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입니다.
장대익의 『공감의 반경』을 읽고 썼습니다.
행성의 입주자들은 얼마나 닮았는가 part1 (
https://pgrer.net/freedom/100216)
과 이어집니다.
사실 개별적인 책이라서 따로 봐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저는 두 책을 함께 생각하면서 썼습니다.
이어지는 다음 편에는 김보영의 『종의 기원담』 이야기가 나올 예정입니다.
=========================
행성의 입주자들은 얼마나 닮았는가 part2
-장대익의 『공감의 반경』을 읽고
<2> 장대익, 『공감의 반경』
과학철학자 장대익에 따르면 ‘우리와 그들’을 편 가르려는 태도는 본능입니다. “인류의 탄생 때부터 수렵 채집기 내내 그리고 최근 1만 년 동안의 시대에서도 외집단에 대한 경멸과 혐오는 상수였다.”(장대익, 『공감의 반경』, 바다출판사, 2022, 8쪽.) 만약 이 외집단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이성적 판단이 해체되고 차별, 혐오, 폭력의 스위치가 거리낌 없이 켜집니다. “나와 다른 타자를 우리보다 못한 존재, 즉 ‘인간 이하의 존재(less human)’로 취급하는 순간 그들은 문자 그대로 짐승이요, 벌레요, 물건이 된다.”(10)
『인권의 발명』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류가 공감의 범위를 점진적으로 확장해 왔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감’이 만사를 해결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닙니다. 오히려 공감의 깊이가 위험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편 가르기는 ‘우리’(내집단)에 대한 과잉 공감에서 오는 것이며, 그 ‘과잉’이 없다면 타자에 대한 무차별적 폭력도 행사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공감을 ‘어디까지’ 적용하느냐에 있습니다.
장대익은 이를 해명하기 위해 공감을 두 종류로 나눕니다. 내집단 편향을 만드는 깊고 감정적인 공감과 외집단을 고려하는 넓고 이성적인 공감이 그것입니다. 이 둘 중 우리가 보다 추구해야 하는 것은 후자입니다. “나는 현재 인류가 맞닥뜨린 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정신적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감이 미치는 반경을 넓혀야 한다고, 즉 공감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깊이가 아니라 넓이다.”(14)
하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서(감정)적 공감과 인지(이성)적 공감 중에 우리에게 잘 작동하는 것은 전자입니다. 정서적 공감이란 감정이입인데, 이것은 자동적입니다. 반면 인지적 공감은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으로,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20) 인류의 진화 초기부터 무리를 지어 살아온 우리의 조상에게 내부자와 외부자의 구분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내부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협력 파트너지만 외부자는 대개 경쟁자이거나 침략자였기 때문입니다.(62) 하지만 인류의 마음이 거기에만 머물렀다면 지금의 문명은 없겠지요. 우리의 조상은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낯선 외부자와 협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협력을 증대해 온 것이 인류의 역사이자 세계화의 과정이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양가적인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합니다.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경우에는 타자에 대한 공격성이 증대됩니다. 전쟁 상황, 전염병 유행 상황 혹은 지지 정당이 다른 주민의 증가나 타 종교인의 집단 이주 등 위협을 느낄만한 경우는 현대에도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을 미리 방지하거나 혹은 타자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글로벌 유행이 된 코로나19의 경우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기에 중국인에 대한 테러 및 혐오가 만연했습니다. 이 전염병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를 중국 정부에서 제공했는지의 여부를 두고도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중국인에 대한 폭력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번 팬데믹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변화에 있다는 것이 과학계의 진단(<유퀴즈, 최재천 편>, tvN, 2022.05.11.)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기존의 서식지에서 살 수 없게 된 야생 박쥐들의 이동이 있었고 그 도착지 중 하나가 중국 남부였지요. 야생 박쥐 내부의 바이러스와 그 변이는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의 것이므로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기후위기는 산업혁명 이후 막대한 오염물질을 배출했고 거대한 에너지를 소비한 이들의 몫이 큽니다. 바로 경제적 부국의 시민들입니다. 중국인을 비롯해 황색 인종을 색출해서 심판의 주먹을 날린 자들은 그 방향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서적 공감은 부족 본능이기에 생존의 문제 앞에서 위험한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경제적 불평등이 절망감과 함께 할 때 등장하는 것이 폭동과 테러라고 봅니다. 그래서 글로벌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도 세계적 차원의 생활 수준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재레드 다이아몬드, 『대변동』, 김영사, 2019, 475쪽.). 강대국의 충돌로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오히려 경제적 부국이 만든 현재의 세계화와 글로벌 산업 구조화로 인한 양극화가 잠재적 위험입니다. 지속적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경우라면 정서적 공감은 부족 본능에 극단적으로 충성하게 됩니다. 핵무기의 확산과 간소화는 테러리스트가 이를 확보할 수 있는 개연성을 높입니다. 부유한 국가들의 세계화 및 글로벌 통치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되는 공동체, 혹은 그렇게 믿는 집단은 글로벌 위험의 순교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억압받는 이들을 위한 글로벌 민주화라는 서구의 해방 기획은 오히려 더 많은 극단주의를 낳았습니다. 무책임한 상대주의도 위험하지만, 자신의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여겨지는 외부의 개입은 부족 본능을 자극하게 됩니다.
장대익은 『공감의 반경』에서 ‘공감’에 대한 인간 본성을 탐구했습니다. 그는 부족 본능인 정서적 공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인지적 공감으로 나가길 촉구합니다. 책의 시작을 이렇게 열었지요. “‘타인이라는 지옥’에서 ‘타인이라는 복지’로의 변환을 상상하는 모든 세계 시민에게(5)”. 인간은 주체적 개인이기도 하지만 외부 요소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시스템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어떤 환경을 조성할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본능이라 하더라도 행동으로 나타나려면 특정한 환경 압력이 필요하며, 상황에 따라 양상도 달라집니다. 인지적 공감은 개입과 교육, 체험, 훈련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대익은 전 생애에 걸쳐서 공감을 가르치는 과정을 개발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 많은 이들이 동의한다면 ‘공감’이라는 교과목을 개설하여 운영해 볼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여기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독서입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생각, 감정, 지식 등 타인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능력이 발전합니다. 즉, 인지적 공감이 향상됩니다. 최신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뇌는 경험과 학습에 따라 많이 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뇌의 ‘가소성’이라는 것인데, 실제로 해부학적으로도 변할 수 있습니다. 독서는 인지적‧정서적‧사회적 뇌를 모두 변화시키는 가소성의 원천입니다.(209)
인지적 공감의 확장은 직접 접촉에 의해서 현실화됩니다. 사회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외집단 사람들과의 ‘접촉’과 ‘교류’가 ‘우리’라는 공동체 감각을 확장시킵니다. 하지만 무작정 접촉한다고 해서 편견이 사라지고 다정함이 솟는 것은 아닙니다. 집단 간 접촉을 통해 공감의 반경을 넓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중대한 단서가 있습니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접촉은 오히려 편견을 증폭시킵니다. 단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두 집단이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하고 둘째, 서로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친밀하고 다양한 접촉이 있어야 하며 셋째, 상위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단 간 협력이 유발되는 접촉이어야 하고 넷째, 관습, 규제, 법이 허용한 접촉이어야 한다.”(269)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