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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2/01/16 00:20:12 |
Name |
PoeticWolf |
Subject |
환상과 환장, 양치질과 양치기질. |
솔직히 전 양치가 좀 귀찮습니다. 이 사실을 결혼 전에 커밍아웃했다면 아마 제가 여기 올린 포스팅들이 지금과는 굉장히 다르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게 다 제가 무지해서 그렇습니다. 치약이 가지고 있는 여러 성분이 실제 입안을 청결하게 해준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좀처럼 마음으로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 양치질이란 이전에 남아있는 음식 맛을 감각을 마비시키는 ‘추운 맛’ 내지는 ‘시려운 맛’으로 덮어버리는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덧대기일 뿐이었습니다.
낙서된 벽에 벽지를 덧붙이듯, 볼펜으로 쓴 글자를 수정액으로 덮듯, 분명히 존재하는 입 냄새나 충치균들을 잠시 잠깐 덮어두는 것에 불과한 임시방편 그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양치질을 하는 건지 ‘양치기(소년)질’을 하는 건지 거울 앞에서 쓸데없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양치를 암만 해도 마음으론 여전히 텁텁함이 그대로인지라, 칫솔 물 탁탁 털고 화장실을 나와도 쩝쩝거리는 걸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아, 입안에 있는 거짓의 벽이 한겹 두꺼워졌구만.’
제가 그런 좀 불결한 면이 있긴 하지만, 사실 귀하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살면서 거절을 안 당해본 건 아니지만 거절감을 많이 느껴보지는 못했습니다. 자연히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난 이 결혼 반댈세, 너 같은 놈이 우리 딸에게 가당키나 한가 등등의 간곡한 거절의 표현은 말 그대로 드라마에나 나오는 대사인 줄 알았습니다. 제 조건이란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것도 있지만 '에이, 설마 누가 날 싫어하겠어.'라는, 하룻강아지의 범 접해보지 못한 철없음이 더 큰 요인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수년 동안 착각 속에 입안에 가식을 덧대왔다면, 저희 장모님은 눈물을 참 많이도 흘려오셨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참 많으십니다. 저랑 아내가 드래곤 길들이기란 영화를 무려 4D 로 보고 나와서 '투스리스'라고 이름을 붙인 제 생애 첫 차가 서울 여러 영화관과 맛집이라 소문난 곳들과 한강 공원들과 어머님 일 하시던 매장들을 거쳐 결혼식장을 지나 폐차장으로 코가 꿰여 끌려갈 때, 감상에 젖어 울적한 우릴 보시고 같이 눈물을 글썽이셨고, 상견례 때도 처음 보시는 사돈인 저희 어머님 앞에서 아내 얘기를 하시며 우셨습니다. 지금도 가장 즐겨보시는 프로그램이 인간극장입니다.
처녀 때부터 지금까지 싸움만 시작하면 울화를 그렁그렁 눈으로부터 쏟아내던 아내가 그런 장모님을 닮은 것이란 걸 어렴풋이, 처음으로, 눈치 챈 건 정식으로 결혼 허락을 받으러 장모님과 저녁 식사를 했던 날이었습니다. 아내와 몇 번 같이 갔었던 고기집이었습니다. 고기를 한 판 굽고, 몇 번 판도 갈고, 마무리 몇 조각을 어떻게 먹어야 먹성도 좋고, 어른들께 배려도 좋은 예의바른 청년으로 비춰질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장모님이 먼저 결혼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꺼내시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거 묻기 미안한데, 자네 수입이 얼마나 되나?"
"원래 잡지나 출판쪽이 돈이 좀 짜서 000정도 입니다만 번역이나 기고를 같이 하기 때문에 다 합하면 000 정도 됩니다."
대기업 다니시는 처형의 수년 전 초봉보다 못한 월급에 적잖이 놀라시는 눈치였습니다. 어른들은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글을 쓴다는 일을 막연하게 대단히 보시는데, 장모님도 자기 남자친구를 훌륭하게 포장하는 당신 딸을 통해 작은 환상을 키우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돈은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허니까 둘이 알뜰하게 살면 되겠지."라고 하셨습니다. 다짐처럼 고기를 한 점 집어 드십니다.
바로 다음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신다고 하셨었나?"
"아... 지금은 사업을 준비 중이세요. 집이 IMF 때 어려워진 때부터 사업다운 걸 해보시진 않았습니다."
"그럼 생활은 어떻게 했나?"
"저랑 동생이 벌었습니다."
"......"
장모님은 또 한번 놀라셨습니다. 그냥 자그맣게 사업하시는 아버님 밑에서 평범하게 자란 출판사 편집자인 줄 알았던 저의 실제 모습을 그때 처음 제대로 아셨으니 놀라실 수밖에요. 이번엔 고기대신 물을 한 잔 채우고 계십니다.
“둘이 사이만 좋으면 됐지.” 그래도 좋게 생각하고 넘어가시려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가 남아있는 상태였습니다. 상견례 얘기를 드리려면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하나 말씀드려야 했습니다.
“어머님, 저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알고 있었던 아내가 손을 꽉 잡아 주었습니다.
“사실 저희 부모님 따로 살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너무 혼자 오래 계셔서 식구들이랑 같이 사시는 걸 어색해 하세요.”
“아니, 식구랑 같이 사는 걸 어색해 하시다니? 가족을 어색해 하시다니?”
“옆 동네에서 혼자 방 얻어서 살고 계십니다. 어머님과는 거의 왕래가 없으세요. 아마 상견례 자리에도 못 나오실 겁니다.”
“결혼식에도 못 나오시는 거 아닌가?”
“결혼식에는 나오실겁니다. 제가 직접 모시고 가겠습니다.”
“… 두 분은 그럼 앞으로 합칠 계획은 없으신가?”
“저나 동생은 사실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난 모르겄네.”
한 동안 말이 없으시던 장모님은 남은 음식을 드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 얼른 일어나자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슬픈 얼굴로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아내도 얼른 집으로 올려 보내고 저도 집으로 왔습니다.
다음 날 아내를 만나니 장모님께서 들어가서 밤늦도록 우셨다는 겁니다. 물론 이 결혼 안 된다고 아내에게 말씀을 하신 상태셨죠.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일일 줄 알았는데 제 결혼이 지금 반대에 부딪혔다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거절을 당한 충격도 충격이지만 그렇게 우실 정도로 나란 인간이 한심한가, 그때까지도 그게 와닿지 않아 얼떨떨 했습니다. 아내가 그런 제 표정을 읽은 듯 했습니다.
“우리 엄마, 가정 화목한 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셔. 나 고등학교 때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1주일만에 우리 아빠랑 할아버지(장모님의 시아버지)를 갑자기 다 잃으셨잖아. 그 상처가 아직 엄마한텐 커. 그래서 내가 정말 화목하고 온전한 가정으로 시집가는 게 엄마한테는 너무 중요해. 어제도 오빠가 싫어서 우신 게 아니라, 내가 그런 집으로 알면서 시집가려고 하는 게 엄마는 자기 잘못이라고 우셨어. 엄마 잘못 아니라고 해도 엄마는 그게 엄마 잘못같대. 그러니까 오빠가 우리 엄마 이해해줘. 미안해.”
처음 듣는 얘기도 아니었는데, 장인어른과 아내의 외할머니 – 장모님의 어머니 – 가 1주일만에 다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그때 처음 와 닿았습니다. 그렇게 보니 장모님은 절 거절한 여자 친구의 어머니가 아니라 자기 잘못이 아닌 걸 자기 탓으로 돌리고 계시는 한 평범한 ‘엄마’였습니다. 결국 그냥 ‘엄마’라서 그렇게 괴로워 우신 겁니다. 엄마는 늘 그렇게 퍼주고도 죄인인가봅니다. 그러니 그런 가정 배경을 가진 저도 아내나 장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를 사이에 두고 장모님이나 저나 자기 잘못이 아닌 걸 가지고 깊은 죄책감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 사이에서 마누라는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각기 다른 방향을 가지고 있던 미안한 세 마음이 도저히 만날 기미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장모님의 상처를 알고도 결혼을 강행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나 아내나 장모님께 조금은 시간을 드리자고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저희는 결혼을 했습니다. 장모님은 상견례에 홀로 나오신 어머니와 대화를 하시면서도 우시고, 결혼식장에서도 우셨습니다. 신혼집에 와서 엄마 보고 싶다고 우는 아내를 보면서, 장모님도 지금 집에서 허전해 하고 계시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해 하실까, 같은 자식으로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단화를 꺼내 신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신발장에 넣어둔 신발인데 상태가 꽤나 좋았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신발이 깨끗해진 느낌인데?”
“깨끗해졌어. 우리 엄마가 빨았거든, 손으로.”
“엥? 언제?”
“나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일일이 칫솔질 다 하신거야. 세상에 사위 운동화 칫솔질해서 닦는 장모가 어딨냐?”
화목한 가정으로 시집가는 딸 결혼에 대한 환상이 환장할 노릇으로 바뀌어 절 반대하셨던 장모님이 몇 달 전 때 덕지덕지 붙은 제 운동화에 칫솔질을 하셨다는 소리에 양치를 마친 것처럼 쩝쩝거렸습니다. 운동화를 다시 내려다 봤는데 제가 그 동안 알고 있었던 양치질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때를 그냥 보기 좋은 무언가로 덮어 놓으신 것이 아니라 벅벅 힘들여 벗기셨던 것이죠. 양치는 이렇게 지난 끼니의 때를 힘주어 벗겨 내는 작업이지 수정액을 쉽게 쉽게 바르는 것과는 아주 다른 행위라는 걸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홀로 곱게 키운 딸에게 정직한 수고를 아끼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탁은 송구스럽게도 죄인의 그것처럼 제 발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제는 양치하는 손에 힘을 줍니다. 양치기의 흔적은 이제 제 양치질에 없습니다. 한 꺼풀 한 꺼풀 지난 때가 같이 벗겨집니다. 쩝쩝 소리가 줄어듭니다. 하지만 한꺼번에 소중한 사람들을 연달아 잃으셨던 장모님의 아픔은 쉽게 벗겨질 것 같지 않습니다. 누가 감히 그 아픔을 벗길 수 있을까요. 그래서 장모님 마음에 만큼은 저의 양치질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장모님 마음에 사위란 새 식구를 덧대드리려고 합니다. 물론 이 역시 한 번에 되지는 않겠죠. 상처가 깊은 만큼 아마 두껍고 찐득하게 그 위를 덮어야겠습니다. 환장의 결합이었던 저희 결혼이 한번에 환상이 될 수 없는 건 그 만큼 보여드릴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공사 기간이 길어질 예정입니다. 그게 참 고맙습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1-18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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