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부모의 후회는 씀씀이가 크지
영상 속 전문가와 진료 약속을 잡는 건 대학 병원보다 수월했다. 다만 사전 질문지를 작성하고, 그의 강의 영상 한두 개 정도를 먼저 봐야만 했다. 거부감은 없었다. 어느 병원을 가도 의료진들은 부모에게 아이가 어떠한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꼬치꼬치 묻는다는 걸 알고 있었고, 각종 소아 검사도 부모가 작성해야만 하는 설문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어차피 병원 가면 으레 할 것, 미리 집에서 한 후에 제출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강의 영상도 마찬가지였다. 진료실에서 의미 있는 대화를 하려면 우리에게도 배경 지식이 필요했다.
다만 질문 항목에 부모(혹은 아버지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의 직업을 묻는 란이 있는 게 좀 의아하긴 했다. 하지만 자폐라는 것이 아버지로부터 대물림 되는 거라는 게 그 전문가의 이론이고, 따라서 현재 아빠의 상태를 알아두려 하는 것 자체는 그런 면에서 그럴 수 있다고 스스로를 이해시켰다. 짧지만은 않은 강의 영상은, 아내와 함께 영화관 데이트 하듯, 그러나 관람객이라기보다 평론가로 빙의해서 봤다. 우리는 영화 취향이 매우 달라 뭐 하나 같이 관람하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 막내 덕분에 각자의 취향이라는 건 모처럼 무의미한 것이 됐고, 그래서 즐거웠다. 위기감과 설렘, 답답함과 감사함이 공존하는 묘한 기분을 처음 느꼈다. 우린 동업자, 아니 동역자였다. We were in this together.
그리고 예약 당일, 우리 모두는 아이용 짐들과 회복에의 기대감을 작은 해치백에 꾹꾹 눌러 담아 먼 거리를 이동했다. 교통 지옥 서울에서도 교통 상황이 좋지 않기로 악명 높은 동네에 있던 병원이었지만 멀지 않았다. 아이들이 뒤에서 자다 깨다 하는 사이 운전석의 나와 조수석의 아내는 전설을 마주하기 전 화톳불 앞에 모여앉은 모험가들처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갔는데, 우리의 화제는 막내와, 그 전문가의 기적 같은 치료와 그 치료로 효과를 본 사람들의 증언들로 가득했고, 그래서 즐거웠다. 세상에 100% 치료는 없기에 마음 한 켠의 불안감이 불쑥불쑥 치밀곤 했지만, 기적을 이미 손에 잡은 것처럼 모른 척했다.
병원은 생각보다 좁고 어두웠다. 그 동네 집값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으나 아픈 아이들의 부모들이 상주하는 인터넷 카페에서 꽤나 자주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걸 생각하면 의외였다. 하지만 그건 사실 건물이 실제로 작거나 병원 공간이 물리적으로 협소해서 받은 느낌은 아니었다. 우리 차례를 기다리며 가만히 병원 내부를 관찰하고 있으려니, 그리고 나의 그 첫 인상을 곰곰이 복기하자니, 그 좁고 어둡다는 느낌은 대기 의자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빽빽했다는 것과 더 깊은 관계가 있었다. 아이들은 죄다 처음 보는 기구나 장치들을 끼고 있거나, 아마도 치료 행위리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하고 있었다. 세상에 아픈 아이가 이렇게 많았나. 이 많은 가정들이 남모를 속앓이를 하며 살아왔던 건가. 내가 모르는 세계가 거기 있었다.
드디어 막내 이름이 호명됐고, 우리는 영상에서만 보던 전문가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는 내 품에 안겨서 문 안으로 들어서는 막내를 슬쩍 쳐다봤다. 관찰하려는 눈은 아니었다. 정말 1초도 시선이 머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건 이미 내린 결론을 확인하는 시선에 가까웠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부부가 자리에 앉자마자 ‘자폐’라고 진단을 내렸다. 그 전의 그 어떤 의료 전문가들도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어쩌다 뚫어낸 큰 병원의 의사들이나, 소개에 소개를 거듭받아 찾아간 개인 전문 병원의 의사들이나, ‘조금 우려되는 모습이 보이지만 아직 돌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이니 더 지켜볼 여지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며 ‘자폐’라는 단어를 회피했는데 이 사람은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는 상담이 길게 이어졌다. 솔직히 말해 지금 내게 남은 인상은 ‘상담’이라기보다 그의 이론에 관한 강연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 오기 전에 미리 봐두어야 했던 영상의 내용을 그가 그 영상 그대로, 다만 실시간으로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 이론 자체는 주류 의학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내 짧은 상식으로, 그리고 어쩌다 읽었던 몇 가지 논문으로부터 배웠던 아주 작은 지식을 바탕으로 봤을 때 허무맹랑한 건 또 아니었다. 나중 이야기지만 인체와 영양 분야 교수님께 문의했을 때도 같은 대답을 받았다. 아직 체계 잡힌 이론은 아니지만 연구자들이 있고, ‘아니다’라고 확언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고. 여기서 그 이론을 말하면 한 전문가와 병원이 특정될 수 있어 상세한 설명은 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그 시간의 끝에 그는 다시 한 번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자폐는 아빠에게서 올 확률이 높다는 말을 하며 “번역하신다며?”라고 물었다. 사전 설문지에 있던 아빠 직업란에 우리는 그렇게 적어냈었다. 그걸 이 전문가는 기억하고 있었다.
“제가 보기에는 아버님도 어렸을 때 자폐 비슷한 특성이 있었을 거 같아요. 다만 그게 여러 가지 요인으로 나아진 거지. 그런데 그런 사람들 특징이 손발을 쓰는 건 잘 못하고 머리는 잘 써. 아버님도 손 쓰는 거 잘 못하시지?” 어머니조차 나를 어렸을 때부터 ‘브로큰핸드’라고 불렀을 정도니, 그 질문에 나올 답은 하나뿐이었다. 그 전문가는 기다렸다는 듯이 “거봐. 괜찮아. 그런 사람들은 머리 쓰면서 살면 돼. 번역가라면 직업을 잘 찾았네.”라고 말했다.
나는 뭔가 깨달음을 얻은 듯 마음이 시원해졌다. 그래서 아내의 표정이 순간 찌푸려지는 걸 보지 못했다. 그도 보지 못했고, 두 남자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래서, 어떤 번역을 하시는데?”
“저는 IT 쪽에 있습니다.”
“아, IT. 요즘 IT 개발자들이 돈을 그렇게 잘 번다면서. 아버님도 그러시겠네.”
“아니, 그건 개발자들이고, 저는 그냥 문서 번역만 해서...”
“그게 그거지 뭐. 아버지가 돈을 잘 버시는구나.”
그의 마지막 말은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뭔가를 보이지 않는 노트에 적는 느낌이랄까. 그러고는 상담이 끝났다.
다음 순서는 약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약 소개를 들었는데 가격별로 상, 중, 하가 있었다. 이름도 따로 있었는데 기억은 나지 않는다. 심각한 아이일수록 효과도 좋고 가격도 센 걸 먹어야 한다는 게 설명의 골자였던 것만 기억난다. 그리고 그 심각함의 정도는 전문가께서 판단하신다고 한다. 아까 상담할 때 아이가 대단히 심각하다거나 이 정도면 양호한 정도라거나 하는 언급은 딱히 없었다. ‘자폐’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중간 정도의 약을 예상했다. 하지만 설명을 끝낸 간호사는 망설임 없이 가장 높은 가격의 약을 처방한다고 고지했다. 한 달치가 100만원을 훌쩍 넘는 패키지였다. 그걸 1년은 복용해야 한단다. 돈도 돈이지만 “우리 아이가 그렇게 심각한 수준인가요?”라는 질문이 저 속에서부터 창자들을 긁고 튀어나왔다. 아까의 그 시원했던 희망은 온데 간데 없었다. 간호사는 난처하다는 듯이 ‘그건 선생님께서...’라고 말을 흐렸다.
놀란 아내와 나는 잠깐 대기실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눴는데, 결국은 그 가장 비싼 약을 사기로 했다. 그 때의 우리는 그의 이론을 검증하거나 반론할 전문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아이의 심각성을 스스로 진단할 능력은 더더욱 없었다. 우리가 가진 거라고는 희망으로 가장한 후회, 혹은 그 후회에 대한 때 이른 두려움이었다. 혹시 진짜 이 약을 먹고 나을 수도 있잖아, 라는 그 가느다란 가능성 한 가지가 우리의 지갑을 열게 했다. 하지만 우리는 둘 다 알고 있었다. ‘그 때 그 약을 먹였어야 했다’는 후회가 ‘그 때 우리 생돈 날린 거네’라는 후회보다 막중하고 끔찍하리라는 것을. 그게 지갑을 열고 있는 가장 강력한 손이라는 걸.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죄책감을 그 날 우리는 일시불로 해결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돈이 딱히 아깝지는 않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고 했다.
“그 선생님, 아까 상담할 때 막내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었어. 전부 우리가 알려줬지.”
“그거야 당연하지. 그 선생님은 우리를 처음 보니까. 지금은 우리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잖아.”
“그런데 그 내용을 내가 다 사전 설문지에 적었거든. 그걸 보고 왔으면 설문지와 똑같은 질문을 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
“하루에도 환자들 수십 명씩 보니까 기억이 안 날 수 있겠지. 나이도 많아 보이시던데.”
“그런데 유독 당신 직업은 기억하더라? 번역가라고?”
“...어라...”
“그리고 IT 개발자 돈 많이 번다고 막 가져다 붙이더라?”
“...어라라...”
그리고 차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모험가의 화톳불은 꺼진 지 오래고, 모험가들은 자신들이 겪은 전설이 정말 모험인 건지, 일개 목적지에 왔다 갔다는 흔적만 기념처럼 남긴 건지, 사실 정말 모험이라는 것은 우리의 상상과 달리 맥락 없는 스냅샷들의 재구성에 불과한 것인지, 그건 그것대로 의미가 있지는 않은지, 혹은 완전히 무의미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관건은, 누구에게는 강력하고 누구에게는 미약한 약효 뿐인데, 문제는 나라는 사람이 단 한 번도 복권이나 상품 추첨이나 보물찾기에조차 당첨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브로큰핸드 그 자체. 우리 막내, 자폐만이 아니라 이런 것까지 대물림 되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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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큼 ‘공포 마케팅’이 횡행하는 곳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의료계, 법률계, 그리고 사교육계에 이르기까지,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바닥심리를 바탕으로 지갑 열기를 강요하죠. 배우자 분께서 냉철하게 상황 파악을 잘 해 주고 계셔서, 헤쳐나가시는데 믿음직스러우시겠다는 느낌입니다. 아무쪼록, 이 풍진 세상 식솔분들과 단단한 결속의 힘으로 견뎌나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