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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5/02 11:04:24
Name 살인자들의섬
출처 https://m.blog.naver.com/daniellesuh/221521565564
Subject [텍스트] 서동주씨(서세원 딸)가 블로그에 올린 아빠에 대한 글
https://m.blog.naver.com/daniellesuh/221521565564


같은 유전자


나는 아빠와 닮은 점이 참 많았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린 추리 소설을 좋아했다. 그래서 어렸을때는 셜록 홈즈와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을 즐겨 읽었고, 조금 커서는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마츠모토 세이쵸와 같은 작가들의 소설들을 찾았다. 내가 산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빠를 주고, 아빠도 늘 다 읽은 소설들을 나에게 주었다. 아빠는 늘 새벽 두 세시가 훌쩍 지난 뒤에야 귀가를 하였는데, 그 때까지 깨어 있는 사람은 가족들 중 나 하나였다. 그래서 아빠가 집에 돌아오면 내 방문을 두드려, “자냐?” 하고 물은 뒤, 내가 안자고 있으면 거실로 나오라고 해서 같이 책을 읽는 일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버렸었다.



우린 영화 감상을 좋아했다. 가끔 책 읽는 일이 지루해질때면 아빠와 영화 또는 미드를 밤새도록 릴레이로 보곤 했다. “24"이라던가 "프리즌 브레이크" 같은 미드를 보며 같이 긴장하고, 추리하고, 누가 범인을 맞추나 내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진라면이나 짜파게티를 끓여먹기도 하고, 계란을 네 다섯개씩 반숙으로 삶아 먹기도 했다. 뜨거워서 김이 나는 삶은 계란을 후후 불어가며 소금 후추에 살짝 찍어 먹으면 그것만큼 맛있는 야식이 또 없었다. 여름엔 포도를 주로 먹었는데, 매일 밤 각각 한송이씩 뚝딱 먹어버리는 바람에 아빠는 늘 근처 마트에서 그 비싼 포도를 두 박스씩 사오곤 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아도 절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나는 적어도 그 순간들만큼은 아빠를 참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 나는, 아빠와 나 사이에 부녀지간을 넘은 의리 같은 것이 있다고 느꼈었다. 가족들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길때면 시한 폭탄같은 아빠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고도 생각했다. 아빠에겐 “엄마가 원래 그렇지, 아빠가 이해해”라고 말한 뒤, 엄마에겐 “아빠가 이러는거 하루 이틀이야? 엄마가 이해해”라고 설득하며 둘 사이를 조율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양쪽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였다. 아빠가 동생을 혼낼 때도 나는 그 사이에 끼어 중재자 역할을 하였다. 희한하게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내가 나서면 그나마 진정이 되는게 아빠였다. 어쩌면 나는, 내가 없으면 우리 가족이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은 우쭐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아빠와 엄마가 헤어지고, 나와 아빠의 사이가 틀어지고, 동생과 부모님과의 관계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가족이란 울타리가 무너지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긍정적인 감정들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렇게 좋아하던 추리 소설도 더 이상 읽기 싫었다. 영화를 보는 일도 싫어졌다. 더이상 아빠와 같은 취미를 갖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취미를 통해 아빠가 생각나는 것은 더욱 싫었다.



어차피 아빠에겐 이미 새로운 가족이 생겼고 새로운 자식도 생겨 나와 동생은 신경쓰지도 않을테니 나도 그러고 싶었다. 신경쓰기 싫었다. 그렇지만 같은 유전자 탓인지 뭔지, 나는 취미 이외에도 아빠와 닮은 점이 많고, 그래서 지금도 가끔은, 아니 자주, 아빠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작년부터 레코드판을 모으고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는 취미가 생겼는데, 이것 또한 (인정하기 싫지만) 아빠의 취미 생활 중 하나였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아빠는 레코드판이 수백장이나 있었고 턴테이블도 여러개 있었다. 아빠는 20대 초반에 다방에서 디제이 일을 하였는데, 그때부터 레코드판을 모았다고 했다. 깔끔하기로 유명한 엄마는 애물단지라고 싫어했지만, 나는 서재방에 앉아 아빠의 레코드판들을 하나씩 꺼내어 영어로 된 미국 가수들의 이름을 읽어보고, 오래된 레코드판의 냄새를 맡아보는 것을 좋아했었다.



아빠와 같은 취미를 갖기 싫어 무던히 노력했는데, 나는 결국 턴테이블도 사고 레코트판도 꽤 많이 모아버렸다. 아메바라는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레코드점에서 산 것들도 있고, 아마존으로 오더한 것들도 있고, 하다 못해 9가와 마켓 스트리트 코너에 있는 노숙자 아저씨에게 5달러씩 주고 싸게 구입한 것들도 있다. 오래된 레코드판으로 노래를 들으면 시간은 왜인지 모르게 느려지고 나는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그리고 아빠가 덜 미워진다.



이제 아빠도 나를 덜 미워했으면 좋겠다.






아빠를 싫어하지만 나도 모르게 닮아있는 모습
그걸 처음 느꼇을떄 정말 묘했었는데
정말 싫어했던 모습을 나도 모르게 하고 있었던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더니 글솜씨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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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2 11:08
수정 아이콘
어떤분인가 구글에 쳐봤더니...
사랑합니다
말하는푸들
19/05/02 11:11
수정 아이콘
오우야..
세츠나
19/05/02 11:15
수정 아이콘
끄덕끄덕...
19/05/02 11:16
수정 아이콘
다른 글들도 몇개 보는데, 엄청 잘 썼네요.
애플주식좀살걸
19/05/02 11:18
수정 아이콘
싫어하는게 많은사람이 손해죠
점프슛
19/05/02 11:19
수정 아이콘
순간 자겐줄알고 추천버튼 누를뻔
마이스타일
19/05/02 11:22
수정 아이콘
글 잘 썼네요
보라도리
19/05/02 11:24
수정 아이콘
서세원은 진짜 토크박스 때만 해도 와 이사람 능력 쩐다 생각했는데 그후에 일벌리고 인성질 보면 참...
사업드래군
19/05/02 11:29
수정 아이콘
뭐 어쨌든 서세원 돈으로 성형도 하고 좋은 미국유학도 갈 수 있었으니 싫어할 수 많은 없었을 듯.
비둘기야 먹쟈
19/05/02 11:33
수정 아이콘
이거쥬
19/05/02 11:42
수정 아이콘
본인 딴에는 위트 있는 일침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덕분에 저는 좋은 글 보고 업된 기분 한 순간에 잡쳤네요.
살인자들의섬
19/05/02 11:46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19/05/02 11:52
수정 아이콘
완전 동의합니다
19/05/02 12:01
수정 아이콘
그러네요
흰배바다사자
19/05/02 12:59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나무위키에 나온 서세원씨 반응이랑 마인드가 똑같은 것 같아 웃깁니다. 내가 너한테 쓴 돈이 얼만데
wish buRn
19/05/02 16:13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사악군
19/05/02 17:50
수정 아이콘
동감합니다.
F.Nietzsche
19/05/02 11:47
수정 아이콘
참 저렴한 댓글
모리건 앤슬랜드
19/05/02 12:47
수정 아이콘
모든것이 전부 불행했다면 맹목적으로 증오만할수 있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작지 않았다는것도 부정할수는 없는 사실이니까요. 낳아준것 이외에는 없었다 하는 케이스와는 다를수가 있겠죠.
GjCKetaHi
19/05/02 12:51
수정 아이콘
그냥 낳아주고 키워준 아빠니까 라는 말로 대체가 가능한데 대단하시네요. 그 밑에 이거쥬 라는 댓글로 화룡정점
키르히아이스
19/05/02 12:58
수정 아이콘
본인은 부모님 돈으로 자라서 부모님을 사랑하시나봐요?
강미나
19/05/02 13:04
수정 아이콘
아무리 pgr이 아재사이트라지만 나이가 그렇다는거지 생각이 대놓고 꼰대 아재여서 그렇다는 건 아닌데
캡틴아메리카
19/05/02 13:26
수정 아이콘
드래군다운 댓글...
FreeSeason
19/05/03 14:45
수정 아이콘
당신이 부모님을 싫어하지 않는 이유인가 봐요~
19/05/02 11:45
수정 아이콘
이해불가의 글이네요
김오월
19/05/02 12:20
수정 아이콘
저렇게라도 긍정적인 기억을 떠올리며 조금이나마 용서하지 않으면 본인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평생에 도움은 커녕 없는 게 낫겠다 싶은 부모에게 정서적으로 속박 당해서 결코 얻을 수 없는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며 스스로를 학대하는 케이스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엄마에겐 괴물이었을지언정 본인에게만은 좋은 아빠였다고 한다면 저런 그리움을 느끼는 일 정도는 있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결국 용서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기에 유전자라는 매개를 통해 그런 그리움이 불가항력인 것처럼 표현하며 스스로의 감정을 합리화(?)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뭐 다 추측이고 진짜 마음이야 본인만.. 아니 본인 조차도 정확히 모를 것 같은데, 무튼 다른 분들의 잘 썼다는 평가보다는 이해불가라는 말에 더 공감이 갑니다. 그리고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19/05/02 13:38
수정 아이콘
세상에 100% 나쁜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그냥 복합적인 감정이죠.
들깨수제비
19/05/02 12:00
수정 아이콘
아버지로서의 누군가와 남편의로서의 누군가는 매우 다를 수 있지요. 서동주씨가 이 다름을 받아들이고 마음이 이전보다 편해진거 같아서 다행입니다.
WeakandPowerless
19/05/02 13:17
수정 아이콘
근데 사실 저 취미들 돈 있으면 누구나 갖고 싶은 취미라서 딱히 아빠한테 동질감을 저런 이유로 느끼는 게 와닿지 않네요
괄하이드
19/05/02 13:21
수정 아이콘
집에서 추리소설읽고 집에서 미드보고 집에서 영화보는게 돈이랑 무슨상관이죠..? 하다못해 레코드판도 5불짜리 10불짜리 엄청 많은데..
WeakandPowerless
19/05/02 13:23
수정 아이콘
돈 보다는 여유라고 적을걸 그랬네요 ;
19/05/02 13:29
수정 아이콘
83년생 여성 중에 돈/여유 있으면 턴테이블 레코드 모으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WeakandPowerless
19/05/02 14:14
수정 아이콘
제 주변에는 엄청 많아요. 서로 좀 다른 세계 사시는 분들하고 공감이 안 되는건 어쩔 수 없죠
더치커피
19/05/02 13:23
수정 아이콘
서세원 재혼해서 자식까지 새로 봤나보네요
해맑은 전사
19/05/02 13:44
수정 아이콘
마음이 무거워지는 글이네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서동주씨도, 서세원씨도, 모든 분들 다.
러블세가족
19/05/02 15:16
수정 아이콘
이걸 분석해가면서 생각하면 이해가 안가죠. 그냥 아빠에 대한 마음을 취미를 이용해서 나타낸 것 뿐인데 저런 취미는 어떻다, 돈 받아서 그렇다 뭐 이런 얘기가 나오면 배가 산으로 가는거죠.
김솔로_35년산
19/05/02 19:08
수정 아이콘
흔한 아싸 사이트의 반응이다.
19/05/02 20:21
수정 아이콘
기분 잡치게 하는 똥댓글들이 많네요. 인생들이 많이 힘들어서 댓글로 푼다고 생각하는게 좋겠네요.
FreeSeason
19/05/03 14:46
수정 아이콘
참 댓글 더럽네요~
Normal one
19/05/09 17:35
수정 아이콘
뭐 또 더러울것 까지야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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