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납니다. 그냥 혁명이 아니라 대혁명입니다.
근대 민주주의의 시작이라고 평가 받죠.
이 혁명은 앙시엥 레짐, 구체제라는 고유 명사를 만들 정도로 세상을 바꿔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속내를 보면 영 아닌 게 많습니다.
일단 프랑스 혁명의 아이콘이 된 바스티유 감옥, 이게 미화됐다는 건 이제 상식에 가깝습니다. 그 외에도 참 많죠. 아니 애초에 이게 진짜 현대 민주주의였나, 아니면 왕과 귀족들 대신 권력을 차지하려는 부르주아들의 선동이었나... 얘기는 주로 후자로 얘기되고 있죠.
미국 혁명도 마찬가지구요.
그 후에도 독재와 분열, 온갖 혼란이 뒤따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이거였죠.
독재자, 아니 "황제"의 등장이요. 근대 민주주의라는 면에서 가장 크게 회자되는 프랑스 대혁명의 끝은 그냥 독재도 아닌 "제정"의 등장이었습니다. 프랑스 역사상 처음입니다.
이 황제가 두 번이나 무너진 후, 그 뒤는 뭐였을까요. 왕정복고였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그 왕정을 또 무너뜨립니다. 헌데 이렇게 만들어진 2공화국은 또 다시 무너집니다.
나폴레옹 3세는 이렇게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_- 황제가 됐으며, 프랑스인들은 이를 열렬히 환영합니다.
보불전쟁으로 그가 물러난 후, 파뤼 코민이 찾아옵니다. 프랑스는 물론 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정권은 분열만 계속 했고, 참 미친 듯이 싸우다가 학살도 많이 저지릅니다. 뭐 바로 밑에 말씀드리는 이들과 싸우다가 그랬습니다만...
프랑스 3공화국은 이 파리 코뮌을 짓밟고 태어납니다. 그 동안 1차, 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3공화국이 붕괴, 프랑스는 비시 프랑스와 자유 프랑스로 나뉘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에는 좌파 정권이 생겼음에도 식민지 문제 등에서 참 삽질을 하다가 자유 프랑스를 이끈 드골이 5공화국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드골은 일단 유럽에다 그 "혁명"의 시작인 프랑스임에도 "신 대통령제"라면서, 민주주의의를 훼손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러다 68혁명 일어나고, 드골 물러나고, 이래저래 하다가 파리 코뮌의 직계라 할 만 하고 2차 대전 떄 레지스탕스 출신인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에 당선되고, 그 후에 자크 시라크 되고 어쩌고 저쩌고... 참 여기 역사도 복잡하기 그지 없습니다.
국민들이 좀 성깔 있고, 대통령의 힘이 좀 크다는 면에서 프랑스는 우리 역사랑 비교할 만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좀 많이 해 봅시다.
나폴레옹 독재로 끝났으니, 프랑스 혁명은 실패한 걸까요?
혹은 애초에 부르주아의 농간에 피로 얼룩진 것이었으니, 혁명도 아니었던 걸까요?
그 후에도 마찬가집니다. 두 번이나 왕정을 반복했고, 좌파 정권인 파리 코뮌이 참 엉망으로 무너졌으니 이런 혁명들은 다 실패인 걸까요? 이것 말고도 많아요. 그 프랑스 역시 제국주의 국가로 쭉 있었고, 전후 열강들 중에서 (좌파 정권이 있었음에도) 식민지를 포기하길 싫어했으며, 뭐 어쨌건 온갖 문제들이 있잖아요.
실제 이런 재평가는 전세계 단위에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워낙에 전 세계 단위로 영향을 준 것이었으니까요. 자크 시라크의 경우 프랑스 혁명은 끝났다고 말 했습니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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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임기의 마지막 해, 87년의 시작은 희생이었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서는 이를 폭로하며 학생 운동을 도왔고, 독재를 반대하는 그들의 투쟁은 전국으로 퍼져 갔죠. 이런 요구를 막으려던 4.13 호헌 조치는 오히려 기름을 부었을 뿐입니다.
"수녀들이 나와서 앞에 설 것이고, 그 앞에는 또 신부들이 있을 것이고, 그리고 그 맨 앞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나를 밟고 신부들을 밟고 수녀들까지 밟아야 학생들과 만난다"
여기에 힘이 되었던 것은 명동성당, 그리고 시민들이 직접 합류하거나 이들에 대한 지지를 보여줍니다. 넥타이 부대의 등장이었죠.
그런 가운데 목숨을 잃은 이한열, 6.29 선언 후 이한열의 장례식에는 100만명의 시민들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신군부는 다시 계엄령을 내리고 군대로 진압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의 온건파는 이를 반대했고, 올림픽을 1년 앞둔 상황에서 한국을 거대한 피로 물들이는 것은 그들 자신을 갉아먹는 행위였습니다. 그 때는 광주에서만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전국이었구요. 여기에 미국에서는 한국 민주화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무력으로 막으려 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백기를 들었습니다.
그것이 6.29 선언, 이렇게 6월 항쟁은 끝납니다. 대통령 직선제가 시작되었고, 김대중 등 민주화 인사들이 이제 전면에 나서게 됐습니다.
이 6월 항쟁은 4.19 혁명처럼 민중 항쟁으로 평가 받습니다. 결국 성공했죠. 그로부터 25년,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돈 있는 놈들이 잘 살고 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가 그 후로도 잘 먹고 잘 살아서, 5공 인물들이 잘 돌아다니니까, 그 5공을 이은 민자-신한국-한나라-새누리가 여전히 잘 나가니까 이 6월 항쟁은 미완, 혹은 실패한 혁명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걸 성공시킨 그 민중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그 민중이 그 민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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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때,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건 해방부터 따져도 겨우 15년 동안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나마 이승만이 왕처럼 군 것처럼, 많은 이들이 대통령을 곧 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이씨이기도 했죠. 식근론을 받아들여 그 기간을 50년으로 연장하더라도 그리 긴 편이 아니고 이 때도 일본 왕을 모셔야 했으며, 한국인이 민주주의를 습득할 시간으로 칠 순 없습니다.
때문에 이 4.19에는 전근대의 민란의 성격이 많이 가미됩니다. 왕을 뒤엎고 보자는 것이요. 그리고 이를 이끈 이들은 지친 프랑스인들이 나폴레옹을 따랐듯이 박정희를 따릅니다. 이 박정희를 반대하던 이들은 역시 타도 대상이었던 민주당과 손을 잡기도 했구요.
여러모로 프랑스 혁명이 떠오르는 것이죠.
4.19, 10.16(부마), 5.18, 이런 주요 운동들의 배경에는 언제나 불황이라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이걸 벗어나는 게 6.10이죠. 이 때는 올림픽까지 달릴 정도로 한국이 잘 나갈 때였으니까요. 그래서 6월 항쟁이 잘난 것이겠습니다만.
이런 것들을 보면 "민중"이라는 집단을 여러 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결코 하나의 목표 하나의 방침만을 가지고 행동한 게 아닙니다. 수 없이 많은 생각이 나뉘어졌고 앞으로도 그렇겠죠.
4.19에는 그저 이승만에게 정치적으로 밀린 이들도 함께 했습니다. 지주, 자본가의 이익을 대표해 그렇게 욕을 먹었던 당시 민주당도 함께 했죠. 민주주의라는 목표보단 그저 살기 어려우니까 일단 뒤엎고 보자는 이들 역시 많았고, 맞는 걸 말 하는 아이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다른 정의감에 나선 이들도 많았습니다. 지독한 반공주의자도, 평화주의자도 함께 했고 여기서도 북에서 지령을 받던 이들도 끼어 있었을 겁니다.
10.16, 5.18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냥 다 때려부수고 싶어 했던 사람도, 나라를 북한처럼 바꿔야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그냥 학생들을 죽이지 말라고 뛰쳐 나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증언들을 보면 그냥 선동에 휘말려서 후회한다고 한 사람도 없지 않아요.
4.19와 5.16을 완전히 분리할 순 없습니다. 4.19 때의 사람들도 여러 생각으로 나뉘어 있었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를 지지했기에 박정희가 2번이나 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6.10 역시 마찬가집니다. 이 둘에 큰 차이가 있긴 합니다. 4.19는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가 없었던 반면, 유신 때부터 87년까지, 이들을 이끌고 이들이 지지하는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둘이라는 거지만요 -_-;
각기 장단이 있습니다. 지도자가 없을 경우 순수성은 더 보장되겠지만 이 힘이 어디로 튈 지 모르고, 누구에게 이용당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박정희에게 이용당했죠. 반면 지도자가 있을 경우 이 지도자의 길에 따라 어디로 향할 지 모른다는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도자가 분열하면서 같이 분열했죠.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를 것 같진 않군요.
이것까지 넣어 봅시다. 6월의 민중들에는 김영삼과 김대중을 따르던 이들이 많았고, 심할 경우 이들이 박정희 같은 독재를 추구하더라도 눈 감을 골수 지지자들 역시 있었을 겁니다. 뭐 김일성 골수 지지자들도 있었겠죠. 그 6월의 하늘 아래 박정희의 지지자들은 없었을까요? 그랬다면 김종필이 박정희의 공화당의 직계를 말 하진 않았을 겁니다.
이것이 민중입니다. 이제까지의 나라가 어떻게 돼 왔는지에 대한 평가, 운동의 성격 및 방침,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떻게 가야 할 것인가, 그리고 이 나라를 이끌 지도자는 누가 돼야 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다 다릅니다.
그 동안 싸워 왔고, 이 모든 것들을 앞에서 이끈 것이 학생운동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생각을 가졌던 이들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함께 싸우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죠.
4월에는 이승만, 10월에는 박정희, 5월과 6월에는 전두환의 독재를 타도한다는 것, 그들 모두의 공통적인 목표는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독재는 절대악이었고, 실패하기도 했고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87년 6월에 결국 성공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것은 분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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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가장 눈여겨볼 것은 바로 지역감정의 극대화죠.
87년 대선과 88년 총선에서 그걸 쉽게 볼 수 있죠. 특히 87년 대선에서 눈여겨 볼 부분이 있습니다. 김영삼의 경남에서든 김대중의 호남에서든 상대에 대한 지지율이 노태우에 대한 지지율보다 훨씬 낮았다는 점입니다. 단지 신군부 청산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분열을 했더라도 노태우보다는 높아야 될 텐데 말이죠. 이미 민주화가 성공한 직후부터 김영삼만 아니면 / 김대중만 아니면으로 갈려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김영삼도 김대중도 아닌 노태우가 당선돼 버렸습니다.
이건 지역감정을 처음 이용했던 박정희도 못 한 것이었습니다. 67년 대선에서는 그렇게 지역 감정을 이용하고 군인표를 그대로 먹었으며 부정선거까지 해 놓고도 90만표 가까이 차이났던 경북을 제외하면 큰 효과를 보지 못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군부 독재와 지역감정 시도에도 완전히 장악했다고 할 지역은 경북 뿐이었죠.
지역 감정이 군부 독재 때보다 오히려 민주화 이후에 더 심해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지역 장악력이 제일 낮았던 김영삼은 (88년 총선 때는 경남에서 오히려 노태우가 더 높았죠) 삼당 합당으로 경상도를 완전히 먹고 지역 대결을 완전히 정착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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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신화가 깨지기 시작한 것은 전태일의 분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노동 운동이었습니다. 이는 민주화 운동과 함께 지속됐고, 노태우는 6.29 선언과 함께 노동 운동에도 많은 부분을 양보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된 노동 운동과 학생 운동을 억압한 것은 오히려 그 수혜를 받은 김영삼이었습니다. 신군부조차 들어가지 못 한 명동성당을 들이친 것이 바로 김영삼 때였죠.
군부에 대한 심판이 고개를 든 것은 노태우 때였습니다. 아니 그부터가 5공 청산을 공약으로 내걸고 나서야 했습니다. 그렇게 5공 청문회가 있었고, 김영삼이 대통령이 된 후에는 노태우도 같이 잡혀 버립니다. 5.16이 쿠데타가 된 것도 이 때였죠.
하지만 그 뒤를 이은 김대중은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결국 세워집니다. 김종필과 손을 잡았고 5공 인사들을 영입하기도 했죠. 그 때문인지 몰라도 박근혜는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북한에도 갔다 왔습니다만. 그 뒤를 이은 노무현은 전두환을 잘 대접해 줬구요. 육사 사열이요? 2006년 때도 있었어요 -_-;
그리고 지금, 친이계의 대표주자는 6.3부터 시작해 온갖 민주화 운동과 노동 운동을 해 왔던 이재오와 김문수입니다. 아니 이명박부터가 6.3을 이끌었죠.
참 혼란스럽죠? 대체 누가 민주화 세력의 직계고 어디까지 해야 과거를 청산한 것이었을까요?
한나라당은 당연히 싫습니다. 하지만 민주당도 따지고보니 한나라당이랑 다를 바 없는 2중대일 뿐이었죠. 그래서 통진당에 기댑니다. 이런 논리 전개를 많이 봐 왔습니다. 그리고 그 통진당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죠.
이런 통진당 사태가 일어난 후, 그래도 믿을 건 민통당 뿐이고, 통진당보다는 새누리당이 낫다는 쪽으로 바뀝니다. 사실 전제만 보면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나마" 낫다는 것이죠.
한국 정치는 "그나마"라는 것이 지배하고 있는 겁니다. 이게 한국의 현실이라고 합니다만, 사실 다른 나라라고 다를 바 있을까요?
민주주의라는 것이 딱히 행복을 가져다 주진 않습니다. 오히려 경제만 잘 되면 독재가 더 행복을 가져다 줄 겁니다. 딱히 정의를 이뤄주지도 않죠. 누가 더 국민을 더 많이 홀리는가에 달렸을 뿐이죠. 민주주의를 수백년간 해 온 서양은 제국주의 국가가 됐고, 인종 차별을 했고, 남녀 차별을 했고, 노동 운동을 억압하기도 했고, 참 많은 일들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뭐 이런 나라들이 그저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라고 할 순 없을 거구요.
민주화가 됐다고 삶의 질이 높아질 순 없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삶의 질 개선을 외치면서 더 아수라장이 생길 뿐입니다. 민주화가 됐다고 깨끗한 정치인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머리 좋고 더러운 정치인들이 살아남고 더 잘 나갈 뿐이죠. 민주화가 됐다고 자기가 원하는 정책으로만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각자 너무 많은 말을 외치면서 정책을 제대로 실시하기 어려워질 뿐입니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체제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최악의 상황을 지금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조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정치 체제를 제외하고 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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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운지 운지 거리면서도 5.18과 6월 항쟁은 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새누리당은 역시 싫은 당이긴 하지만 노무현 역시 기득권 정치인 중 하나이고 민통당 역시 그리 다르지 않으며, 그저 지금 현재의 모습에서 더 나은 쪽을 찍을 겁니다.
FTA나 제주 해군 기지 같은 것을 찬성하며 그런 노무현 때의 정책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노빠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 지금 친노는 오히려 배신자이고, 새누리당이 싫어도 이런 정책을 계속 잇기 위해 새누리당을 찍을 겁니다.
딴 건 필요 없고 햇볕정책을 싫어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번 정권의 대북 정책도 싫긴 하지만, 북한에 대해 욕 못 하는 것보단 낫다고 합니다.
물론 제가 부산 사람이니만큼 이유는 없고 새누리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전라도 출신이라는 것을 듣고 머엉하니 본 사람도 있었죠.
마지막의 경우라면 몰라도, 이런 사람들이 새누리당을 찍으면 비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젠 나도 친일파라고 하는구만."
김수환은 박정희 때도 독재에 대해 반대했고, 5공 때는 명동성당을 성역으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회창을 지지했고,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했죠. 그렇게 대놓고 반대했으면서도 그의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이렇습니다.
"박 대통령을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 없다. 제3기 집권에 대한 욕망을 꺾고 나머지 과제를 후임자에게 넘겼더라면 지금쯤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국부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는 국모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칭호를 받을만한 분이 아니었던가 생각한다
이랬기에 그는 "변절자"로 불렸고, 친일파라는 말까지 사진과 함께 나돌았죠. 뭐 이 외에도 인터넷에서 한나라당 편을 들면 그것만으로도 비민주적이라고 불렸던 게 얼마 되지 않은 과거입니다. 이 때문에 "민주화"라는 말이 비꼬는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이죠.
경제 부분으로 가 보면, 안보 부분으로 가 보면 그 때 노태우가 당선된 것도 이해가 되죠. 그 때는 한국이 참 잘 나갈 때였고, 경제적으로 뭐가 무너지진 않았거든요. 그렇게 경북이니까 당연하다 해서 찍은 사람, 경제적으로 불만 없었으니까 찍은 사람들인 거죠. 이 사람들이 민주화 운동 때 그냥 반대했을까요? 제가 장담할 순 없겠습니다만 그 때 독재 타도에는 찬성하고 거리로 나섰으면서도 노태우 찍은 분을 알고 있습니다. 안보 부분 역시 마찬가집니다. 어쨌든 북한이 싫다는 사람은 그대로 찍은 거죠. 경제적으로 망하지 않은 게, 북한이 알아서 나서 준 게 군부에게는 축복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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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쥐들이 흰고양이와 검은 고양이중 누가 자신들을 이끄면 좋은지 투표하는 것"
깨끗하고 유능하며, 자기가 원하는 정책과 딱 맞으며 바로 지금 자신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정치인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저것들 중 하나라도 맞는 정치인이 있으면 다행일 뿐이죠. 일단 돈이 있어야 되고 머리가 좋아야 되며 사람들을 잘 이용해 먹어야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싸우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나라를 만들 거라 했던 이들이 어땠는지는 지난 몇 달 동안 어떻게 해 왔는지는 잘 봐 왔지 않습니까. 최근에 막말을 터뜨린 임수경은 다른 건 몰라도 권위주의만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만, 역시 다를 건 없더군요. 믿을 사람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 사람의 비리, 그 사람의 정책, 그 사람의 온갖 모습 등에서 실망할 거리는 꼭 나옵니다. 그것이 크든 작든이요.
어느 시대가 됐든, 민주주의가 얼마나 오래 됐든 결국 기득권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들이 좌지우지하는 것 역시 마찬가집니다. 모든 노동자들을 위해 했던 혁명, 모두가 평등하다고 외치면서 시작된 공산주의가 오히려 더 심한 독재를 했었죠. 이건 그 어떤 체제에서도 바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감시 뿐입니다. 그리고, 그걸 통해 정치인들을 더욱 압박하는 것 뿐이죠. 이건 자기가 지지하든 아니든 상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감시가 얼마나 가능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가 얼마나 발전했는가, 그리고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가가 갈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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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5.16 글부터 올린 글에 주요 내용은 국개론으로 흐르기 쉬운 것 같아요. 5.16을 허용하고 그 후에도 지지한 건 4.19 때 그 사람들이었고, 지금 이런 지역감정과 온갖 문제가 뒤섞인 혼란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도 6월 그 때의 정치인들이고 그 때 있었던 사람들이라는 거니까요. 애초에 국민들의 표심이 어떻고 어떻게 변하고 있다는 것과 국개론의 사이를 명확히 규정하긴 힘들 테니까요.
뭐 그래도 저는 지금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봅니다.
6월 이후, 노태우가 집권한 것은 많은 운이 따랐지만 그들 자신이 5공 단절을 외쳤고 실제 5공 비리 청산을 외치며 5공 청문회를 했습니다. 김영삼은 3당 합당을 했지만 전두환과 노태우를 감옥으로 보낸 것도 그였죠.
설령 구세력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돼 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 넘어갑시다 -_-;
지금 박근혜를 봅시다. 가장 쉬운 예가 있죠. 그녀는 계속 5월 18일에 광주에 가며 그 때마다 민주화 운동을 잊지 않겠다고 말 합니다. 이게 많이 싫으실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봅시다. 5.18을 폭동이라고 하는 거나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것이 신문에서도 나오는 상황입니다. 아마 전두환을 찬양하고 5.18을 무시하는 이들도 분명 새누리당을 찍겠죠.
헌데 그들이 지지하는 사람이 5.18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네, 당연히 부동층을 끌어들이고 민주주의의 대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거겠죠. 그녀는 박정희의 딸인만큼 이런 모습을 더 보이려 하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말하면 이렇게 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뜻 합니다. 코스프레를 하는지 아닌지는 관련 없습니다. 어차피 정치는 더럽고, 지키려는 쪽이든 정의를 외치며 이를 몰아내려는 쪽이든 코스프레인지 아닌지는 죽은 이후에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중요한 건 진심이 아니더라도 코스프레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부분도 마찬가집니다. 독재 때는 적당히 잡아 넣고 죽이고 왜곡하면 해결됐습니다. 비리는 아주 쉽게 감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비리든 쉽게 드러나며, 쉽게 욕 먹습니다. 그걸 감추려 하면 그걸 또 욕 먹습니다. 네, 여전히 비리는 계속되고 그걸 묻는 것도 계속되고 있죠. 하지만 그런 것을 욕 하는 것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사실관계가 확실하지 않는데 욕만 계속된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죠.
엄한 사람을 기득권이 붙잡고 가두는 것도 계속되기는 하죠. 그런데 이게 이제 알려지고 욕 먹습니다. 오히려 그 엄한 사람이 엄하지 않았다는 반론도 계속 나오는 수준입니다. 이젠 돈을 훔치더라도 눈치를 보고 훔쳐야 되고 사람을 잡아넣더라도 눈치 보면서 잡아넣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복지 같은 진보적 가치들도 예전에는 꿈도 못 꾸던 것이지 않습니까. 근데 이걸 지금 새누리 쪽에서도 말 하고 있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네, 이걸 잡은 것 역시 박근혜입니다. 오히려 보수 쪽에서 박근혜의 좌클릭을 비판하고 있을 정도죠. 그냥 겉보기일까요? 아뇨. 뭐 집권한 후에는 팽해버릴지 몰라도 지금 열심히 공부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통진당 사태가 터지니 민통당이 더 몰리게 돼 가는 것이죠.
애초에 이런 종북에 대한 문제와 이런 진보의 비민주적인 문제는 예전부터 지적됐던 문제입니다. 그걸 그저 구세력의 레드 컴플렉스로 치부하고 그 구세력 타도가 더 중요하니 묻어둔 것이 터졌을 뿐이죠. 오히려 이건 좋은 기회입니다. 필요한 건 그들이 국민의 눈치를 얼마나 보느냐는 것, 이걸 그냥 매카시즘으로 몰아붙일 수록 표는 떨어져 나갈 뿐입니다. 얼마나 잘 대응하는지, 어떻게 대응하는지, 거기서 국민을 얼마나 설득시키려 하는지를 보여줘야 됩니다.
지역 감정도 이렇게 간다면 해소될 수 있겠죠. 유권자들의 생각이 얼마나 바뀐다 하더라도 그들이 나서지 않으면 지역감정은 풀릴 수 없습니다. 새누리당은 호남으로, 민통당은 영남으로 더 가야 합니다. 국민들의 지역 감정이 옅어지고 각 정당이 적대 지역으로 더 갈수록, 자기 지역에만 매달릴수록 욕 먹고 표를 잃는다는 걸 실감할수록 지역 대결 양상은 줄어들 겁니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하고 있구요. 아무리 참패했다 한들 이번 경남에서 보여 준 모습이 그리 부정적이지 않은 이유입니다.
김대중의 시대 이후, 보수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북한에 대한 태도, 친일파나 독재 청산, 온갖 이슈들이 한국을 참 여러 개로 갈라놓고 있죠. 하지만 전 이게 그의 최고 업적이라고 봅니다. 만약 그가 대화합을 외치지 않고 그냥 다 쓸어버렸으면 (그게 가능했을 때는 아닙니다만) 안정됐을 것이고 보기에 좋았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의 시대 이후 친북에 대한 문제는 한 쪽이 다른 쪽을 억압하는 수준을 벗어나기 시작해서 격렬한 찬반 양론으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독재, 친일에 대한 문제도 마찬가지구요.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게 진작에 이 나라에서 시작됐어야 할 "혼란"입니다. 그냥 찍어누르길 바라면 박정희의 진짜 후예가 나올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기에 노무현의 도전도, 박근혜의 좌클릭도 나올 수 있는 겁니다.
"이길"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이긴다는 것 자체가 뭐가 이기는 건지 모르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가 혼란스럽다고 그 누구든 대 놓고 말할 수 있는 시대며, 돈 있는 놈들만 잘 산다고 대 놓고 바꾸자고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썩었고, 국개론에서 말 하듯 국민들은 여전히 바보 같은 시대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의 힘이 강한 시대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역사상 최악의 시대라고 기록될지도 모릅니다. 지난 수십년간의 독재를 뺀다면 말이죠.
프랑스 혁명 후, 프랑스는 많은 혼란과 독재를 거쳤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가운데서도 그 자유라는 정신은 계속 이어졌고, 지금도 프랑스는 자유에 정말 많은 신경을 쓰는 나라입니다. 구세력이 남아 있다고, 정권이 어떻게 된다고 그 정신은 흔들릴지언정 사라지지 않습니다.
4.19는 많은 한계가 있었음에도 그 자체로 박정희의 독재를 늦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정희가 확실히 독재로 돌아선 순간, 4.19의 정신은 다시 일어났습니다.
5.18은 그 때 흘린 피로 국민들 사이에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심었고, 지배층에게는 더 이상 무력을 쓸 수 없다는 공포를 만들었습니다. 이 때의 희생이 6월의 항복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왔던 6월 낳은 것은 혼란입니다. 결국 이 때 합의된 것은 민주화 하나, 더 정확히 말 하자면 직선제 하나 뿐이었죠. 이를 주도했던 이들은 찢겨졌고, 서로를 향해서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추종을 정말 맹목적인 것, 혹은 강제로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런 수는 가장 낮은 시대일 것입니다. 각자 자기가 믿거나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시대죠. 그 언제보다 자기 말을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만족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니 누구도 상대를 완전히 누를 수 없기에 그 어느 때보다 만족할 수 없을 때겠죠. 정치, 경제, 어느 부분이든 비관이 잇따를 겁니다.
하지만 그런 비관도 6월이 있었기에 할 수 있는 비관입니다. 그리고 그런 비관과 절망 속에 한국이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돼 왔으니까요.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6-20 1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