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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2/28 09:51:38
Name Techsod
Subject 단양 구인사 이야기, 영화 사바하 (수정됨)
유품을 정리할 일이 있어 단양에 갔다 호젓한 산사에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양엔 무슨 절이 있나 싶어 단양군 관광 홈페이지에 방문하여 문화재 목록을 보다보니 나오는 구인사. 국보와 보물도 많고 심지어 천태종의 본산이라니, 내가 왜 이런 절을 몰랐지?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절이라는데? 반성하고 찾아갔습니다.

주차장에서 3천원을 내고, 좋은 말로도 맛있다고 할 수 없는 1만원짜리 비빔밥을 후딱 먹고 천천히 언덕길을 걸어올라갑니다. 절 쪽에서 내려오는 택시가 빵빵대며 기본요금 받을테니 위에까지 타고가라네요. 그래도 절에 왔는데 좀 걸어야지...하는데 이게 보통 경사도가 아니더군요.

거의 5킬로미터 넘게 언덕길을 올라가서 사찰 입구에 도착하면 문경새재 입구같은 성문이 맞이하는데 이것 자체가 거대한 석재로 지은 신식 천왕문입니다. 느낌이 쌔-합니다. 한없이 올라가도 올라가도 좁은 계곡에 비좁게 지은 거대한 한옥풍 건축물이 처마와 처마를 맞대고 있습니다. 도심형 사찰에서 볼 수 있듯이 한 전각 위에 다른 전각이 또아리를 틀고 있고, 그 사이사이를 계단과 난간이 이리저리 미로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이 절 방문 후기에 나오는 딱 한마디
'중국 무협 셋트장 같다' 는 표현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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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가보면 다 속칭 새삥-에 반듯한 석조+콘크리트 건축입니다)

압권은 조사전이었습니다. 절의 가장 꼭대기 쪽에 위치한 웅장한 목조건물인데 이 건물 자체가 아예 다른 전각의 옥상에 설치한 건물입니다. 그래서 올라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 내려서 옥상으로 올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흡사 오사카성 느낌? 물론 건물 자체는 웅장하고 멋집니다. 그리고 그 안에 천태종의 사실상 개창조인 상월스님의 거대한 불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물론 3층 크기로 큽니다.

29112_26669_3044.jpg

애초에 문화재를 보려고 간 절인데...구인사 국보/보물 목록을 다시 살펴보니 대개 불교경전들이었고, 성보박물관(절 주차장 옆에 있는데 이게 또 엄청 큽니다)에서도 쉽게 찾아보긴 힘들었습니다.

이쯤해서 내가 알던 그 천태종이 맞나? 싶어서 우리의 친구 나무위키를 켜봅니다. 심지어 이 절, 인터넷이 잘 안됩니다.

구인사? - 절 자체가 1900년대에 새로 생긴 절이랍니다. 상월스님에 의해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하였는데, 치유와 소원성취의 기적들이 있어서 수천명이 모여들어 수련과 기도를 시작하였다고.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절과 달리 빽빽한 전각들로 즐비하다고. 지금은 그런 풍토가 많이 사라졌지만 지금도 3층짜리 초대형 목조건물인 조사전을 아무 문제없이 지은 돈많은 절이라고.

상월스님은 누구신가? - 나무위키에서 '상월 대조사'를 쳐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인물입니다. 1920년대에 태어난 그는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어린 시절 동네에서 병을 고쳐주고 다니는 오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아 정감록과 불교 수행을 시작하며, 도인들과 교류를 하였습니다. 삼척시와 태백시를 돌아다니며 주술치료 등을 하며 도를 닦았고 축지법과 차력술을 연마하였다 합니다. 점차적으로 산속에서 추종자들과 집단 생활을 하다가 지금의 단양군으로 거처를 옮겨 구인사를 창건하고 계속 수도생활을 합니다.

그러다 1950년대의 어느날 그는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외치며 일어서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를 보라. 동천에 큰 별이 나타나서 내 입으로 들어오니 뱃속이 환하게 밝고, 일월이 머리 위에 있으니 천지가 크게 밝도다.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唯我獨尊), 내가 탄생했다.”

이 때 그가 깨달음을 얻었다 보고 이것이 지금도 종단내에서 그를 미륵/내지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보는 이유입니다.
그분의 행적 - 도닦음, 치유 활동 등을 보면 불교라기보다는 민족종교나 도교 쪽 느낌이 나긴 합니다. 실제로 당시에도 불교계에서는 이단 논란이 있었다고 하구요. 하지만 지금 구인사를 방문해보면 어엿한 불교종단으로서의 느낌이 더 강한 편입니다. 지금도 3일동안 치성드리면 소원 한가지는 들어준다는 절로 유명하긴 하지만요.

천태종 자체는 1960년대에 만들어지게 되는데 당시에는 불교계의 종단갈등이 극심하여 비구승과 대처승의 싸움이 계속되던 혼란기라 합니다. 그 때 그 틈을 비집고 정식으로 '대한불교천태종'이 되었습니다. 국사교과서에서 흔히 듣던 그 천태종을 표방한건 맞지만 상월스님에 의해 개창된 신흥 불교 종파에 가깝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다른 종파에 비해 화려함이 특징이라서 스님들의 가사에 화려한 금박이나 승모 등이 특징적이더군요. 본당 안에서 불사를 하는 걸 지켜봤는데 개신교 예배 -천주교 미사 정도의 차이로 화려함이 남달라보였습니다.

구인사 방문을 마치고 나니 최근 본 영화 '사바하'에서의 '동방교'가 생각나더군요. 불교계 신흥 종파라는 점도 그렇고, 강원도 쪽에서 활동한 김제석의 활동도 그렇고 혹시 영화에서 이러한 모티프를 활용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속에 나오는 삼척/태백/제천/영월의 분위기는 아마 감독이 이 동네 특유의 쇠락하면서 산골 벽지인  분위기에 친숙하지  못하면 그려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구인사가 위치한 단양도 영월/정선과 매우 가깝고 시멘트 광산 등이 있고 행정구역으로는 충청도이지만 강원도 내륙산간지역과 비슷한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동방교라는 신비로운 신흥 종교에 대해 설정만 해놓고 제대로 표현을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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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28 09:54
수정 아이콘
사진으로만 봐선 사바하에서 문어스님이 계신 절이 생각나네요~
19/02/28 10:10
수정 아이콘
일단 엄청 높아요. 물론 스님과 관계자들은 차로 꼭대기까지 잘 올라간다는것도 똑같고.
홍승식
19/02/28 10:01
수정 아이콘
올라가면서 힘들어서 욕하면서 올라갔던 절이군요. 흐흐흐
일반적인 볼거리로 가장 볼만한 건 주차장 옆에 있는 박물관입니다.
절 안은 그냥 본문에 나와있듯이 새로 지은 고층(?) 건물들이 늘어져 있거든요.
물론 올라가면서 이야~ 이런 산골 계곡에 어떻게 이런걸 지었냐? 하는 생각은 계속 듭니다.
19/02/28 10:09
수정 아이콘
나무위키 보니까 애초에 계곡의 바위 같은걸 파괴하지 말면서 중창하라는 상월스님의 가르침이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풍수지리적인 이유 때문인듯 합니다. 처음엔 움막 비슷한걸로 시작해서 점차 확장되니 저렇게 좁고 길고 높게 짓게 되었지요.
윤가람
19/02/28 10:08
수정 아이콘
진짜 올라가는 내내 와, 중국에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갔던 곳이네요. 절을 이곳저곳 참 많이 가봤는데 저긴 그냥 절이 아니라 관광지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관광지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조사 얘기 적어두신 걸 보니 촘 묘하네요. 어제 심야로 사바하를 보고 와서 그런지 더요... ㅡ.ㅡa
19/02/28 10:10
수정 아이콘
저도 구인사만 봤으면 그런갑다...했을 거고(해동 용궁사 정도 느낌?) 영화만 봤으면 영화 그냥 그렇네 했을텐데,
이 두가지를 비슷한 시기에 경험하니 좀 묘한 시너지가 나서 글로까지 써봅니다.
Zoya Yaschenko
19/02/28 11:33
수정 아이콘
사바하는 밤에 봐야 좋은듯 합니다(..)
19/02/28 10:24
수정 아이콘
저도 패러글라이딩 하러 단양갔다가 구경갔었는데

진짜 크더라구요.
19/02/28 10:52
수정 아이콘
단양에서 일하는 지인 말에 따르면 그쪽에서는 구인사가 웬만한 서울 대형교회 급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모양이더라구요.
19/02/28 10:59
수정 아이콘
네, 심지어 금강대학교도 재단이 천태종이더군요.
19/02/28 11:36
수정 아이콘
사바하 재미있나요!? 보려고 하는데
윤가람
19/02/28 11:54
수정 아이콘
곡성 하위호환요
곡성은 오... 하면서 봤는데 사바하는 음... 오.. 음.... 이었습니다
19/02/28 12:10
수정 아이콘
조사전 오른쪽으로 작은 산길이 나있는데 그 위로 계단타고 한참 올라가면 산 꼭대기에 상월 대조사 묘가 있어요.
구인사 신도들은 대조사 묘랑 강 건너에 버스타고 가야되는(구인사에서 하루2번인가 셔틀버스 운행합니다) 2대 조사 묘를 한번씩 참배하곤 합니다.
저희 집이 서울에 있는 천태종 절에 다녀서 어릴적에 구인사도 많이 다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모태 기독교 신앙자들이 냉담자 되듯이 저도 절에 안가게 되더라구요.
어렸을때 4박5일 기도하러 갔을때 젤 좋았던게 밥먹고 나와서 자판기에서 코코아 뽑아먹은거였는데 오래간만에 구인사 보니까 어렸을때 생각도 나고 하네요.
19/02/28 13:09
수정 아이콘
절 입구에 간이 시외버스정류장 있는거 보니 꽤 유명한 절 맞더군요. 다만 적으신대로 신도들에게 의미가 깊지 일반적으로 관광하는 사람들에겐 호불호가 갈릴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19/02/28 13:03
수정 아이콘
여기 정말 대박이었습니다. 2년 전쯤에 처음 가봤는데..

저도 국내여행, 사찰 좋아해서 나름 많이 가본편이었는데 이런 절을 왜 이제야 와봤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깊은 곳이었네요.
콩탕망탕
19/02/28 14:02
수정 아이콘
이런곳이 있었네요. 글 잘 봤습니다.
글 중에서 궁금한게요.. 개신교 예배와 천주교 미사의 화려함이 어떻게 다른가요?
제가 둘 다 가보지 못해서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몰라서 여쭤봅니다.
19/02/28 14:09
수정 아이콘
지금은 현대화로 많이 간소화되었지만 천주교나 정교회 등에서는 미사가 예배라기보다는 제례/제사의 의미가 강해서 파이프오르간/사제의 예복/화려한 각종 제사용 도구/스테인드 글라스와 제대 등으로 상징되는 고색창연함 등이 특징적이지요. 지금도 트리덴틴 미사나 장엄미사에서는 그 느낌을 맛볼 수 있죠. 개신교는 종파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대체적으로 설교와 찬양 위주로 심플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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