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6/08/17 19:44:26
Name 이쥴레이
File #1 14034848_1068318503256953_7918575395340109073_n.jpg (98.5 KB), Download : 29
Subject 아들이랑 오락실을 갔다.


무더위가 가시지 않는 어느 여름날, 나는 32개월된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온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귀가 따갑도록 아이랑 놀아주라는 장모님말과
집안 화장실 고쳐야 된다는 아내에 부탁과 지친 잔소리에 도망 아닌 도망을 나왔다.

아이는 요즘와서 말문이 팍팍 터져서 이것저것 귀찮게 물어보기시작한 아이지만
지금이 한참 귀여울때라고 하지 않는가..

기저귀와 이제 작별하기 위해 배변훈련을 하지만 그게 참 쉬운 일은 아니다.
쉬마렵거나 응가마려우면 아빠한테 꼭 말해야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면서
아이손을 붙잡고 나는 버스를 기다렸다.

무더위속에서 버스를 기다리는건 참 고역이었고 나와 함께 아이는 땀이 비오듯이 흘러 내렸다.
아이는 나에게 지나가는 택시들을 보며 택시! 택시타자!  했지만 아빠는 돈이 없어 버스를 탄다고 이해 시켜 주었다.

아니 근데 니가 버스도 아니고 어디서 부르조아 같은 택시를 타자고 하는거냐?

다시 엄마차 타자고 하는 아이에게 아빠는 차가무서워서 운전을 못해라고
이해시켜주었다.그래서 엄마가 항상 운전하고 있는거란다. 장거리나 술먹고 놀때
운전 보조석에서 편히 가고 싶은 마음때문만은 아냐

그렇게 기다린 버스를 타고 아이는 내 무릎에 앉아서 지나가는 차와 신호등, 표지판
가리키며 저게 모야? 저게모야? 하고 질문한다.

단답형으로 차 사람 개 신호등이라고 말하는 내 대답에 아이는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고는
요즘배운 반짝반짝 작은별 노래를 부른다. 32개월된 아이가 버스안에서 귀엽게 노래부르고 있으면
시끄럽다고 하지 않는다. 벨을 누르고 하차할때도 기사 아저씨는 아이아빠인 나에게 많은 배려를 해주신다.
평소 난폭운전이라면 둘째가는 이 아저씨들이 이상하게 애랑 타고 있으면 넉넉하게 하차 시간과 함께 천천히 이동한다.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온 시내 커다란 대형마트는....휴일이었다.
아.. 에어컨 노래부르며 간단히 집 화장실 수리할 부품이나 사야지 했던 내마음은 산산조각이
났고 아내에게 일주일을 더 화장실을 고칠수 없는 이유를 만들수 있었다.

하지만 무더운 오후 2시 거리는 너무 고역이었다.

나보다 더 땀을 뻘뻘흘리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다. 애가 이러다가 쓰러지면
난 등짝 스매쉬가 아니라 아동학대로 잡혀갈거 같은 생각이 들었다. PGR에서 얼마전 보았던 마이펫 이중생활이 생각났다.

그래 플랜2다. 하면서 바로 근처 영화관으로 이동하였다.
적당한 시간대가 보여 팜플렛을 아들에게 보여주며

"이거 만화 볼거야, 그러니 너도 아빠랑 같이 봐야되
아빠가 보고 싶어서 그런게 아냐"

하지만 아들은 영화관이 어두워서 싫다고 했다.

"아니 뽀로로라고 했으면 어두워도 볼거 아냐?"

"뽀로로는 크릉하고 있어서 무섭지 않아요"

아들에 강력한 친구 설파 논리와 의지를 확인한 나는 설득을 포기하고 그냥
더위를 피하기 위해 영화관 옆에 있는 오락실을 갔다.

요란하게 입구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아이는 겁을 먹고 주춤거리며
날 따라왔지만 신기하지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마리오 카트에서 눈길을 빼앗겨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마리오 카트만 계속 지켜보았다.

그래..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 옛날같으면 아빠는 어릴때 어머니한테 머리를 휘어잡혀
끌려나올텐데 넌 아빠 손잡고 오락실을 오는거니..

옆에서 내가 해볼래? 라고 이야기 해니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내가 시범적으로 운전대를 잡고 카트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들이 여전히
말없이 나와 게임 화면만 쳐다본다.

옆을 보니 보글보글부터 테트리스도 있었다.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도형 맞추기 풍선
터트리기라고 알려줘도 아들은 가만히 아빠가 플레이하는거 구경만 할뿐이었다.

나는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게임하나하나 플레이하면서 아들에게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하였다.

아빠가 이건 국민학교때 하던거, 이거는 아빠가 중학교때, 이건 고등학교때 말야..등등

마지막으로 KOF 98을 하면서 아빠가 옛날에는 이걸로 좀 날렸어
하고 이야기를 하지만 아들은 말없이 쳐다만 볼뿐이었다. 열심히 약발 짤짤이를 하면서
마지막 보스인 오메가 루갈까지 클리어하고 나자 역시나 아빠 실력은 죽지 않았어라며
흡족해하는 나에게 아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웬지 모르게 머쑥해져서 나갈까하니 아이는 "응" 하고 명량하게 대답한다.

나만 너무 신나게 논거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때 커다란 서점이 눈앞에 보였다.  

"아빠가 책 읽어줄까?" 라는 말에 아들은 활짝 미소를 지으며 좋아하였다.
대형서점에서 이것저것 아들이 가져오는 책들을 읽어 주며 놀아 주었다.

마지막에 기차모형들이 동본된 2만원짜리 책을 가져와서 사달라고 하였지만 나는 능숙하게
3900원짜리 모빌 종이접기 책을 주고는 아들에게 딜을 하였다.

"이게 더 큰거야"

"응"

서점을 나와 손을 붙잡고 다시 버스를 타러 가는길에서 아들에게 편의점 쥬스와 카라멜봉지를 쥐어주며
만약을 대비해 엄마가 물어보면 서점에서 아빠랑 재미있게  놀았다고 자랑스럽게 업적을 이야기 하라고 하였다.

대답 잘하던 아들은 집에 와서 아내에게 나와 함께 오락실 갔다고 이야기 했다.

이게 그래서 자식 키우기 힘들다고 하는거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6-09-26 18:19)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순규하라민아쑥
16/08/17 19:47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기승전등짝이군요.
아재요
16/08/17 19:47
수정 아이콘
등짝,등짝은 무사하십니까...
Arya Stark
16/08/17 19:47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훈훈하군요
자전거도둑
16/08/17 19:50
수정 아이콘
쓰담쓰담 해주고싶어요 크크... 너무 귀여움..
육체적고민
16/08/17 19:51
수정 아이콘
그래서 전 오락실 동료의 고자질을 막기 위해 갈스패닉을 함께 했습니다. 그거 한판하면 끝이에요.
겨울나기
16/08/17 22:50
수정 아이콘
양날의 검인가요.
이진아
16/08/17 19:53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아니 글의 흡입력과 기승전결의 상태가....
루체시
16/08/17 19:55
수정 아이콘
오메가 루갈에서 빵터졌어요 크크크크
소와소나무
16/08/17 19:56
수정 아이콘
결말이 훈훈해서 추천합니다.
합궁러쉬
16/08/17 19:58
수정 아이콘
등짝, 등짝을 보고 싶군요.
16/08/17 19:59
수정 아이콘
글로만 봐도 아드님 너무 귀엽네요.
토다에
16/08/17 20:05
수정 아이콘
훈훈하네요. 제 꿈이 나중에 아들이 고전게임을 하면 슬며시 다가가
원코인 클리어를 보여주는 건데, 먼저 실현 하셨네요
16/08/17 20:09
수정 아이콘
열심히 남편을 혼내고 엄마는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래 무슨 오락했어?? 난 안했고 아빠가 하는거봤어!
아니 애는 구경시키고 혼자오락을해!?!?!
그러다 애 잃어버리면 어쩔려고 그래!!!!
이쥴레이
16/08/17 20:18
수정 아이콘
팩트폭력 자제요. ㅠ_ㅠ
16/08/17 20:42
수정 아이콘
ㅠ_ㅠ
3막1장
16/08/18 06:36
수정 아이콘
아아아..
연휘가람
16/08/18 09:24
수정 아이콘
아아...스토리와 닉네임의 절묘한 조화가...ㅠㅠ
어린시절로망임창정용
16/08/17 20:11
수정 아이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는 아드님의 강직함 보소.. 장관감입니다.
아슈레이
16/08/17 20:14
수정 아이콘
아들: 휴 오늘도 아빠랑 잘 놀아줬다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6/08/17 20:19
수정 아이콘
기차모형이 동봉된 2만원짜리 책을 사주셨다면...
이쥴레이
16/09/27 10:31
수정 아이콘
결국 2주뒤 그책을 샀습니다. 흑.. ㅠㅠ
16/08/17 20:31
수정 아이콘
마지막에 세줄 요약이 너무 완벽한거 아닙니까!!
16/08/17 20:47
수정 아이콘
아들 넘 귀엽네요 크크크

게임에 환장하는 11살 아들이 있는데...언제쯤이면 PC방에 데려가도 될지 가늠중입니다
가면 이곳이 천국이구나~ 할텐데...아내가 아직 안 된다며 반대를....
Deadpool
16/08/17 20:56
수정 아이콘
제가 10살때 처음 접하고 혼자 갔습니다만..
하카세
16/08/17 22:16
수정 아이콘
저는 그나이때 아버지랑 스타 2대2 헌터무한맵을 했는데 천국이였네요 크크
16/11/23 15:52
수정 아이콘
저는 10살에 친구가 꼬여서 같이 갔는데
요즘은 더 빠를테니 이미 피시방 고수일수도...
메모네이드
16/08/17 21:15
수정 아이콘
아하항 너무 귀엽네요.
저희 딸 이제 25개월인데 내년 초엔 같이 오락실 가봐도 되겠네요. 기대됩니다!!
공개무시금지
16/08/17 21:29
수정 아이콘
현재 아들래미가 24개월인데 21개월때 데리고 가봤습니다. 태고를 아주 야무지게 두들기더군요 크크크 그걸 보던 와이프 왈 "너 닮았구나....."
구주네
16/08/17 22:29
수정 아이콘
끄아아아아ㅠ 아드님 두상이 너무 귀여워요ㅠㅠ

다음에도 또 써주시면 안될까요??ㅠ
기네스북
16/08/18 09:12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이맛에 아들 키우는 거 아니겠습니까!
16/08/18 10:02
수정 아이콘
ㅠㅠㅠㅠㅠㅠ
커피보다홍차
16/08/18 11:56
수정 아이콘
귀엽네요 크크크. 기승전등짝까지 훌륭합니다~
엣지오브아킬레스
16/08/18 14:23
수정 아이콘
배변훈련병 언급이 있길래 이벤트를 기대했습니다만...아쉽습니다? 그래도 추천은 꾹!
파랑파랑
16/09/27 09:50
수정 아이콘
하하하, 재밌네요.
니나노나
16/09/27 18:27
수정 아이콘
훈훈하네요 흐흐흐흐
광개토태왕
16/09/29 00:27
수정 아이콘
마지막 밑에서 두번째 문장에서 아내분의 등짝 스매시가 예상되는군요.
아직은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16/10/04 17:28
수정 아이콘
크크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16/10/14 15:44
수정 아이콘
루갈 클리어면 정말 어릴때 오락실 죽돌이였나보네요...크크
아빠는 잔머리 굴리려는데 아들은 순수하게 거짓말 안 하는 것 보니 아직은 떼 묻지 않았나보네요~
이블린
16/10/15 03:11
수정 아이콘
기승전 히오스일줄 알았는데..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3530 마지막을 함께한다는 것 - 을지면옥 [49] 밤듸1541 22/06/26 1541
3529 게임사이트에서 출산률을 높이기 위한 글 [36] 미네랄은행2681 22/06/22 2681
3528 (pic) 기억에 남는 영어가사 TOP 25 선정해봤습니다 [51] 요하네1132 22/06/22 1132
3527 (멘탈 관련) 짧은 주식 경험에서 우려내서 쓰는 글 [50] 김유라1361 22/06/20 1361
3526 [PC] 갓겜이라며? 최근 해본 스팀 게임들 플레이 후기 [94] 손금불산입1500 22/06/16 1500
3525 [기타] 한일 1세대 프로게이머의 마인드 [33] 인간흑인대머리남캐1605 22/06/15 1605
3524 글 쓰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31] 구텐베르크1348 22/06/14 1348
3523 [테크 히스토리] 생각보다 더 대단한 윌리스 캐리어 / 에어컨의 역사 [29] Fig.11205 22/06/13 1205
3522 개인적 경험, 그리고 개개인의 세계관 [66] 烏鳳1165 22/06/07 1165
3521 오늘은 날씨가 참 좋았어요 [12] 及時雨980 22/06/06 980
3520 몇 년 전 오늘 [18] 제3지대917 22/06/05 917
3519 [15] 아이의 어린시절은 부모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24] Restar2397 22/05/31 2397
3518 [15] 작은 항구도시에 살던 나의 어린시절 [7] noname111380 22/05/30 1380
3517 이중언어 아이와의 대화에서 느끼는 한국어의 미묘함 [83] 몽키.D.루피2078 22/05/28 2078
3516 [테크 히스토리] 한때 메시와 호날두가 뛰놀던 K-MP3 시장 / MP3의 역사 [49] Fig.11305 22/05/25 1305
3515 [15] 할머니와 분홍소세지 김밥 [8] Honestly1366 22/05/25 1366
3514 [15] 빈 낚싯바늘에도 의미가 있다면 [16] Vivims1734 22/05/24 1734
3513 [15] 호기심은 목숨을 위험하게 한다. [6] Story1767 22/05/20 1767
3512 [15] 신라호텔 케이크 (부제 : 나의 히어로 아카데미아) [9] Night Watch1808 22/05/18 1808
3511 [15] 1주기 [10] 민머리요정1428 22/05/18 1428
3510 나른한 오후에는 드뷔시 음악을 들어봅시다 [19] Ellun1371 22/05/17 1371
3509 [15] 다음 [3] 쎌라비2519 22/05/17 2519
3508 늬들은 애낳지마라.....진심이다... [280] 런펭5802 22/05/16 580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