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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2/05/13 23:41:10 |
Name |
nickyo |
Subject |
"당신 차 팔아." |
대충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부모라는 위치도 나이가 들면 등짝으로 세상을 모두 받아주기가 점점 힘들어 지는 것을.
음, 솔직히 우리 부모님의 삶은 구구절절히 풀자면 좀 불쌍할 것 같다.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인, 살기위해 가난에서 발버둥치느라 평생을 지내고 그 와중에 말년 다되어서 희망찬 노후을 맞이할 계획 직전의 40대 중반에 IMF에 얻어터진. 그런 세대.. 무한경쟁, 젊은이들의 출사표. 빠르게 정보화되는 사회. 나이가 죄가 되는 시대. 열심히 하는건 필요없으니 잘 하면 된다는. 그런 시대..
아버지는 어디엔가 카드빚을 좀 꿍쳐두신 것 같았다. 엄마는 그런 냄새를 참 잘 맡는다. 자식된 입장에서 가끔 방을 정리하신답시고 영수증을 샅샅히 펼쳐보는 걸 보면 솔직히 좀 갑갑하고 질릴때도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그런 질문을 받기 싫어서 잘 숨겨 놓는데도 백이면 백 찾아낸다. 그래서 아버지도 아마 딱 걸렸지 싶다. 이왕 꽁칠거면 비자금이나 만들어 두지, 빚을 꽁쳐놓나. 싶었다. 통수록이 유행도 아닌데 엄마는 통수맞은 기분이 드시는 것 같았다.
가세가 기운다는건 그런것이지 싶다. 잘 나가던 아버지 회사의 몰락, 50대의 재취업. 우후죽순처럼 생긴 사업과 사기의 돌풍에 휩쓸린 2000년대. 엄마는 언제부터인가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다 시피 했던 것 같다. 뭐, 흔한 이야기다. 올해로 아버지는 환갑이고, 두분의 수입은 10년전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는 것 정도. 그러니까 이런 통수도 벌어진다. 이제는 익숙한지, 누구도 울지않는다. 대신, 조금 더 언성이 높아진다. 정당성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있는 것이므로. 그리고, 그건 대체로 중간에서 보기엔 둘 다 맞는 것 같기도.
그러니까 아마 빚. 빚이다. 그게 좀 있나보다.
평생을 일군 집도 내놓은지 오래다만, 부동산거품덕에 사가지 않는다. 노후에 살 집을 마련하려고 디큐브시티인지 뭔지 신도림에 있는 그걸 신청하고 계약금을 넣었더니 물 새는 공사를 해놓고는 돈이나 내놓으라고 해서 가지도 못했다. 뭐, 이 집이 팔려야 넣을 수 있었지만. 허공으로 날아갈지도 모르는 돈이 1억이라나. 재물복도 더럽게없다. 1억, 상상도 안가는 돈이다만. 그게 얼마나 귀한돈인지는 대충 안다. 그러니까 아마, 역시 빚이겠지.
아버지는 그래도 자신의 수입을 엄마앞으로 해두지 않았다. 부전자전이라고 해야하나. 그런 어설픈 부분은 왠지모르게 그럴것이다-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에 비해 좀 존경할 부분이 줄어드는가, 싶은 마음도 든다. 어려울 때 조여매는건 엄마뿐인가? 싶은거. 뭐, 그렇지만 그러려니 한다.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는가. 엄마는 자기가 죄 졌냐고 한다. 억울할 것 같았다. 고통 분담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싶은. 뭐 그런거. 딱히 가부장적이지도 않지만. 그래 이게 다 돈이 줄어서 그렇다.
그러다 또 영수증이 걸린거겠지. 카드론.
엄마는 차를 팔라고했다.
아버지는 그러지 뭐. 라고 했다.
10년전쯤에 샀던 차는 여전히 깨끗하고 주행거리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아.
아버지는 남들 당연히 차 타고 다닐때에도 대중교통으로 사셨었지.
음, 아버지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물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일하게 우리집에서 가족끼리 어딘가로 모여가게 해 주던 차가
진짜로 없어지는건 좀 슬플거 같았다.
고잉메리호가 불타는 기분 같을까.
평생을 조여 살았는데, 아직도 더 조여 사셔야 하나보다.
때때로, 늦은 결혼이나 늦게 태어난 두 늦둥이가, 죄를 진 것 같아서 씁쓸하다.
약한 소리를 하게 되는 부모도 결국 필사적으로 버텨본 심장 하나뿐인 사람이라는걸
알게되어가는 자식의 입장은 참 곤란하다.
진짜로 차가 팔리려나.
빈말이었으면 좋겠는데.
까마득한 기분이다.
토요일 일요일 은행이 문을 닫더라도
토요일 일요일에 빚은 문을 닫지 않는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5-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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