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이곳 자유게시판에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란 글을 올린적이 있습니다. 그 글을 각색해서 한미수필문학상에 응모했는데 운이 좋게 우수상에 당선 되었네요. 많이 부족한 작품인데 소재가 독특해서 수상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운칠기삼이로다^^;
심사위원장이 황동규 교수님이셨고, 시상식장에서도 만나뵈었는데 제가 무지해서 그 때는 그 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몰라서 사진도, 싸인도 못받았습니다. 나중에 집에와서 검색해 본 후에 땅을 쳤다지요. 역시 무지한자에게는 감동도 찾아오지 않나봅니다. 흑흑
전문링크:
http://www.docdocdoc.co.kr/news/view.php?bid=news_19&news_id=34360
[한미수필문학상] 제7회 <우수상> 7분 24초의 통화기록
“때르르르릉.”
오늘도 이곳 충청남도 소방안전본부 종합상황실은 충청남도 곳곳에서 걸려오는 119신고전화로 매우 분주하다. 걸려오는 전화벨 소리는 모두 동일하게 기계적인 색을 띠지만, 그것에 응답하는 수보요원(신고를 받는 소방공무원)들의 목소리는 다양한 색깔을 띤다. 일반적인 신고에 대한 약간은 기계를 닮은 것 같은 목소리, 긴박한 상황에 어울려 격앙되어 있는 칼날 같은 목소리, 당황해서 횡설수설 하는 신고자를 달래는 따뜻한 담요 같은 목소리 달래다 못해 꾸짖는 천둥 같은 목소리 등 매우 다채롭다.
“예. 구급지도의사 안상현입니다.”
그 다채로운 목소리의 향연에 나 역시 끼어들어본다.
* * *
나는 의사고시에 합격하고, 바로 공중보건의사로서 이곳 상황실에 배치되어 구급지도의사라는 직책으로 근무하고 있다. 구급상황에서 신고자나 구급대원에게 구급처치를 지도하거나 간단한 의료상담을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직책이나 역할은 거창해 보이지만 건수는 그리 많지 않아 하루 1,500여건의 상황실 전화 중에 내 목소리는 열 통화 남짓에서만 들을 수 있는 정도이다. 그나마 우리나라 응급의료체계의 한계로 환자를 구하는 데 큰 힘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과연 이 자리에 내가 필요한가?’하는 자괴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한 환자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고, 수화기 너머로만 만날 수 있어 내가 진짜 의사인지에 대한 의문까지 생기곤 한다. 이제 막 첫발을 내딛는 청년의사에게는 꽤나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내 이런 안타까움, 고민을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고 시간이라는 녀석은 무심하게 흘러간다.
2007년 7월 11일 저녁 8시경.
오늘도 이곳 상황실을 가득 채우는 전화벨 소리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다. 이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2개월이 흘러 이제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도, 수보요원들의 다양한 색깔의 목소리에도 별 감흥이 없다. 호기심이란 후각만큼 피로하기 쉬운 것일까, 지금 하는 일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 구급지도 건수가 없을 때는 소란스러운 가운데서도 그저 앉아서 책을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또 저녁 8시쯤 되면 저녁밥을 먹어서 배는 불러 잠도 조금 오고, 책이나 인터넷도 한나절 동안 봐서 질릴 때가 되어 나이 먹은 오랑우탄처럼 축 처진 상태로 있을 때다.
‘몸도 찌뿌드드한데 스트레칭이나 할까.’
앉은 상태에서 몸을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고 마치 무심하게도 너무 빨리 지나가는 시간과 씨름이라도 하듯이 발악을 하던 중이었다. 그 때 옆에서 한 수보요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네? 애가 뭔가를 먹고 숨을 못 쉰다고요? 의사선생님 바꿔줄 테니까 전화 끊지 마세요.”
2개월 간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라, 전화 연결을 해주기 전 수보요원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느 정도 분위기 파악이 된다. 잠? 나른함? 한순간에 정신이 돌아와 늙은 오랑우탄은 이제 이곳에 없다. 내 자리의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빠르게 낚아챘다.
“말씀하세요.”
젊은 엄마의 울음 가득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다양한 목소리들에 익숙해진 나는 이제 목소리를 들으면 어느 정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색깔로 따지자면 지금 목소리는 분명히 붉은색, 적색경보다. 그리고 신고자와 나와의 대화는 잘 짜인 소설과는 다르다. 소설 속 인물 A, B의 대화처럼 순차적으로 A가 대사를 하고, 다음 줄에 B가 대사를 하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그런 것이 아니다. 이번에도 나는 A가 되어 물었지만 젊은 엄마는 B가 되지 못해 묵묵부답으로 울고만 있다.
“애가 몇 살이에요? 지금 상태가 어떻죠?”
18개월 아이가 숨을 못 쉰다고 한다. 아마도 가족끼리 저녁을 먹느라 잠시 한눈 판 사이에 18개월 아이가 옆에 떨어져 있는 무엇인가를 집어먹었으리라. 그런 와중에 수화기 너머로 어렴풋이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울 수 있다면 완전한 기도 폐색은 아니므로 초응급 상황은 아니련만, “지금 애기가 울고 있는 것 아닌가요?”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묻는 나에게 젊은 엄마는 이제 울음 섞인 목소리가 아니라 아예 엉엉 울면서 말을 했다.
“우는 애는 큰애에요. 엉엉. 애가 얼굴색이 변해요. 어떻게 해요. 엉엉”
분명 완전 기도 폐색으로 청색증이 발생한 것이리라. 그야말로 1초도 아까운 초응급 상황이다. 내 가슴은 매우 심하게 뛰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소설 속 A가 되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 생후18개월이면 아직 체구가 너무 작아서 이물질로 인한 기도 폐색 때 일반적으로 시행하는 하임리히법(Heimlich maneuver)은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어 다른 방법을 지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머니. 심호흡 한 번 하시고, 제 말대로 해주세요.”
자기는 못한다, 구급차 빨리 보내 달라며 엉엉 울기만 한다. 분명 이 때 내 목소리의 색깔이 바뀌었으리라.
“정신 차리세요! 구급차 도착하기 전까지 아이 살릴 사람은 어머니 밖에 없어요. 제 말 들어야 합니다! 일단 어머니 무릎에 아이를 뒤집어 올리시고, 등을 5회 아래서 위로 빠르게 때려주세요. 그리고 바닥에 똑바로 눕히고 한 손으로 가슴 부분 압박을 아래서 위쪽으로 5회 해주세요. 그리고 입안에 먹은 것 나왔나 확인하세요.”
울음도 터졌고, 제 정신도 아니련만 역시 어머니란 존재는 강했다. 이내 정신을 차렸는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탁탁탁탁탁 5번 등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입에 아무것도 안 나왔어요. 얼굴이 파래요. 엉엉.”
한 번에 되기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당황스러웠다. 수보요원의 말로는 구급차가 아직 5분은 더 있어야 도착할 것이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저산소증으로 뇌에 손상이 생길 것이 분명하다. 재빨리 다음 단계를 지시했다.
“방금 했던 대로 한 번 더 하세요. 나왔나요?”
시험 결과 발표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수화기 너머로부터 전해져 올 결과에 대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아니요, 안 나왔어요. 엉엉. 어떻게 해요.”
과연 젊은 엄마가 내가 시킨 대로 제대로 하고는 있는 것일까? 괜히 그 엄마를 탓하고 싶고, 내가 지금 그 아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런 바보 같은 생각으로 이번에는 내가 소설의 B가 되어주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만약 이번에도 효과가 없으면 심폐소생술을 지도해야 한다. 심폐소생술을 비교육자에게 전화로 지도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기에 나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옆의 수보요원에게 출동한 구급대원 호출해서 CPR(심폐소생술)상황임을 알리도록 했다.
“어머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심폐소생술 지도하겠습니다. 한 번 더 시행하세요.”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탁탁탁탁탁 등을 때리는 소리. 처음보다 더 둔탁하고 강한 소리가 이번이 정말 마지막임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반응이 없나? 안 되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어 심폐소생술 지도를 위해 만들어둔 지도용 스크립트를 펼치고, 심호흡을 하며 수화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 때였다.
“으아아아아앙!”
‘어어?’
“나왔어요! 애가 울어요. 엉엉.”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아이의 상태를 하나하나 체크했다. 괜찮았다. 아니 좋았다. 청색증이 있던 아이 얼굴이 이제는 우느라 악을 써서인지 빨갛다고 했다. 이제 안심이다. 머리가 멍하다. 그렇게 멍한 상태에서도 기계적으로 아이를 회복자세(recovery position) 취하도록 지도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이 일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이런 말을 했다.
“어머니, 정말 잘 해내셨어요.”
내 목소리는 분명히 떨리고 있었다. 비단 내 목소리뿐 아니라 온몸이 다 떨리고 있었으리라. 수화기를 내려놓고 보니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긴박했던 7분 24초의 긴급 상황은 이렇게 갈무리 지어졌다.
선배 의사들은 실제로 임상에서 많은 생명을 구했고, 또 지금 이 순간에도 구하고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이 나를 봤을 때 웬 난리법석이냐고 한마디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초보 의사로서 환자의 생명과 관련된 일에 무엇인가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뿌듯하다. 학생시절 응급실 실습을 하고 있을 때 D.O.A(dead on arrival; 도착 시 이미 사망) 환자들에게 사망선고가 있을 때까지 소위 말하는 쇼피알(‘씨피알; 심폐소생술’을 환자를 살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가망 없는 환자에게 있어 보호자가 올 때까지 지속하는 것이 쇼와 같다고 하여 생긴 말)을 했었다. 그렇게 몇 명의 환자를 내 손 아래서 보냈었는데 아마도 그 기억들이 정신적인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나 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관여한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은 더욱 더 기적같이 다가왔고, 벅찬 감동이었다. 또한 2개월 간 나를 괴롭혔던 내 존재가치를 나 자신에게 알려주었고, 내가 의사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예. 구급지도의사 안상현입니다.”
이제 내 목소리는 희망 가득한 푸른 하늘을 닮은, 그런 색깔이 아닐까?
* 라벤더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8-02-14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