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12/03/06 12:12:02 |
Name |
PoeticWolf |
Subject |
버스 손잡이, 엄마 손잡이 |
도로가 또 아래위로 굽이쳤다. 버스도 파도를 탔다. 한 손은 주머니에 있었기 때문에 핸드폰을 쥐고 있던 손으로 급히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와 핸드폰이 부딪혀 ‘툭’하는 소리를 냈다. 이놈의 도로, 이놈의 버스, 입에서 욕이 나왔다. 주머니에 있던 손을 빼서 손잡이를 바꿔 잡고 하던 통화를 계속했다.
“어. 엄마. 뭐라고? 못 들었어.”
“아니, 그때 보낸 서류 받았냐고. 급히 필요하다며.”
“아, 맞다. 아직 안 온 거 같던데.”
“이상하다. 바로 보냈는데.”
“뭐, 오늘 다시 보내줘요 그럼.”
“급하다며.”
“어쩔 수 없잖아. 여기서 내가 뽑을 수도 없고. 암튼 나 지금 버스 안이라 전화 받기 어려워. 이따 통화해요.”
“지금 어디 가는데?”
“인터뷰.”
“어디로?”
“시청이야. 엄마 나 끊을게.”
또 버스가 흔들거렸다. 하지만 손잡이를 잡고 있어서 핸드폰을 어딘가에 부딪치지 않아도 되었다. 도착지에 거의 다 온 거 같았으므로 타잔처럼 손잡이를 옮겨가며 뒷문 쪽으로 미리 이동을 시작했다. 급한 건 서류보다 곧 진행해야 하는 인터뷰였다. 머릿속으로 준비해온 질문지를 다시 읊어가며 약속 장소로 걸어갔다.
한 시간 반이 조금 넘는 인터뷰가 끝나고, 녹음이 잘되었는지 확인하려고 녹음모드로 되어 있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녹음모드를 끄니 부재중 통화가 세 통이나 들어와 있다. 전부 엄마다. 인터뷰이와 인사를 마치고 나와 전화를 걸었다. 짜증부터 냈다.
“엄마, 인터뷰 중이라는데 왜 이렇게 전화를 해?”
“서류가 급하다며. 일단 동사무소 가서 다시 떼어 왔어.”
“그러면 부치면 되잖아. 뭐가 문제야?”
“...급하다고 하길래... 지금 시청역이야.”
“뭐? 어디라고?”
“시청역이야. 얼른 와, 우리 아들 얼굴 오랜만에 좀 보게.”
“항암 치료 중이잖아. 면역력이 낮아져서 아무 데도 다니지 말라니까 왜 그래 도대체. 답답하게!”
“괜찮아. 엄마 살도 많이 찌고 이제 건강해. 그리고 네 얼굴 본지 너무 오래돼서.”
“정말 미치겠다. 그러다가 또 재발하면 어쩌려고 그래. 자식들 생각을 왜 그리 못해?”
“알았어. 미안해. 엄마가 서류만 주고 갈게. 얼른 와.”
플라자 호텔을 나와 아까 인터뷰 질문지를 읊으며 걸었던 길과 반대 방향으로 내달렸다. 4년 전 엄마가 4기암 선고를 받았다는 동생의 울먹이던 전화를 받고 집으로 달렸던 때처럼 숨이 금방 찼다. 시청역에 사람이 얼마나 많고, 공기가 얼마나 탁한지 상상만 해도 건강한 내 면역수치가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엄마는 얼른 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는 듯 개찰구 안쪽에 서있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머리를 가린 건지, 날씨가 추운 건지 털모자를 눌러 쓰고 있었다. 뛰어오는 아들을 보고 엄마는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황색 서류 봉투를 개찰구 너머로 내밀었다.
“자. 여기 서류. 얼른 처리해. 일 잘 보고.”
“여기까지 왜 왔어!”
“이거 주러 왔지.”
“엄마가 이렇게 막 돌아다니면, 내가 불안해서 어떻게 일을 해!”
“엄마 4년 만에 처음 지하철 탄 거야. 다신 안 나올게. 걱정하지 마. 그냥 우리 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어.”
“...휴... 밥은?”
“먹고 나왔어. 돈 쓰지 마. 밖에 음식 몸에 좋지도 않다더라. 엄마 갈게. 얼른 들어가.”
“알았어. 조심히 가. 사람 많은 곳에 있지 말고. 노약자석에 꼭 앉아서 가.”
“알겠으니까 어서 늦기 전에 사무실 들어가.”
도로가 또 아래위로 굽이쳤다. 버스도 파도를 탔다. 한 손은 주머니에 있었기 때문에 서류를 쥐고 있던 손으로 급히 손잡이를 잡았다. 그 바람에 서류가 조금 구겨졌다. 이놈의 도로, 이놈의 버스, 입에서 욕이 나왔다. 주머니에 있던 손을 빼서 손잡이를 바꿔 잡고 자식 얼굴 못 봐 누렇게 떠버린 엄마 마음과 비슷한 색의 서류 봉투를 쳐다봤다. 처음부터 손잡이에 빈 손을 단단히 얽어맸으면 그 마음 구기지 않았을 텐데. 서 있기조차 힘들던 어렸을 때처럼 엄마 아빠를 더 단단히 부여잡았으면 그 마음에 그리움 심지 않았을 텐데. 지하철에서 앉을 자리는 잡으셨으려나.
또 버스가 흔들거렸다. 하지만 손잡이를 잡고 있어서 서류를 더 구기지 않아도 되었다. 도착지에 거의 다 온 거 같았으므로 타잔처럼 손잡이를 옮겨가며 뒷문 쪽으로 미리 이동을 시작했다. 이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내가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건 날 단단히 얽어매는 손잡이 때문이고, 이 나이 먹도록 엄마의 심부름 아니면 서류 한 장 제대로 처리 못하는 나는 아직도 내 다리가 아니라 엄마를 의지해 걷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렸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흔들거렸다. 손잡이를 찾듯 엄마에게 전화를 걸려고 핸드폰을 꺼냈다. 문자가 와 있었다.
“회사 잘 들어갔니? 엄마 앉아서 잘 가고 있다. 오늘 아들 얼굴 봐서 면역수치 올라갔을 거야. 수고하고, 사랑해.”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3-15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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