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불타는 성전 클래식이 내일 출시를 앞두고 있어서 클래식은 세기말 중의 세기말 기간인데요.
세기말에 한번쯤 클래식 레이드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서 글을 써봅니다.
1. 클래식 레이드 순위
흔한 클리셰 중에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간다면' 이 있습니다. 비트코인 사서 2018년에 팔겠다 같은 노잼 치트키를 안쓰더라도 충분히 사기적인 능력이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같이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간다면 어떨까요? 과연 과거의 기억이 있다고 해서 내가 큰 이득을 볼 수 있을까요?
화산 심장부 :
과거로 돌아온 사람끼리의 화산심장부 월드퍼스트킬 경쟁에서 승자는 유럽 게헨나스 서버의 APES 길드였습니다. APES는 프리서버에서 다년간 경험을 쌓은 하드코어 PVP 길드인데요. 와우만 하는 유인원들이라는 길드명에 걸맞게 5일만에 60레벨을 찍고 화산 심장부로 향했습니다. 이 때 APES를 막으러 온 호드 4개 공대를 일방적으로 썰어버리는 영상은 클래식 와우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명장면이 되었습니다.
(한국어 자막, 주석이 달린 영상)
호드측 주력 길드인 Dreamstate는 해당 영상에서는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역이 되었지만 스피드런에서는 1위를 차지하며 결코 본인들이 약한게 아님을 증명하였습니다.
검은날개 둥지 :
오리지날 당시에는 가장 많은 유저들이 무릎을 꿇은 장소가 검은날개 둥지였죠. 가장 짧고 화끈한 던전이라 쉼없는 헤딩 끝에 공대가 터져나가기 일수였는데, 반대로 던전이 짧은 만큼 클래식에서는 유럽의 Calamity, Progress 길드가 초 단위까지 동시에 퍼스트킬을 기록하는 진기록이 나와버렸습니다. 아마 와우 역사에 다시는 없을 일 아닌가..
줄구룹(하드) :
원래 줄구룹은 최초의 20인 공격대 던전으로, 신규/라이트 유저들이 아이템 파밍을 따라잡으라고 만들어준 던전입니다. 다만 가장 보상이 좋은 마지막 보스만 달랑 잡고 나가는걸 막기 위해서, 중간 보스를 잡지 않고 마지막 보스 앞으로 가면 마지막 보스한테 강력한 버프가 주어지는데요. 이는 레이드 난이도를 일반/하드로 구분하는 시초가 되었습니다.
오리지날 때는 아무도 공략하지 못했고, 클래식에 와서야 북미의 BLaDE of KiLL (대소문자 섞어쓰는거 극혐이네요) 길드가 공략에 성공하였습니다. 비정상적으로 강력한 보스를 잡기 위해 극단적인 유리대포 조합을 들고와서 보스가 죽는것과 거의 동시에 전멸하는 방식으로, 클래식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의미의 월드퍼스트 킬을 기록하게 됩니다.
안퀴라즈 사원 :
안퀴라즈 사원은 설정상 고대의 적에 맞서서 두 진영이 힘을 모아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 레이드입니다. 전쟁을 하려면 보급이 필요하죠. 그래서 물자 보급 퀘스트가 서버 단위로 주어지는데, 보급을 마치지 않으면 레이드를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보급해야하는 물자의 양이 상상을 초월해서, 오리지날 당시 대부분의 서버는 레이드는 고사하고 물자 보급조차도 제대로 해내지를 못할 정도였습니다.
물자 보급이 그만큼 중노동인데 비해 보상은 사실상 없다시피한데, 이걸 깨기 위해서는 길드, 서버 단위로 강력한 리더쉽이 필요했고 중국의 光韶 길드가 퍼스트킬을 달성하면서 역시 이런건 중국이다..라는걸 보여줬습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인구가 1서버의 절반 수준인 라그나로스 서버에서 ID Technic 길드가 의외의 첫 킬을 달성했는데,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길드원을 추모하기 위해 두 달간 똘똘 뭉친 결과였습니다.
낙스라마스 :
낙스라마스는 오리지날 당시에는 낙스라마스에 '입장'만 해도 하드 유저 소리를 듣던 던전인데요. 유럽의 Progress 길드가 검은날개 둥지에 이어 또다시 첫 킬을 따내며 최고의 PVE 길드로 자리매김합니다.
해외에서 한두시간만에 클리어하는 걸보고 낙스라마스의 난이도도 옛날 사람들이 허풍떤 거라는 얘기가 잠시 나왔지만, 막상 한국에서는 클래식 길드가 첫 날 클리어 한걸 제외하면 숱한 정규 공격대들도 며칠 동안 헤딩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2. 한국의 클래식 레이드
한국 레이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약간 아쉬운 점과 특이한 점이 있는데, 아쉬운 점은 골드팟의 폐해가 가장 심하게 나타난 지역이라는 점과, 상위 공격대 대부분이 아이템 분배 등을 놓고 싸우느라고 완전히 터지거나 반쯤 터지거나 한 점이네요. 후술하겠지만, 개개인의 실력은 좋은 반면에 팀으로 모였을 때는 상대적으로 오합지졸이기도 했고요(중국축구?).
특이한 점은 클래식에서 대부분의 지역은 성기사 때문에 얼라이언스가 PVE에서 매우 강세, PVP에서도 강세를 보였는데, 한국은 얼라이언스가 PVE에서 약간 우세, PVP에서는 약간 열세를 보인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아즈샤라 호드의 영향이 클래식까지도 끼친게 아닌가 싶네요.
(용개형.. 하늘에서 보고 계시죠?)
3. 클래식 레이드와 본섭
클래식 레이드가 본서버 레이드에 비해 쉽다는 데는 이제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그리고 클래식 출시 시기는 마침 본서버 컨텐츠가 잠시 쉬어가는 시기일 때였고요. 그래서 '클래식 레이드? 아재들이 허풍이나 떨었지 15년전 택틱이 본섭 택틱하고 비교가 됨? 이 몸이 강림해서 퍼스트킬 따러간다' 하고 본서버 유저들이 클래식에 침공을 했는데..
해외에서는 자타공인 본서버 최고의 레이드 공대인 메쏘드가 클래식 레벨업 과정까지 게임 부스 차려놓고 실시간 중계를 해가면서 김칫국을 마시다가 이제 막 50레벨대쯤 됐을 때 이미 프리서버 고인물들이 클리어하고 있어서 괜히 헛물만 켜게 되었습니다.
한편 국내에서는 데저트이글로 유명한 GZ나 오버워치의 겐지수로 유명한 아카로스 등 본서버 출신 유저들이 적극적으로 커뮤니티 활동을 하면서 개개인의 택틱을 정립하는데 좋은 영향력을 끼쳤는데, 다만 개개인으로는 세계 최상위권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지만 팀으로 보면 해외의 평범한 정규공격대 정도의 성과에 그친게 아이러니였습니다. 분명히 본섭보다 클래식이 쉬운거는 맞고 유저 개개인이 잘하는건 맞지만 40인의 '조직'을 이끄는 능력은 또 다른 얘기라는 걸 느꼈네요.
개인적으로 저도 혼자 스킬 피하고 쎄게 때리고 이런거는 잘해도 40인 공격대를 운영하는 면에서 사람들 인맥관리하고 이해득실 조정하고 신상필벌하고 비위맞춰주고 이런거는 게임 무지 못하는 50대 아저씨에 비해 한참 부족함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4. 과거와 현재의 차이
클래식과 오리지날 레이드의 가장 큰 차이라면 전사의 재발견, 그리고 월드 버프일 겁니다.
전사는 분노라는 자원을 소모해서 딜을 넣고, 분노는 내가 상대를 강하게 때리거나 상대가 나를 강하게 때릴 수록 많이 오르는데,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받을 수 있는 버프는 다 받아온 다음에, 한방맞고 죽지만 않을 정도로 딜템만 올려서 끝없이 수급되는 분노로 데미지를 넣으면 예전에 비해 5~7배는 강력한 데미지를 넣을 수 있게 되면서, 평범한 유저들도 누구나 최고 난이도의 레이드를 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게 갈수록 상승효과가 일어나다보니 마지막에는 오리지날 클래식에서 DPS 10000을 넘겨버리는 사태까지 벌여졌습니다.
(출제자 생각에는 400 정도면 깰 수 있게 만듬)
다만 클래식의 이런 숫자 뻥튀기는 꼭 좋은 쪽으로만 발전한 거는 아니라서, 데미지 뿐만 아니라 아이템 가격도 리치왕의 분노 수준까지 뛰어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5. 불타는 성전을 앞두고
지금까지 하드 유저들 얘기를 신나게 했지만서도.. 사실 와우의 본질이라면 이런 장면 아니겠습니까?
와우를 좋아하셨던 분들이 내일부터 다시 지옥불반도에서 만나거나 혹은 피치못할 사정이 있다면 대리만족이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처음의 감성으로 마지막 레이드까지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라떼 만화를 끝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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