '메흐메드 알리' 는 이집트의 근대화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유명 합니다. '헤디브 왕가' 로 이어지는 메흐메드 알리 치하 이집트의 근대화는 무려 180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하여 가히 비서구 국가들 중 가장 먼저 이집트를 근대화 단계에 접어들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어느정도 수준이었냐면 그가 죽고 난 이후 벌써 1860년대부터 이집트엔 의회를 본딴 대표 회의에 근대적인 우편제도, 카이로 등에 오페라 하우스 등을 짓는 문화 부흥, 철도 건설 계획, 산업 발전 투자, 수에즈 운하 완공, 사회 간접 자본 구축이 되어 있었을 정도... 그렇게 해도 이집트가 워낙 열강들의 주목을 받을 위치에 있다보니, 그런게 아무런 소용없이 무색하게도 처참하게 쓸려나갔습니다만은...




여기에 더불어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던 이집트를 독립시켰다고 하여 '근대화와 민족 독립의 영웅' 으로서 제 3세계에 이름이 널리 퍼졌고, 역시 근대화에 관심이 많던 일본에다 비슷한 입장이던 독립운동하던 한국에까지 찬양조의 일대기 번역책이 일찍부터 나돌았을 정도 입니다.




아무튼 그런 순도 100%의 찬양도 예전 이야기 입니다. 현대에 접어들어선 '민족 독립' 에 관해선 그냥 메흐메드 알리는 자기의 이집트 지배권과 세습권만 확립했으면 그만이었다는 식으로 무슨 '민족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는 후세의 '양념' 을 걷어냈고, 그리고 소위 근대화 작업이라는 것에 관해서는, 



메흐메드 알리 시기에는 단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군대, 


그리고 그 군대를 보조하기 위한 병원, 


그리고 다른 모든 기초상식을 제끼고 오직 관료와 병사라는 부품을 조달하기 위해 만들어 오히려 학부모들이 아이를 보내는 것을 거부하려고 했던 교육시설 등등이 현실이었고, 



(거의 평생 군대에 잡혀있는것도 빈번했던)징병제를 유지하려고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나락으로 만들었으며 목화씨 재배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일하는 노예 수준으로 다뤘고, 근대적 생산 공장을 가동시킨다고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을 탄압했으며, 말을 안들으면 지체없이 죽여버리고 학살했다는, 소위 '계몽을 위한다고 하는데 오히려 계몽 되기 전보다 더 비참했던' 당대 사람들에 대한 면모가 많이 부각되어 여러가지 평가가 혼재하고 있습니다. 




여하간에 그런 메흐메드 알리는 뜻밖에도 이집트 출신이 아닙니다. '터키어를 썼다' 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스만 제국 치하의 그리스 카발라 출신 사람이자 알바니아 쪽 군사 세력과 함께 이집트로 들어온 인물으로,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뿌려놓고 간 프랑스군을 격파하려는 군대에 젊은 나이에 참전하여 이집트에 와서 외지인으로 자리잡고, 거기서 권모술수로 현지의 종교 집단과 민중들, 여타 군사력을 가진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하여 이집트의 권력을 장악한 인물입니다.





즉 무슨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다' '민족 독립을 시켰다' 이런거는 진짜 막말로 하면 '다른거 하다보니 얻어걸렸거나 대충 양념을 쳤다' 는 식이고, '외지인 출신으로서 권력 장악' 이라는 이력에서 알 수 있듰이 메흐메드 알리의 가장 당면한 목표는 바로 두가지였습니다.



즉 1차적으로 '현지의 여타 이해관계 세력을 소탕하고 자기가 중심이 되는것' 이고, 


2차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서부터의 권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독자적인 자치-세습권을 확실하게 인정받는 것' 이 바로 그것입니다. 



뭔가 좀 더 확 와닿게 비유하면 '삼국지'에서 외지 출신으로 온 인물이 그 지역의 호족들과 연합 혹은 숙청을 감행해 지역을 장악하고, 중앙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독립을 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려면 음험한 계략과 정치, 또한 군사력이 모두 한데 동원되야 할텐데 보통 이런 점은 '메흐메드 알리의 권모술수와 능력' 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잦은데... 그런데 '삼국지' 이야기를 했는데, 삼국지에서 이런 지방 군웅의 활약을 가능케 했던 유력한 무장들이 있었던 것마냥 메흐메드 알리에게도 엄청난 활약을 했던 수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아들인 이브라임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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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이인이 넘쳐나는 관계로 주로 '이집트의 이브라힘 파샤'(ibrahim pasha of egypt)로 표기되는듯.




메흐메드 알리의 맏아들 이브라힘은 메흐메드 알리 휘하의 뛰어난 군사 사령관으로서 수차례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런데 그 활약이라는 것이 도저히 메흐메드 알리를 설명하며 대충 곁다리로 언급하기엔 무지막지한 수준이라, 한번 따로 살펴본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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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맘루크 학살




외지인으로서 이집트에 와서 여차저차한 술책 끝에 이집트의 정치적 지배자가 된 메흐메드 알리. 하지만 이집트에는 독자적인 군사 세력인 맘루크가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이슬람 실력자들이 어린 노예를 어렸을때부터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고 전투 훈련을 시킨 것이 시초였던 맘루크는 수세기 동안 이집트에 여전히 잔존하며 토착 세력이 되어갔고, 여전히 그루지야 등에서 노예를 사들여 새롭게 전사를 만들곤 했습니다. 이미 저물어가던 오스만 제국의 통치 범위 밖에서 자치를 누리던 맘루크들은 이 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사실상 지난 몇세기 동안 이집트의 지배자였던 맘루크들은 지방의 토착 세력으로서 상당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지방에서 자신들의 세력이 확고하기 때문에 이집트의 지배자로서 뭘 하려고 해도 이런 세력의 반발에 직면할 수 밖에 없고, 달래자니 제대로 협조하지 않고 적대하자니 똘똘 뭉쳐서 반기를 드는 골치 아픈 세력이었습니다.



그러자 메흐메드 알리는 악독하면서도 교묘한 계책을 떠올리는데, 어느날 메흐메드 알리는 자신의 아들이 이스탄불의 명령으로 저 멀리 와하비 반군을 제압하러 가는 출정식을 하는데, 여러 맘루크 지도자들이 모여서 축복해주면 자리를 빛내줄 것이라고 요청했습니다. 



메흐메드 알리는 맘루크들과 싸우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 이전까지 이집트의 정치는 맘루크들을 아예 배제하면 이야기 자체가 안되기 때문에, 늘 싸우기만 한것도 아니었고 느슨한 휴전 상태에 있을때도 있었으며 그 지도자들이 카이로에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늘 서로 마주보면서 적당히 언성 높이고 싸우고 달래고 그러다가 수틀리면 나가서 군사를 일으키고 다시 달래고... 뭐 이런 식이었던 겁니다.



이 당시는 비교적 메흐메드 알리와 맘루크들 사이에 휴전이 이루어지던 시기였고, 여러 맘루크 유력자들은 이런 자리에 서로 참가해서 자신의 정치력 영향력을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터이니 다들 옷도 멋있고 화려하게 입고, 종교적 절차에 철저하게 따라 준비해서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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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흐메드 알리는 이들과 같이 커피를 마시면서 환대를 한 뒤, 그들이 돌아가는 와중에 갑작스런 기습을 가하여 이들 모두를 학살해버렸습니다. 작전 시행 직전까지 이를 아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 안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숨긴 뒤, 병사들에게 "저들을 학살하고 바로 가서 저들의 재물을 약탈해도 좋다." 는 명령을 내려, 눈이 돌아간 병사들은 좋다구나 하고 학살에 동참한 뒤 맘루크 가문들의 근거지로 쳐들어가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을 죽이고 부녀자들을 마음껏 강간했습니다.




이렇게 맘루크 유력자를 한꺼번에 소탕해서 그들에게 타격을 준 메흐메드 알리는, 직후에 아들 이브라임에게 명령을 내려 '맘루크 수색' 을 지시했습니다. 이에 이브라임은 상이집트의 마을 전부를 돌아다니며 맘루크란 맘루크는 죄다 찾아서 그 자리에서 죽여버렸고, 이 과정에서 죽은 사람이 수천명에 달했습니다.



이로써 지난 몇세기 동안 이집트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맘루크 세력은 완전히 소탕 당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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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와하비파 소탕




이렇게 맘루크를 학살하고 이집트를 완전히 장악한 메흐메드 알리. 이제 다음 문제는 이스탄불이 되었습니다.



당시 아라비아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힘이 약해지던 틈을 타 이슬람 근본주의자 광신 집단인 '와하비파' 가 활개를 치고 있었고, 수천명이나 되는 사람을 학살하고 다니는 등 만행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습니다. "썪어빠진 현재의 세속주의 지배자들을 몰아내고 이슬람의 정신을 회복하자" 고 외치는 와하비즘과, 그런 와하비즘을 이용해 기존 세력을 공격하고 새로 대두하려고 한 사우드 가문의 연합으로 탄생한 괴물이 바로 이들이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으로서도 이 광신자들의 만행은 두고 볼수가 없었고, 이집트의 메흐메드 알리에게 이들을 소탕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수도에 별다른 끈이 없는 메흐메드 알리로서는 이를 거부해서 아직 힘이 부족한 이 시점에서 이스탄불과 적대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를 시행하려면 이집트에서 군사를 이끌고 아라비아까지 원정을 가야 한다는 말이었기에 여러모로 부담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차일피일 이를 미루다가, 나중에 아들 '토순' 에게 지시를 내려 원정을 시작했습니다.



1812년 토순은 메디나를 와하비 반군으로부터 탈환하고 와하비 지도자들을 죽이고 그들 300명의 귀를 베어 이스탄불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점점 상황이 악화되었고, 나중에는 크게 패하기까지 합니다. 아무래도 원정이다보니 만큼 단순한 군사적 성과가 아니라 병참, 재정, 군사 문제에 더불어 현지 아랍 부족과의 정치 외교까지 신경써야 할 게 많았기 떄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메흐메드 알리가 아끼던 아들인 토순은 역병으로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에 메흐메드 알리는 굉장히 상심했는데, 여하간에 이렇게까지 일이 거창해졌는데 이제와서 그만두면 너무 피해가 막심하므로 이브라임에게 남은 작업을 맡기고 자신은 보급 등 지원에 집중, 어떻게든 끝을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브라임은 굉장한 군사적 능력으로 사기, 병참, 보급 등 핵심 문제를 완전히 파악하고 주도권을 손에 쥔 대단한 전술로 와하비파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으며, 1818년 9월 16일 드디어 적의 수도 다르이야를 함락, 사우디 지도자인 압둘라 이븐 사우드를 쇠사슬로 잡아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는 이집트에 가져다 바쳤습니다. 



메흐메드 알리는 의기양양하게 압둘라 이븐 사우드를 이스탄불에 바쳤고, 그를 처형한 술탄 마흐무드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메흐메드 알리에게 아주 큰 신세를 졌다' 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오스만 제국을 골치아프게 했던 와하비 반군을 쳐부수고, 중앙 정치에 연이 없던 메흐메드 알리의 면목을 아주 크게 세워젔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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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리스 원정





아라이바 원정이 끝난 후 메흐메드 알리는 한동안 외국의 장교를 들여와 수만 단위의 상비군을 만들고, 이런 상비군을 지원하기 위한 의료 시설 등을 만들고, 거기에 인적 자원을 공급하기 위한 교육 시설을 만드는 작업 등에 몰두 했습니다. 그러던 중,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꿈꾼 그리스의 반란이라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번에도 술탄은 메흐메드 알리에게 이를 토벌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당시 이집트에서 이미 자신의 세력이 견고한 상태였기에 일을 벌인다 해도 달리 사단이 날것 같진 않았고, 새로 만든 신식 군대의 기량에도 어느정도 자신이 있던 메흐메드 알리는 이에 응해 무려 17,000명이 넘는 군단을 함대에 태워 그리스로 원정을 보냈고, 그 군단의 사령관은 이브라힘이었습니다.



상당히 긴 시간의 항해 끝에 그리스 땅에 도착한 이집트 원정군은, 이브라힘의 지휘 아래 연전 연승했고 아테네까지 함락 시켰습니다. 다만 바다를 건너 보내는 원정군을 유지 시키는 막대한 비용, 점점 거세지는 적의 저항, 여기에 원정군이 당할 수 밖에 없는 현지인 게릴라들의 습격 때문에 상황이 지지부진하고 여기에 폭압적인 대응으로 응대하던 도중, 유럽의 열강들이 이 문제에 끼어들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나바리노 해전에서 구식 함대가 열강의 군대에게 격파 당하고 이브라힘의 군단이 그리스에 가둬진 꼴이 되자, 메흐메드 알리는 "계속 그리스의 반군들과 싸우라" 라는 이스탄불의 명령을 거부하고 열강과 독자적으로 협상을 해서 이브라힘의 군대를 다시 돌아오게 했습니다. 여러모로 성과는 없었지만, 개인의 '군공' 은 있었다고 할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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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시리아 정복



그리스 문제로 인해 이집트와 이스탄불의 관계는 매우 악화 된 상황, 동시에 메흐메드 알리는 이집트에서의 자신의 안정적인 입지를 감안하면, 더 이상 수동적으로 이스탄불에 끌려다닐 게 아니라 이쪽에서 오히려 주도적으로 선제 공격을 취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렇게 여러모로 당장이라도 군을 일으킬 것처럼 군사 작업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1831년, 소위 메흐메트 알리의 '근대화' 작업으로 인해 가혹하기 짝이 없게 된 이집트를 피해 달아난 수백명이 팔레스타인 남부 쪽으로 도망갔는데, 이 곳의 지방관은 메흐메트 알리에게 이들을 돌려보내는 것을 거부하고 그들에게 거주처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를 핑계 삼은 메흐메트 알리는 다시금 군사를 일으켰고, 원정군 사령관 이브라힘은 몇달간의 포위 끝에 아크레를 함락 했습니다.



일단 아크레가 함락 되자 다음 일은 순조롭게 되어 다마스쿠스도 금방 함락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오스만 제국의 전방 부대와 직접적인 전투가 펼쳐졌지만 이브라힘은 이를 가볍게 물리쳤고, 이윽고 시리아 가장 북쪽 알레포까지 이브라힘에게 함락, 사실상 시리아 전역이 메흐메트 알리의 손아귀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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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콘야 전투




메흐메드 알리의 계획에서는 애초에 알레포 점령까지만 해도 대단한 성과 였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메흐메드 알리는 "자, 이긴건 좋다! 그런데... 이제 이걸 가지고 뭘 하지?" 라는 입장이었습니다. 군대가 이집트를 출발한지 단 7개월만에 시리아 전역이 메흐메드 알리의 손아귀에 들어왔고, 그는 이 성과를 어떻게 굴려야 할지 아직 감을 잡지 못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브라힘은 1832년 7월 경 알레포에서 더 북진하여 토로스 산맥을 거쳐, 오스만 제국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진입하기 시작 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오스만 제국 측에서는 휘세인 파샤의 군대가 나섰지만 싱겁게 대패했고, 이브라힘은 질주를 멈추지 않고 계속 북진을 이어갔습니다.
 


이에 술탄은 마지막 카드로 대재상 메흐메드 레시드가 지휘하는 군대를 내보냈습니다. 여기에는 나름 술탄이 신경 써서 육성한 신식 군대도 포함 되어 있었고, 숫적으로도 원정군인 이브라힘의 군대보다 훨씬 우월한 전력이었습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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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군이 맞붙는 '콘야 전투' 에서 이브라힘은 오스만 제국군을 또다시 패퇴시켰고, 대제상 레시드는 아예 이브라힘에게 사로잡혔습니다. 순식간에 오스만 제국의 최후의 방위력은 완전히 소멸해버렸으며, 이브라힘의 군대는 마음만 먹으면 이스탄불로 진격, 제국을 중심부터 완전히 무력으로 갈아버릴 수 있는 시점에 당도하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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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오스만_제국의_상황.jpg





이거야 당연하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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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그냥...국경 지대에서 내 영역이나 제대로 선을 확보하려고 했을 뿐인데...?"





재밌는것은 이브라힘 본인이나, 그 아버지인 메흐메드 알리나, 이런 승리는 이집트에서 군단이 출발할 당시 꿈도 꾸지 않고 있었기에 계속해서 기민하게 서신으로 의견을 교환하던 두 사람 모두 "대체 지금 이 상황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하나" 를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냥 처음에는 아크레를 정복해서 이집트 북방 경계선의 안전이나 도모하려던 상황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오스만 대제국을 한주먹에 날려버릴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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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흐메드 알리는 자신의 정치적 계산이 아들의 군사적 성공을 뒤따라가기에 바빴고, 이브라힘은 "까짓거 이렇게 된 거 이스탄불로 가자. 수도로 가서 '일을 끝내' 버리고 술탄을 우리 손으로 새롭게 갈아버리자." 고 아버지를 충동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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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랬으면 진짜 큰일 났을것





 
그렇지만 말도 안되는 승리때문에 잠시 정신을 못 차리던 메흐메드 알리는 곧 냉정함을 되찾았고, 아들의 진군을 일단 저지했습니다. 당시 그의 역량으로는 시리아를 감당하는 것 만도 버거웠을 뿐 아니라, 유럽 열강들이 이 사태에 개입하려고 끼어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일단 메흐메드 알리는 이 승리를 기반으로 독립 - 처음에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이집트의 완전힌 독립을 꿰했으나, 열강들이 반대하자 제국의 권위에 명목상 신속하면서도 확실하게 독립하는 형태로- 를 꿰해 '구두약속' 을 받아내는 데 까진 성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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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니집 전투



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고, 무엇보다 메흐메드 알리가 '총독직을 세습하고 싶다' 고 나오면서 문제가 커졌습니다. 오스만 제국 역사상 이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열강의 도움을 받은 오스만 제국은 다시 한번 군사력을 동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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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아나톨리아 남부의 니집에서 양군이 격돌했는데, 이때 오스만 제국 측에서는 훗날 비스마르크와 더불어 독일 통일의 주역이라고까지 불린 헬무트 폰 몰트케의 조언을 무시했고, 이브라힘은 이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군을 상대로 또다시 승리를 거둡니다. 




이런 이후 이브라힘의 군대는 여전히 강하게 대치중이고, 오스만 제국을 돕기 위한 열강의 움직임에도 메흐메드 알리는 눈하나 깜빡이지 않았지만, 영국군의 군대가 상륙 움직임을 보이고 무엇보다도 메흐메드 알리가 이집트에서 했던것과 같은 폭압적인 통치에 시리아 전역이 반발하며 위기가 고조되자 메흐메드 알리는 협상을 통하여 '지금까지 획득한것 다 돌려주고 군대는 돌아간다. 상비군 숫자도 제한을 둘것. 다만 이집트의 세습권은 확실하게 확립한다.' 는 당초 목표를 확실하게 이뤄내게 됩니다.




이걸 '이집트의 영광이 더러운 서구 제국주의의 압력에 굴복되고 말았네' 하는 시각도 있긴 하지만 일단 당대에 메흐메트 알리는 이에 대해 별반 반발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가 처음에 원했던 목표는 다 이뤄내게 됩니다. 이리하여 메흐메드 알리의 이집트는 명목상으로는 오스만 제국에 신속하되 그 누가보더라도 확실하게 독립했고, 무엇보다도 세습권 역시 확보하게 되어 19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지는 '헤디브 왕가' 를 열게 되는 근원이 됩니다. 누구도 그의 이집트 통치에 대해 반발 할 수 없게 되었던 겁니다.





애초에 하려던 목표는 다 이뤄버렸고, 그 이상으로 말도 안되게 이뤄내서 순간이나마 이집트-시리아에 이르는 말도 안되는 뽕을 맞보게 해주었으니..... 헤디브 왕가에서는 개창자인 메흐메드 알리를 당연하게도 대단히 높게 평가하며 존중했는데, 이브라힘 역시 거의 비슷한 반열로 놓고 대우했다고 합니다. 






 다만 업적과는 별개로 통치 할때는 잔혹하긴 했던듯 합니다. 세금 안내니까 농민을 꼬챙이로 꿰어서 구워버렸다고도 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이성을 상실한 사이코는 아닌데 평범하게 정세를 논하다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적이나 말 안드는 농민은 죽이고, 이건 메흐메드 알리도 마찬가지라 자신을 만나러 온 유럽의 정치인들을 태연하게 대하며 인터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했지만 말 안듣는 밑에 사람은 여자고 뭐고 잡아다가 그냥 사막에 던져버리는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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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6 03:48
수정 아이콘
아들인 이브라힘 파샤의 전공이 어마어마하네요.
미적세계의궁휼함
18/10/16 03:52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만 중간에 '꿰하다'는 '꾀하다'로 고치시는게 맞는것 같아요.
18/10/16 04:01
수정 아이콘
정치력과 무력이 조화되어서 역사가 만들어졌네요. 라고 쓰면 표현이 좀 오글거릴려나요?
라라 안티포바
18/10/16 04:35
수정 아이콘
새벽을 틈타 선추천합니닷...
류지나
18/10/16 05:44
수정 아이콘
중간에 잠깐 언급되는 사우드 왕조의 압둘 사우드도 이야기 읽어보면 재밌습니다. 저 지역은 근대까지도 거의 삼국지 시대 느낌이더라구요.
http://sonnet.egloos.com/4579495
metaljet
18/10/16 09:27
수정 아이콘
술탄 VS 광신도 VS 싸이코
저 당시 중동은 꿈도 희망도 없는 땅이었군요. 지금도 비슷한듯?
신불해
18/10/16 09:38
수정 아이콘
메흐메드 알리 같은 경우엔 무슨 남북조 시대에 볼 수 있는 사람 죽이는거 좋아하는 사이코라기보다는... 전제 군주식과 부족 추장과 근대적 독재자가 섞여서 칼로 과격하고 강압적으로 통제하는 독재자, 뭐 이런 식에 가까울것 같습니다. 그런 통제 와중에 보이는 이런저런 폭력적인 태도 이런건 약간 사막 부족 특유의 그런것도 섞이고.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이성적이고 냉철한 편에 속한 타입입니다.
Finding Joe
18/10/16 13:12
수정 아이콘
맘루크 초대해서 대접한 뒤 통수 치는건 예전에 이성계였나 다른 고려장수였나 여하튼 비슷한 일을 한 일화가 생각나네요.
벽타는학생
18/10/16 13:37
수정 아이콘
윤관의 여진 정벌입니다 :)
앙겔루스 노부스
18/10/16 19:07
수정 아이콘
왜 척준경이 있는데 쓰질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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