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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3/10/29 01:32:27
Name aDayInTheLife
Link #1 https://blog.naver.com/supremee13/223249348903
Subject [일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 정제되지 않은.
영화를 보면서 떠오른 다른 작품은 두 편이었습니다. <파벨만스>와 <판의 미로>가 그 두 편인데요.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녹아있는 고백적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파벨만스>가 떠오르고, 그 외의 디테일한 측면에서는 <판의 미로>가 더 가까운 친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영화는 그 두 가지 요소가 깊게 자리잡아 있습니다. 어린 시절 겪었던 전쟁과 피난, 아버지의 비행기 관련 공장이라는 요소들이 미야자키 하야오의 어린 시절과 영화를 겹쳐보이게 만들고, 언급되는 '미로', 판타지 세상과 현실이 연결되는 방식이라든지, 혹은 가족 관계와 목적 등등은 <판의 미로>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다만,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경계를 절묘하게 이어붙였던 <판의 미로>에 비해서 훨씬 정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판타지'와 '모험'이라는 요소가 있긴 하지만, 평소의 지브리 영화와 같은 활극을 기대하시면 실망하실 가능성이 큽니다.

동시에, 영화의 많은 부분들이 '정제되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영화의 기술적 요소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 시각적 부분이라는 측면에서는요. 하지만, 반대로 영화의 서사적 요소라는 측면에서는 영화에서 아이디어들을 이어붙였다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많은 요소가 들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이 아이디어들을 다듬고 녹여내는 데는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결국 이 영화에 대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내지 '너무 뜬금없는 이야기들을 한다'라는 비판들은 이 지점에서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개인적으로는 소재들이나, 이야기들이 파편화되어 있다는 점이 아이디어를 다듬지 못한 게 아닐까 싶은 의심이 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판타지의 영역이 현실과 잘 겹쳐지지 않아요. 그러니까, 앞서 언급한 <판의 미로> 뿐만 아니라 올 초에 개봉했던 <스즈메의 문단속>이나, 혹은 지브리의 전작 영화들은 판타지와 현실 세계 사이의 연결 지점들이 꽤 중요하게 작용하는 작품들이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어딘가를 '갔다오는' 이야기들은 그 앞과 뒤에서 인물이든 관계든 현실에서의 변화를 그려내는 데, 이 영화의 에필로그는 짧고, 또 워낙 '개인적'이고 암시적으로만 그려집니다. 워낙 모험 자체가 정적이기도 하고, 이야기가 하나로 모여들지 못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이라는 단서를 두고 생각을 말하자면,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미야자키 하야오'라서 가능한 것이긴 한데, 동시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니면 내가 이 이야기를 굳이 보러 왔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개인적인 사상에 대한 표현을 하는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긴 한데, 지나치게 생략하고, 횡설수설하는 느낌이 없잖아 있습니다. 기존 지브리 영화의 느낌과는 다른 질감에, 판타지를 다루는 방식이 개인적인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 영화를 상업 영화, 내지 오락 영화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방식이 잘못된 접근법은 아닐까 싶은 의문이 들기도 하는데, 이 지점을 어떻게 접근 하는게 맞는지는 솔직히 영화를 보고 나온 지금도 조금 아리송한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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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
23/10/29 03:16
수정 아이콘
CGV 에그지수 69% 군요...
aDayInTheLife
23/10/29 07:33
수정 아이콘
왜 평가가 낮은지는 좀 이해되더라구요.
왕립해군
23/10/29 04:15
수정 아이콘
블루 자이언트랑 이걸 연달아 봤는데 솔직히 블루자이언트가 더 좋았네요..

미야자키 이번 작품은 [니가 불편하면 어쩔껀데?] 이 느낌이 너무 강했네요. 오히려 앞서 말한 블루자이언트가 단순하고 정공법으로 나가서 보기 더 편했네요.

솔직히 제가 미야자키였어도 이 작품 만들고 반응 보면 은퇴 철회 할 수 밖에 없을 듯해요. 이걸 마지막 작품으로 하기엔 좀 그렇죠.
aDayInTheLife
23/10/29 07:36
수정 아이콘
그 메시지도 되게 복잡하게 숨겨놓은 작품이라 좀 애매했어요. 저는… 오히려 말씀하신대로 정공법이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티바로우
23/10/29 07:25
수정 아이콘
그냥 머리에 돌맞고 헛거보는 얘기려니 하면 될거같아요
aDayInTheLife
23/10/29 07:36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
로메인시저
23/10/29 09:00
수정 아이콘
(수정됨) 반전요소야 그냥 소재거리 하나 추가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현실에서 얻은 상실의 슬픔을 상상이라는 꿈속 세계에서(머리를 다친건 조현 증세를 어느 정도 암시하기도 할듯) 엄마를 만나 위안을 얻고, 여기서 용기를 얻어 다시 험난한 세상 속으로 나아가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였습니다. 돌 하나를 가지고 나온 것은 아이의 무의식에 영영 남아 언제나 나를 지탱해주는 자존감의 근원이 되어 주는 장치고요. 영원한 자기최면, 믿음의 근원, 인셉션이죠.
상당한 수의 애니메이션들이 넓게 봐서 이런 맥락을 따른다는걸 생각해보면, 내려놓고 봤을 때 놀랄 것도 없는 참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다만 메타포가 너무 여러 단계로 중첩되어 있는 탓인지 전개가 너무나 의식의 흐름을 따르는 점 때문에 낮은 평가의 주요 원인이 되는데, 사실 아이의 의식 세계에서 꿈이 완벽한 이야기로 완성된다는건 그거야말로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죠. 생각의 흐름과 깨달음은 언제나 이리저리 방황하며 여러 생각들을 마주하다 어느 순간 퍼즐이 좌르륵 맞춰지며 완성되기 따름이니까요.

결국 '상상속에서 위안을 얻었으면 이젠 그만 두려워하고 현실세계으로 나가'인데, 저는 이 주제를 생각보다 훨씬 잘 풀어냈다고 봐요.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에서 인내심을 크게 향상시키는 방법 중 하나는 신뢰를 확고하게 심어줘서 믿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것도 있지만 일상에까지 적용가능한 해법이 되기에는 너무나 무리수가 많죠(확고한 신뢰, 선택에 따른 보장된 결과, 즉 믿음은 언제나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님)
재미있는건 눈 앞의 마시멜로를 다른 것으로 치환해서 생각해보라는 주문이 큰 효과를 발휘했다는 겁니다. 마시멜로 그림이 그려진 종이라던가, 먹을 수 없는 솜 덩어리로 생각해버리는게 주요했다는 말이죠. 인식이라는 것은 현실세계를 그대로 우리 의식에 투영하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볼지를 설정하는 것 부터가 인식 그 자체와 하나로서 통합되어 있습니다. 원효대사의 해골물 이야기를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만 무의식의 레벨에서부터 받아들이는 사람은 정말로 없습니다.
주인공이 감정을 닫은 이유는 엄마의 죽음 때문이었죠. 하지만 꿈속 세계에서 엄마의 죽음은 엄마의 선택이었다는 자신만의 새로운 재해석을 하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죽음을 감수했다는 새로운 감각은 상실의 아픔을 사랑으로 덧칠하는 아주 탁월한 ptsd 치료법이지요. 고통스러운 감각과 강하게 연결된 기억을 형해화하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가는 명상과 치유에서 정말로 중요한 과정입니다.
이모인 새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는 새엄마를 구출하고 함께 빠져가도록 주인공을 돕습니다. 이는 새엄마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감각도 엄마가 허락했으니 이 사람을 엄마로 받아들여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감각으로 덧씌우는 과정입니다. 새엄마가 임신한 동생 역시 마찬가지죠. 즉 현실에서 고통받는 모든 감각에 대해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으나, 엄마가 괜찮다고 허락했다. 엄마는 스스로의 죽음조차도 받아들였어. 그런데 내가 못할 게 뭐야? 그래서 이젠 괜찮아. 라고 만드는 과정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목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인 것이고요.

이런 메세지를 담는 작품은 대놓고 다 말해주면 그 감동이 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깨닫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각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눈과 귀가 즐거운 아름다운 작화와 음악은 오로지 이것을 위한 릴랙스를 조성하는 장치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은 현대예술의 속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aDayInTheLife
23/10/29 11:40
수정 아이콘
확실히 상업 영화 내지 지금까지의 지브리와는 결이 다른 현대 예술스러운 영화라는데 동의가 됩니다. 다만 그걸 풀어내고 퍼즐을 맞추는 방식도 여전히 도미노라기보단 부족한 느낌이 들긴 해요. 말씀하신대로 스케치 내지 어린 아이의 꿈과 비슷한 느낌이 더 강하게 든다고 생각이 드네요. 좋은 해석과 그 공유에 감사드립니다.
기적을행하는왕
23/10/29 12:34
수정 아이콘
이번 작품에서는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가 개입을 아예 하지 않았거든요.
"벼랑위의 포뇨" 당시 스즈키 토시오의 인터뷰를 보면, 이미 그때부터 미야자키옹은 저러한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스즈키 토시오가 대중성과, 흥행성을 감안해서 미야지키옹에게 조언을 하고, 수정을 거치게 했죠.
그리고 그 다음부터 스즈키 토시오는 "바람이 분다"에서도 개입을 최소화했고, 이번에는 아예 개입을 하지 않았죠.
어떻게 보면, "벼랑위의 포뇨", "바람이 분다", 이번 "그대 어떻게 살것인가"는 다 자전적인 성향의 작품들이고, 뒤로 갈수록 더욱 더 그 성향이 나타나고 있죠.
그리고 다시 돌아가서 "벼랑위의 포뇨" 당시 스즈키 토시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이미 저 시기에 미야자키옹은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거나 마주쳐 보기 시작했다고 하던군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구요. 그리고 스즈키 토시오가 조언한 부분 역시 이 부분, 죽음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이야기를 그렸는데, 이 파트가 우울하고 무거워서, 아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지 않는냐, 빼고 가는 것이 좋겟다.였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뺐습니다.) 아마도 이번 작품에서는 그 벼랑위의 포뇨에서 빠진 "죽음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진지하게 들어가 있는 형태인가 봅니다.

개인적으로 평론가들이 "죽음과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파트를 한번정도는 작품해석과 관련해서 대중들에게 설명해주어야 한다고 보는데, 다들 뭐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기존에 나와있는 인터뷰들도 안보고 평론을 하고 계시나?
에이치블루
23/10/30 08:02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뒷부분 이야기에 너무 동감합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부분인데 PTSD 치료법으로 말씀해주시니까 이해가 너무 잘 되네요.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김매니져
23/10/29 12:23
수정 아이콘
관객은 어린 주인공을 따라가며 볼 수 밖에 없는데 정작 주인공은 노회한 감독의 투영물 혹은 분신이라 매사 담담함과 통달한 모습에 이질감이 더 큰거 같아요.

차라리 세시간짜리 영화였다면 좀 더 매끈한 전개와 공감을 가질수 있겠으나 작화의 완성도를 보면 그건 불가능하고, 박한 평가가 아쉽지만 그 또한 이해되기에 안타깝네요.

그리고 와라와라는 자꾸 비만광고 생각나서 아...
aDayInTheLife
23/10/29 12:43
수정 아이콘
그 부분은 좀 느껴졌습니다. 주인공이 너무 어른 내지 감독의 투영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슈테판
23/10/29 19:22
수정 아이콘
커뮤니티발 평론 몇 개 중에 가장 와닿았던 이야기가
"소년과 왜가리"라는 제목보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제목이 결과적으로 작품의 이해를 도운 초월번역이라는 이야기였어요.
이 영화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것인가"를 묻기 위해 "나(=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살아왔다"를 말하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감상해야 할 것 같아요.
상징이 너무 많다보니 서사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우리가 실제로 꾸는 꿈 수준으로
aDayInTheLife
23/10/29 20:27
수정 아이콘
상징과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충돌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어요. 생각해보면 서사의 허점을 판타지 세계의 이미지로 뚫고 나간 영화가 없지 않은데, 영화 자체가 워낙 정적이라 좀 아쉬운 점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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