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022년 12월 2일자로 크래프톤의 게임 칼리스토 프로토콜이 출시되었습니다.
트레일러에서 훌륭한 그래픽을 보여준 데다가 유명 호러 SF 게임 프랜차이즈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프로듀서 글렌 스코필드가 참여한 만큼 후속작이 끊겼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정신적 후계작이 나오는 셈이라 많은 이들이 기대를 했습니다. 저도 그 중 하나였고, 어제자로 패키지를 구매해 오늘까지 플레이 해보았습니다. 허나 기대와는 다르게, 최근 국내외로 속속들이 들어오는 리뷰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하게 실망스러운 게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포가 있는 부분은 아래에 따로 표기해 놓았으니 아직 해보지 않으신 분들도 스크롤 내리셔도 괜찮습니다. 평점은 미리 말하자면 저는 6/10점 주겠습니다.
1. 첫 인상
게임을 처음 켜면 나오는 화려한 그래픽이 눈을 확 사로잡습니다. 저는 현재 최적화 문제를 겪고 있는 PC판이 아닌 엑스박스 시리즈 X 기종으로 플레이를 했는데, 엑스박스 360 시절에 나왔던 데드스페이스 3와 비교하면 정말 압도적인 수준의 비주얼을 보여줍니다. 게다가 한국어 더빙과, 심지어 텍스쳐마저 한국어화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갓겜의 냄새가 솔솔 나더군요. 처음 1시간 정도는 정말 괜찮은 게임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2. 근데 하다보니 좀 이상하다..?
어째 데드 스페이스랑은 느낌이 좀 다릅니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는 시작하자마자 플라즈마 커터라는 원거리 무기를 들려주는 것과는 다르게, 이 게임에서는 근접무기를 던져주며, 튜토리얼에서도 근접 공격과 회피 기동을 더 먼저 알려줍니다. 게다가 근접 공격 모션도 상당히 화려해서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와는 다르게 근접전 위주로 구성된 게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줍니다.
그렇게 무기를 얻고 적을 처음 조우해서 전투를 하는 순간, 큰 당황을 하게 됩니다. 처음 만나는 잡몹조차 너무 세거든요.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에서는 보통 난이도 기준 두어방 툭툭 쳐주면 죽어나가던 놈들이, 여기서는 아무리 두들겨도 잘 죽지를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게임의 핵심인 회피 시스템에 익숙해지지 못했다면 아마 처음부터 꽤 죽을 가능성이 큰데, 시작부터 전투가 이러니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습니다.
3. 짜증 나는 전투
이 게임에서 아마 가장 많은 지적을 받는 부분일 겁니다. 전투가 너무 어렵고,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짜증 나고 불합리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근접 전투 모션은 처음 보기엔 화려해 보이지만 너무 굼뜨고 늘어집니다. 사지를 노려서 전략적으로 공격하는 느낌 역시 받을 수 없습니다. 공격 모션이 너무 길고 굼뜬데다가 카메라를 이리저리 사방으로 흔들어제끼니 적이 둘만 되어도 뭐가 뭔지 모르겠고 내가 누굴 때리는 건지, 어디에 누가 있는지조차 헷갈리기 시작합니다.
문제에 불을 붙이는 건 이 게임에서 그렇게 힘을 준 회피 시스템입니다. 이런저런 자랑을 하지만 결국 스틱을 좌우로 타이밍 맞춰서 흔드는 것의 반복이라 질리는 문제도 있지만, 판정이 극히 이상합니다. 캐릭터는 움직이는데 회피가 되지 않은 것으로 인식되거나, 어느 타이밍에 회피를 해야할지 모르겠거나 하는 등등 여러모로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라는 이야기가 중론입니다.
게다가 이러한 불편한 플레이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의도된 지점이라는 점도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무기 교체 UI는 기존보다 훨씬 불편해졌고, 무기 교환과 장전 애니메이션 역시 의도적으로 최대한 질질 끌면서 플레이어에게 짜증을 유발합니다. 체력 회복 시스템은 아예 말조차 안 나오는 수준인데,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에서는 언제든지 치료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맞아가면서 버티는 플레이가 가능했지만, 본작에서는 치료를 하려면 경건하게 앉아서 주사기를 꽂고 주사되길 기다렸다가 다시 천천히 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사실상 전투 중에 치료할 생각따윈 버리란 거죠.
아직 끝이 아닙니다. 화룡점정은 바로 보스입니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보스들은 대대로 그다지 강하지 않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호구 취급을 받은 것과는 다르게 칼리스토 프로토콜의 보스들은 엄청나게 강력합니다. 최하 난이도 기준으로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은 체력을 자랑하는 것도 있지만, 시도때도 없이 즉사기를 날린다는 것이 사람을 미치게 만듭니다. 이 즉사기를 피할 방법은 위에서 말한 회피 기동을 하는 건데, 정말 쉬지 않고 들어오는 즉사기를, 판정이 이상한 회피기동으로 피해가며 열심히 딜을 넣는 것이 이 게임의 보스전 패턴이거든요. 이 게임은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단 한번도요. 그러니 이 게임의 보스전은 수분간 단 한번의 실수도 없는 완벽한 플레이를 성공시켜내기 위해 수십 수백번 무한 재도전을 하는 노동이 되어버렸습니다.
4. 이거 데드 스페이스 맞.. 아닙니다
아마 이 게임을 구매하신, 구매하려고 하시는 많은 분들은 이 게임에서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향수를 느끼려고 하실 겁니다. 비주얼만 보면 그렇긴 합니다. 그리고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를 즐겼다면 “아 이거!” 소리가 나올 만한 오마주 신들도 엄청나게 많구요.
그렇지만 막상 해보면 이 게임은 다크소울 내지는 갓 오브 워에 더 가깝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특히 회피기에 엄청나게 의존하고, 보스전에서는 아예 단 한 대도 맞아서는 안되는 식의 플레이를 강요하는 플레이가 점점 눈에 띄기 시작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이 게임이 “데드 스페이스”라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는 다양한 공구 내지는 총기류를 이용해 전략적으로 사지를 절단하는 효율을 추구하는 게임이었는데요, 이번 작에서는 그러한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총기류의 성능을 크게 제한하고, 슈트의 구매나 업그레이드를 막음으로써 생존성을 크게 하향시켜, 익숙해지면 업그레이드 된 무기를 둘둘 싸고 다니며 학살극을 벌일 수 있었던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와는 전혀 다릅니다. 무조건 회피하고 다니면서 근접전을 벌이라는 강한 의도가 느껴지는데, 사실 이 게임에 기대를 건 사람들의 예상은 이런 건 아니었을 겁니다.
5. 어설픈 한글화
모회사가 크래프톤이 된 덕인지 한글화는 꽤나 신경을 많이 써 주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더빙은 물론이고 심지어 곳곳의 텍스쳐까지 한글화가 되어 있는데, 이 정도로 신경을 써주는 게임은 정말 거의 없는 걸 생각하면 성의 면에서는 정말 최고라고 하겠습니다.
"퓨즈 필요의". 랴 리건 좀..
그러나 성의도 좋지만, 결과물이 너무 엉성합니다. 영어 원문 대사와 한국어 대사의 길이가 달라 음성이 나오다 끊기거나, 캐릭터는 말을 하고 있는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문제도 있고, 중간중간 짧은 대사들은 더빙이 되어 있지 않아 영어 원문이 튀어나오질 않나, 대사마다 볼륨이 제각각이라 어떨 때는 하나도 들리지 않던 대사가 어떨 때는 귀가 아플 정도로 크게 나오질 않나, 더빙의 톤이나 번역의 퀄리티 면에서도 모자람이 보이질 않나.
어쨌든 크래프톤 쪽에서 많은 성의를 들였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노력에 비해 심각하게 모자란 한국어화의 완성도는 그 성의마저 다소 빛이 바래 보이게 하는 수준입니다. 패치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부터는 스포입니다.
6. 데드 스페이스의 열화판인 스토리
개발자가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많은 것들을 좋게 말해 오마주, 나쁘게 말하면 자가복제 하려는 의도는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그래픽, 분위기, 시스템, 스토리 등등 많은 것들이 사실상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에서 고유 명사만 바꿔놓은 수준이거든요. 가령 UJC는 CEC로, 교도소는 유니톨로지로, 교도소 간부는 한스 타이드먼으로. 그래서 분명히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데도 어째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게임 플레이 면에서도 사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많은 요소들을 재탕해왔습니다. 혹한지역에서 슈트의 방한 기능으로 버티는 부분은 데드 스페이스 3의 타우 볼란티스를, 중간의 우주 파편을 피해가며 비행하는 부분은 데드 스페이스 2의 스프롤을 따왔고, 그 외 수많은 부분들이 어째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노골적인 카피라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기대한 것이 이런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정신적인 후속작을 원한다면서 그 오마주가 싫다고 하면 대체 어쩌냐고 말이죠. 그렇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도 3부작 내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자가복제를 행하지는 않았습니다. 의도적으로 오마주한 일부 부분을 제외하면 나름 열심히 변주를 해가며 새로운 느낌을 주었죠. 그런데 다른 프랜차이즈를 런칭하면서, 마치 자신의 과거작을 다시 플레이하는 느낌을 주는 건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령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타이탄폴 시리즈를 보세요. 자신들의 전작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장점은 쏙쏙 빼 오면서, 새로운 세계관과 시스템을 녹여내 훌륭한 새로운 프랜차이즈를 만들어내지 않았습니까?
이 게임이 전작의 열화 복제본이라는 생각을 강화시켜주는 것은 본작의 스토리가 상당히 부실하단 점입니다.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는 이시무라호, CEC, 플래닛 크래킹과 무시무시한 공구들, 블랙/레드 마커, 디멘시아 현상, 생명 경시, 등등 개개로 놓고 봐도 아주 매력적인 소재들로 가득했습니다. 환경 파괴가 우주적 스케일로 커진 디스토피아 상황에서 우주선 속에서 살아남는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줬어요. 게다가 조연과 악역들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데드 스페이스 1편의 자크 해먼드와 머서 박사, 2편의 엘리 랭포드와 한스 타이드먼, 3편의 카버와 대닉이 있었죠. 그렇지만 칼리스토 프로토콜에서는 그런 분위기도, 조연도, 악역도 없습니다. 그냥 화물선이 추락했다가 감옥에 끌려갔는데, 누가 도와줘서 탈옥한다, 이게 전부입니다. 물론 중간에 이런저런 떡밥을 뿌리지만 어차피 그게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랑 똑같거나 비슷하고, 퀄리티는 더 낮을 거라는 걸 깨달은 순간 스토리에는 아무런 관심도 가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게임 플레이는 짜증나고, 스토리에는 호기심이 전혀 안 가고, 대체 무슨 재미로 게임을 해야겠습니까?
어쩌면 글렌 스코필드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든 것은 이미 구작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의 세계관에 전부 다 녹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저작권이 EA에 넘어가 그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들 말이죠. 이미 A급 재료를 써버린 상황에서, 다른 회사를 나와 다른 재료로 비슷한 요리를 해보아야 원조의 맛이 나지 않는 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7. 요약
기대가 너무 컸습니다. 이 게임은 데드 스페이스가 아닙니다. 구작의 향수를 느끼고 싶으신 올드 팬 분들이라면 너무 큰 기대를 갖지 마시길 바랍니다. 사실 저는 돈이 좀 아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