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다루는 책은 영국의 심리학자 스티브 테일러의 《자아폭발》입니다. 테일러는 영국 심리학회의 자아초월 심리학 분과 의장을 지냈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성가 100인'에 선정된 인물입니다. 2003년 《Out of Time》 발간을 시작으로 꾸준히 책을 내고 있으며 비종교인임에도 영국 BBC 라디오 방송 〈오늘의 기도〉(Prayer for the Day) 방송 진행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 책 《자아폭발》은 2005년에 나온 테일러의 초기작으로 20년 연속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한국에는 2024년에 번역 출간되었고, 나오자마자 주요 일간지의 추천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자아폭발》은 기원전 4000년경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인간이 '개인성'을 자각하게 된 사건을 '자아폭발'이라고 하고 이 사건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전쟁과 범죄, 남성 지배, 불평등, 환경파괴와 신체학대 등 인류의 온갖 정신질환적 병폐의 시작이라고 지적합니다. 더 나아가서, 현대에 와서야 이 정신질환에서 인류가 벗어날 초월의 기회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책의 원제는 The fall, 곧 타락인데, 이 타락이 무엇이냐 하면 곧 번역 제목인 자아폭발을 가리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타락했듯이, 인류가 자아를 가지게 되고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책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추천의 글
들어가며
1부 타락의 역사
01 인류는 무엇이 잘못되었나
02 타락 이전 시대
03 타락의 시작, 폭력과 광기의 시대
04 타락하지 않은 사람들
05 인류 역사의 대전환, 자아폭발
2부 타락의 심리학
06 새로운 정신의 출현
07 정신적 불화로부터의 탈출
08 사회적 혼돈의 기원 1 - 전쟁
09 사회적 혼돈의 기원 2 - 가부장제
10 사회적 혼돈의 기원 3 - 사회적 불평등
11 신과 종교의 탄생
12 육체로부터의 분리
13 시간의 자각
14 자연의 종말
3부 타락 초월 시대
15 1차 물결 - 자아인식의 초월
16 2차 물결 - 새로운 공감인식의 확산
17 인류 의식의 진화를 위하여
나가며
주석
1부에서는 인류 사회의 오점으로 전쟁, 가부장제, 사회적 불평등을 들고, 이와 더불어 현대 인류가 겪는 정신적 고통이 원시 사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병폐임을 지적합니다. 원시 사회나 현대까지 유지되는 수렵채집인 사이에서는 전쟁이 매우 드물고, 민주주의와 성적 평등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농업 때문에 노예제, 남성 지배가 발생했다고 하지만, 초기 농경사회도 수렵채집인들처럼 평등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계급제의 온상이라는 도시에서도 초기에는 평화와 평등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고 계급, 전쟁, 가부장제를 도입한 인도유럽인들이 세계 각지로 이주해 원주민들의 문명을 파괴하고 자리잡으면서 지금과 같은 타락한 사회로 바뀌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각지의 타락하지 않은 문명에서는 전쟁, 불평등, 성적 억압, 부성선호를 찾아볼 수 없으며, 세상을 지배하는 신이 아니라 세상과 세상에 충만한 영들과 자연 현상과 결합하는 종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타락하지 않은 문명의 민주주의가 미국 헌법을 거쳐 현대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연과 종교와 삶이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에 환경 파괴도 없으며, 고립으로 인한 정신질환도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인도유럽인들에게 있는 개인적인 자아와는 달리 이들에게 사회의존적인 자아가 있다는 점에서 비롯합니다.
이런 개인적인 자아 인식은 신화나 매장 관행의 변화를 통해 기원전 4천년 무렵부터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하라시아의 건조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황폐한 자연 환경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반성 능력을 기르고 한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 이기심을 발달시키면서 자아폭발이 처음으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2부는 이렇게 나타난 자아폭발이 어떤 타락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소개합니다. 물론 이 자아폭발 사회가 세계적으로 우세 문명이 된 만큼 발명·창조성·합리성과 같은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아폭발로 인해 인류는 주변 자연과 연결이 끊어지면서 고독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아의 수다를 감당해야 했습니다. 또 자연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잃으면서 영적인 감각과 현실감도 잃어버렸습니다. 또 죽음이 개인적인 자아의 종말이라는 심히 두려운 사건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런 정신적인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물질을 추구하고, 지위를 추구하다 보니 현대 사회는 끊이지 않는 경쟁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정신적인 불화는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아폭발이 불러온 물질 추구와 지위 추구, 그리고 만물과의 영적인 결합을 대신하는 집단적 정체성을 부여하는 행사로서 전쟁이 생겨났습니다. 또 개인화된 전쟁으로서 살인·강간·강도와 같은 범죄가 일어났습니다. 남성의 자아인식이 여성보다 강해짐에 따라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물질 추구와 지위 추구 때문에 불평등이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자아 폭발은 현대 사회의 세 가지 불행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아폭발은 원시 사회에서 나타나는 두 가지 일반적인 종교의 특징을 앗아갔습니다. 첫째는 세상 전체와 모든 것에 생기를 불어넣는 힘이 있다는 인식이고, 둘째는 죽은 사람들과 자연들에 존재하는 영혼입니다. 자아를 인식한 인간은 생기와 영혼의 힘을 인식할 수 없게 되었고, 죽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죽음을 극복하고 영혼의 힘이 없는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세상을 위에서 다스리는 신을 만들어냈습니다.
자아폭발은 몸과 분리된 자아를 인식하게 했고, 자아로 통제할 수 없는 몸을 열등한 것으로 인식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육체의 자연스러운 욕망은 죄악이 되었고, 성관계는 금기시되었습니다.
자아폭발은 시간의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고도로 추상화된 자아가 쉴새없이 수다를 떨면서 현재가 아닌 과거와 미래를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수많은 발전을 낳았지만 죽음을 더 우울한 것으로 만들고 현재에 충실하게 살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자아폭발은 환경파괴를 불러왔습니다. 자아를 인식하기 전의 인간은 환경과 연결되어 있어서 자연과 하나되어 있었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연을 착취하는 것을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자아폭발은 자아와 환경, 육체를 분리했고, 자연현상이 살아 있음을 인식할 수 없게 했고, 자연을 지배해야 한다는 욕구를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자연을 파괴하면서 종말로 가는 급행열차를 타고 질주하고 있습니다. 이 열차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자아폭발을 초월하는 것뿐입니다.
3부는 자아폭발을 초월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먼저 자아를 초월할 것을 가르치는 인도 고대 철학과 불교, 자이나교를 소개하고, 그와는 독립적으로 일어난 중국의 도가와 도교 사상과 그리스 철학도 이야기합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자아를 초월하기 위해 찾아낸 위대한 발견은 바로 명상입니다. 명상은 단순히 자아폭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넘어서 더 초월적인 경지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고 이 초월적 사상들은 공통적으로 전쟁, 남성 지배, 불평등을 거부합니다.
2차 초월 운동은 유럽의 노예제 폐지에서 시작합니다. 뒤를 이어 왕정이 폐지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되었으며,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나 남성 우위 사회가 약화되었습니다. 낭만주의 예술운동으로 자연과 인간 간의 연대감이 강해졌습니다. 20세기 후반에는 전쟁이 인류의 죄악으로 자리잡고, 육체와 영혼의 이원론을 극복하는 성과 몸의 자유가 선포됩니다. 타락한 종교인 유일신교가 약화되고 이를 대신하는 명상과 영성 운동이 퍼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타락 초월의 운동은 인류가 타락한 사회의 환경 파괴와 온갖 사회적 병리 현상을 극복하고 훨씬 더 이상적인 사회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인류는 파멸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