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둘이 이야기하게 해 주자며, 나는 먼저 아이들을 데리고 잠시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왜 내가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해도 될 일을 굳이 내가 자처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지은 환한 웃음으로, 장난꾸러기처럼 연습실 밖으로 나왔다. 겨울 밤, 찬 바람이 맨 살에 부딪히는 시원함도 타는 속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친구들은 차인다, 차이지 않는다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키득거렸지만 난 그저 웃기만 했다. 입을 열었다가는 쓸데없는 말들이 나올 것 같았다. 풀어야 할 곳을 모른채 마음속에 화가 둥둥 떠다녔다. 하얗게 피어나는 입김들을 보며 빌었다. 차여라. 차여라.
생각보다 일은 빠르게 해결되었다. 기타를 메고 나온 친구는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됬냐며 떠드는 호들갑에, 다음 연습에 보자며 쿨하게 돌아갔다. 평소에도 과묵하고 쿨한 녀석이었는데, 이럴때도 변함이 없었다. 그래도 내심 그 뒷모습에서 왠지 '좋게는 안 끝났다'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연습실에 내려가서 각자 짐을 챙기며, 다들 쩡이에게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려 애썼는데 역시나 베이스. '야 정아 뭐라고 했어? 사귀는거야 이제? 받아줬어? 뭐야 야 얘기해주라~~' 마이크 선을 정리하면서도 청각에 온 정신을 다 집중했다. 덕분에 허공에서 마이크선을 몇번을 감고 풀었는지 모르겠다. 쩡이는 웃는 듯 마는 듯 그런건 물어보는게 아니라며 나중되면 다 알게 될 거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쩡이와 나는 묘하게 그 화제만을 피했다. 공연의 레파토리라거나, 곡 순서. 노래할 때 어려운 부분들 같은 이야기만 돌고 돌았다. 솔직히 그 때만큼 베이스가 부러운 적이 없었다. 나도 그런 뻔뻔함이 필요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차마 쩡이에게 묻지 못하고 차창 너머 풍경들에게 물었다. 너도 걔가 좋냐? 나는 네가 좋다. 너는 날 어떻게 생각하냐? 너는, 날 어떤 표정으로 바라볼거니. 답이 정해지지 않은 물음들이 허공을 맴돌았다. 입으로 하는 말이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은 채로, 우리는 내일을 기약했다. 연습은 우리의 소용돌이치는 감정과는 상관없이 이뤄지는 스케쥴이었다
다음 날, 우리의 연습은 파토가 났다. 기타나 쩡이의 문제는 아니었다. 낡은 건물 지하에 있던 합주실이었는데, 동파가 되면서 전기가 나가버린것이다. 수리를 하는데 2~3일은 걸린다는 관리인 아저씨의 말씀을 들었다. 다른 연습실을 찾아보았지만 당일에 찾기는 쉽지도 않았고 거리도 너무 멀었다. 결국 우리는 합주실을 쓰지 못하는 동안 개인연습을 하기로 했다. 어쨌거나 각자 익혀야 할 곡과 파트가 있었기 때문에 일정에 큰 지장은 없었다.
집에서 가사집에 쉼표를 표시하며 노래를 듣고 있는데 쩡이에게 문자가 왔다. '오빠 점심 먹었어요?' '아니 아직.'
그러자 바로 쩡이에게 전화가왔다. 쩡이는 근처 마트에 왔는데 같이 밥을 해먹지 않겠냐고 했다. 어디서? 라고 물으니 오빠네 집에서요. 라고 당돌하게 말하는 것이다. 왜..왜? 갑자기? 하며 헛웃음을 짓자, 그녀는 '파스타 재료를 세일하는데 혼자 해먹기는 쫌 그래서.. 오빠네 집 비죠?' '어..응..' '그럼 한 삼십분있다 전화하면 마중나와줘요~' 딸깍, 뚜-뚜-뚜-
30초정도 멍하니 전화기를 보고있었다. 여전히 상황은 정리가 안됐지만 어쨌거나 지금 당장 방이랑 집을 정리해야했다. 물론 부모님과 같이 사는 학생이기 때문에 딱히 더 손을 댈 곳이 많지는 않았지만 맞벌이를 하시는 터라 내 방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지는 않았다. 미친듯이 움직이며 옷을 다시 개고 걸고, 침구류를 정리하고 각종 여자 아이돌 포스터를 떼었다. 책상위의 두루마리 휴지도 없애두고, 휴지통도 비웠다. 아차 싶어서 컴퓨터도 정리했다. 으아.. 나의..나의 자료들.... 그러나 주저할 수는 없었다. 백업의 생활화가 꼭 필요한 일임을 그때 절실히 느꼈다.
쩡이는 생각보다 엄청 편한 차림이었다. 청바지에 패딩 후드를 푹 눌러쓰고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춥다는 이야기를 하며 발을 동동대는 그녀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긴장감이 장난 아니었다. 머리속에 있는 생각은 너무 많았지만 깔끔하게 정리했다. '밥이나 먹자.' 그 이상은 도저히 사고회로가 버틸 수 없었다. 쩡이는 우리집을 보며 오~~ 오빠네 집 깔끔하네요. 주방은 어디에요? 오빠도 나 도와줘야하니까 손 얼른 씻어요. 라며 쉐프모드로 돌입했다. 나는 생전 처음 양파도 썰고, 베이컨도 자르고, 토마토도 씻었다. 쩡이는 생각보다 엄청 본격적으로 요리를 했는데, 굉장히 능숙했다. 지금 내가 하는 파스타들도 다 쩡이가 가르쳐 준 것이었다.
먹음직스럽게 완성된 파스타의 이름은 로제크림 파스타라고 했다. 베이컨과 양파, 양송이 버섯에 미트볼이 올라간 토마토 크림소스 스파게티였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파스타 다운 파스타를 먹어본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꽤 맛있어서 놀랐다. 순수하게 감탄하며 '요리 되게 잘한다' 라고 말하자 쩡이는 처음으로 수줍어했다. 그제서야 쩡이가 엄청 귀엽고, 그리고 우리집에 단 둘이 있다는 상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우와, 방금까지 맛있던 파스타의 맛을 느낄수가 없다. 나 여자애가 해준 음식 먹어보는거 처음인데.. 난 면이 입으로 가는지 코로 가는지도 잘 모르게 어찌저찌 다 먹고, 쩡이에게 잠깐 앉아있으라고 하고는 커피를 찾았다. 그 당시 어머니께서는 핸드드립을 이용한 원두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그걸 대접할 요량이였다. 달그락 달그락 대며 그럴싸하게 커피를 우려내어 서로 양 손에 쥐고 앉았다.
"와 오빠가 이런것도 할 줄 알아요?"
"엄마가 자주 해 드셔서, 그냥 따라 해봤어."
"향 좋다.. 커피 잘 못마시기는 하는데 이건 향이 너무 좋아요."
"먹기 힘들면 다른거 줄까? 주스같은것도 있어."
"아뇨 커피 마실래요 직접 타준건데 아깝게.."
쩡이는 그러고는 연신 '커피가 별로 안써요!'만 반복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커피숍이 골목마다 있거나 학생들이 즐겨 다니는 장소는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쩡이와의 대화를 빙빙 겉돌았다. 왠지 모르게 서로 포인트를 피해가고있었다. 그리고 역시 그걸 깬 것은 쩡이었다.
"오빠 기타오빠가 저한테 고백했잖아요..."
"아. 어. 응!"
나는 나도모르게 조금 목소리가 커졌다. 쩡이는 약간 놀란듯, 그러나 덤덤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자기는 아직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 생각해보겠다고는 했는데 어떡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 연습할때 보기 좀 껄끄러울 것 같다는 이야기 등이었다. 나는 무슨말을 해 줘야 할지 몰라서 그냥 응, 응. 그렇구나 하고 맞장구를 쳤다. 쩡이는 평소 기타오빠가 그럴 줄은 전혀 몰랐다고, 알고 지낸지도 오래됐는데 왜 이제와서 그러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네가 그만큼 예쁘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절대 내뱉을 수가 없었다. 쩡이는 얼마 남지 않은 찻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연신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건 조금 기쁜 말이었다. 쩡이가 기타랑 사귀는 건 싫었으니까.
한참동안 그렇게 쩡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쩡이는 조금 속이 시원해진 듯, '오빠는 요새 애인이랑 어때요?' 라고 물었다. 아. 그제서야 나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됐다. 왜 쩡이가 굳이 나한테 찾아왔는지. 쩡이에게 있어서 밴드 멤버중 유일하게 '애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나 뿐이니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난 쩡이에게 '애인 없다니까' 라고 말했고, 쩡이는 '헤어졌어요?' 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쩡이에게 차근차근, '정말' 애인이 없었으며 그건 진짜 형의 물건이었다고 이야기했다. 필사적으로 해명하는 내게 그제서야 쩡이는 깔깔대며 웃었는데, 자기도 반신반의 했다는 것이다. 솔직히 오빠가 그런걸 살 수 있을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며. 게다가 크리스마스에도 연습을 하러 나왔으니 없는거 같긴 했다고. 그치만 오빠는 애인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니까. 라고 말을 조금 끄는 순간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좋아하는 사람은..있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이었다.
"와 대박! 진짜요? 누구??? 우리학교? 연상? 연하?"
사뭇 다른 표정의 쩡이는 신이 난 듯 물었다. 이번엔 내가 커피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웃어요 생각만 해도 좋아? 라는 쩡이의 말에, 티나냐? 라고 말했다. 쩡이는 아까보다 더 크게 웃으며 연신 대박 대박 누군지 진짜 궁금하다. 내가 아는사람은 아니겠지만서두.. 크리스마스에 근데 연습이나 하고있었어요? 뭐라도 해보지!! 라고 타박했다. 그리고는, 오빠는 잘 됐으면 좋겠다~ 내가 뭐 도와줄거 있으면 말해요 저 연애상담 완전 잘해줄 수 있어요. 쩡이의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해?'라고 물었다. 말이 잘못 튀어나갔다고 생각한건 조금 지나서였고, 눈이 마주친 쩡이는 당연하죠 오빠! 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약간 미간을 찡그리며 웃었는데, 아마도 그 순간 쩡이는 뭔가 느꼈었나보다.
"왜요? 잘 안되요?"
"내가 관심 갖고 있는 것도 걔는 잘 모를걸?"
"오빠는 그런거 진짜 못 숨길거 같은데~"
"그럼 알아챘으려나?"
"음...나라면 아마 알아 챘을 껄요?"
베시시 웃는 쩡이의 모습을 보며, 난 잠시 말을 멈추었다. 쩡이는 홀짝이며 남은 커피를 다 마셨고, 우린 몇 초간의 침묵을 공유했다. 그제서야 쩡이는, 무언가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음을 느꼈나보다. 나는 쩡이의 눈을 마주친 채 수많은 생각을 흘러가게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 생각들은 '하지마. 해' 로 간단히 나뉘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생각들이 입을 떨어지지 않게했다. 지금은 아니었다. 이럴 예정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안될 것 같기도 했다. 조금 더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쩡이는 먼저 커피잔을 들고 일어나 '커피잔 어디다 둘까요?'라고 물었다.' 그 근처에 그냥 두면 된다는 말 대신, 내 입에서는 '쩡아'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쩡이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달그락 거리며 '설겆이는 오빠가 해요~'라고 말했고. 난 다시 '은정아' 라고 그 애의 이름을 불렀다. 그제서야 쩡이는, 약간은 어색한 표정으로 돌아보며 왜요? 라고 물었다. 이름으로 부른건, 쩡이가 날 오빠라고 부른 이후 처음이었다.
그건 멋대가리 없는 고백이었다. 굳이 그랬어야만 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모르겠다. 그치만 그때의 나는 쩡이의 손을 잡고 그 좋아하는 사람이 너라고 했다. 쩡이는 장난치지 말라며 손을 뿌리치려 했고, 난 놓아주지 않았다. 그제서야 쩡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쩡이는, 정말이냐고. 진심이냐고 물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쩡이는 한참이나 날 우두커니 바라보았는데, 그 침묵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길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내가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고요를 깨뜨린 것은 쩡이였다. '커피 한 잔만 더 주지 않을래요?' 그제서야, 나는 내 손이 축축하게 젖었음을 알고 얼른 손을 놓아주었다.
쩡이에게 따뜻한 커피를 주자, 쩡이는 한동안 말없이 찻잔만을 내려다 보았다. 몇 분이 지났을까, 쩡이는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미안해요. 정말. 정말 미안해요. 그 말은 정말 아팠다. 쩡이는 고개를 푹 숙인채, 더 작은 목소리로 한번 더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그제서야 겨우 '미안해 할 일 아니잖아.'라고 말했다. 나는 쩡이가 우는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건, 차였다는 사실보다도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쩡이를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걸 느꼈다. 쩡이에게 집에 있는 손수건을 쥐어주며,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쩡이는 한참을 미안하다고, 오빠가 싫은건 아니라고 말했다. 울음이 잦아들고, 조금 진정을 찾자 그제서야 정이는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정이의 어렸을 적 꿈은 가수였다고 한다. 그치만 중학교시절, 어머니를 따라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요리가 너무 좋아졌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 꿈은 쉐프가 되는 거라고 했다. 원래는 고등학교를 요리유학을 위해 프랑스로 가려고 했으나, 할머니께서 편찮으셔서 일년을 미루게 되었다고 말했다. 밴드를 시작한 건 할머니가 겨울에 돌아가시고, 한국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서라고 했다. 어릴 적 꿈을 이렇게라도 느끼고 싶었다고. 그래서 조금 뻔뻔하게 '자기도 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노래를 못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얼굴만으로 밴드를 할 만큼 예쁘지도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었다고. 할머니는 어릴 적 제가 불러드린 동요를 참 좋아했어요. 정이는 메이는 목소리를 조금 다듬으며, 자기는 내년에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그리고 몇 번이나 말해주었다. 오빠가 싫은게 아니라고. 그리고, 끝까지 동료로 남아줄 수 없냐고. 머리속으로 너 참 이기적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치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이기적인 것 보다, 네가 좋았다.
며칠 뒤 연습실 수리가 끝나고 모였을 때, 쩡이는 여느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기타 친구는 '공연이 끝난 뒤에' 대답을 들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어쩌면 밴드생활중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를 나날들은 생각보다 쉽게 지나가고 있었다. 쩡이와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시 동료가 되어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연말 공연까지 큰 위기 없이 준비를 착실히 진행해 나갔다. 중간중간 장소 섭외의 어려움이나, 기계 대여 비용같은게 문제가 되었지만 다행히 잘 해결이 되었고, 우리는 연말공연 리허설을 앞두고 있었다.
공연을 일주일 앞에 두고 나는 악기를 다루는 친구들과 마지막 곡에 대해 이야기 하고있었다. 나의 마지막 곡은 앞 곡이 끝나고 멘트를 한 뒤에 하기로 했는데, 마지막 곡이 끝나고 멤버를 다시 한 번 소개하고 다 같이 합동으로 한 곡을 더 한뒤 앵콜곡 두개정도를 메인보컬과 듀엣이 나오는걸로하였다. 쩡이가 없는 회의에서, 나는 곡의 순서를 바꿔달라고 했다. 친구들은 이유를 묻지 않았지만 딱히 어려운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었기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우리 공연은 꽤 큰 사이즈의 라이브 하우스를 빌렸다. 다만 조명이나 음향을 잡아줄 사람을 그쪽 하우스에서 빌려 쓸 돈은 없었는데, 다행히 연습실을 빌려준 선배의 소개로 조명과 음향 엔지니어까지 있는 '진짜 그럴싸한' 공연 리허설을 경험했다. 이제까지 연습했던 걸로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리허설이 끝날 때 쯤엔 다들 사뭇 기분이 고조되어있었다. 비록 신나게 리허설 내내 까였지만, 우리는 굉장히 흥분되어있었다. 그날 밤에는, 잠이 안온다고 연습실에 죄다 모여서 새벽까지 악기를 퉁기고 집에 돌아갔다.
리허설 다음날, 공연 본방은 생각 보다 많은 실수와 트러블을 겪으며 진행되었다. 기타 현이 끊어진다거나 선을 밟아서 엠프가 튄다거나 말을 더듬는다거나. 그래도 초청한 사람들이 전부 친구, 동창, 지인이었기에 다들 즐거운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관객이 되어준 친구들은 나름의 야유와 환호를 보내며 우리의 '의외'스러운 모습을 즐겼다. 처음에는 완전히 잘 맞춰야 한다고 서로 부담을 가졌지만 공연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그깟 자잘한 실수가 뭐 어때!' 라는 생각으로 신나게 놀았다. 최고였다. 무대의 시간은 흘러, 어느새 내 마지막 멘트와 곡이 남았다. 헐떡헐떡 차오르는 숨을 고르며, 친구들을 한번 돌아보았다. 사고를 칠 시간이다.
"어, 제가 처음으로 이렇게 공연을 해봤는데요. 진짜 재밌네요. 아무래도 가수를 해야하나?"
우- 하는 소리와 몇몇 아이들의 '얼굴을봐라~~푸하하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제가 이거 공연준비하면서 사고를 하나 쳤어요. 우리 밴드의 예쁜 홍일점 보컬 쩡이! 쩡이한테 고백을 했거든요?"
우와, 저질렀다. 입 속 침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관객석은 우와아오오오오오오~ 푸하하하하 대박~ 와 사귀냐? 사귀냐~ 사겨라~!!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어왔다. 조명 때문에 친구들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엄청 재밌어 한다는 걸 목소리 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사귀긴 뭘 사겨요 그냥 축구공마냥 차였구만."
사람들은 빵 터졌고, 우리 드럼은 센스있게 그 대목에서 두르르르쾅퉁탕 챵챵 하며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준비한 말이 많았지만 정리가 되지 않아서, 그냥 되는대로 던지기 시작했다.
"아무튼, 진짜 불편해질 법도 했는데 쩡이도 하나도 어색해하지 않고 이렇게 공연까지 함께 힘내줘서 정말 고마움을 많이 느껴요. 사실 기타도 쩡이한테 고백을 했는데, 얘는 공연 끝나고 대답 듣는대요. 와 쟤네끼리 사귀면 나 진짜 완전히 새되네?" -우하하하하하하 하는 반응에 베이스가 이번엔 둥가당둥당 하며 흥을 돋궈준다. 난 기타를 치는 친구를 향해 씨익 웃어준 뒤, 말을 이어갔다.
"뭐, 그치만 그래도 전 정말 우리 정이가 정말 좋았어요. 일년동안 너무 즐거웠고,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게 해준 우리 친구들이 너무 좋습니다. 기타는 정이랑 잘 되면 친구 안할거에요. 하하. 농담이구요. 둘이 잘 되더라도, 전 마음 깊이 축하해 줄 겁니다. 마지막 곡 하나 남았네요."
잠깐 숨을 골랐다. 시덥잖은 말을 몇 마디 더 했다. 근데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 때 들었던 생각은, 이제 진짜 보내야 할 시간이다 라는 것이었다. 끝낼 때다.
"원래는 이 곡을 지금 하려는게 아니었는데, 제가 바꿔달라고 고집을 부렸어요. 정이한테는 비밀로."
슬플 줄 알았는데, 웃음이 자꾸 터진다.
"얘들아! 일년동안 진짜 고마웠다!! 그리고 우리 쩡이!!!! 난 니가 정말 좋았다! 좋은 남자 만나라!!!!갑니다-!!!"
탁 탁 탁 쟈가장 징쟈쟈쟝-
....
안개처럼 사라져 간 다시 못 올 그 지난날
함께한 추억 모두 흘려 보낼게
널 잊어야해 힘들어도
널 지워야해 기억 속에서
네가 떠난 후에 난 죽을 것 같이 아파도
두 번 다시 울지 않을게
잊을께 잊을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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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지막 편에 계속.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2-0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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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해피앤딩이었으면 좋겠네요. 제 고등학교 시절도 생각나네요.
그당시 남자애들 심리가 좀 다 비슷하군요. 미묘하게.... 숙맥인 그 시절이랄까요. 로맨스 소설 읽고 있는 기분이 듭니다.
그래서 해피앤딩을 원해요. 아니, 소설이 아니니까 더 해피앤딩이 좋겠군요. 기왕이면 다음달에 결혼합니다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