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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6/02 15:00:18
Name 시지프스
Subject 긴 병에 효자 없다.
지난 1월 초 새아버지가 대장암 진단을 받으셨다. 담당 교수님께선 다행히 아주 초기에 발견되어서 항암치료도 필요 없다고 했고 보통의 대장암 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당연히 취해야 할 조치인 장로(변 주머니)도 필요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대한민국에서 최고중 하나인 병원으로 모셔다 드렸고 그 곳에서 25년 가량 근무중인 누나도 있기에 아무 걱정 없었다.

그런데 수술 후의 예후가 심상치 않았다. 연세가 있다곤 해도 이제 칠십대시고 수술 전 담당 교수님이 처음부터 너무 자신하셨지만 내 눈으로 봐도 일주일 후 퇴원은 말도 안되는 듯 했다. 그 교수님도 매우 당황하셨던 듯 한게 눈에 보였다. 그리곤 지난한 병수발이 시작되었다.

당뇨가 그리 무서운 병인지 뼈저리게 실감했다. 합병증으로 계속 해서 염증이 각종 장기쪽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온갖 조사와 금식으로 초주검이 되었을 무렵에 퇴원을 하라고 해서 다 나았는가 보다 하고 퇴원을 했다.

이제 운전을 못하시니 댁인 충주로 내가 모셔다 드리고 기분 좋게 올라 왔다. 그리고 사흘 뒤. 퇴근하고 술을 마시는데 열두시 가까이 되어서 누나가 아저씨 심정지와서 충주 건국대병원으로 왔는데 힘들 듯 하다며 전화가 왔다.

마음의 준비는 하라고 누나는 말했고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돌아가셨냐고? 근데 그건 아니라고 했다. 믿을 수가 없었지만 당장 가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술을 조금이지만 마셨기에 아침까지 기다리다 내려갔다.

우리 엄마는 내가 어릴때부터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모든 험한 꼴과 고생을 이겨내며 우리 남매를 키워 온 강한 분이라 여겼는데 날 보더니 끌어 안고 엉엉 울었는데 그게 지금까지의 기억 중 가장 슬프다.

천운인지 아저씨가 심정지가 왔을때 119 구급대원분이 엄마를 진정시키며 CPR을 하라고 하셨지만 어느 누가 그 상황에 가능하겠는가..더구나 낼 모레 칠십인 할머니가. 그 상황을 재빠르게 캐치하고 오분이면 도착하니 그때까지 심장을 때리라고 하셨단다 전화 통화를 계속 하면서..

어쨌든 그렇게 충주 건대 병원에 갔을때까지 살아 있었고 거기서 이틀 정도를 더 보내고 원래 치료 받던 서울 큰 병원으로 이송이 되었다. 이번엔 심장쪽이었다.

거기서 또 일주일 정도 입원과 검사(금식)를 하며 이번엔 심장 내부에 전기파를 제공하는 기계를 삽입하는 시술을 하였다. 나쁜것만 있었던건 아니다 대장암 수술을 해주셨던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와주셔서 아저씨가 많이 위로가 되었기도 했다. 걱정되어서 오셨다고..

그렇게 또 일주일 정도 있다가 이제 되었으니 퇴원하라고 하는데 엄마가 겁이 나기 시작한 것 같았다. 시골에서 또 그 상황이 오면 무서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다 나으면 나가겠다고 했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수 있은게 없고 아무 문제 없으니 퇴원하라고 해서 또 내가 모시고 갔다.

그렇게 신장,방광,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8번 정도를 입.퇴원과 수술,시술을 반복한 듯 하다. 그 중 두번은 중환자실까지 갔었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을 요즘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그제 부모님 집에 갔었다. 여전히 싸늘하고 불안했다. 잘 먹어야 약을 감당하고 그래야 신장에 무리가 없다는데 먹을 순 없고 혈당은 오르고 있다고 엄마는 말했다. 이젠 지친다. 그가 내 친부가 아니여서가 아니다.

엄마가 임계점에 달한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엄마도 약하다. 나랑 누나가 뭐라도 한다곤 했지만 그건 곁가지이고 결국 그 모든 힘듬을 온전히 짊어진건 엄마다.

어제는 아저씨가 아프고나서 거의 처음으로 엄마가 술을 먹자고 하셨다. 원래는 두 분 다 애주가셨다. 아저씨는 계속 누워서 자고 엄마가 처음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다.

처음에는 무섭기도 하고 이렇게 살다가 죽는게 안쓰럽고 억울해서 화났는데 이젠 돌아가셔도 괜찮겠다. 적어도 본인은 후회는 안남을 만큼 했다고.

그런 말이 어디있어 이 고생하고 돌아가시면 너무 억울하지라고 말하려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난 짐작도 할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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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솔로_35년산
19/06/02 15:5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조용히 추천 밖에 누를 수 없는 글이네요.

글 쓰신 분을 포함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건강하시기를..
19/06/02 16:42
수정 아이콘
힘든건 마찬가지지만 친부가 아니라서 더 힘들겁니다.
총앤뀨
19/06/02 16:46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삭제)
----------------
이 댓글이 왜 여기에 달려있지요? 전 아래 하태경의원의 발의안을 보고 쓴건데..방금 제댓글은 지웠습니다.제 댓글로 인해 불편하셨던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시지프스
19/06/02 18:19
수정 아이콘
(수정됨)
삭제, 우회비속어 사용으로 인해 제재합니다.(벌점 4점)
六穴砲山猫
19/06/02 17:01
수정 아이콘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혼자 사는 저희 외삼촌이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는데 그때 엄마가 외삼촌 수발하는 걸 보면서 절실히 느꼈습니다. 사람 병수발하는게 정말 보통일이 아니구나, 나이 들수록 정말 건강해야 되는구나 하고요. 작성자분이랑 가족분들을 위해서라도 아버님이 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이상한화요일
19/06/02 17:17
수정 아이콘
병수발 드는게 정신적 육체적으로 사람을 갉아먹는 일이죠. 짧은시간 입퇴원 반복하며 어머님이 힘드실겁니다. 자식들이 돕는것도 한계가 있으니 온전히 병수발 드셔얄텐데. 위로 많이 해드리시고 간병인 지원받는법 같은 현실적 방법도 생각해보세요. 힘내세요.
19/06/02 17:25
수정 아이콘
추천밖에 드릴게 없네요

힘내십시요..
Brandon Ingram
19/06/02 18:27
수정 아이콘
저도 몇달전 할머니 노환(치매이셔서 오래걸리셨습니다 대략 4-5년) 때문에 긴 병에 효자없다는건 이해하지만..
난제입니다...ㅡㅜ 이걸 당신께서 오래 사시기위한 병수발을 하는것인가 아니면 자기 모면성 병수발을 드리는 것인가..
그저 4년가까이 아무말 없이 당신 어머니 병수발 하시던 (요양원이긴하지만 꾸준히 할머님 방문하시는...) 아버지께 공경의 자세만 나오더라구요..
19/06/02 18:30
수정 아이콘
병수발은 진짜..

힘내세요
능소화
19/06/02 20:31
수정 아이콘
힘내십니오. 드릴건 추천뿐입니다...
조유리
19/06/02 22:28
수정 아이콘
오랜기간 간병하는 게 스트레스 어마어마하죠. 몸도 마음도 갈려나가고 이제 끝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가도.. 또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 죄책감에 괴로워하기도 하고요..
위로밖에 드릴 말씀이 없네요. 글쓴 분도 복잡한 심경이시겠지만 어머님 곁에서 잘 다독여드리고 같이 힘내시길..
혜우-惠雨
19/06/02 22:43
수정 아이콘
어머님 건강 잘 챙기셔야겠어요. 그리고 힘내세요. 이 말밖에 못해드려 죄송합니다.
응~아니야
19/06/02 23:34
수정 아이콘
괜히 호스피스가 대안으로 떠오르는게 아니죠...
지금뭐하고있니
19/06/02 23:52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1절만해야지
19/06/03 00:33
수정 아이콘
힘내세요. 그 어떤말도 드릴수가 없습니다...
유쾌한보살
19/06/03 10:09
수정 아이콘
작년에 시어머니께서 89세로 돌아가셨는데, 지병인 천식이나 노환이 아니라 당뇨합병증이 원인이었습니다.
무서운 병 많지만, 당뇨합병증은 참,,,, 겪는 환자도, 수발드는 보호자도, 고통스럽더군요.
지금 어머님께선 심신이 지치고 피폐해지셨을 겁니다.
교대로 좀 거든다해도 결국 어머니 몫이니까요.

장기전으로 갈 것 같아 보이면, 공동간병인(6인실)이 있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도 좀 더 전문적인 케어와 체크를 받을 수 있고요.
어머님 건강도 생각하셔야 하니, 누님과 의논하시면 좋겠습니다.
Ryan_0410
19/06/03 10:23
수정 아이콘
눈물이 나네요.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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