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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1/10/12 10:03:08 |
Name |
nickyo |
Subject |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
유통기한 이라는 것이 유독 음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사람끼리의 관계에도 유통기한을 느낄때가 있다. 특히 오래된 사랑이라는 것은 무언가 칙칙한 듯 하면서도 알싸한 느낌의 것으로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져다 주는 설레임이나 두근거림, 행복이나 혼란스러움 같은 것과는 의미가 아주 멀어진 것이기도 하다. 익숙해 진다는 것이 유통기한에 있어서 치명적인 세균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벌써 사랑이 끝나버린게 아닐까?
처음 그와 만나는 것은 엄청나게 초조하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벌써 몇 년 전 일인지도 모르겠다. 새벽부터 점심에 만날 약속을 위해 옷장을 다 뒤집어 놓고, 머리는 말았다가 풀었다가. 화장은 아무리 해도 맘에 안들어서 결국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모습에 속상해했던, 아자! 하고 기합을 넣으려 큰맘 먹고 산 왕 뽕을 넣고 거울앞에 섰다가 이게 왠 돼지야 싶어서 한숨을 푹 내쉰 일까지. 그랬던 시절도 있었지 하며 하늘을 바라보니 또 마주하는 가을이다. 이제는 그를 만날 때 편안한 스니커즈에 캐주얼차림으로 나가도 아무렇지가 않다. 나는 그와 너무 많은 시간을 사랑했나보다. 문득 어쩌면 우리가 맞이한 오늘이 마지막이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걸음의 발걸음을 떼기도전에,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말의 무게가 등허리를 휘청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생각보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었나보다. 나는 그가 없어진 내 일상을 생각했다. 익숙해졌다 한들 내 편인 사람이 없어지는걸까. 내 20대를 함께 보낸 사람이 내 삶에서 벗어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할 수록 그것은 막막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젠 정말 그가 너무 익숙한데. 너무 편안한데. 그는 참 좋은 사람인데.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자신의 잘못만을 찾아 몇날 며칠이고 고민하고 슬퍼할 사람인데. 머리가 아파온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을까? 그는 내 안에서 자기 집 마냥 머물러 있지만 나는 ......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함께 들어간 커피숍에서, 언제나처럼 일상적인 대화를 한다. 카페 바 옆에 놓여진 작은 피아노에는 왠일로 악보와 마이크가 놓여져있다. 아주 가끔 라이브를 하는 주인장의 변덕인걸까? 주변을 쓱 둘러보고 나니 앞에 놓인 잔은 내가 마시는 아메리카노와, 네가 마시는 레몬에이드가 마주본다. 몇 모금의 목축임과, 몇 마디의 말이 언젠가 들었던 것 처럼 익숙해. 지금 이야기해야 할 지도 모르겠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네 눈을 바라보면 처음처럼 여전히 반짝이고 망울진 갈색 눈동자에 마음이 쿵 하고 두드려 맞는 듯 해서 다시 앞에놓인 찻잔만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굴려보아. 네가 없는 나는 어떨까? 너는 내가 없으면 어떨까? 우린 정말 사랑하고 있는거니?
"나 잠깐 화장실좀.."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큰 웃음도 큰 슬픔도 커다란 갈등도 없이 흘러간다.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 설레임도 흥분도 없지만, 어쩐지 평화로운 우리 사이는 영원히 친구처럼 평안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벌써 나도 30이 가까워져 간다. 누구 말마따나 꿈과 희망, 기운찬 젊음은 한풀 지나가고 현실과 능글능글해진 구렁이만 마음속에 뙤아리를 틀어 죽음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진 여시가 되어간다는 느낌. 억울하기도, 당연하기도 한 일에 왠지 너라면 평생 같이 살기엔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도 또 다른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너 만큼 설레임이 길지 않은건 그냥 내가 싫증을 잘 내고 어른이 되지 못한 탓이라고.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예전처럼 그에대해 두근거림이 가득하지 않다고해도 난 네가 없는 삶을 상상하고 싶지 않아. 그치만, 너는 나보다 약간 더 어리고 나보다 조금 더 잘난 여자가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지기도해. 평화로운 너의 사랑이 가끔 날 잠들지 못하게 해. 왜 처음처럼 사랑한다는 한 마디로 날 울리지 않는거니. 너도 나처럼 혹시 그러고 있니. 왠지 눈물이 글썽여지게 되어서, 몰래 눈가를 훔쳤다.
"으음, 안녕하세요?"
어, 하고 보니 내 남자친구가 피아노 앞에 있다. 쟤가 왜 저기있어, 하는데 갑자기 마음대로 마이크를 잡고 떠든다. 그러니까, 어?
"제 여자친구랑 저랑 만난지도 벌써 6년이에요. 첫 만남도 이 카페였는데, 그 뒤로 우린 여길 진짜 자주 왔어요. 그때는 제 여자친구도 되게 예쁘게 하고 나왔었는데, 이제는 맨날 츄리닝만 입고나와요. 하하, 익숙해졌다고 그러나봐요."
왠지 속을 들킨것 같아 얼굴이 달아올랐다. 저 바보는 저기서 뭐하는거야, 몇 안되는 손님들이 자그마한 웃음을 보낸다.
"그래서 오늘은 여자친구한테 꼭 하고 싶은말이 있어요. 익숙하다고 머리 안감고 나오구 그러지말라구. 이런건 아니구요. 하하, 아 긴장된다. 음.. 들어주세요. 제 여자친구는 저 쪽 테이블에 야구모자를 푹 눌러쓴 친구에요. 그럼.."
말할거에요,이제 우리 결혼해요
그럼 늦은 저녁 헤어지며 아쉬워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에요.
나도 모르게 겁이나요 꼭 붙들어줘
같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요, 우리의 시간 나는 당신을 믿을께요.
그대에게 나 반한것 같아 말은 안했지만 너무 예뻐 보여요.
그대에게 나 반한것 같아 말한 뒤에라도 후회하진 않을께요.
두근거려요. 마음으로 안아줘요.
같이 살아가면서 부딪치고 힘들겠죠. 걱정말아요 잘할께요.
그대에게 나 반한것 같아 말은 안했지만 너무 예뻐 보여요.
그대에게 나 반한것 같아 말한 뒤에라도 후회하진 않을께요.
뚜벅뚜벅, 하고 익숙한 그가 걸어온다. 뭐지, 이게 뭐야 하고 생각하지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너 왜그래 하고 말하고 싶은데 목이 메인다. 주변이 모두 싹 사라진 것 같이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그 애는 내 앞까지 성큼성큼와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 애의 따뜻한 손이 살며시 차가워진 내 손을 잡자, 그제서야 조금 숨을 쉴 수 있었다. 물끄러미 맑은 갈색 눈동자로 바라보며 넌 "결혼하자"며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더라.
"..비겁해."
더 하고 싶은 말이 가득 차올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투정을 부렸다. 넌 언제나 처럼 씨익 웃으며 무리했을께 뻔한 반지를 내 손에 끼워주었어.아직 돈도 많이 못 버는게 뭐하는 거냐며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어쩐지 넌 처음처럼 날 아무말도 못하게 만들었어. 이젠 익숙해진 키스였는데, 부끄러워 눈을 꽉 감아버린거야. 사랑해, 사랑해. 라고 말하는 네 마음에 눈물이 결국 뚝 하고 떨어지더라구. 나는 안 그럴줄 알았는데. 딱 오늘 같은 날에, 넌 어쩜 또 이렇게 딱 바라는 것 보다 조금 더 사랑스럽게 만드는걸까. 애써 끄덕인 고개에 안아주는 네 품이 처음 안긴만큼 따뜻하고, 설레여서.
미안해. 고마워.
식어버린 커피를 신경쓰기도 전에 사람들의 박수가, 너의 웃음이 날 행복하게 해줬어.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하고 생각했는데.
널 계속 사랑해서 다행이었어. 차가운 가을 바람도 못 느낄 만큼, 네가 너무 따스해.
"고마워. 사랑해요. 나도... 평생 당신을 사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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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게 만든건 바로 아래 첫사랑이 너무 달달해서 입니다?
청혼하고 싶은 계절이네요.
아 내 손 발좀 누가 펴주세요.
* OrBef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1-10-1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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