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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5 13:05
저는 이 게임을 잘못샀어요 전혀취향이아니에요.
이게임은 어둡고 칙칙한 뒷골목분위기에 현학적인 이야기, 글읽는거 좋아하시면 추천드리지만... 자유로운거 좋아하시고 서양식 문체 싫어하시면 비추천합니다. 이 리뷰글처럼 자유로운척 하지만 사실 굉장히 선형적이고 답정너 스토리임. 개인적으론 내면의 인격들이 내보내는 문장들이 재미없고 현학적인데다 괴로웠고 마주치는 인물들모두 (무식한 인종차별주의자들조차)현학적인 소리들을 몇십줄씩 해대니까 다 죽여버리고싶었습니다. 여기에 뭔가 힌트가있는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그냥 분위기를 즐기는 게임이라서요. 저는 이걸 대충대충 넘겨야한다는걸 게임시작하고 꽤 뒤에알았어요. 아휴... 이런게 취향이 아님에도 환불을 못한다면 그냥 속편하게 육체찍고 무식하게 다 밀어버리는진행하면 덜 스트레스받습니다. 괜히 뭐 해본다고 지능이랑 감정몰빵하면 스크립트때문에 짜증남
22/01/05 13:09
느끼신 대로 백과사전 스러운 온갖 복붙 텍스트가 무한히 쏟아지는 게임이죠. 저도 재미가 엄청 없었고 숙제하듯이 읽었어요. 텍스트를 재미있게 전달하려는 노력도 딱히 없이 메모장 복붙으로 일관하고요. 설정충이 설정을 나쁘게 전달하는 전형적인 모양새죠. 제가 비판한 측면 이전에 텍스트 읽는게 곤혹스러워서 포기하는 사람이 무척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22/01/05 13:11
게임이 꼭 게임다워야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게임이기 때문에 게임과 라이트노벨 등 다른 매체의 특성을 동시에 가질수 있을것 같기도 하고요.. 위대한 명작끼리의 우열을 가릴 때 게임다움이라는 가치가 다른 장르에서 볼수 없는 독보적이라는 점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받을수 있을 지언정, 일반 작품들은 플레이어에게 어떠한 경험을 선사해주는지가 중요하지 게임다움이 부족한것은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2/01/05 13:20
그래서 저는 게임으로서는 좋지 않지만 인터랙티브 무비로서는 괜찮다고 적었죠. 두루뭉술하게 '즐거우면 가치가 있는 거야' 같은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치면 D-War나 스필버그 영화나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왜 차이가 일어나는 지, 어떤 요소가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지는 명확히 해야죠.
22/01/05 13:22
다만 누군가는, 특히 게임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에게는 게임다움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보고 성찰하는것이 꼭 필요하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일반 플레이어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문제일 겁니다. 분명한 가치가 있는 관점이지만 청자에 따라서는 자칫 자신의 즐거운 경험에 대한 부정, 혹은 뜬구름 잡는 소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뤄야할 것 같습니다
22/01/05 13:35
음...그런데 이런류의 게임이 선형적이고 정해진 결말로 귀착되는건, 현재의 게임이 움직이는 구조상 어쩔수 없는 문제가 아닐까요?
쓰르라미 울적에 같은 게임만 봐도 결국은 무언가 선택을 함으로서 내가 마치 서사에 참여하게 만드는 유사감각만 만들어줄뿐인데...어? 이거야 뭐 2000년대 평론들이 이미 다 지적한 내용이죠. 남은건 이걸 게임이라고 인정하느냐 아니냐 정도의 공허한 이야기인거 같았는데.. 저는 올해 곧 나올 일본어 스위치판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플레이는 아직 못해보고 리뷰영상만 좀 봤었던 입장이긴한데, 별 큰 기대는 안하기 때문에 그래도 사서 해볼것 같긴합니다.
22/01/05 13:43
게임이 발전을 못하고 과거의 게임들이 보여준 성취보다 퇴보하기만 하면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젤다 야숨이 극찬받고 사이버펑크 2077이 비판받은 건 소프트웨어의 품질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게임의 방향성과 혁신에서 사이버펑크가 게을렀던 부분도 크다고 보거든요.
삼국지 첫구절이 분구필합 합구필분이듯, 현재의 GOTY식 흐름이 20년쯤 이어져 왔으니, 이런 비판적 여론이 커지다 보면 뭔가 개성적인 게임도 하나둘씩 튀어나오지 않겠어요. 또 선형성이라고 해서 그 수준이 다 같은 것은 아니거든요. 워킹데드와 라리안 스튜디오 RPG간 선형성의 정도는 매우 다르죠. 비선형이 무안단물은 아니고, 필요한 장르에서 적절하게 쓰여야 한다고 봅니다. 또 시장 수요와 개발력에 따라 구현할 수 있는 정도에도 차이가 있겠죠. 그러나 이 게임은 비선형이 필요한 장르에서, 의도적으로 비선형을 깔아뭉갰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다 못해 JRPG식으로 A, B, C 조건을 채우면 멀티엔딩이 다르게 나온다는 식의 천편일률적 선택조차도 안하더라고요.
22/01/05 13:52
이 게임이 어떻게 비선형을 깔아뭉갠건지는 제가 아직 미플레이라 할 말이 없긴합니다만,
저는 야숨도 재밌고 잘만든 게임이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게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현 게임 구조상 비선형이라는 말은 20년의 흐름과 관계없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결국은 그걸 구현한다는거 자체가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 이 글로 인해 이 게임이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설득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플레스트린님이 무슨 생각에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는 대략 이해했습니다만... 아무튼 이렇게까지 말이 나오니 빨리 사서 플레이 해보고싶네요.
22/01/05 14:01
제가 정의하는 비선형은 플레이어가 하고 싶은 행동을 모조리 하게 해주는 무제한의 자유가 아니라, 제한된 룰 아래서 얼마나 플레이어가 자신의 생각을 구현할 수 있느냐, 그 선택이 게임 진행에 의미와 재미를 가져다 주느냐로 따지고 있습니다. 바둑이 19x19 안에서 제한된 선택을 하게 된다고 해서 선형적인 게임이라 하지는 않죠. 스타크래프트도 유닛 개수가 정해져 있다고 한들 유저 생각을 구현할 자유가 없는 게임이 아니고요. 문명이나 마인크래프트, 심즈도 그렇지요.
님은 폴아웃 뉴 베가스라거나 하는 게임이 엔딩의 가짓수가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 결국 선형성의 일부 아니겠냐고 하시겠지만, 그 엔딩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유저의 생각이 얼마나 구현될 수 있느냐, 스스로의 판단으로 게임의 최종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선형성의 정도를 측정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폴아웃 1, 2나 뉴 베가스보다 폴아웃 3, 4가 선형성이 강하고, 엘더스크롤 3 모로윈드보다 5편 스카이림의 선형성이 강합니다.
22/01/05 14:19
바둑과 스타를 예로 드셨는데..그건 지금 얘기하는 게임이랑은 지점이 다른 부분이라고 생각되네요..
아무튼 "스스로의 판단" 이라는 감각 자체를 현재는 게임이 교묘하게 만들어줄뿐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님 의견이랑 계속 평행선 그을거 같으니 그만 댓글달겠습니다.
22/01/05 13:53
처음에 어쩌다 시작한 건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발더스 게이트 같은 식? 근데 전투 같은 건 없는 거 알고 했고 추리류니까 선택지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뭐 그런 건 줄 알고 시작 했는 데 전혀 관계 없는 거였죠. 인격들 말장난은 보다 보면 재밌는 거 같기도 하고, 배경 설정도 방대했지만 결정적으로 그 모든 게 게임 전개와 게임 결말에는 아 무 런 관계가 없었어요. 총격전 어떻게 잘 해결되나 싶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데 아무 의미 없고 항구에서의 사건, 뭐 기업 이사라던가 그 여자와의 대화 그 모든 게 사건 해결과는 정말 아무런 관계가 없었죠. 놀라울 정도로 완전히요.
물론.. 놀라울 정도로 완전히 관계가 없으니까 작가가 이걸로 뭘 의도 했다는 건 알겠습니다. 근데 그렇다면 이걸 선택지가 의미 있는 종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지.. 게임 하면서 주인공이 활동한 게 전부 싸그리다 아무 쓰잘데기 없는 삽질인데 이게 뭔 의미 입니까..? 이럴려면 게임으로 안 만들었어야..
22/01/05 13:55
그래서 이 게임은 작중의 추리물로서의 범인 추적이 아니라, 주인공의 심리적 성장과 각성에 중점을 두고 플레이하는 쪽이 더 온전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22/01/05 14:00
[전 제가 생각하는 주인공을 열심히 연기하고 선택했어요. 근데 왜 제 선택을 다 무시한 채로 캐릭터를 빼앗아가는 것일까요.]
[크립티드가 등장하는 게임의 클라이맥스에서 저 대신 작가가 감동하고 있으니 좀 웃기는 부분이었습니다. 딴건 선형적 일방통행이라고 토를 달지 않겠지만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 들었죠. 그런식으로 지적 놀음을 할거면 이 게임의 극단적 선형성과 일방통행적 전개를 가지고 이건 규격화된 수직적 모더니즘이다, 폭력적으로 작가의 정답을 주입한다고 주장해도 되는거겠지요? 허망한 비현실적 공상과 이상을 공산당식 전체주의와 세뇌로 강요하며 개인의 자유를 말살한다고 줘패고 싶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게 요즘 유행하는 사상의 문제 그 자체이고 본질 그 자체죠. 이해하지 못하겠다구요? 공부하세요! 뭐 '그마저도 의도된 것이다'일지는 몰라도요. 리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22/01/05 14:03
이런 부류가 교조적인건 참 과학 법칙인 거 같기도 해요. PC와 포스트모던이 꼭 같은 부류는 아니겠지만, 라스트 오브 어스 2 생각도 나네요.
22/01/05 14:05
게임을 야심차게 사긴 했는데 게임의 맨 처음 도입부부터 대화할때마다 퍼센트로 야바위질을 엄청 하더군요.
(100%성공하는대화선택지) (실패할수이낮은대화선택지) (실패할확률이높은대화선택지) 이런식으로 고르게끔하던데 막상 이러면 제가 진짜로 원하는 내용을 볼 수도 없는거잖아요. 나는 좀 과감하게 대화를 하고싶은데, 그럴려면 실패할 확률이 높고, 그게 실패해버리면 그지같은 상호작용이 뜨더라고요. 나는 성공한 과감한 대화를 보고싶은건데... 막상 그렇게 확률을 뚫어도 다른 상황이 발생하는것도 아니고 대사지문 두세개 바뀔뿐. 찜찜함만 남겨서 짜증나더라고요. 물론 복도에서 담배피던 댄서랑 야스한번해보려고 세이브로드질하다가 확률 뚫었는데 똑같은 결과가 나와서 화가난건 아니에요. 그냥 꽁꽁묶어놓고 자유로운척하는 대화선택지가 좀 염증이났을뿐
22/01/05 14:10
만약 서사적 RPG의 방법론을 따르면, 님이 과감하게 도전해서 실패를 하면 실패를 한 대로 재미있는 결과가 펼쳐졌을 것입니다. 그런 방법론도 분명히 있어요.
그러나 이 게임의 작가는, 작중에 TRPG 개발에 대한 퀘스트를 끼워놓을 정도로 RPG 지식에 정통함에도, 그런 방법론을 의도적으로 택하지 않았다고 봐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했을 것이고, 또한 다양한 선택을 존중하는 게임은 만들기 힘드니까요. 말씀하신대로 이 게임에선 실패를 하건 성공을 하건 별 의미가 없죠. 게임의 그릇에 맞게 세이브로드해서 뚫어보고, 아 뭐야 별거없네 하고 넘어가는 게 가장 괜찮은 접근법 같습니다.
22/01/05 14:10
정말 좋아하는 게임이고 3회차나 돌린 입장이지만 호불호 엄청 갈리는 게임이죠 크크.. 허무한 엔딩, 나사빠진 추리물, 과도한 선형성 등등.. 스킬체크나 행동 여부에 따라 이야기와 인물관계가 조금씩 변주되는 과정이 인상깊었지만 후반부 갈수록, 특히 섬으로 떠나는 시퀀스부터는 개발비가 부족해서 스크립트로 떼운건가 싶기도 하구요. 선조격인 켄터키 루트 제로나 새너태리엄은 대놓고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를 표방했고, 비슷한 시기의 패솔로직2는 서바이벌 요소의 도입과 (비교적) 명확한 c&c를 선보이며 게임적인 측면을 강조하니 디스코엘리시움의 애매한 정체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느낌..
반대로 누군가에겐 한 남자의 성장물로, 누군가에겐 공산주의를 향한 애증 섞인 답변으로, 누군가에겐 20세기 역사에 대한 코멘트로, 심지어 어떤 이들에겐 환상문학으로 읽힐 수 있는 특성이 팬덤을 끌어모으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하얀쥐 작가의 [복잡한 텍스트의 해독은 이 게임의 본위가 아니다. 오히려 관심없는 내용을 제대로 거를 때 보상을 주는 시스템. (중략) 이 게임의 가치는 바로 이 성격테스트 같은 자기투영에 있는게 아닐까.]라는 코멘트가 어느 정도 공감이 가더군요. 별다른 대체재가 없다고 해야하나.. 선뜻 추천하긴 어려운 게임입니다 여담이지만 바웨식 c&c가 과대평가되었다는 지적에 크게 공감합니다. c&c 자체가 눈속임 아니냐는 지적이 있긴 해도 이 분야 쪽에 특화된 웨이스트랜드-폴아웃 계통 게임들이랑 비교하면 허술한걸 넘어 조악하게 느껴지죠.
22/01/05 14:16
언급해주신 게임들은 제가 접해보지 않았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시면 소개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겐 한 남자의 성장물로, 누군가에겐 공산주의를 향한 애증 섞인 답변으로, 누군가에겐 20세기 역사에 대한 코멘트로, 심지어 어떤 이들에겐 환상문학으로 읽힐 수 있는 특성이 팬덤을 끌어모으는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저도 이게 이 게임의 핵심이라고 보는데요. 저는 기승전결이 나사가 빠진 점만 빼면 환상문학이자 성장물로서 감동을 주는, 정서적 울림이 매우 컸다고 봐요. 게임 내에서 미칠듯이 복붙되는 정치적 서브텍스트보다 주인공의 성장담이 가장 몰입되는 부분이었죠. 단 공산주의를 향한 애증 섞인 답변, 20세기 역사에 대한 코멘트 부분은 역시 저는 바보같이 묘사되었다, 설정 텍스트 복붙 외에는 유저 스스로에게 와닿게 하는 연출이 완전 부재하다고 보고 있어요. 판자촌 철거에 대한 퀘스트는 너무나 얄팍하고 깊이가 부족했고요. 본작에서 최종장의 노병 등을 통해 묘사하는 공산주의에 대한 회한을 느끼려면, 유저가 작가와 같이 공산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색을 한 상태여야 하고, 그래서 저는 현실 역사에 기대고 스스로의 이야기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죠.
22/01/05 14:19
[복잡한 텍스트의 해독은 이 게임의 본위가 아니다. 오히려 관심없는 내용을 제대로 거를 때 보상을 주는 시스템. (중략) 이 게임의 가치는 바로 이 성격테스트 같은 자기투영에 있는게 아닐까.]
요 평론은 흥미가 가는데, 어떤 연유로 저 글의 저자가 저렇게 주장했는지도 궁금합니다. 솔직히 제 생각에는 빠심에 의한 고평가가 아닌가 싶거든요. 제가 보기엔 성격테스트 같은 자기투영이 전혀 동작하지 않는데, 게임의 정서에 매혹되면 다 이쁘게 보이잖아요. 팬심이 생긴다는 게 나쁘단 건 절대 아니고 작품의 힘이 있다는 거지만, 그래도 평가는 냉정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22/01/05 14:21
22/01/05 14:32
플레이어 스스로가 원하는 자기만의 주제에 꽂힐 수 있다는 점에서 저렇게 주장했군요.
저 작가분과 저는 게임의 한계와 근본에 대해 비슷하게 성찰한 것 같은데 그래도 평가는 갈리네요. 저는 성실하게 게임 대부분의 텍스트를 읽고, 추리극으로서도, 사이코 드라마로서도, 정치극으로서도 많은 요소를 캐치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각 요소들이 독립적으로 훌륭하게 기능했다면 자기가 관심가는 이야기에 집중해서 가치를 발견한다는 주장이 말이 될 겁니다. 이런건 역시 하이퍼텍스트나 보르헤스라거나 하는 창작법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적으로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부분이겠죠. 자기만의 이야기와 해석을 만들어 보라는거요. 그러나 본작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너무나도 자명해요. 크립티드와의 조우를 통한 환상문학적 몽환적 각성이라는 핵심을 향해, 그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 위해 게임의 대부분 요소가 배치되어 있다고 보거든요. 카마이타치의 밤 같은 선택지 비주얼 노벨처럼 유저가 관심사를 보인 요소의 전개가 강화되는 것도 아니고요. '돌로레스를 잊으라' 는 최종장 메시지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게임에서 텍스트 복붙으로 지루하게 묘사하는 종교체계와 역사, 여신 돌로레스와 연인 노라가 상징하는 의미에 대한 사전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장면이 성립해요. 이 환상문학적 장면은 강제이고 선택을 통해 보거나 보지 않거나를 결정할 수도 없죠. 아무리 봐도 크립티드나 노병이 핵심입니다. 리뷰 만화에서 작가는 연애담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 연애담은 제가 보기엔 공허하고 사이코 드라마에 비해 그 깊이가 많이 부족합니다. 오히려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상징이자 부속품으로 읽혔어요. 추리물이라는 낚시용 떡밥서사를 버림패로 쓰는 건 이해해요. 그러나 이 리뷰에 등장하는 게이머들처럼, 누구는 연애담으로서 즐거웠고 누구는 정치 드라마로서, 누구는 환상문학으로서 즐거웠다고 주장하려면 각 요소들이 8점씩은 해야 하지 않나 싶네요. 제작자 스스로가 그런 접근을 의도한 부분이 있다고 쳐도, 각 요소의 질적 차이가 많이 심해서 성립하기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22/01/05 14:45
저도 그 연애담과 실연에 나름 이입하던 입장이긴 한데 흐흐.. 각 요소들이 균등하지 못하고 일부는 깊이가 얕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섬의 환상 시퀀스에서 나름 쌓아올린 감정선을 이후 경찰놀이 엔딩에서 주저리주저리 풀어헤쳐서 뒷마무리도 별로였구요. 제작진의 욕심이 과했던건지 아니면 내면세계로의 진입을 그럴듯하게 꾸며주는 양념 수준으로 생각한건지 조금 의문이긴 하네요.
22/01/05 14:48
저는 이 글에서 본 게임의 연애담이 K-뮤직비디오 같다고 비판했지만, 사람마다 취향과 생각은 다르니 충분히 거기서 감동할 수 있죠. 신파가 많은 사람들을 울리는 건 뻔해도 힘이 있기 때문이듯이요.
22/01/05 16:27
저는 이 게임이 자유도가 굉장히 높은 줄(그래서 평가가 높은 줄) 알았는데 반대로 지극히 선형적이라니, 개인적으로는 작년 포함해서 최고의 반전이네요.
모험러형 유튜브 적당히 봐야겠다... 크크크
22/01/05 16:42
사실 2000년대 이후로 비선형의 전통을 지키는 게임은 씨가 말랐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비선형을 제대로 구현한 웨이스트랜드, 울티마의 전통을 계승하는 게임에 대해 이해가 높지 않은 부분이 크죠. 이건 현대의 게이머들이 안목이나 지식이 높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게임이 잘 안 나오고 접하기도 힘든데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입니다.
디트로이트 - 비컴 휴먼 같은 게임 하면서, 선택지 많으니까 자유도 짱많네! 라고 생각하는 게 대표적이겠네요. 텔테일의 워킹 데드를 하면서 그렇게 느끼는 콘솔 게이머도 있었고요. 발더스 게이트 1, 2만 해도 JRPG나 콘솔 게임의 세계관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던 게이머들이, 와 마을 주민 살해가 된다고! 퀘스트를 자유롭게 받을 수 있네! 하면서 놀라는 것도 그럴 만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는 이 게임을 하면서 자유도가 뛰어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22/01/05 17:05
좋은 글 감사합니다. 되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저는 이 게임을 꽤나 호의적으로 봤기 때문에 이렇게 다른 관점에서 다뤄주시니 흥미롭습니다.
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저도 이 게임에 대해서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조이스, 하디, 킴 전부 등장인물들이 미친 성우 열연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반응속도: [어려움:성공]) 중간에 중간에 어떤 행동을 한다... 라고 표현된 부분은 그냥 대사로 퉁치는 면모를 보여주죠 3D 모델은 멀뚱거리고요. 예를 들어, 묘사만 보면 하디는 중간에 맥주를 들이마시는 걸로 주인공 말의 맥을 끊거나, 취한 척 하면서 쎈 척 위세를 부리는데 막상 더빙은 그런 중간의 묘사를 살리지 않고 그냥 잠시 반점처럼 쉬었다가 읽어버리니까요. 오른쪽에 몰려있는 글자들만 정성들여 만들어놓았는데, 그러면 중반부터는 게이머라면 이 게임이 비주얼 노벨이지, 딱히 3D RPG는 아니구나 느끼게 됩니다 크크크크. 그래서 저는 마지막의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중에서 어떤 것만 믿어야하는지, 눈 뒤에 갇혀사는 현대인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대벌레 이야기라던가, 장 비크마르가 마지막에 갑자기 등장해서 피곤한 목소리로 "어디 있었냐고? 나보고 X까고 꺼지라면서 해리? 기억도 못해?", "네 전 여친? 별거 없었어. 니가 술 쳐먹어서 도망갔잖아. 아니 난 관심도 없어, 니가 맨날 징징거려서 아는거라고." 속사포를 쏟아내는 것에서도 꽤나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아 거슬리는게 있다면, 대벌레는 사진이라도 찍는데, 비크마르는 신경질적이고 내려깐 목소리를 가졌으면서 이걸 마지막에 '디브리핑'이라고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갈구는 걸 듣고 있으니 좀 피곤하긴 하더라고요. 대벌레 사진처럼 뭐 감동적인 멘트도 없을거면서... (근데 말투가 되게 웃기긴합니다. 크크크 간만에 더빙으로 이렇게 찰지게 욕하는 캐릭 오랜만에 들어본듯요) 비크마르는 쿠노와 함께, 파이널 컷 패치에서 재녹음된 캐릭터이기도 하니 아무래도 이게 개발자의 의도인가봅니다. 마지막에 '우리 예산 떨어졌어요'하면서 그냥 비크마르 원맨쇼로 끝내긴 했지만, 저는 되게 마음에 들었거든요. 대벌레와 아내 (아내 아니었음요 크크크)로 대표되는 주인공의 양대 사이코드라마에 '꿈께, 너는 그냥 내면이 너무 섬세해서 이상한 소리나 하는 인간이거든?'이라고 접근하는거요. 오히려 그래서 다회차로 진행할 때, 두뇌파가 아닌 주인공으로 진행해도 '아 내면이 조용하군, 역시 체력 (공식 번역과 달리, 저는 Endurance을 내구성, 끈기로 옮기는건 조금 어감이 바뀐다 생각합니다 흐흐)이 중심이 되는 경찰은 참 좋아... 라면서 몰입할 수 있고요. 아 물론 그래도 밤마다 자꾸 죄책감이 몰려드는건 이상하지만, 그냥 알콜성 증상이라고요. 비크마르나 킴이나 둘다 주인공보고 미쳤다고 하잖아요. '알 구울'을 너무 많이 마셔서라니까요. '알 구울' 이야기 한 김에, 저는 이 이야기의 설정을 되게 좋아했습니다. '지적허영'을 긁어주거든요. 아무래도 이건 별도의 글로 다시 찾아와야겠습니다만, 저는 이런거에 사족을 못 씁니다. 현실의 재배치, 진짜 말 그대로 '생각 캐비넷' 아니겠습니까? 저도 이런 이야기 하나 써보는게 꿈이거든요. 라바숄은 러시아 (= 그라드) 혁명 이후 공산혁명이 일어난 뒤늦은 파리이며, 베를린이나 신탁통치 논란기의 한반도처럼 국제사회가 ("이게 왜 국제지역인줄 알아? 한 국가가 책임지기 싫어하거든") 유일한 공권력이며, 그놈의 '서구 도덕주의'를 이식하려는 기묘한 전근대/근대/현대의 동시성입니다. 되게 기발합니다. 주인공이 기억을 잃었다고 하니까, 막 설정을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쏟아내는게 아니라, 조이스도 그렇고, 킴도 그렇고, 르네 노인도 그렇고 '혁명이 있었고, 망해서 지금 이 시국이 이렇다니까?'라고 말해주지요. 왜냐면 다들 삶에게 중요한 요소잖아요. 정치병자가 아니어도, 레바숄의 사람들에게는 역사의식이 알아서 생깁니다. '내가 왜 어쩌다가 이런 고통을 받고있지?' 하면서 알아서 변증법적인 인간이 되어가는거에요. 마치 징병제에 고통받는 한국젊은이가 '야, 태평양 전쟁 들어봤어? 북한이 어떻게 만들어진줄 알아? 내가 왜 돈이 없고 화나 있는줄 알아!?'라고 하는 것처럼요. 외국인이 보면 따라가기 힘든 '의식의 흐름'이죠. 저는 그래서 이 게임을 PC주의나, 패션좌파의 게임이 아니라, 그냥 '좌익적'인 사고방식 그 자체의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극우'의 허수아비 치기로 등장하는 '메저헤드'조차도, 그냥 타인종을 두들겨 패는 스킨헤드로 아니라, 민족볼셰비즘 (Nazbol)적인 사고를 보여주거든요. 히틀러의 레벤스라움 이론이 연상되는, '순수혈통'이 농경지와 기타 역사적 거점을 선점하고 경제기반과 이에 따른 문화적인 헤게모니를 지배하다가, 지역적인 역학과 통혼으로 인해서 저열화되고 지역을 상실하고 따라서 세상의 주권도 잃게 되었다는 논리의 흐름이요. 비록 말씀하셨듯이 '마조프주의 사회경제학을 내면해봤자 그냥 대화중에 개드립만 추가가 된다'라는 비판에는 저도 동의합니다만, 레바숄 아니, '디스코 엘리시움' 자체를 만든 '세상의 논리'에는 마르크스적인 사회경제학이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필리페 3세를 욕하면서도 당시 라바숄의 '주권'을 유지하던 것은 '코카인의 왕국'이라고 부르고, 연합국이 무력으로 상륙작전을 한 것에는 조이스로 대표되는 토착기업의 '초자유주의 (=신자유주의)'가 있었지요. 그런데 결국 이런 시야는, 나름 좌익적인 저도 게임을 하면서 알아서 느끼게 되었듯이, '허무함'에 봉착하게됩니다. 이상하죠? 고대노예, 중세농노, 근대자본주의, 분명 변증법에 따라서 역사와 세계의 주인이 되어야할 좌파들은 '혁명 몰락 이후 수십년'이라는 현실에 갇혀버렸습니다. 저도 사실 현실 속에서는 다른 선택지를 고르고 있고, 이따금 본심을 내뱉어도 '철지나간 개소리'를 하게 되거든요. 아니 어떻게 혁명이 다시 돌아와요? 노병에게 '사실 저는 마조프주의자입니다. 제가 혁명을 다시 잇겠습니다'라고 밝혀도 노병은 그냥 '혁명? 혁명은 끝났어. 니가 느그 아빠 고환에서 꼬물락거리기 전에 끝났어, 핏덩어리야'라고 내뱉죠. 아니 근데 미래에 혁명이 없다면 그냥 우린 모두 패션 좌파, 그냥 지나간 역사의 디테일에 하하거리는 오타쿠에 불과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분위기에, 서사에 압도당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평상시에 작가와 위기의식이 비슷"한 좌파니까요. 어쩌면 이런 '압도'가 개발자의 동유럽적인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막 중간에, 아내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그냥 변연계가 수면의 경계에서 의식이 약해지면 튀어나와서 하고 싶은 말은 '슬퍼하라'가 아니라 "이 세상은 똥이야, 디스코 볼 밑에서 원숭이들이 춤을 춘다, 히히히! 디스코 발사!"라고요. 음악, 일러스트, 등장인물들, 주제의식... 저는 그래서 '디스코 엘리시움' 1회차를 정말 높게 평가합니다. 다시 게임적인 요소를 분해하고 분석한다면 확실히 2회차는 별로 볼게 없긴합니다. 그래도 2만원이 안되는 할인가에 40시간 정도, 정말 '평상시 제 삶의 고민들에게 다가와서 속삭여준 게임'을 즐겼다니, 저는 이 게임을 욕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아쉽기는 했지만, 저에게는 인생게임 중 하나입니다.
22/01/05 17:25
도라가 아내가 아니었군요! 제 기억이 이상했나봐요.
말씀해주신 맥락이 모두 이 게임의 팬들을 매료시키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작가와 세계관이나 문제의식이 맞는 사람이라면 대단히 흥미있게 이야기를 따라갔을 거라고 추론했었죠. 그런데 세상에 그런 작품 많잖아요. 설정은 진짜 요란하고 정교한데 정작 그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보라 하면 설정에 치여가지고 국어책 읊기 바쁜 작품들이요. 네이버 웹툰에서 걸핏하면 조롱받는 '신의 탑' 이나, '디스코 엘리시움' 이나 이야기꾼으로서의 스킬은 비슷하게 구리지 않나 하는 감상이 있었어요. 말씀해주신 매력적인 세계관은 설정집으로 출판하면, 오른쪽 몰아넣어진 텍스트 보는 것보다 오히려 더 편리하고 재밌게 읽을 수 있지 않나? 싶었고요. 이야기로 너무 못 살렸다고 보는 거죠. (어쌔신 크리드에서 박물관식 시대 체험 컨텐츠처럼, 거리 걸어다니며 분위기 감상하는 용도로는 쓸모가 있긴 하네요.) 그 세계관의 사람이 아니면 따라가기 힘든 의식의 흐름 있을 수 있어요. 당장 봉준호 살인의 추억 같은 것만 봐도 독재와 계엄령을 겪은 한국의 지식인과 90년대 이후 세대나 외국인이 받아들이는 체험의 농밀함이 매우 다르죠. 후자의 감상자들은 수사물로 살인의 추억을 이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그런 간극을 보편성으로 풀어내는 게 이야기꾼의 역량이라고 보거든요. 이 게임의 작가는 역량 부족 아니었나 싶어요. 또한 말씀해주신 대로, 이 게임은 '히히히 오줌발사!' 하는 식으로 니힐하고 쿨한 조롱으로 갑자기 돌변하곤 하는데요. 전 그런 요소가 오히려 비겁하고 도피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지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과 다르게, 그 시대의 피냄새를 맡지 못한 인간이 사전적 지식으로 코스프레를 하는 것 같았고요. 다시 말해 '아는 척' 으로 느껴졌다는 거죠. 왜 그러는 걸까요? 왜 대벌레나 도라와의 이야기에 대해서 진지한 척 서술하다가, 갑자기 네가 정신병자라 그래. 전혀 의미없어라고 도망을 가 버리는 것일까요. 전 너무 비겁하게 느껴져요. 이거 쿨찐 아니예요? 몰락한 좌파로서 현 시대를 보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가? 그럼 그 허무주의에 빠지게 된 과정을 이해시키는 게 이야기꾼이 할 일이잖아요. 그런데 작중에는 그런 장치가 하나도 없죠. 최소한 주인공은 완전히 외부인이예요. 좌파의 좌절과 형사 주인공은 완벽하게 따로 놀아요. 형사 주인공은 울 자격 없었어요. 그 순간 무슨 작가의 악령 같은게 강제로 빙의되었으니 울 수 있었던 거고요. 그럼에도 그 순간에 진심은 담겨 있었다고 보는데요. 기승전결 다잘라먹고 갑자기 서순 다빼먹고 감동적인 장면발사! 해놓고, 왜 이런거에 감동받아? 허무할 뿐이네 히히 오줌발사! 하고 도망가는 게 너무 비겁하고 바보같아요. 최소한 작가가 그렇게 조롱할 정도로 무의미한 장면이 아니었고, 거기에 진실한 감동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좋은 부분만 파편으로 던져대는 대신,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마구 꿈 장면을 던지기보단 성실하게 기승전결을 구축해 나갔다면 더 좋아졌을 거고요. 들려주신 말씀에 대해서 제 생각을 털어놓다보니, 이 작품이 뜨겁지 못하고 겉에서 맴도는 이유도 이해가 되기는 하네요. [ 노병에게 '사실 저는 마조프주의자입니다. 제가 혁명을 다시 잇겠습니다'라고 밝혀도 노병은 그냥 '혁명? 혁명은 끝났어. 니가 느그 아빠 고환에서 꼬물락거리기 전에 끝났어, 핏덩어리야'라고 내뱉죠. 아니 근데 미래에 혁명이 없다면 그냥 우린 모두 패션 좌파, 그냥 지나간 역사의 디테일에 하하거리는 오타쿠에 불과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분위기에, 서사에 압도당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평상시에 작가와 위기의식이 비슷"한 좌파니까요. 어쩌면 이런 '압도'가 개발자의 동유럽적인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 부분에서 말씀하셨듯 본작의 작가는 패션스러운 부분이 분명 있는데, 역사의 디테일에 덕질하는 오타쿠로서 접근한 부분도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밀덕후가 나치독일 탱크 생산량 보고 하악거리는 거랑 다른 게 뭐냐 싶었고요. 그러나 그럼에도 일말의 분노 정도는 진심이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걸 이해시키려고 노력했어야 했다고 보고요. 알아들으려면 알아들어라 하고 딴청 부리는 대신요. 그래서야 오타쿠 서브컬쳐가 설정이 치밀하고 방대하다고 탄복하는 꼴밖에 더 되겠습니까. 무성의하게 만든 레고 같아요. 부분부분은 기가 막히게 정교하게 뛰어난데 어떤 부분은 그냥 유아용 대형블럭 하나 끼워놓은 듯 하고요. 토가시 요시히로같이 불성실한 크리에이터가 제멋대로 만든 작품같기도 하네요. 아, 제가 이 덧글로 달아놓은 비판점은 모두 RPG나 게임으로서가 아니라 이야기로서 무책임한 부분을 토로한 것입니다.
22/01/05 18:02
처음에 수사노트를 쓰레기통에서 꺼낼 때만 해도 도라가 비극적으로 사별한 아내 같은 분위기는 다 풍겨놓으면서 내내 빌드업하다가 (고맙다 '소름' 녀석) 마지막에 비크마르가 "해리, 너 결혼 안했어! 그냥 잠깐 사귄 여친이었어! 이 알콜 치매 환자야!"라고 갈구면서 진실이 밝혀지죠. 아니 도대체 그러면 전화기랑 비디오 가게는 뭐랍니까 크크크크.
음, 확실히 말씀해주신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 작품이 되게 특정한 사람에게나 뜨거운 게임이 될 수 있었다는걸 알게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중후반에 해리가 자기 나이를 기억하면서, 혁명이 망하기 1년 전에 죽은 사람들로 가득찬 병원에서 태어났다는 나레이션에서 전율을 느꼈거든요. 저도 태어나니까 소련이 망하고, 너무 어릴때 광우병 사태가 있었으며, 남들이 대통령을 자신의 힘으로 바꿀때 군대에서 '휴가 중에 특히, 그리고 근무 중에도 항상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습니다'라고 선서하고 다니던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주인공이 기억을 잃고, 과거를 찾아서 어떤 이념들이 있었는지,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검토하고, 의견을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저랑 되게 겹쳐보였어요. 하지만 글을 써주시면서 멋지게 말씀해주신 이 게임 특유의 '포스트모너디즘'적인 서사는, 그걸 일부러 비틀었지요. 스카이림을 한다면 예를 들어서, 막 스톰클록 편에 설거냐, 제국편에 설거냐 퀘스트를 막 진행하잖아요. 자유성이라기보다는 그냥 두개의 별개의 서사지만요. 그래서 암살길드가 맘에 안들면 공권력을 소환하거나, 고위 감찰관을 암살해서 반대편 퀘스트라인을 진행하거나 그러는데, 이 게임은 되게 짖궂어요. 말씀한것처럼, '내가 좌파요'하면서 에브라트나 하디에게 모든걸 내어줄 순 없지요. 기업편을 내내든다고 해도, '좋은 방법입니다'하고는 조이스는 떠나버리고요. 에브라트는 어떤 의도로 접근해도 결국 판자촌 용역깡패짓을, 본래 사건과는 상관도 없는데 주인공에게 짬처리시키죠. 그래서 대벌레의 이야기를 알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뭔가 사상을 가지고서, 한쪽 편을 들면 뭔가 해결이 될 것 같잖아요? 특히 게임이라면 다 그렇잖아요. 현실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레바숄'은 정치사상의 무덤이에요. 이데올로기들에게 날리는 쌍뻐큐에요. 지금 21세기랑 똑같습니다. 왕정/국수주의도 해봤고, 왕 죽이고 혁명도 해봤고, 거대한 글로벌 자본주의 체인의 그냥 한 지부가 되보기도 했고... 이건 한반도도 마찬가지잖아요? 그래서 저는 거리에 나가서 '혁명 한번 더해봅시다. 이번에 한 오백만명 쯤 죽여봅시다. 이번엔 버전업이라 제대로 할거에요!'라고 못하겠어요. 이미 끝난 일이니까요 (조이스랑 대화하면서 같은 말을 할 수 있죠. '내가 혁명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사람을 더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조이스의 대답이 더 웃깁니다. '암요. 역사는 자물쇠 뒤에 잠겨있고, 누군가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열려고 구는 법이지요.' 자물쇠 뒤의 역사에는 디스코의 발명도 있고, 컴퓨터 게임도 있지만, 폐허 속에서 마약에 찌든 애들로 가득찬 현대, 외세의 통치를 받는 레바숄 점령지역도 있지요. 하, 좌파들이란... 그런데 대벌레는 처음으로, 해리에게, 아니 학자의 부인을 포함한 레바숄의 사람들에게 최초로 '믿고 나아간다면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다'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대벌레를 보러 섬으로 떠나기 전에, 카페 앞에서는 레바숄의 주권반환을 알리는 그래피티에 주인공이 불을 붙이지요. '디스코 엘리시움'이라고 제목을 붙이면서요. 정말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항만 노조의 사민주의자 가면, 용병을 고용하는 기업체의 자본주의자 가면이 떨어지고 주도권을 위한 개난장판이, 마치 총격전처럼 이루어질 것이라는거니까요. 하지만 이 게임은 그 와중에 좌클릭을 한번 더합니다. 차라리 '힘의 대화! 역사를 이끄는 힘이지! 스스로 역사를 개척해라' 라면 우파-파쇼적으로 결론내리면 될텐데, 우리가 보는건 뜬금없는 노병이잖아요? 그것도 '정치적 자아' 그 자체요. 인물이라기 보다는, '최후의 당원', 그리고 심지어 대벌레 에너지(?)로 유지되는 괴생명체. 소설 "1984"의 '개인은 유한하지만, 당의 생명은 무한하다'도 아니고 말이죠. 그게 맨날 주인공이 입에 달고다니는 '종말'의 정체라고요. 누구보다 '혁명'을 갈구하지만, 막상 '행동하는 양심'을 보면 겁에 질려버리는 나약한 좌익샌님들. "폭력은 나쁜거야, 힝힝"이러면서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길 즐기는 괴생물체들. 이 인간들에게 대벌레의 감동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게 말씀해주신 "너무 비겁하고 바보같아요."의 정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저야 당연히 '마조프주의 경제사회학'을 내면화한 사람이니까 이렇게 이쪽 입장에서 해석해주지만, 개발자의 의도는 다른 입장에서도 볼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봅니다. '동의 안하셔도,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은 지금 이렇게 돌아가고 있습니다'라는 나름대로의 시국선언을 한 것이라고요, 좌측으로 기울여진 시야이긴 하지만 아무튼 '다같이 보고 즐기라'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노병의 후일담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뇌내보정일지도요. 경찰관들끼리 콩트로 끝나는거보면 그냥 막판에 예산이 떨어진거 같긴한데...), 레바숄, 또는 동유럽, 또는 21세기 전반에선 그런 사람은 이야기거리도 안되니까요. 정치게시판이 아니니 좀 지나치게 추려서 말하자면, 지금 한국의 특정 좌파에 대해서도 비슷한 은유를 할 수 있겠지요. 음 제 생각을 털어놓다보니, 자꾸 작가의 의도, 작가의 의도거리지만, 그냥 저는 이 작품에서 제가 보고 싶은 이야기를 보고 불탄게 아닌가 싶습니다, 크크. 저는 이 게임이 분노가 되게 많고 울적한 작품이라고 봅니다. 시작할때 보여주는 인용구가 "거울 속에는 분노가 가득차있다."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확실히, 이게 스토리텔링이 불친절하다보니까, 제가 보고싶은걸 본건지, 이야기가 원래 이런건지 저도 이젠 모르겠네요. 윗 분이 말씀해주신 '성격테스트' 결과지 같은 것일까요, 크크.
22/01/05 18:24
[말씀한것처럼, '내가 좌파요'하면서 에브라트나 하디에게 모든걸 내어줄 순 없지요. 기업편을 내내든다고 해도, '좋은 방법입니다'하고는 조이스는 떠나버리고요. 에브라트는 어떤 의도로 접근해도 결국 판자촌 용역깡패짓을, 본래 사건과는 상관도 없는데 주인공에게 짬처리시키죠.]
이 부분이 게임으로서는 자유의 말살인데, 인터랙티브 무비로서는 좌절과 허무의 학습이라고 해석해줄 수 있겠네요. [그래서 저는 거리에 나가서 '혁명 한번 더해봅시다. 이번에 한 오백만명 쯤 죽여봅시다. 이번엔 버전업이라 제대로 할거에요!'라고 못하겠어요. 이미 끝난 일이니까요 (조이스랑 대화하면서 같은 말을 할 수 있죠. '내가 혁명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사람을 더 죽였을 것이다', 그런데 조이스의 대답이 더 웃깁니다. '암요. 역사는 자물쇠 뒤에 잠겨있고, 누군가는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열려고 구는 법이지요.'] 이 게임의 기묘한 점은 미칠 듯한 기복 위에서 가끔 놀라운 대사나 정서 묘사가 펼쳐진다는 점인데, 이 부분도 그런 장면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 뒤의 디스코 엘리시움 그래피티 방화에 대한 해석도 되게 재미있었는데요. 안타까운 점은 이런 해석을 사건과 이야기로 묘사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냥 조금만 더 솔직했으면, 분노를 분노답게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거요. 철지난 포스트모더니즘 서브텍스트 장난을 하는 대신, 그냥 솔직하게 주인공이 실패한 혁명가거나 그 후손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유저와 주인공의 눈으로 역사를 목도하게 하고, 그 역사를 어떻게 변모시킬 지 비극이건 파국이건 스스로 맞이하게 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전 완곡화법과 돌려 말하기를 싫어하거든요. 주인공이 혁명이랍시고 막나가면 무슨 비극이 일어날 지 보여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작품은 모든 사건에서 뭘 하다가 말고 다 불완전연소해요. 그럼 작가와 베이스가 같은 독자들은 역사적 지식을 비춰가며 스스로의 경험과 상상을 덧댈 수 있겠지요. 그래비티 방화라거나 파시즘적 용병의 죽음이라거나, 디스코걸에게 공산주의자가 껄덕댄 사건의 본질 같은 부분 말이죠. 상징이 풍부하면 스스로의 이야기를 만들기 쉬우니까요.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 양가적 감정이 드네요. 창세기전 3에서 용병 시스템이 아무 의미가 없음에도 전쟁게임을 하는 양 코스프레 하는 격이라는 오타쿠 비유가 떠오르는데요. 근본과 뿌리가 없는데 빨아먹을 해석거리가 있으면 그것만으로 괜찮은건가 싶은 감정과, 그래도 저마다의 감상이 있으면 의미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 제가 느낀 바로는 주인공이 그래피티에 방화를 하건 뭘 하건 세계엔 별 변화도 없을 거고, 무의미한 개드립이나 치며 술이나 퍼먹을 거 같았단 말이죠. 암시나 복선은 다 맥거핀이 될 거 같고요. 왜 그런 조롱을 하고 싶었을까? 에 대한 짐작은, 작가가 실감나게 아는 게 그것 뿐,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뇌피셜이 떠오르네요. 스스로가 뭘 바꿀 수 있는 인간이 아니므로, 바꾸지 못하고 정체하는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닌 가 싶어요.
22/01/05 18:28
크크크, 그리고 마지막의 뇌피셜에 동의하기 위해 저도 이런 장광설을 했습니다.
["작가가 실감나게 아는 게 그것 뿐, 스스로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뇌피셜이 떠오르네요. 스스로가 뭘 바꿀 수 있는 인간이 아니므로, 바꾸지 못하고 정체하는 이야기가 나온 게 아닌 가 싶어요."] 제 정치적 입장에 대한 정리와 선언문을 겸하기도 하는군요. 정말 간만에 해보는 게임의 줄거리에 대한 지적인 대화였습니다. 저는 무슨 게임을 해도, 뇌내보정으로 재미있게 하려는 경향이 강한 사람이라서, 어쩌면 이런 힙스터 포스트모더니즘을 빨아준 것 같습니다. 말씀해주신 내용도 깊게 생각하면서, 나중에 한회차 한번 더 해봐야겠습니다. 게임에 깊이를 더해주는 글이랑 말씀!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22/01/05 18:43
현학적 허영과 깊이있는 고찰은 작품의 장치가 얼마나 잘 구성되어있느냐에 따라 사소한 차이로도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말씀해주신 여러 문제점들 - 선택지와 해결방법, 그리고 그것이 세계관에 미치는 영향력, 상징물과 주제의식의 괴리 등 - 덕분에 제가 받아들인 디스코 엘리시움은 전자에 가까웠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저는 복잡함 complexity 혹은 더 나아가 난잡함 disorder 도 단순함에선 추구할 수 없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게임디자인에서 단순명료함만이 정답이라 생각하는 많은 게임 평론가/개발자/수용자들에 대하여 상당히 불만이 많기도 하고, 복잡함/난잡함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에 대한 게임계 전반의 이해도가 상당히 떨어져서 '좋은 복잡함'을 가진 작품을 무시하고 '어긋난 복잡함'을 어긋난 이유로 고평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 디스코 엘리시움에 대한 (제가 납득하기 힘든) 지나친 평론가들의 고평가는 이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플레이어의 수단이 다양하고 능동적인 플레이가 보장된 액션게임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그런 복잡성을 추구하는 액션게임들은 적들이 망부석처럼 아무리 때려도 꿈쩍도 안하기 보다는, 플레이어의 장단에 맞춰서 적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거나 랙돌이 되어서 날아가버리는 편이 훨씬 게임플레이 구성에 도움이 될겁니다. 그래야 내가 가진 '수단'이 의미가 생기니까요. 이와 비슷하게, 디스코 엘리시움의 아무말 대잔치가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 대잔치에 장단을 맞춰줄 놀이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느낀 디스코엘리시움의 패턴은 붕어빵을 어느부위에서 먹는가에 따른 심리테스트 지문부터 시작해서 팥의 종류, 강력분과 약력분의 차이, 붕어의 분류학적 특징 등등의 쓸데없는 정보를 전부 다 보여준 뒤에 '타코야키 먹어야지'로 끝맺음을 하는듯한 허무함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 게임의 컨셉인 난잡함과 플롯 전반의 컨셉인 선형성이 크게 어긋나있습니다. 제가 이 게임의 내러티브에 대한 고평가를 부정하는 이유도 이 '복잡함의 미학에 대한 몰이해'가 바탕이 되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산발적인 텍스트가 산발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사고방식이지, 굉장히 대단하고 새로운 개념이 아니거든요. 산발적으로 발생한 수용자의 감정을 게임이 다시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측면에서 보면, 디스코 엘리시움은 사실 그런게 없죠. 그냥 계속해서 산발적인 담론을 보여주며 정해진 이야기로 달려갈 뿐. 이점에서 '무시되는것도 고려하여 설계한 것'이라는 해석도 이해는 가나 의도된 것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스탠리 패러블이나 언더테일같은 게임들도 그 장치들이나 은유가 상당히 독특하고 산발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들 게임의 내러티브가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플레이어의 산발적인 감정에 의한 돌발행동까지 전부 계산 아래 넣고 설계했다는 점이죠. 이 점에서 보면 니가 짖든 기든 난 내 할말이나 할란다 식인 디스코 엘리시움은 독특한 스타일이라고 평할 수는 있어도 혹평도 감내해야 하는 스타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나쁜 게임이다라고 평할 수는 없고, 취향따라 성향따라 충분히 고평가 할수 있는 요소는 풍부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가끔 평론가들이 이 게임을 패러다임 시프트급, 레전드급으로 꼽는 광경을 보면 좀 의아합니다. 새삼스럽진 않지만 게임 평론계는 선대 게임들의 업적이나 기술적 성취를 쉽게쉽게 머릿속에서 지우는 경향이 있는것 같아 좀 착잡합니다.
22/01/05 19:12
디스코 엘리시움의 게임적 측면과 내러티브적 측면을 모두 평가해 주셨네요. 저와 동일한 시각이라 크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쓸데없는 정보를 전부 다 보여준 뒤에 '타코야키 먹어야지'로 끝맺음을 하는듯한 허무함] 은 완벽 동의하는데, 전 그런 부분이 무의미한 코스프레인걸 알면서도 은근히 재미가 있었습니다. 재능있는 기획자가 조금만 더 노력했으면 인격형 스탯은 더 재미있는 시스템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선형적 선택지나 지문이 아니라 룰과 메커니즘으로 가동되었으면 얼마나 재밌었을지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내러티브에 대해서는 저도 '무시되는 것도 고려되어 설계한 것' 이라는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히려 작가가 추리물이라는 떡밥에 숨긴 연애담과 사이코드라마, 정치 드라마에 대해 강한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추리물로서의 기만은 딕 멀렌 소설을 통해 조롱과 힌트를 주려고 안달이 났죠. 크립티드 서사와 연애담 역시 숨겨놓고 능력껏 찾으라기보단 강제 이벤트로 깔아두었고요. 이 게임을 클리어한 후의 감흥은 제작자가 의도한 것, 제대로 플레이하는 방법 외의 영역으로 가기 힘들다고 봐요. 플레이어 스스로 답을 찾는 식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 전달이 나빴다, 전달하려 했으나 버려지는 게 많았고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숨겨두면 찾기가 힘든 게 당연한 거죠. 그걸 두고 못 찾은 네가 하수라고 하면 오만한 거고요. 숨길 거면 찾도록 유도하는 것, 숨긴 만큼 찾았을 때 더 기쁘게 만드는 게 실력이거든요. 산만하고 난잡하다 보니 작가가 전달하려 한 것들이 배송 오류가 났고, 그 끝에 플레이어들은 3개 받아야 할 박스를 1개만 받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해할 수 있고 관심 가는 것만 겨우 이해했다는 거죠. 그나마 박스 간의 크기나 품질이 같지도 않고요. 그걸 두고 플레이어마다 각기 다른 답을 찾았다고 하면 좀 그렇지 않나 싶어요. 이 게임을 고평가하는 사람들은 박스를 1개만 찾아도 재밌고 더 찾을 욕구가 생긴다고 평가하겠지만요. 추리물에 숨겨진 생뚱맞은 서브텍스트 서사와 강제 이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숨겨진 상징들을 깊게 해석해야 하죠. 그걸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이 무성의하다는 점에서 '니가 짖든 말든 내 할말이나 할란다' 라는 스탠스가 강하게 드러난다고 생각이 듭니다. 고평가하는 게이머들 말대로 관심 안 가는 것을 버리고 챙길 것만 챙기면 반쪽짜리 불완전한 이야기 밖에 안 나오거든요. 이 숨겨진 상징이나 각종 설정의 나열은 말씀하셨듯 대단히 산발적이고 교회 장면이 그렇듯 마구 쑤셔박은 형태이죠. 이런 산발적인 텍스트를 부지런히 숙제해오지 않으면 플레이어는 불만족스러운 이해를 하게 되는데, 이게 정교한 내러티브라고 보긴 어렵지 않나 싶어요. 흩어진 서사를 플레이어가 얼마나 능동적으로 재조립하게 만드느냐, 세계의 비밀과 게임의 목적을 파헤치게 만드느냐가 RPG 게임의 실력이고 역량인데, 이건 메모장 복붙인거죠. 또 텍스트 해독만으로 이뤄지는 암호찾기식 독자 참여가 왜 게임으로 나와야 하는지 모르겠고요. 다만 이 게임의 설정과 역사적 측면에서는 산발적으로 기복 있는 요소들을 마구 충동적으로 뿌려댄 결과물이지만, 놀랍게도 그런 무성의한 결과물이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해석을 끌어내고 있더군요. 역사 그 자체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산발적으로 뿌려진 텍스트를 (숙제를 해서) 재조립한 결과, 그 결과물에 대한 감상은 취향의 영역인 거 같고요.
22/01/05 20:16
극찬과 실망이 많이 갈리는 게임이고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래도 중반까지의 살인사건과 암울한 세계관이 어우러진 분위기랑 20가지 넘는 스탯이 스토리 곳곳에 잘 사용되었던 점 때문에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했었습니다.
지나치게 선형적인 후반부랑 특히 그 엔딩만 아니였어도, 엔딩이 허무해서 2회차 플레이는 못하겠더라구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강조되어 있어서 폴아웃3처럼 플레이어 선택에 따라 그냥 도시를 말아먹는 뭔가 극단적인 선택지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건 없어서 아쉬웠네요. 그리고 선택지가 많은 듯 하지만 결국은 선형적인 진행이라는 RPG의 한계는 인공지능이 서사를 써주는 단계에 이르지 않고서야 진짜로 게이머의 선택에 의해 스토리가 나비효과처럼 분기되는 게임이 나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느껴지더라구요. 애초에 그렇게 스토리의 다양성에 신경쓰는 게임이 마이너하기도 하고, 그래서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정도만 해도 그저 감지덕지하죠 그리고 [주석1]에 적힌 문장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혹시 어느 글을 참고하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22/01/05 20:19
주석1은 제가 나무위키의 디스코 엘리시움 평가 항목에 쓴 적 있을 거예요. 주석 1에서 제시하는 정보 자체는 껍질인간이라는 반골 게임 리뷰어가 블로그에서 발더스 게이트를 까면서 적은 내용과 일치하고요.
플레이어의 의지가 서사에 반영되는 게임의 경우 들 예시가 많지는 않습니다. 80년대의 웨이스트랜드부터 폴아웃 1, 2까지의 계승, 혹은 울티마 4가 성취한 비선형적 서사구조가 대표적인데요. 웨이스트랜드 1이나 폴아웃 초기작은 스팀을 통해 한국어로 즐겨볼 수 있습니다. 단 이런 작품들은 절대로 영화 같이 잘 짜인 서사가 펼쳐지지 않으며 서사 그 자체의 감상만이 목적도 아닙니다. 게임 내 서사는 최종 목적 수행을 위한 플레이어의 상상과 판단, 능동적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측면이 더 큽니다. 영화가 아니라 게임이니까요. 게임을 통해 잘 짜인 이야기를 보고 싶으면 집요하게 분기 트리며 선택지를 깔아놓는 카마이타치의 밤 같은 비주얼 노벨을 하는 게 더 나을 거예요. 그나마도 90년대 후반 이래로 성우 보이스와 3D 컷신이 도입되면서 비선형 서사는 씨가 말랐지요. 심즈처럼 완전히 서사를 추상화해서 플레이어가 알아서 자가발전하게 만드는 형태로 약간의 혁신이 일어났고요. 수요가 적은 영역에 아웃풋이 부족한 게 당연한 이치겠지만요. 서사적 비선형이 제대로 구현되는 혁신은 AI 던전이나 AI 노벨리스트 같은 툴을 기대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3D 그래픽에 중점을 둔 게임은 결국 코지마 히데오가 개념을 잡은 콘솔형 컷신 게임으로 흐를 수밖에 없고, 기발한 혁신은 텍스트 쪽에서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어요. AI로 이야기를 만드는 툴에 관심있으시면 나무위키 검색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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