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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2/26 18:10
ㅠㅠ 왕중왕전과 위너스 챔피언십 우승을 당시에 인정해줬어야 됐다 생각도 드는데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확고한 2의 아이콘이 안됐을 것 같기도 하고... 세상일 참 어렵습니다.
22/02/26 18:14
감사합니다. 오히려 이 시기는 제가 일하기 전, 완전히 팬이었던 시기라서 정리하기 편하네요.
언젠가 때가 되면 전반적으로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습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22/02/26 18:17
기성 스포츠와는 다르게 초기에 현업에 계시던 분들이 물러난 이후 원로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하는 분이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 더더욱 아쉽습니다.
팬의 입장에서만 기억하는 것 말고도 다양한 시선이 제시될 수 있으면 더 좋을텐데...
22/02/26 18:24
일단 저는 아직 현직에 있기는 합니다. (스타 쪽은 아니지만요.)
제가 일했던 시기의 일을 스스로 이야기하는 것은, 일단 주관이 담겨져 있어 관점이 기울어져 있을 우려가 있기도 하고 일하면서 잘못했던 부분이나 잘 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한 면피로 느끼실 것도 같아 고민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언젠가 좀더 시간이 지나면 편한 마음으로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2/02/26 18:28
현대에 와서는 프로토스가 가장 빠르게 실력을 올릴 수 있다는데 다들 동의할텐데,
왜 초창기에는 프로토스 인구풀이 유독 모자랐던 건가요? 옛날 얘기보면 진짜 저그들이 한숨쉬는 와중에 프로토스는 다 죽어서 말도 못하는 상황이네요.
22/02/26 18:39
일단 위에 말한 인재풀은 '프로게이머' 인재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빠르게 실력을 올리는 부분과는 조금 개념이 다를 수 있음을 말씀드립니다. 2001년 당시 1.08패치가 되면서 타격이 컸고, (무엇보다 스톰 너프가 컸죠) 프로토스는 새롭게 전략을 정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전략이 정비되기 전까지는 박정석과 같이 선수의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죠. 이후 강민이 더블넥을 안정화시키면서 조금씩 프로토스의 운영이 정비되기 시작했고 2005년 정도에야 본격적인 프로토스의 세대교체가 가능했죠. 물론 맵을 만드는 부분이 좀더 정교해진 측면도 있습니다.
22/02/26 18:51
왕중왕전도 그렇고, 위너스 챔피언십도 그렇고, 그 후에 열렀던 스니커즈배 올스타전도 그렇고 단순 이벤트전으로 날리기엔 참가한 선수들의 면면이나 대회 위상이 결코 가볍지는 않았는데 말이죠. 홍진호의 최전성기 시절에 결승에서 만난 테란이 임요환-이윤열-서지훈-최연성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입니다.
특히 올림푸스와 TG삼보배 MSL 결승에 오르던 03년 홍진호의 반짝거리던 모습은 마치 01년 최전성기 임요환을 떠올리게 했는데 말이죠.
22/02/26 18:59
그렇죠, 스니커즈배도 작은 대회는 아니었죠.
다만 양대리그와 연계되지 않은 명백한 올스타전 개념이다 보니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03년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지 못했는데 제가 올림푸스 스타리그 4강 전후로 입대를 한 관계로... 체감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규대회 우승의 가장 좋은 기회는 올림푸스배였죠. 이때는 맵 라인업도 나쁘지 않았으니까요. TG삼보 MSL은 최연성이 대회를 진행해 나가면서 경험치를 쌓아버리고, 포텐이 터져버린 것이 홍진호 입장에서는 많이 불운했다고 생각합니다.
22/02/26 20:26
1세트 재경기 판정과 2세트 그 기적의 역전패는 지금 봐도 울컥합니다...TG삼보배는 건틀릿에서 황제가 맞춤빌드 깎아줬다는 이야기가 있었죠. 발리앗..
22/02/26 19:20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항상 주장하던 바인데 이렇게 정리해주시니 더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지금의 관점으로 과거를 바라보면 이상한게 한두가지가 아니죠. 과거는 과거의 관점으로 평가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22/02/27 11:16
뮤짤이 조금 더 일찍, 02년 말이나 03년 초쯤에 발견됐으면 스타판 역사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은 가끔 가져봅니다.
강도경-홍진호-조용호-박경락, 이들이 전성기 때 뮤짤을 장착해서 싸웠다면? 물론 테란도 그 사이 놀고 있었던 건 아니니 의미가 큰 가정은 아니지만 말이죠 ^^;;
22/02/27 10:19
근데 최고의 스타 프로게이머는 황제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도,
코크배는 맵탓 안 할 수 없어서... 이게 홍이 불리했다기 보단, 임에게 너무 유리한 대회였어요. 대회 내내 거의 대부분의 경기를 진짜 불멸의 개테란맵 라그나로크와, 요환 오브 발할라에서 했고, 또한 거기서만 이겼죠.
22/02/27 11:26
저그에게 불리했다는 관점은 프로토스도 있고 해서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결과적으로 황제에게 너무 유리한 대회가 됐다는 말씀에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라그나로크도, 맵 추첨도, 심지어 재경기 방식마저도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도) 결과적 수혜자가 황제라서... 개인적으로 이때 가장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체계적이지 못했던 맵 추첨 방식과, 맵 중도퇴출이라는 개념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라면 당시 라이벌전에서 쓰던 버티고라도 빠르게 끌어왔겠죠)
22/02/27 16:24
저는 그냥 프레임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합니다. 01시즌 온겜 왕중왕전과 02시즌 엠겜 위너스 챔피언십은 '메이저' 커리어죠. 포맷 자체만 보면 시즌 대회-그랜드 파이널로 이어지는, 오히려 1년 내내 잘해야 출전권이 주어지는 상위 대회 포맷인데 대회 규모(상금 등) 자체는 하위 시즌대회와 대등하다보니 가치에서 넘어서진 못하는거구요. 근데 그렇다고 단순 비메이저 이벤트 취급은 선을 많이 넘었다고 생각해요. KT 왕중왕전만 해도 분명 차기 대회 시드 지급할 정도로 포맷 자체도 공식 메이저 취급이었는데 어느 순간 정규리그라는 포맷의 프레임으로 인해서 슬그머니 이벤트로 격하됐죠. 기욤이 우승한 2000년 왕중왕전은 대회 규모자체가 시즌대회와 비교하면 격차가 컸지만(우승상금이 2천만원-500만원으로 꽤 차이가 있었음) KT배는 01시즌 대회들과 우승상금도 1천만원으로 동일했거든요. 02시즌 Ktec 위너스 챔피언십은 KPGA 리그보다도 우승상금도 더 높았고 KT 왕중왕전이 시즌 성적 상위 6인 초청이었는데 여긴 10인이었죠. 여담이지만 이전에 KTF 비기배 4대천왕전은 최상위 4인 초청전에 상금규모도 커서 이벤트전치고도 꽤 핫한, 약간 신한 마스터즈 느낌의 대회였고 임홍이박이라는 4대천왕의 효시가 된 대회도 있어서 사실상 02시즌은 마스터즈 포맷의 대회를 두번이나 연셈이라는게...
어느 분야든 다 그 종목만의 고유한 기준이라는게 있는 편인데 스타판의 희한한게 '예선'이나 '정규리그'라는 틀에 집착했습니다. 또 '양대리그'라는 틀이 잡힌 이후 이 틀에서 벗어난 리그들은 모두 비메이저 취급을 하는 흐름까지 이어져버렸죠. 타 메이저 스포츠나 바둑같은 곳만 봐도 이렇게까지 가위질을 하진 않는데 말입니다. 당대에 메이저 대회였으면, 역사가 끊긴다고 해서 한급 아래로 취급하진 않는게 보통입니다. 그런점에서 저는 단순히 양대리그 커리어 이런식으로 보는게 아니라 스타2처럼 메이저급 대회에 대한 가치평가를 다시 하는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2/02/27 16:41
약간 첨언해서 몇몇 선수들의 '메이저급' 커리어의 예시로는
임요환 : 2000 삼성디지털배 KIGL 왕중왕전, 01 제3차 게임큐 스타리그, 2001 WCG (2002 WCG는 X) 홍진호 : 2001 KT배 왕중왕전, 2002 Ktec KPGA 위너스 챔피언십 이윤열 : 제1회 KT-KTF배 프리미어리그, 제3차 겜티비 스타리그 박성준 : 제2회 KT-KTF배 프리미어리그 그외에 이제동, 김택용, 이영호가 우승했던 TG삼보-인텔 곰티비 클래식도 메이저급 커리어라고 생각합니다.
22/02/27 16:41
사실 지금 보면 되게 이상한 관점일 수 있는데, 그때는 그게 희한한 관점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스타팬들이 이상하고 부족했다기보다는 그 시대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테란 팬들은 왕중왕전 우승자 가운데 테란이 없기도 하고, 양대리그 기준으로 임-이-최의 본좌라인이 확립됐으니 그에 대해 크게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었으며 일부 저그 팬들은 홍진호의 우승 타이틀을 찾아주기보다는 01~03년 정규대회 무관이라는 사실을 저그가 전통적으로 핍박받았던 종족이었다고 강조하는 데 쓰는 경우가 있었죠. 05~07년, 그리고 그 이후에는 저그의 새로운 본좌 탄생에 대한 서사가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조진락에 신경쓰는 분들은 적었고요. 프로토스는 왕중왕전 역사와 큰 상관이 없었으니 논외로 하겠습니다 (ㅠㅠ) 다만 말씀하신 그 프레임을 일부 관계자가 조장했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개인적으로는 공감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쪽입니다.)
22/02/27 16:53
그 관계자가 그냥 엄옹인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프레임이 말씀하신대로 스타판 팬덤에 의한 일종의 묵시적 합의라고 생각해요. 엄옹이 그런말을 했어도 대중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거부되었을거라 봅니다. 그럼 뭐 팬들이 다 공감대가 형성됐으니 로마에 오면 로마법이 정론인거 아니냐?라고 할 순 있지만 저는 대회 포맷에 있어서는 다른 종목과 비교해서 그렇게 뭐 스타만의 특수성이 있다고 보진 않거든요? 시즌대회-그랜드파이널 포맷같은 건 스포츠 대회 포맷으로는 너무 흔하잖아요. 초청전 개념도 그렇고. 그런데 스타판만 유독 이런 대회에 엄격해요. 이건 저는 그냥 팬들의 편의성이 많이 가미된 양대리그 중심의 시각에서 나온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사실 이윤열의 그랜드슬램같은 용어도 되게 이상하죠. 겜티비는 명백히 양대리그와는 비교가 될 수 없는 리그인데 말입니다. 당장 KPGA 투어의 위상도 MSL과 비교하긴 좀 민망하구요. 역사성은 이어지지만요. 마찬가지로 온게임넷 스타리그도 00년까지의 초창기에는 범람하는 상위대회중의 하나였을 뿐이고, 2001년만 해도 저해에 가장 중요한 대회는 2001 WCG였죠.
이걸 바둑이나 골프로 바꿔보면 참 재밌어요. 양대 방송사 이외에 모든 대회는 다 비메이저라는 식의 논리라면 바둑도 20년 넘게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응씨배, 삼성화재배, LG배 3대 대회 말고는 이미 폐지된 메이저 대회나 현재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메이저라고 평가되는 대회들도 메이저대회로 취급할 수가 없는거거든요. 골프도 흔히 말하는 그랜드슬램 4개 혹은 5개 대회 중에 1-2개 정도는 메이저 티어가 옮겨지기도 했는데 그럼 역사성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메이저 취급받게 되는거니까요.
22/02/27 17:08
네 사실은 저도 그 정론이 돌아보면 "너무 시야가 좁았던 것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장문의 글을 남겼습니다.
따지고 보면 본좌론의 영향도 있죠. 본좌론 자체가 양대리그 체제와 연계된 것이니까요. 이윤열의 그랜드슬램은 참 난감한 게, 그때 겜티비가 3대 리그의 말석에 있었던 건 맞기에 2003년 초 당시에 이윤열을 띄우기 위해 그랜드슬래머라는 단어를 쓴 건, 억지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대회를 마지막으로 겜티비 스타리그가 없어져 버려서 좀 머쓱해지기는 했죠. 그리고 이윤열의 대관식이라 할 수 있었던 1회 프리미어리그의 존재감이 흐려진 것도 아쉽고요. 그 리그들 다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커리어가 워낙 대단하기에 망정이지 이윤열의 커리어 역시 양대리그 사관에 의해 많이 손해본 건 맞습니다. 박성준도 마찬가지죠. 프리미어리그 우승은 대단한 커리어였는데 그게 없어지니 지금보면 그냥 온게임넷에서만 잘했던 엠막처럼 보이죠. 제가 제시한 해석이 대세가 되는 것까지 바라진 않습니다만, 이런 해석이 조금더 활발해졌으면 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양대리그 사관에 의한 01~03년의 '테란맵-저그는 피해자' 해석은 폄하되는 레전드들이 너무 많아요.
22/02/27 17:21
첨언하면, 05년부터 MBC게임에서 일했던 저도 그시절 흔한 스타팬 중 한 명이었고,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양대리그 기준' 역사를 정리해 왔기에 본의는 아니었지만 이전의 레전드들에게 피해를 주는 데 일조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지금 글과 같은 생각은 몇 년 전부터 다른 여러 종목들을 보면서 들기 시작했고, 그때의 시야가 좁았던 부분이 관게자로서 명백한 과오였다면 이런 해석으로 그런 부분을 조금이나마 줄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는 점 말씀드려요.
22/02/28 09:42
글 잘봤습니다.
1편에서 봤던 포비든존 벨런스는 처음 들었네요 네오 포비든존이 워낙 명경기가 많아서 오리지널도 괜찮았나보다라고 지례짐작 했나봅니다. 그리고 그당시 풀이 좁아진 프로토스 임에도 불구하고 우승자가 계속 나온건 정말 아이러니 하면서도 왜 가을의 전설에 열광했는지 알것 같네요
22/02/28 18:30
네오 포비든존은 오리지널보다 훨씬 괜찮은 맵이었죠.
(맵 특성상 저그가 불리한 면은 여전히 있었지만 오리지널에 비교하면 안됩니다) 01년 김동수의 우승과 03년 박용욱의 우승은 그래도 섬맵이 하나씩 있었는데 (01년은 크림슨 아일즈 / 03년은 그 유명한 패러독스) 개인적으로는 02년 박정석 우승이 정말 대단했다고 생각합니다. 월등한 개인 기량으로 전략교본의 열세를 뛰어넘은 느낌? 05년 이후는 프로토스의 운영과 인재풀이 보완 및 복구되기 시작했으니까요. 다만 이윤열과 전성기가 겹쳤던 것이 박정석에게는 불운했죠. 조용호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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