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4/06/25 06:50:56
Name 계층방정
Link #1 https://brunch.co.kr/@wgmagazine/35
Subject [일반] 턱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 - 턱? 빗? 유방?

빛날 희(熙)는 뱀/여섯째천간 사(巳)에서 유래한 한자로, 지금은 아래에 불 화(火=灬)가 들어가 있지만 옛날에는 火 없이 巸로 썼었다. 여기에서 巳를 뺀 부분은 신하 신(臣)과 비슷하지만 다른 한자다. ???? - 이것은 '턱 이'라고 하는 한자로, 유니코드로는 U+268DD 코드에 해당하는데 이게 유니코드 기본 영역이 아니라서 많은 글꼴이나 프로그램에서 깨져 나온다. 저거보다 더 臣과 비슷하게 생긴 ????, 유니코드로는 U+268DE도 있는데 이것 역시 자주 깨져서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6677b942d9079.png?imgSeq=27829

왼쪽의 두 글자는 턱 이로 각각 유니코드 U+268DD, U+268DE. 오른쪽 글자는 신하 신(臣).

熙도 손으로 쓸 때에는 턱 이 부분을 臣으로 쓰는 경우가 잦지만, 강희자전에 이 글자가 실려 있지 않다 보니 유니코드에서도 뒤늦게 U+242EE 코드에 추가되어서 컴퓨터에서는 제대로 쓰기 어렵다. 한편 한자 글꼴의 표준으로 통하는 강희자전에서는 熙의 턱 이를 U+268DD로 쓴 煕(유니코드 U+7155)로 쓰지만, 현대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턱 이를 U+268DE로 쓴 熙를 더 선호한다.

6677bbe257e0d.png?imgSeq=27830

표준국어대사전의 빛날 희(熙), 강희자전의 빛날 희(煕), 턱 이 대신 신하 신(臣)을 쓴 빛날 희

다음 네 글자는 이 턱 이에서 파생된 글자들이다. 현대에 자주 쓰이는 글자는 없다시피하지만 턱 이의 자원을 추측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먼저 살펴보자. ('아가씨 희'라고도 하는 姬를 계집이라고 풀이한 것은 어문회 급수 한자 설명을 따르다 보니 이렇게 된 것으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이 말에 지금처럼 여자를 낮잡아 부르는 의미는 없습니다. 옛날식으로 여자를 평범하게 가리키는 말입니다.)

姬(계집 희) - 무희(舞姬), 희첩(姬妾) 등, 어문회 2급

宧(방구석 이) - 급수 외 한자

䇫(빗 기) - 비기(篦䇫) 등, 급수 외 한자

頤(턱 이) - 이화원(頤和園), 해이(解頤) 등, 어문회 특급

6679e530e80c1.png?imgSeq=28259턱 이와 이에서 파생된 한자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한자 모양에 일관성이 없는데, 강희자전의 글꼴인 頤는 수록하지 않고 熙에서 사용한 U+268DE 꼴의 턱 이도 쓰지 않고 대신 頥를 썼다.

다행히도 이들을 파생시킨 턱 이는 깨지는 반면 다른 한자들은 깨지지 않는다. 그럼 가장 근본이 될 턱 이의 옛 형태부터 살펴보자.

6677c145a4e0c.png?imgSeq=27845 

턱 이의 금문, 설문해자 소전, 전초고문자.

설문해자에서 이것이 턱을 그린 글자라고 했고, 또 이 글자에 뜻을 더하기 위해 頁(머리 혈)을 덧붙인 頤(턱 이)가 있다 보니 이 그림은 턱 그림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이 그림만으로는 턱 그림인지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더 많은 자료를 제공하는 글자가 있다. 바로 姬(계집 희)다. 이 글자는 고대 중국의 8성 중 하나인 희성(姬姓)으로 주나라의 왕성이기 때문에 주나라 금문에도 많이 나오고, 심지어 갑골문에도 나온다.

034217.png姬의 갑골문이 적혀 있는 《갑골문합집》 34217. 출처: 國學大師

3947.gif

위의 갑골문에 적혀 있는 姬. 출처: 國學大師

이 글자는 지금과는 달리 턱 이에 해당하는 부분이 왼쪽에 붙어 있는데, 위에서 나온 턱 이의 금문 중에서는 맨 왼쪽에 가까워 보인다. 다른 姬의 갑골문에서는 같은 부분이 세 번 반복되기도 하고, 두 번 반복되기도 하고, 위 갑골문처럼 따로 떨어져 있기도 하고 붙어 있기도 하다. 女 대신 每(매양 매)가 많이 들어가는데 의미에는 차이는 없다.

6677c4ddc28ff.png?imgSeq=27853

姬의 또 다른 갑골문들. 출처: 小學堂

그런데 왼쪽에 들어가는 부분이 비슷해 보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금문은 어떨까?

6677c89422686.png?imgSeq=27854

姬의 금문. 출처: 國學大師

금문에서는 姬가 주나라 왕성의 의미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식별하기는 비교적 쉬울 것이고, 따라서 저 얼핏 보면 달라 보이는 글자들이 모두 姬라는 것을 찾아낼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위의 서로 달라 보이는 턱 이의 옛 형태들도 한 형태에서 변형된 형태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그런데 저 턱 이라고 하는 글자가 저렇게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다면, 진짜는 무엇을 본뜬 것일까? 이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설인 '턱'으로, 곽말약은 수염이 난 턱을 본뜬 것이라고 보충 설명했다. 다른 하나는 '빗'으로, 나중에 뜻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竹(대나무 죽)을 더해서 䇫(빗 기)를 만들었다는 설이다. 마지막은 시라카와 시즈카의 설로, 여자의 유방을 본떴다는 것이다. 나중에 뜻을 분명하기 위해 女를 더해서 姬(계집 희)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姬의 자원은 세 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 하나는 턱 이가 단순히 소리만 나타낸다는 설이고, 하나는 '빗으로 머리를 빗는 여성'이고, 하나는 '유방이 갖춰진 성숙한 여성'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떨지? 턱일까, 빗일까, 유방일까?

이 설들을 검토하면서, 같은 부분이 세 번 반복되는 글자들 때문에 유방 설에 의심을 품었다. 그러면 세 개의 유방이 있는 여자를 본뜨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런데 鬲(다리굽은 솥 력)의 풀이를 보고 다시 유방 설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6677cba7e41a5.png?imgSeq=27855

鬲의 갑골문. 출처: 小學堂

14413267262226.jpg

상나라 시대의 도기로 만든 역(鬲). 허난성 정저우시 상청바이자좡(商城白家庄) 출토. 출처: 雅道

이 역은 세 발 달린 솥인데 솥 다리가 유방과 유두를 본따서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유방을 본뜬 글자라도 꼭 유방이 두 개만 있어야 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쩌면 유방 모양을 본뜬 빗이 턱 이의 본래 뜻이었을지도 모른다.

姬의 뜻을 더 추정하기 어렵게 하는 것은 이 글자가 갑골문에서는 단순히 제사의 이름으로 쓰였기 때문에 용례에서 뜻을 추정할 수 없고 다만 그림과 후대의 파생 글자만을 분석해서 추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턱, 빗, 유방 이 세 가지 중에서 무엇이 맞을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위의 그림들을 보면 頤나 姬의 다른 형태 중 전혀 턱 이와 상관 없어 보이는 글자들도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6677cff794cb5.png?imgSeq=27856

頤와 姬의 다른 형태.

이 글자들은 턱 이 대신 阜(언덕 부)가 들어간 모양새다. 뜻과도 소리와도 전혀 상관 없는 阜가 나타난 까닭은 이 阜가 턱 이의 옛 형태와 닮았기 때문이겠다.

한편 頤는 턱 이 대신 소리를 나타내는 한자로 운모가 같은 止(그칠 지)를 써서 頉로 쓰기도 한다. 이 글자는 거의 쓰이지 않으나, 한국에서는 '탈나다' 할 때의 '탈'을 표기하고자 하는 한국식 한자로 쓰기도 한다. 이렇게 기존에 있던 한자를 한국 고유의 뜻이나 소리로 달리 쓰는 한자를 국의자나 국음자라고 한다. 頉를 '탈날 탈'로 쓰는 것은 국음자에 해당한다.


요약

턱 이는 턱, 빗, 유방을 본뜬 상형자라는 세 가지 설이 있다.

턱 이에서 姬(계집 희)·宧(방구석 이)·䇫(빗 기)·頤(턱 이)가 파생되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닉언급금지
24/06/25 10:08
수정 아이콘
갑골자 보고 아, 아랫텃을 본딴 글자인가보다 했는데 갑분유방 덜덜덜

확실히 금고문 이야기는 뻗어나가는 상상력이 참 인상적이네요.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계층방정
24/06/25 21:23
수정 아이콘
상상력도 중요하지만, 관련 있는 모양들을 꿰뚫는 통찰력도 필요해 보입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24/06/25 10:48
수정 아이콘
저게 턱이군요. 신이라고 지금껏 생각했었습니다
계층방정
24/06/25 21:24
수정 아이콘
워낙 臣과 비슷하게 생겨서 주목하지 않으면 쉽게 헷갈릴 것 같아요.
24/06/25 11:11
수정 아이콘
오늘도 잘 배웠습니다.
이형의 자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악필에 불과했다면, 학자들이 얼마나 분노할까 싶습니다.
계층방정
24/06/25 21:38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지금은 또 부정되는 분위기라고는 하는데, '엘리제를 위하여'가 실은 테레제를 위하여를 쓴 건데 베토벤이 너무 악필이어서 사람들이 잘못 읽었다는 설이 떠오르는군요.
마일스데이비스
24/06/25 12:57
수정 아이콘
상나라 시대 도기는 왠지 인조인간도기는 왠지 인조인간 19호 엉덩이같군요
계층방정
24/06/25 21:40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 대로 다시 보니 엉덩이 같기도 하네요.
24/06/25 19:30
수정 아이콘
진실이 뭐가 중요합니까 역시 유방이 맞는 듯 크크크크
계층방정
24/06/25 21:40
수정 아이콘
진실이 뭐가 중요합니까 역시 이런 건 보는 사람의 마음 속에 진실이 있는 법이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101938 [일반] 요즘 본 만화 감상 [22] 그때가언제라도6669 24/07/22 6669 3
101937 [일반] 큐피드의 이직 [1] 번개맞은씨앗3849 24/07/22 3849 1
101936 [정치] 김건희 윤석열 부부가 이렇게 막나갈수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60] 아수날10406 24/07/22 10406 0
101935 [일반] 『둔황』 - 허무 속에서 찾은 역사의 의미 [4] meson2188 24/07/22 2188 9
101934 [일반] 고 김민기 사망으로 생각해본 대한민국 대중가요 간략 흐름 [2] VictoryFood2870 24/07/22 2870 7
101933 [일반] 아침에 출근하며 미친자를 만난 이야기 [39] 수리검7080 24/07/22 7080 53
101932 [일반] 바이든, 당내 사퇴압박에 재선 전격 포기…美 대선구도 급변 [112] Davi4ever15494 24/07/22 15494 0
101931 [정치] [속보] 바이든, 미 민주당 대선 후보직 사퇴 [28] watarirouka9300 24/07/22 9300 0
101930 [일반] 이런저런 이야기 [6] 공기청정기3083 24/07/21 3083 5
101929 [일반] (글말미 약스포)「Despicable Me 4」(슈퍼배드4): 뜨끈한 국밥 한그릇 [1] Nacht2649 24/07/21 2649 3
101928 [정치] 윤석열 각하와 김건희씨덕분에 대한민국 정부의 위계질서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51] 아수날12262 24/07/21 12262 0
101927 [일반] [서평]《자아폭발》 - 모든 인류 역사의 비극을 자아 탓으로 돌릴 수 있는가? [5] 계층방정2531 24/07/21 2531 3
101926 [일반] 임진왜란의 2차 진주성 전투, 결사항전이냐 전략적 후퇴냐 @.@ [20] nexon3869 24/07/21 3869 3
101925 [일반] 안락사, 요양원, 고령화, 독거 노인.. 거대한 재앙이 눈앞에 있습니다. [57] 11cm7244 24/07/21 7244 17
101922 [일반] [팝송] 프렙 새 앨범 "The Programme" [6] 김치찌개2895 24/07/21 2895 1
101921 [일반] 질게에 글올린지 1년된 기념 적어보는 인생 최고점 몸상태 [20] 랜슬롯6572 24/07/20 6572 11
101920 [일반] 인간은 언제 태어나는가 [6] 번개맞은씨앗4296 24/07/20 4296 5
101919 [일반] 안락사에 대하여(부제: 요양원 방문 진료를 다녀본 경험을 바탕으로) [64] 아기호랑이7080 24/07/20 7080 29
101918 [일반] 삼성전자. 버즈3 프로 사전 판매 문제 공지 [70] SAS Tony Parker 11333 24/07/19 11333 2
101917 [일반] 윈도우 블루스크린 (크라우드스트라이크 보안프로그램) [16] 윙스8336 24/07/19 8336 1
101916 [일반] 국내 엔터주들의 연이은 신저가 갱신을 보고 드는 생각 [93] 보리야밥먹자13537 24/07/19 13537 5
101915 [일반] 동성부부 피부양 자격 인정 [78] 10003 24/07/19 10003 90
101914 [일반] 억조 조(兆)에서 파생된 한자들 - 홍수를 피해 달아나다 [6] 계층방정3943 24/07/19 3943 5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