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이라도 다녀왔냐.
하고 농담처럼 나는 K에게 인사했다. 언제나 오던 K가 언제나 입는 깔끔한 양복을 입고 언제나 오는 대충 야근이 끝났을 시간에 바에 들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어딘가 더 단정하다. 새까만 양복. 새까만 넥타이. 새하얀 셔츠. 장례식장이라도 다녀온 건가 싶은 그런 복장.
“응.”
하고 짧게 대답한 그는 바에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농담이 진담이 되는 엄숙한 순간. 그렇군. 진짜로 장례식장을 다녀왔군. 언제나처럼 건네주던, K가 즐기는 달콤 과일 향이 많이 나고 도수가 낮은 그런 칵테일 대신, 씁쓸한 위스키에 뜨거운 물과 정향을 넣어서 무겁게 건네준다. 방금 던진 시시껄렁한 농담에 대한 무겁고 진지한, 직업적 사과. 그리고 그는 계속 울고 있다. 처음 이 가게에 오게 된 지 1년이 조금 지났을까. K는 원래 가던 인근의 단골 바가 문을 닫아서 아무데나 가봐야지, 하다가 내 바에 처음 오게 되었고, 이윽고 단골이 되었고, 이윽고 이제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런 그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1년 만에.
바, 라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울고, 생각보다 적게 운다. 술에 취해 울거나, 울면서 들어와 술을 마시고 진정한다. 슬플 때라면 울음을 그칠 수 있는 곳이고, 그저 울고 싶을 때라면 술의 힘을 빌려 울 수 있는 곳이다. 하여,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울고, 생각보다 적게 운다. K는 울면서 바에 들어올 종류의 사람도 아니었고, 울기 위해 술의 힘을 빌려야 하는 종류의 사람도 아니었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애주가. 자칭 ‘세계적 금융위기에 크게 공로한 파생상품들을 개발하고 매매하는 쓰레기같은 신자유주의의 척후병’인 금융인인 동시에 ‘그게 미안해서 사회당에 가입한’ 사회당에 몇 없는 ‘최소당비 이상을 납부하는 평당원’ 사회주의자. 애주가이지만 술은 약한 녀석. 무수한 삶의 모순들을 감내하고 묵묵히 살아갈 수 있는 서른 살 사내. 그런 사내가 공공 장소에서 운다, 는 것은 역시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술에 취해서건, 슬퍼서건.
“친구?”
서른이란 친구의 부모님이 죽었다는 이유로 펑펑 울 나이가 아니다. 그랬다가는 삶에 지쳐 증발해버린 눈물들이 남아날 수가 없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외롭고 슬퍼서 눈물이 다 날아가버렸거든. 남은 눈물들은 소중하게 흐른다. 친구의 죽음이나, 혹은.
“전에 사귀었던. 전 애인.”
의 죽음 정도에서 흘릴 수 있는 것이다. 조용히 대답한 그는 조용히 술을 마신다. 그. 전에 말했던 전 애인. 투병하고 있는 전 애인 하나 있다고 했잖아. 오늘 죽었어. 장례식장에 다녀 왔어. 아. 기분 그러네. 야. 이거 흔한 거 아니지? 나 슬퍼해도 되는 거지? 막 울어도 되는거지? 실없는 웃음으로 눈물을 감추며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간다.
“흔한 일이야. 서른이잖아. 울고 싶은만큼 울어.”
라고 대답했다. 흔한 일인가. 글쎄. 작년에, 한 친구가, 자살했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귀여운 여자애였고, 적지 않은 내 친구들과 자잘한 연이 얽힌 친구였다. 그렇게 한 친구가 자살했고, 그렇게 여러 남자애들이 전 애인, 미래의 애인, 혹은 친구도 애인도 아닌 어드메에 있던 여자애를 잃어버렸다. 나는 사고가 일어난 당일 경찰서에 갔었던 가장 나이 많은 놈이었던 덕에 그 녀석들의 무수한 전화를 받았었다. 군대에서,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연구실에서, 자취방에서 단어와 문장을 조립하는 대신 목놓아 엉엉 울던 남자놈들. 죽은 건 한 명이었으니 그다지 흔한 일은 아닌 지도. 하지만 너처럼 슬퍼하던 남자애들은 여러 명 보았으니 흔한 일일지도. 하지만 흔하고 흔치 않고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긴, 그 무의미성을 알고 있으니 K 너도 그런 말을 했겠지.
그리고 이내 K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하하. 이거 내가 상주가 된 기분이로군. K는 허탈하게 웃으며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술을 마시고, 기분이 조금 나아지고, 술을 마시고, 친구들은 이내 돌아갔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내일이 있으니까. 살아있는 사람인 K는 테이블의 친구들을 보내고 이내 바로 돌아와서, 브로콜리너마저와 가을방학을 배경 음악으로 주문했다. 이봐. 술집에서는 술을 주문해야지. 아무리 슬퍼도 음악을 주문하면 쓰나.
아. 이거 오늘 죽은 그 애가 추천해서 들었던 음악이야. 그러고보니 그 애가 사귈 때 나한테 음악 추천을 많이 했는데, 내 취향이 아니라 대체로 잘 안 들었어. 바이브의 어떤 노래를 강하게 추천했었는데, 사귀는 내내 결국 안 들어보다가 결국 오늘 들어봤다. 좋더라. 그리고 그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조용하게.
바를 운영하며 몇 번의 죽음을 보고 들었다. 언제나 슬프고 눈물이 조금 났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어렸을 때는 친구의 조부모가 돌아가셨고, 대학 시절에는 친구의 부모님들이 돌아가시더니,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친구와 친구의 친구들이 돌아가신다. 적당한 웃음과 울음을 나눈다. 그리고 산 사람들은 사는 곳으로, 죽은 사람들은 죽은 곳으로 돌아간다. 우울해졌다. 하지만 이것이 내 직업이다. 바텐더. 거리의 사회학자. 거리의 상담가. 거리의 주술사. 거리의 협잡꾼. 온갖 이야기와 행동과 수상한 물약과 수상한 기구로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미혹한다......그가 떠나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남은 손님들과 포커를 몇 판 쳤다. 오랜만이어서인지, 우울해서인지, 덕분에 술을 마셔대서인지, 결과는 영 좋지 않았다.
그가 떠나가고 이내 다른 손님들도 떠나가고 마침내 나도 가게를 떠날 시간이 왔다. 가게를 대충 정리하고, 집으로 간다. 가는 길에 성당에 잠깐 들를까. 집에 가는 길목에 성당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나는 술의 신의 사제이지만 동시에 카톨릭의 평신도이며 사회당의 평당원. 술의 신은 아량이 넓다. 기불릭을 차별하지 않으며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차별하지 않으니.
잠시 고민이 들었다. 반바지에 샌들 차림으로 야밤의 성당에 들어가서 정원의 성모상 앞에 기도를 올리는 건 어쩐지 불경스러운 느낌이니까. 하지만, 삶과 죽음 앞에 존경이 어디있고 불경이 어디 있나 싶어서 그냥 들어갔다. 아직 새벽이 찾아오려면 먼 밤이니까, 수녀님이나 신부님을 마주칠 일도 없을 꺼야. 그렇게 잠깐 기도를 드리고, 집앞 피씨방에서 와우를 잠깐 하다가, 집에 들어와 이내 잠이 들었다. 그리고 깨어나서 생라임을 구하려고 지랄생쇼를 하다가 실패하고 다 떨어진 그레이프푸르츠 쥬스와 탄산수를 사고 두 개의 도매상에서 거래 관련 전화를 받고 번역 작업을 잠시 손보다가 이 글을 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명복을 빈다.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08-17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