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계일주3: 오지에서 만난 FC 바르셀로나 (上편)
-신자유주의의 승리와 행성 지구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3: 마다가스카르 편>을 보고)
<1> 오지에서 만난 FC 바르셀로나
육아에 치여 부부의 낙이 없어졌다. 달리 말하면 부부의 낙은 아이가 됐다. 이대로 괜찮은가? “그럴 리가!” 했으므로 우리는 주에 한 번은 육퇴 후 함께 예능을 보기로 했다. 그렇게 고른 프로가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3>다. 우리는 전에 <태계일주 2: 인도 편>을 봤다. 아내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덱스를 흐뭇하게 봤고, 나는 뭐라도 즐겁길 바랄 따름이었다. 시즌 3에도 기존의 멤버 즉, 기안84, 덱스, 빠니보틀이 나온다고 하길래 이 예능을 제안했고, 그건 성공적이었다.
남미와 인도를 다녀온 <태계일주> 팀은 더 색다른 여행지를 찾았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아프리카 남동부에 위치한 섬나라 마다가스카르다. 이곳은 어디인가? “‘원시의 바다’를 품은 지구의 마지막 오아시스”이자 “태초의 자연을 간직한 신비한 땅”(프로그램 소개 글 中)이다.
동생들보다 먼저 출발한 기안84는 우선 에티오피아로 간다. 바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경유를 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마다가스카르의 수도인 안타나나리보로 간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해변도시인 모론다바로 가야한다. 그런데 여기서 이용하는 비행기는 작은 경비행기다. 광역버스만한 규모여서 기안84는 기겁한다. 게다가 기상 상태도 매우 나쁘다. 한참을 기다려보지만, 결국 출발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인근 호텔에 머물게 되는데 이곳은 수시로 정전이 된다. 정전이 될 때마다 기안84는 흠칫하지만, 현지인들은 ‘뭐?’한다.
다음 날 드디어 경비행기가 뜰 수 있었고, 모론다바로 간다. 하지만 여기도 종착지는 아니다. 다시 모터보트를 타고 해변 마을인 벨로수르메르로 이동한다. 뭘 이렇게까지 가나 싶지만, 기안84에게는 로망이 있다. 바로 작살 낚시를 하는 것이다. 그 문화를 여전히 간직한 이들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 고된 이동 끝에 드디어 도착한다. 장장 43시간이 소요된 여정이었다. 그렇게 아프리카 비밀의 섬에 왔고, 고대하던 오지의 현지인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세상에!
현지인은 FC 바르셀로나의 저지를 입고 있다?!
방송은 “대자연”, “원시”, “태초”, “신비” 등에 빠져서 현지인이 입고 있는 티셔츠를 도통 보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승리를 목도하고 있다.
<2> 신자유주의의 승리
꽤 예전이지만, 경제학자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고 토론하는 시민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 책의 요지는 부자 나라들이 개발도상국에게 권하는 경제 성장의 방식은 기만이라는 것이다. 경제 부국은 자유 무역이 모든 국가에게 가장 이로운 체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도상국과 후진국에게도 동참하기를 강요한다. 하지만 장하준이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부국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확인하는 것은 그 반대다. 이들은 보호무역을 통해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면서 고도화 시켰고, 그 기술력을 바탕으로 경제적 지배력을 높였다.
“부자 나라들은 자국의 생산자들이 준비를 갖추었을 때에만, 그것도 대개는 점진적으로 무역을 자유화했다.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자유 무역은 단적으로 말해 개발도상국들이 생산성 증대 효과가 낮고, 따라서 생활수준 향상 효과도 낮은 부문들에 집중하도록 만들기 쉬운 정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 무역을 통해서 성공을 거두는 나라들은 거의 드물고, 성공한 나라들의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결같이 유치산업 보호 정책을 사용해 온 나라들이다.”(『나쁜 사마리아인들』 119~120) 그래서 장하준은 이러한 경제부국의 행태를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선진국이 걷어찬 사다리를 망연자실 쳐다보고 있는 신세인가? 그럴 리가. 우리도 올랐고, 조금은 아슬아슬했지만, 막차를 잘 탔다. 냉전체제의 가장 큰 피해국이기도 했지만, 체제 경쟁 속에 수혜를 받은 나라이기도 했다. 우리 역시 자국의 산업을 세계 시장으로부터 보호하며 잘 육성했고, 글로벌 기업을 만들어 냈다. 스마트 폰이라는 최근의 사례도 떠올려보면 이와 같은 대응이 있었다.
스티븐 잡스는 휴대용 전화기를 전화기능이 있는 컴퓨터로 바꾸었다. 그것이 애플사의 아이폰이다. 2007년 1월에 처음으로 선보인 이 새로운 기기를 우리는 바로 사용하지 못했다. 2009년 11월 28일이 돼서야 처음으로 KT를 통해 들어오게 된다. 2009년은 우리나라 기업이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출시한 해이기도 하다. 삼성 갤럭시가 바로 그해 4월에 출시됐다. 그러니까 한 발 늦은 우리 기업을 위해 정부는 외국 신제품의 국내 유입을 여러 제도적 장치를 통해 규제했다. 애플사에서 스마트폰을 만든다는 소문은 업계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었고, 우리나라 기업들도 열심히 개발 중이었다. 상품에 대한 이와 같은 통제는 소비자에게는 불합리한 처우지만, 자국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방안이 된다.
사실 자유 무역이 모두에게 이롭다고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이론가들 중에도 장하준의 비판을 일부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 효과는 있다는 것이다. 우리 독서 모임에 참석했던 경제학 전공 대학원생도 이를 언급했다. 다만 그 경제학도는 이러한 방향이 우리에게 나쁠 것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한국 경제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의 글로벌 (계급) 체계가 기여할 수 있는 바도 있다. 각국이 맡은 바를 열심히 하고 선을 넘지 않는다면, 오지에도 글로벌 상품을 선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제부국이 걷어 찬 사다리를 다시 가지고 와서 기어 올라오는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 무역의 룰을 어기고, 자국의 기업에 특혜를 주면서 꾸역꾸역 올라온다. 미국은 심기가 불편하고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중국을 개탄한다. 하지만 중국은 “이게 너네가 하던 방식인데?”라고 우긴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지만, 좀 그렇다. 중국이 부자나라의 하청을 받아서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할 때는 좋았다. 중화민국이 세계 시장에 쏟아내는 값싼 상품과 서비스는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마음껏 소비할 수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를 만들었다. 그러다 조금씩 선을 넘기 시작한다. 인공지능, 유전공학, 드론, 전기차, 우주공학 등 최첨단 기술 개발에 힘을 쏟는 것이다. 이것은 원래 기존 부국의 몫으로 도상국이 해서는 안 된다.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글로벌 분업화이기도 하다. 시장 자유화 이론가들은 각국이 가장 경쟁력 있는 부분을 맡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그래서 부자나라는 첨단 기술 개발을 하고, 인건비가 싼 나라는 노동력을 맡고, 자원이 많은 나라는 원자재를 제공한다. 미국은 반도체 설계를 하고, 일본은 소재‧부품‧장비를 제공하고 우리와
대만은 제품 생산을 맡는다. 반도체에 필요한 원자재는 중국 등에서 제공하고 필요하다면 노동력도 보탠다. 그렇게 다양한 산업들이 글로벌 협력‧분업 체계로 돌아간다. 이렇게 최적화된 생산은 값싼 최종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글로벌 시장에 보급된다.
사다리는 걷어찼지만, 아프리카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의 주민에게도 글로벌 상품이 닿는다. 원조인지, 선물인지, 구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거나 가는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