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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2/05/19 21:49:29
Name 호프스테터
Link #1 https://www.theplayerstribune.com/posts/gumayusi-t1-league-of-legends-esports-korean
Subject [LOL] 우리는 그 여정을 끝낼 의무가 있다.

젠지를 상대로 펼친 LCK 스프링 결승전의 4세트. 팀 전체가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증상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나만 신기하게도 몸이 괜찮았다. 나머지의 멤버들은 각자 자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스플릿 결승전의 승부가 내려질 때까지 단 한 게임만 남은 상태. 이번만 이길 수 있다면, 우리는 스프링 시즌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무려 18:0, 전승 우승으로. 곳곳에서 기침소리와 지친 숨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우린 우리가 목표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느낄 수 있었다.  

오너 선수의 격려 섞인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한다. “한 게임만, 한 게임만 더 하고 우리 쉬자.”

우리 모두가, 팀 뿐만 아니라 단체 전체가, 결승까지 올라오기 위해 시즌의 매 순간 최선을 다했지만, 승리를 향한 마지막 길목에는 무력의 팀과 코로나가 함께 서 있었다. 

“다른 게임과 똑같이. 우리가 하던 대로만 하면 돼.” 페이커 선수가 덧붙였다.

우리가 승리를 거둔 바로 그날, 나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내가 걸었던 지난 나날들을 떠올렸다. 

이 무대에서, 이 선수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팬들은 지금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어쩌면 지금의 모습만 보고 우리는 쉬운 길을 걸어왔다고, 타고난 재능으로 큰 어려움 없이 여기까지 도달했다고 생각할까.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았다. 

나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나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믿어왔다. 

2019년 연습생 시절, 나는 팀에게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주전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했다. 낮 열두시에 일어나서 새벽 네 다섯시까지는 기본으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한 나의 모든 시간을 게임에 몰두했다. 

물론 그 시간은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프로게이머로써 다음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선,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한 들, 하루에 솔로 랭크에 할애하는 시간이 단 몇 시간이 아니라 12시간이 넘어간다면? 그것도 매일매일 한 달 동안? 나의 온 신경은 게임을 향해 있었다. 그래서 그날의 결과에 따라 내 기분도 들쭉날쭉하기 일쑤였다. 차디찬 새벽 공기를 마시러 잠깐의 휴식을 취하면서도 나는 내가 지금 시간 낭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 자신을 돌아보곤 했다. 

사실 더 어릴 적에는, 프로게이머의 세상에 큰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저 게임이 좋았을 뿐. 그렇지만 꼬마 감독님 (김정균 現 T1 감독)으로부터 리크루트 제의를 받기 몇 년 전, 내가 한국 서버 TOP10안에 들게 되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혹 이것이 나의 삶이 되지 않을까. T1에 합류했을 때, 나는 이 세계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 페이커 선수 나 테디 선수 같은 선수들을 보며, 나도 그들과 같은 경력과 경험을 쌓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지독하게 연습한 이유였다.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마음먹은 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고. 

중학교 3학년 겨울 방학, 아버지는 나에게 진지하게 최후의 통첩을 내리셨다. 한 달 안에 탑 티어를 등극하거나, 게임을 포기하고 공부에 열중하거나. 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형이 現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였기에, 부모님은 E스포츠의 세계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다. 일찍이 아버지는 내가 한계에 도전하고 내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고 일깨워 주셨다. 

그리고 한 달간의 접전 끝에, 난 챌린저에 등극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버지는 나를 전적으로 믿어 주셨다. 

어린 날 나의 그런 노력들이 내가 LCK에서 원딜 선수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2020년, 나는 조 마쉬에게 당당히 얘기했다. 나는 LCK에서 어떤 선수를 상대하던 이길 자신이 있다고. 물론 그 당시에 T1에는 훌륭한 선수들이 있었고, 팀에 합류한지 얼마 안 됐던 나는 주전으로서 나의 가능성을 팀에게 입증시켜줄 시간이 아직 부족했다. 그렇지만 조 마쉬와 팀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빨리 경기에 출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혹독하게 훈련하며 나의 자리를 기다리는 동안, 한국에서 나의 실력과 성적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다른 팀들로부터 다양한 제의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었다. 

나는 당시, 다른 팀에 합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잠시 고민해 보기도 했었다.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고, 다른 단체에 들어간다는 것은 정확히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에 대해 오래 의논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삼국지의 유비에 관한 일화이다. 유비는 어느 추운 가을날, 강가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이 늙은 것이 어떻게 이 강을 건너란 말이냐? 네놈이라도 나를 업어 건네다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노인이 소리치자, 유비는 마지못해 그 노인을 업고 강을 건넌다. 그런데 아뿔싸, 강을 다 건넜을 즈음 늙은이는 보따리를 두고 왔다며 막무가내로 유비에게 자신을 다시 업으라 재촉하고, 유비는 끝까지 노인의 부탁을 들어준다. 둘이 보따리와 함께 강을 무사히 건넌 후, 노인은 유비에게 묻는다. “너는 어째서 두 번째로 나를 업고 건널 생각을 했느냐?”

그때, 유비의 답은 이러했다. “그것은 잃어버리는 것과 두 배로 늘어나는 차이 때문입니다. 제가 두 번째로 건너기를 마다하게 되면 첫 번째의 수고로움마저 값을 잃게 되지만 한 번 더 건너면 앞서의 수고로움도 두 배로 받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랬다. T1은 내가 첫 번째로 선택한 팀이었다. 

아마추어 선수에서 프로의 세계의 입문할 때, 나에게 많은 선택지가 주어졌었다. 그중 다른 팀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처음으로 선택한 T1에 남기로 했다. 내 첫 번째 선택지에서 내가 들인 노력과 수고로움을 잃지 않기 위해, 팀에 남음으로써 나의 노력들이 배로 돌아오길 희망하며. T1에 남아 주전이 되는 것, 국내외 경기에서 팀과 함께 승리하는 것이 나의 목표가 되었다. 

Gumayusi | League of Legends | Fighting | The Players' TribuneLCK

어쩌면 그래서 작년 가을 아이슬란드 경기가 조금 쓰라렸는지도 모르겠다. 월드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5세트를 기아 담원에게 내주는 것은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지만, 팀 전체의 분위기는 패배로 인해 많이 다운되어 있었다. T1의 멤버라면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우리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도 누구 못지않게 승리를 기원했다. 

작년 아이슬란드의 경기는, 어쩌면 이번 스프링 시즌의 발판이 되어주지 않았나 싶다. 팀은 그 경험을 통해 더 돈독해졌고, 더 좋은 팀워크로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작년에는 팀으로서 함께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의 팀을 바라보자면, 나는 우리가 하나로써 움직인다는 걸 더 확실히 느끼고, 그것이 우리의 최고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스플릿 결승전의 시작 전, 나도 우리가 18:0의 기록을 세울 수 있으리라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 드는 생각은, 아마 그날의 경험은 먼 훗날에도 우리가 자랑스럽게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번 스프링 시즌을 더욱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 것은 역시 T1의 팬들이다. 처음 시작했을 땐 나에게도 팬이 생겨 이런 성원과 응원을 받으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그들의 사랑은, 정말로 특별한 것이라고 느낀다. 

나는 그 마음을 부산에서 꼭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미국에서 펼쳐질 월드 챔피언십에 대한 기대도 크다. 

하지만 지금은 MSI에 집중할 때. 

앞으로 우리가 해내어가야 할 것들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란 걸 나도 안다. 

하지만 이곳을 향한 나의 여정은, 우리의 여정은,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여정을 끝낼 의무가 있다. 

-구마유시


T1 의 구마유시가 플레이어스 트리뷴에 기고한 기고문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길진 않은 글 안에 구마유시가 느낀 고민과 생각들, 팬에 대한 생각과 프로게이머로써의 자신감이 잘 나와 있어서 좋네요.

특히 마지막 부분이 너무 멋있어서 놀랐습니다. 다른 분들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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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19 21:53
수정 아이콘
크... 이런선수가 나오면 성골유스 타령이 나올수밖에 없죠... 키보드 조심만하자
마감은 지키자
22/05/19 21:53
수정 아이콘
구마유시 글도 잘 쓰네.
22/05/19 21:54
수정 아이콘
뽕차게 만들어주는 글이네요.. 성골로 계속 승승장구하고 티원에서 은퇴하자
22/05/19 22:07
수정 아이콘
개인적인 고백이지만, 지난 2년 간 그 지옥같은 시기를 겪으면서도 이 선수가 가진 재능과 자질로 말미암아 페이커와 T1이 그 어느때보다 찬란할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먼훗날 페이커의 커리어를 추억할 때, 피글렛과 뱅을 뛰어넘는 최고의 팀메이트 바텀라이너로 기록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T1의 또 하나의 태양이 될 해마유시 화이팅.
팬케익
22/05/19 22:19
수정 아이콘
대단하네요.. 30년 넘게 살았지만 뭔가에 이렇게 열정적일수 있는 삶을 산다는게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22/05/19 22:25
수정 아이콘
구마유시 화이팅
트루할러데이
22/05/19 22:41
수정 아이콘
이야, 글도 잘쓰네요. 앞으로도 쭈욱 함께합시다 :) Go T1!
22/05/19 22:42
수정 아이콘
김정균 現 T1 감독 보고 언제복귀했나 기사찾아봤네요.ㅠㅠ

그나저나 구마유시 선수 글 잘쓰네요 부럽다
이웃집개발자
22/05/19 22:42
수정 아이콘
찢었다
묵리이장
22/05/19 22:48
수정 아이콘
성격이 다른 페이커 같은 놈이 또 있다? 차세대 스타로 빛나주기를 바랍니다.
스덕선생
22/05/19 22:53
수정 아이콘
데뷔 전 여러 사건들과 극초반에 보여준 무리한 플레이 탓에 기본 마인드가 캐리 or afk같은 우지과 원딜인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더군요
무적LG오지환
22/05/19 23:00
수정 아이콘
예전부터 느끼는거지만 팬들이 좋아할만한 포인트를 잔뜩 때려박으면서 본인의 승부욕을 표현할 줄 아는 친구입니다 크크
우스타
22/05/19 23:12
수정 아이콘
["앞으로는 사고 치지 말고, 더 잘하는 원딜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이 나왔던 게 1년 반도 안됐습니다.
앞으로 메타고 나발이고 계속 우적우적 씹고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냥사람
22/05/19 23:22
수정 아이콘
명암이 있는 선수인건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본인의 가치가 얼마인지도 모르고 실수를 저지를때도 있지만 그만큼 사회생활과 단절되 자신의 목표만 보고 살아온 선수니, 또 제가 T1 팬이니 좋게 보이는건 너무 당연한것 같네요.
22/05/19 23:25
수정 아이콘
와 이게 직접 쓴 글이라구요?
22/05/19 23:30
수정 아이콘
이상할 정도로 팀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선수 크크. 사실 이 바닥에서 출장기회를 잡고 그를 통해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고자 이적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을만큼 비일비재한데 신인시절부터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신기하긴 해요.
반반치킨
22/05/19 23:36
수정 아이콘
인게임 성향과 멘탈이 말도 안되게 베테랑스러운 선수죠. 글도 참 멋지네요.
t1유스 성골출신이라 인기도 어마어마하고요.
msi 섬머 롤드컵까지 쭈욱 응원합니다.
22/05/20 00:00
수정 아이콘
분명 물의도 있었던 선수이나 프로의식은 어린 나이에 정말 잘 잡혀 있네요. 피글렛과 뱅, 테디를 이어 페이커와 함께 꼭 전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2/05/20 00:09
수정 아이콘
본인이 쓴 글 맞나요? 누가 수정은 해준 거겠죠? 아니면 대박.
코우사카 호노카
22/05/20 00:43
수정 아이콘
크으 구뽕에 취한다
22/05/20 01:57
수정 아이콘
레딧 보니까 선수와 인터뷰를 먼저 하고, 그에 바탕하여 익명의 작가가 글을 쓴 후, 선수가 쓴 글을 검토한 후에 기고가 올라온다고 합니다.

(They basically interview the athlete in question extensively, then uncredited staff write the article in the pov of that athlete. The athlete gets the final say in what gets published, so it's supposed to be accurate to what the athlete would want to write.)

https://www.reddit.com/r/leagueoflegends/comments/ut2eho/my_way_by_gumayusi_players_tribune/
22/05/20 09:02
수정 아이콘
올해는 꼭 T1의 월즈 재패를...
22/05/20 09:19
수정 아이콘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으니 앞으로는 제발 사고 안쳤으면 ㅠㅠ
22/05/20 09:51
수정 아이콘
not anymore. 가 생각나는 글이네요
22/05/20 09:55
수정 아이콘
어떤 라인이든 이미 시간 상 차세대 페이커가 나오는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굳이 표현하자면 티원 탑 바텀은 각 라인 차세대 페이커가 될 재목이라 생각합니다.
22/05/20 10:15
수정 아이콘
스타성 하나만큼은 최고인듯
22/05/20 10:18
수정 아이콘
지성이 돋보이네요
shooooting
22/05/20 11:45
수정 아이콘
글도 잘써!!
빠커의유머노트
22/05/20 12:08
수정 아이콘
흐뭇~
22/05/20 14:36
수정 아이콘
약간(?)의 관종끼가 있어서 대외적인 이미지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페이커를 제외하면 티원의 누구보다 정상적(?)이고 프로의식으로 가득 찬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티원엔 구마유시를 능가하는 도른자가 많다는 걸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제우스나 오너나;;)

유스에서 올라온 성골선수가 이렇게 팀에 대한 강한 충성심과 실력과 프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게
지금 페이커를 중심으로 똘똘뭉쳐있는 티원의 축복이겠죠.
22/05/20 16:31
수정 아이콘
결과적으론 티원에 남은 게 잘 풀렸죠. 확실히 인생은 실력+운이 모두 중요한.. 앞으로도 어지간하면 꾸준하게 잘할 거고, 이제 하나씩 쌓아가는 거죠. 무엇보다 좋은 파트너와 만나서 서로 좋은 영향 주고받는 것도 긍정적이고. 케리아와 서로 인게임적으로 잘 맞으면 둘이 오래 가는 것도 서로에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각자 잘해도 안 맞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니 좋은 파트너 만나는 것도 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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