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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2/04 01:51:11
Name 땡이
Subject [일반] 역사를 찾아서
kbs 1 radio의 '다큐멘터리-역사를 찾아서'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삼국시대를 중심으로 우리 고대사를 탐색하는 내용이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고구려, 백제, 가야를 거쳐 현재는 통일신라의 경문왕대까지 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방송을 들을 때면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 때부터입니다. 여러 부분에서 너무 비교가 되서 말입니다.
예를 몇 가지 들어볼까 합니다.

먼저 고대 로마시대에 있었던 파르살루스(Pharsalus) 전투를 보겠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는 로마의 대표적인 두 영웅입니다.
그리고 이 싸움으로 운명이 갈립니다. 로마 공화정의 운명과 함께..
BC 48년 8월 9일, 그리스 파르살루스 평원에서 격돌했던 양쪽 군대의 전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폼페이우스 : 군단병 45,000명(110개 대대), 기병 7,000
카이사르   : 군단병 22,000명(80개 대대),  기병 1,000

폼페이우스군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무엇보다 기병에서 7,000 대 1,000으로 압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승리합니다. 그것도 일방적인 승리였습니다.
승리의 요인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유를 상세히 알 수 있습니다.
양쪽 군의 상황과 병력 구성, 전투 배치도, 전투의 전개 과정이 모두 기록으로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관심만 있다면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2,000년전 파르살루스 평원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500년을 흘려보내고 무대를 우리가 사는 한반도로 옮겨보겠습니다.
서기 523년, 백제 성왕이 즉위하였고, 그 해 8월 고구려의 안장왕이 백제를 공격합니다.
이 싸움에 관한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고구려 군사가 패수에 이르자 성왕이 좌장 지충에게 보병과 기병 만명을 주어 출전케 하니, 드디어 지충이 적군을 물리쳤다.'

전투의 규모, 전개, 좌장 지충, 그리고 어떻게 승리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방송에서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주로 전투가 벌어진 패수(浿水)가 어디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기록이 워낙 빈약하기 때문인데, 이 위치마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패수(浿水)는 학자에 따라서 대동강, 또는 예성강으로 본다고 합니다.
대동강은 고구려의 수도가 있는 평양이고, 예성강은 황해도에 있습니다.

이보다 앞선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공으로 백제는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게 빼앗겼습니다.
수도마저 남쪽에 있는 웅진(공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불과 50년후에 대동강, 예성강까지 올라가서 전투를 벌인 것이 됩니다.
기록을 따르자면 고구려가 먼저 침공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그 지역은 백제가 이미 점령하고 있었다는 말도 됩니다.
뭔가 앞뒤가 개운치 않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이런 기록들(후대 학자들을 곤란케 하는)이 많더군요.
그렇다면 이 전투에 대한 고구려 본기의 기록을 찾아봐야 할텐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장왕 4년, 왕이 군사를 보내 백제를 침공하였다.'

전쟁기록 하나씩만 예로 들었지만 비단 전쟁기록뿐 아니라 모든 부분이 다 그렇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고대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중국, 일본측 기록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습니다.
서기 427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깁니다.
삼국사기에서 이 부분의 기록은 4글자입니다.

'이도평양(移都平壤)'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는 뜻입니다. 당시는 고구려의 최전성기였습니다. 왕은 걸출한 군주인 장수왕이었고요.
따라서, 천도는  순조로운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중국 사서에 백제 개로왕이 보낸 국서가 한장 있습니다.
당시 백제 제 21대 임금이었던 개로왕은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심각한 군사적 위협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472년, 중국 북조(北朝)인 위나라의 황제에게 국서를 한장 보냅니다.
위나라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하고 고구려를 비방하는 내용인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지금 연(璉, 장수왕)은 죄를 지어 나라는 어육(魚肉)이 되었고, 대신과 호족들의 살육행위가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것은 고구려의 평양천도가 순탄하지 않았고, 천도 후에도 극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 사서가 없었다면 아마 몰랐을 내용입니다. 우리측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처럼 중국측 기록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외국의 기록에는 항상 역사왜곡이 있다는 것이 또 문제입니다.

서기 581년, 수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합니다.
서기 598년, 고구려의 영양왕은 수나라를 선제공격을 합니다.
이에 수문제가 육군과 수군을 합친 30만 대군을 출동시켜 고구려를 칩니다.
수서동이열전에 이 기록이 있는데 장마와 전염병, 그리고 태풍을 만나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퇴각한 것으로 나옵니다.
이로부터 30년후 수양제가 다시 고구려를 침공합니다.
그런데, 이 때 수양제의 출사표를 들어보면 지난 날의 패배를 스스로 자인하는 듯한 내용이 나옵니다.

'수문제의 공격에서 고구려 군사들이 포위망을 빠져나갔고, 도리어 거란의 무리들과 합세하여 우리 수군을 살해하였다.'

수문제의 30만 대군 침공때, 수나라 육군이 실재 이동한 거리나, 당시에 태풍이 불지 않았던 시기라는 점등을 들어
자연재해로 인해 퇴각했다는 중국측 기록을 의심하는 것이 우리 학자들의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쪽 기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니 이는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격입니다.


중화주의에 입각한 중국의 역사왜곡이 한둘이 아니지만, 역시 왜곡이란 면에서 일본을 따라갈 순 없습니다.
역사왜곡의 최고봉은 일본서기(日本書紀)입니다. 일본서기는 서기 720년에 씌여졌습니다.
일본 서기의 내용중 유명한 것으로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이 있습니다.
일본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그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가 있었다.
- 당시 일본은 김해 가라(가야)를 근거지로 임나를 세웠고 200년간 다스렸다.

그런데 일본이 어떻게 한반도 남부를 지배할 수 있었을까요?

일본 고대사에 등장하는 신공황후(神功皇后)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15대 천황인 응신천황(應神天皇)의 어머니인데, 서기 201년 - 269년간 섭정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신라 정벌, 또는 삼한 정벌은 이 때 이루어진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의 개요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섭정 49년, 신공황후는 만삭의 몸으로 신라를 정벌하려고 나선다.
2. 탁순국(가야 연맹체의 한 나라)에 군사를 보내 신라를 치는데 신공황후는 백제장군 목라근자에게 군사를 동원하도록 명한다.
3. 그들이 함께 탁순국에 모여 마침내 신라를 격파하고 가야 7국을 평정하였다.
4. 그리고, 군대를 서쪽으로 옮겨 침미다례(세력의 이름)를 빼앗아 백제 근초고왕에게 선물로 주었다.

전 세계 역사를 통털어 전쟁으로 빼앗은 지역을 선물로 주는 나라는 일본 밖에 없습니다.
로마제국에서도 볼 수 없었던 그 여유로움에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여기에 보너스로 신공황후에 관한 설화는..

1. 응신천황은 신공황후의 뱃속에 2년동안 있으면서 신라를 정벌할 때까지는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2. 그래서 신공황후가 만삭의 몸으로 신라에 당도하자, 신라의 왕이 바닷가에 미리 나와 있다가 항복을 하였다.
3. 신공황후는 항복의 징표로 들고있던 창을 신라 궁궐 앞에 꽂았는데 큰 나무로 자라났다.
4. 그 소문을 들은 백제와 고구려가 찾아와 앞 다투어 신공황후에게 항복을 했다.

대충 이런 내용입니다.

일본이 임나일본부(任那日本府)를 두었다는 200년은 서기로 4 - 6세기입니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일본(日本)'이라는 명칭이 7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임나일본부가 존재했어야 하는 시기에 '일본'이란 이름 자체가 없었던거죠.
또, 임나(가야)는 6세기 중엽에 멸망합니다. 따라서, '일본'이란 이름이 생겼을 땐 '임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즉, '임나일본부'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명칭이란 겁니다.
웃기려고 만든 거라면 이해를 하겠습니다만..

방송중 백제 부분을 들어보니 고대 일본을 개화시킨 것은 백제의 힘이 절대적이었습니다.
신공황후의 섭정이 끝나고 15대 응신천황 시기에 백제는 '아직기'란 사람을 일본에 보냅니다.
아직기는 말 사육 기술자였습니다. 그런데 경전도 곧잘 읽었으므로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됩니다.
어느날, 응신천황이 아직기에게 '그대보다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아직기는 응신천황에게 '왕인'을 추천합니다. 그래서 천황은 백제로부터 오경박사 왕인을 태자의 스승으로 초빙합니다.
이 때, 왕인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지니고간 것이 '논어'와 '천자문'입니다.
'천자문'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에는 현재 왕인박사의 묘가 있으며, 일본 문화의 시조로 숭앙받는다고 합니다. 왕인 박사까지 갈 것도 없이..
백제의 말 사육기술자(아직기)가 일본 태자의 스승이 될 정도면 양국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는 게 아닐까요.

제가 방송을 들으면서 배운 것은 고대국가 발전은 정해진 단계를 밟는다는 겁니다.
부족 연합체에서 중앙집권체제로, 율령을 반포하고, 선진문화(유교, 불교 등)를 수용하고,
국가체제를 정비한 다음에야 비로소 나라의 전성기가 오더군요.
고구려, 백제, 신라가 모두 그랬습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도 같은 말인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자문'도 떼지 않고 한반도를 지배한 일본이야말로 진정한 천재형 국가가 아닌가 싶네요.

우리 사학계에서는 일본서기 자체를 사료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낙 우리 역사에 대한 기록이 부실하다보니 뭔가 하나의 실마리라도 잡기 위해서 들추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또 임나일본부설을 연구해야 하죠.
결국, 이런 과정을 통해 그것이 소설일지라도 이슈화된다는 자체가 분합니다.
흡사, 독도 문제의 패턴과도 닮아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이건 뻔뻔하기 그지없는 왜곡들입니다.
이런 어거지들이 시도될 수 있는 것은 우리측 기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방송을 들으면서 이 점이 항상 아쉬웠습니다.
반면, 이런 사료의 부족을 외국의 사서와 고고학 발굴로 보충하면서 추리를 하고, 가설을 세우고,
발로 뛰면서 연구하는 우리나라 역사학자분들께는 깊은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역사를 기록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단지, 남아있지 않을 뿐입니다.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고대에 우리 왕들의 무덤 속에 당대의 역사서를 함께 부장하는 풍습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어느날 우연히 도굴되지 않은 고대의 왕릉이 발견되어 그 속에 역사책이 한가득 들어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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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키.D.루피
09/02/04 02:19
수정 아이콘
전 얼마전 봤던 다큐멘터리에서 신라 김씨를 포함해 모든 김씨들이 시조인 김알지가 흉노족의 왕자이자 한나라 무제에게 투후라는 벼슬과 "김"이라는 성을 하사받은 김일제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신라의 김씨들이 사실은 흉노족의 후예였다니...
물론, 흉노는 중국 입장에서 붙인 이름이라 어감이 좀 별로만 사실 대제국을 건설했던 강력한 유목민들이었죠.

사실 김씨들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수도 있는 역사적 정황들입니다. 다큐멘터리 내에서 경주김씨 문중을 찾아갔는데 거기서도 이게 사실이면 좀 당황스럽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유목민이면 어떻고 흉노면 어떻습니까. 뿌리를 안다는 게 중요하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이죠.

그렇게 보면 일본이나 중국이나 왜 억지로 자신들의 역사를 왜곡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환단고기 같은 것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부풀리는 것도 마찬가지죠. 문제는 역사의 왜곡이 자신의 민족의 자부심을 고취시키는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타민족에 대한 억압을 당연시 하게 되는 과정의 일부라는 겁니다. 정말 요새들어 극도로 혐오스러워지는 전체주의의 표상중의 하나로 말이죠.
Siriuslee
09/02/04 05:08
수정 아이콘
일제시대때에 일본은 전국을 뒤져서 고서를 수집하고 이를 대부분 불태워버렸습니다.
총독부가 얼마나 악독하게 이 일을 수행했는지는 현재 남아있는 서적들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현재 남아있는 역사서라고는 고려시대때의 삼국사기, 그리고 참고문헌인 삼국유사.. 가 가장 오래된것이군요.

최근에 발견됬다는 몇몇 책들은 역사학계에서는 위서논란만 하고 있을뿐이고


아무튼 남아있는 사료들을 참조해보아도 우리민족의 역사를 기록한 책들은 아주 많이 있었습니다.

일제시대때 빼앗기고 태워졌을 뿐입니다..

일본 황실 도서관이 빨리 공개되기를 기다릴뿐입니다.
애국보수
09/02/04 08:21
수정 아이콘
Siriuslee님// 그건 사실과 다릅니다.
일제시대 불태운 대부분의 책들은 19~20세기에 걸쳐 쓰여진 책들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역사서들입니다. 고대 역사를 살피는 사료가 아니었지요. 대부분이 대한제국시절 역사교과서, 지리학서, 윤리교과서, 각종 위인전과 세계역사책들입니다. 물론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행동이지만 사료를 불태운 것은 아닙니다.

사실 한국역사에 사료가 부족한 것은 전쟁 탓이 크지요. 임란때도 실록 4개중 3개가 불에타고 하나가 천행으로 남아 그 기록을 이어갔습니다. 고구려나 백제왕조가 멸망할때는 이런 운조차 없었지요. 그러니 사료가 부족할 밖에요.
swordfish
09/02/04 10:07
수정 아이콘
일본서기를 그렇다고 안볼 수가 없는게
그나마 삼국사기에 없는 부분까지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임나 일본부설, (물론 일본측 주장대로 점령의 증거는 아니겠지만) 은근히 고고학적으로 증거가 존재한다는 게 문제죠.
그 지역에서 당대 일본계 유물과 묘지가 발견되니까요. 그럼 한국에서 일본으로 이러한 문화가 건너간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정확치는 않으나 그 유물과 묘지의 초기 형태가 한국에는 없고 일본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그냥 구라하고 무시할 것도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09/02/04 10:29
수정 아이콘
임나일본부설에 경우 군정설이 통설은 아니지 않나요. 오래전에 읽어서 정확한 기억은 안나는데 일본서기에 '부'를 설치했다라는 기록 이외에 통치나 지배에 대한 기록이 없고 일본서기 자체에 몇가지 의문점들 등 때문에 군정설은 극복되었다라고 읽었던거 같네요. 그 책에선 실제 그 지방에 일인들이 거주했던것은 사실로 인정하면서 사신설이나 당나라에 있던 신라방과 비슷한 용도였다라고 써있던거 같네요. 자세한건 사학 전공자분이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09/02/04 13:59
수정 아이콘
말씀하신대로 삼국사기에 없는 부분이 일본서기에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방송에서도 일본서기의 내용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도움이 되는 부분도 많았던 반면, 한결같이 왜곡된 기술방식은 정말 황당했습니다.
무슨 일만 있었다 하면 '천황이 어떻게 지시하여 누구에게 주었다'는 식으로 나오니 말입니다.
그래서 어느 역사학자 한분은 일본서기를 '복어'에 비유하셨더군요.
그냥 먹으면 위험하지만 독(왜곡)을 제거하면 먹을 수 있다.

동북공정같은 경우엔 그 핵심내용이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인데
방송에서 이것이 허구임을 증명하는 증거는 수도 없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중국은 뻔뻔하게 주장을 하고 광개토대왕비를 포함한 유적들이 중국의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역사왜곡들이 단순한 역사탐구가 아니라 한결같이 현실과 미래를 대비한 주장들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생각합니다. 열받더라구요. 들을 때마다.
戰國時代
09/02/04 16:09
수정 아이콘
외국의 역사왜곡을 논하기 전에, 대한민국에서 역사학이라는 학문이 어떤대접을 받고 있는 가에 대해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봅니다.(어떤 학문이건 비슷한 상황이겠지만 말이죠.)
그나마 몇개 안되는 역사학과가 (경쟁논리에 밀려) 하나씩 사라져 가고, 유서깊은 성균관대 국사교육학과도 몇년전 폐지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국사가 대입 입시 필수과목에서도 폐지된 지 오래되었다죠?
한국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자보다 일본에서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훨씬 많고, 연구의 깊이도 꽤 차이가 난다고 들었는데요.
이래서야 연구를 통해서 그들의 논리를 반박하는 일은 꿈보다 요원한 일이 아닐까 싶네요.
09/02/04 21:51
수정 아이콘
戰國時代님// 그러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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