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12/10/14 21:42:01 |
Name |
seotaiji |
Subject |
솔로 탈추울...? |
강의실이다. 오랜만에 받는 강의라 그런가
지루하기만 하다.
어제 먹은 술 때문에 갈증도 나고 졸리기도 하고
속도 좋지 않다. 그렇다고 화장실 핑계를 대고
나가자니 강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민망하다.
그 와중에 늘씬한 키의 여성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귀여운 얼굴이 눈에 담겨 들어온다. 마땅히 앉을 자리가
없어서인지 약간 당황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마침 내 옆자리가 빈자리다. 옆자리에 올려놓은 가방을
슬쩍 치웠다.
그 여성도 나처럼 공부에 흥미가 없는지 맨 뒷자리인 내 옆자리에
앉는다. 긴 생머리에서 향긋한 샴푸냄새가 난다. 어떤 샴푸지?
도브였으면 좋았을 건데...
얇고 길죽한 손가락이 마음에 든다. 여성의 손을 만지작 거리는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가산점이다.
어제 친구놈이 소개팅하라며 보내준 사진 속 여성의 얼굴이 떠오른다.
귀여운 얼굴이긴 한데 핸드폰으로 전송된 사진을 믿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여자친구와 결혼하고 싶다며 형을 놀려대는 동생 놈과의 쏘우(쏘주+우동)
자리에서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려면 똥차 먼저 직접 빼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제대로 된 꼬장을 보여주겠다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그게 이번 추석 때 일인데 여태까지 똥차를 빼줄 생각이 없는듯 하다.
형의 꼬장을 잊은 체 여성과의 자리를 마련해줄 '의지'조차 없는 모습에
치를 떨고 있었다.
올해 초에 세워놓은 유일한 목표인 솔로탈출이 뇌리를 스친다.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를 넘긴다면 독신이라 말하고 다닐 참이었다.
그 와중에 키 크고 귀여운 내 이상형에 근접한 여성이 내 옆자리에 앉은 것이다.
입에서 술 냄새가 나지 않게 입을 꾹 다물고 코로만 숨을 쉰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하고싶다.
용기없고 소심한 나로서는 하기 어려운 말이긴 하다. 강의시간 내내 고민하고
결정을 하지 못하고 강의 시간이 끝났다. 수업이 끝나도록 말 한번 걸지도
쌍팔년도의 쪽지를 전하지도 못했다. 이러한 소심함에 솔로로 사는 거라
자책하며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한다.
해장 겸 점심 겸 햄버거나 먹어야겠다. 더블치즈버거가 땡긴다.
그렇게 소득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털레털레 강의실을 떠난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저기 혼자이신 거 같은데 점심같이 하실래요?"
영원히 멈춰있을 거라 생각했던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 고운 목소리이다.
.......
늦은 시기에 접수한 운전면허 학과교육 시간중 만 원짜리 덜렁 한 장 있어 자판기를 사용하지 못해
접수처에서 지폐를 교환하던 중 만난 이상형과 마주쳤던 눈 덕분에, 마침 내 앞에 앉은 그 이상형 덕분에
이렇게 지루한 다섯 시간 중 한 시간을 시덥잖은 상상의 글을 쓰며 보냈다.
강의실의 빈자리가 시간이 지날 때마다 채워지기 시작한다. 역시 내 옆자리를
제외하고 빈자리가 찬다. 익숙한 일이다. 통학을 위해 타던 통학버스에서도 내 옆자리가
가장 늦게 채워졌었다. 그래서 내 옆자리가 채워지면 버스가 출발하곤 했다. 그때마다
못난 내얼굴 보다는 차가워 보인다는 내 첫인상 탓을 했다.
두 달 정도 남은 2012년이다.
난 독신이 되어가고 있다. 물론 말만 독신이고 언제까지나 정황상 독신이다.
점점 추워지고 있다. 난 겨울이 싫다.
커플들도 무척 싫다.
난 독신이니까.
* 信主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2-10-3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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