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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2/02 03:45:38
Name kapH
Subject [일반] 로마 군단병은 어떻게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까?
로마가 어떻게 제국이 됐는지 군대의 측면에서 간단하게 다뤄본 글입니다.

부족한 글이니 태클은 달게 받겠습니다.

*****

로마의 군제는 5번 정도의 개혁을 거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마리우스의 군제개혁 - 징집제에서 지원제로 바뀐 것이지만
로마의 기본적인 군제는 바로 기원전 4 세기경 카밀루스의 군제 개혁 이후 지속적으로 이뤄진 변화를 통해 갖춰진
일명 로마 3라인 편제-전열에는 하스타티, 가운데에는 프린키페스, 후열에는 트리아리로 구성-입니다.
흔히 말하는 로마식 레기온(군단병) 시스템입니다.
이전까지의 로마 군대는 그리스식 팔랑크스가 가장 주된 전술이었죠.

팔랑크스는 로마가 유럽을 지배하기 전까지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전술이므로 (그리스는 물론이고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카르타고나 여타 다른 나라들도 모두 사용합니다. 야만족 정도만 빼곤 말이죠.) 자세히 비교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팔랑크스하면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겟엠의 팔랑크스 빼고) 그리스의 전쟁을 다룬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었던
둥근 그리스식 방패(호플론이라고 합니다)를 왼팔에 연결하고 5-6m 가량의 장창을 양손에 쥐고 방진을 짠채 싸우는 것입니다.
호플론에서 이름을 따서 이러한 중장 보병을 그리스어로 호플리테스(Hoplites, 영어로는 홉라이트;Hoplite)라고 합니다.
영화 300에서 완전히 방패를 겹쳐서 싸우는 장면은 좀 과장한 것이고 일반적인 모습은 아래와 같습니다.


<호플리테스가 팔랑크스를 전개한 그림, 엔하위키>

저런식으로 방진을 짜기 때문에 전면에 대한 방어력은 굉장히 뛰어납니다. 알렉산더가 서방 세계를 제패한
그 유명한 '망치와 모루' 전술은 호플리테스들이 전방에서 팔랑크스를 짠 채 버티면서
진영 좌우 양측에 있는 기병이나 비교적 무장이 가벼운 부대들이 포위하면서 적 부대의 측면이나 후방을 타격하는 것이죠.

하지만 이런 호플리테스들에게는 극악의 단점이 있었는데 바로 극히 딸리는 기동성입니다.
처음에는 3-4m 가량의 장창이었다지만 점차 거대화 되면서 5-6m가 되고 극단적인 경우에는 7m 창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무기를 양손으로 든다고 해도 보통 쉬운 일이아니죠.
따라서 한번 팔랑크스가 전개되면 기동성이 극단적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점도 역시 이 장창을 들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됩니다.
창을 들고 버티거나 찌르는 정도의 행동만을 할 수 있을 뿐 방어는 전혀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므로
몸 오른쪽의 방어는 전적으로 오른쪽 병사의 방패에 의지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병사들은 오른쪽 병사의 방패로 몸을 붙이려는 경향이 있었고,
진군을 시작하면 완전히 직선이 아닌 오른쪽 사선으로 진군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팔랑크스끼리 붙으면 오른쪽으로 빙글빙글 돌다가 해지면 자러 돌아갔다는 얘기도 전해집니다.

그리고 정면에 지나치게 방어력을 집중한 나머지 측면과 후면에서의 공격에 굉장히 취약했습니다.
물론 모든 부대가 측면과 후면이 약점이긴 합니다만 팔랑크스는 그 정도가 심했다는 거지요.

이러한 단점들로 인해 호플리테스의 팔랑크스 진형은 전혀 기동성을 이용한 전술적 움직임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알렉산더의 죽음 이후 그리스가 사분 오열되자 팔랑크스의 상대가 팔랑크스가 됩니다.
결국 갑옷 등 무장이 더욱 무거워지게 되고 안 그래도 딸리는 기동성이 더욱 떨어지게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로마 군단병의 무장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로마 군인의 모습-붉은 튜닉에 둥근 황동 투구를 쓰고 로리카 세그먼타타(밑의 사진처럼 띄로 연결한 판금 갑옷)를 입은-은
카이사르 이후에나 볼 수 있었다고 하고 로마가 그리스나 카르타고와 패권을 다투던 때의 무장은 좀더 가볍습니다.
포에니 전쟁과 마케도니아 전쟁이 일어난 BC 2-3세기의 로마 군단병의 모습을 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로마 군단병의 모습, '미스터 술탄의 철갑구락부' 블로그>

앞서 말했던 로마식 3라인 시스템, 하스타티-프린키페스-트리아리의 구성 중 가장 가벼운 하스타티의 무장을 보겠습니다.


<하스타티의 무장, Plinius님의 '여우비 오후 풍경' 블로그. 간지가 참 차이가 납니다만...>

둥글게 휘어진 라틴식 사각 방패인 스큐툼scutum에 흉판 장갑, 투구 정도만 갖춰진 가벼운 무장에
사진에서 볼 수 있는 필룸pilum(1)이라고 불리는 투창, 오른쪽에 찬 글라디우스gladius(2), 푸지오라는 이름의 단검이 무기였습니다.
이런 하스타티는 비교적 신참병들로 구성되었습니다. 프린키페스는 좀 더 경험이 쌓인 장년층으로 구성이 되어있었고
더 무거운 갑옷을 입어 방어력을 보강습니다.
마지막에 선 트리아리는 프린키페스보다 더 나이가 많은 베테랑이었으며 호플리테스의 영향을 받아 중장갑과 창으로 무장을 했죠.


<글라디우스. 검신의 폭이 얇아졌다가 다소 넓어진다는 점과 짧은 길이 때문에 베기보단 찌르기에 적합했다. 네이트 지식>

로마 군단병의 무장은 호플리테스보다 더 가벼웠습니다. 이로 인해 능동적이고 전술적인 움직임이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인의 유명한 전투 모습 - 필룸을 던져 혼란을 야기하고 병사들이 뛰어 들아가 전투를 벌이는 그런 것이 가능했지요.
게다가 3라인 배치를 통해 하스타티가 밀린다 싶으면 프린키페스의 진형으로 물러나 같이 싸우고, 마지막에는 트리아리와 같이 싸우면서
전투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공격력을 정면에 퍼부울 수 있기 때문에 로마 군대는 실로 강했다고 할 수 있지요.
실제적으론 트리아리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 보단 뒤를 든든히 지켜주는 역할이었습니다.
라틴 관용구에 '트리아리까지 이르렀다'란 말이 있는데 트리아리까지 싸울 정도로 된통 당하고 궁지에 몰렸단 소리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력했던 것은 로마 군단병의 편제 그 자체 였습니다.

앞서 말했던 BC 2세기 경, 카밀루스의 군제 개혁 이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전에는 3라인 앞엔 레베스, 뒤로는 로라리, 아켄시 등의 보조병이 배치되었습니다.
레베스는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병사들이었고 하스타티에 소속되어있었습니다.
로라리, 아켄시는 만약을 대비한 예비 전력 성격이 강했습니다.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 이전엔 로마도 그리스와 같이 계급과 재산에 따라 병과를 배치했으며,
가장 돈 많은 계급은 하스타티와 프린키페스에 배치되어 이들이 가장 주력이었고
로라리, 아켄시는 최하급 계층이었으므로 잡병 취급을 받았습니다.
어쨌든 로마 군대의 가장 기본 단위는 마니풀루스(중대)였는데, 기본적인 마니풀루스의 구성은 병사 60명, 백인대장 2명, 기수 1명입니다.
일개 마니풀루스를 2개까지 나누어 사용하는거죠.
레베스의 마니풀루스는 총원은 20명이었고, 하스타티-프린키페스는 60명씩, 그리고 마니풀루스마다 백인대장 2명이, 그리고 기수는 1명씩
배치되었습니다. 트리아리, 로라리, 아켄시는 다 묶어서 하나의 마니풀루스를 3배로 늘려 놓습니다. 즉 180명에 백인대장 6명, 기수 3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러한 마니풀루스가 15개 있는 것이 일개 군단이었습니다.

따라서 백인대장, 기수를 제외하고 간편하게 하자면,
레베스 15 X 20 = 300
하스타티 15 X 60 = 900
프린키페스 15 X 60 = 900
트리아리, 로라리, 아켄시 15 X 180 = 2700명
총합 4800명

따라서 보병 4800명이 완편된 로마 일개 군단이었단 소리죠. 물론 기병(3)과 각종 보조병, 백인대장, 기수를 제외한 것이긴 합니다만.

하지만 앞서 말했던 BC 2세기 경의 변화는 이러한 군제도 획기적으로 바꿔놓습니다.

레베스, 로라리, 아켄시 등의 잡병을 모두 없애고 대신 벨리테스라는 투창과 둥근 방패로 가볍게 무장을 한 보조병을 편성합니다.
그리고 3라인의 편성은 유지를 하지만 백인대 자체의 편성을 2배로 늘립니다. 따라서 이전에는 한 백인대가 30명이었는데
이제는 백인대 하나가 60명이 되고 백인대 2개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마니풀루스가 120명이 됩니다.
트리아리는 예전과 비슷한 수준인 60명으로 유지하게 됩니다만.
그리고 이런 마니풀루스가 10개씩 모여 일개 군단을 이루게 됩니다.
보조병 제외 하스타티 1200명, 프린키페스 1200명, 트리아리 600명으로 총합 3000인 완편 로마 일개 군단이 되는 겁니다.

여기서 백인대장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백인대장은 단순한 부사관의 위치가 아닙니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들을 적절히 잘 판단하여
자신의 백인대 병사들(카밀루스 군제 개혁 당시엔 30명, 2세기경 변화엔 60명)을 묶어 잘 부리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로마의 군대는 더 전술적이고 유기적이며 능동적인 움직임을 가져갈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점이 한니발 전쟁, 마케도니아 전쟁에서 이기고 지중해를 제압할 수 있게하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것이죠.

특히 팔랑크스와 본격적으로 맞붙은 3차 마케도니아 전쟁 중 피드나 전투에서 이러한 강점은 여지없이 발휘 됩니다.
피드나 남쪽 평야에서 양군이 맞붙게 되는데 이곳의 지형은 요철이 있는 구불구불한 지형이었습니다.
떠라서 호플리테스들은 팔랑크스를 짠 채 선형진을 유지할 수 없었고, 로마군은 이러한 빈틈으로 파고들어
그때까지 유럽을 지배하던 팔랑크스를 물리치게 됩니다.(4)
물론 로마 군대가 힘 대 힘으로 이긴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전술적으로 능동적인 움직임을 할 수 있는 로마 군대 였기에 가능한 일이죠.

여하튼간, 마침내 그리스,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를 제압하게 된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에 머물며
주위국가를 동맹국으로 삼아 방어하던 과거와는 달리 전선이 대폭 늘어나게 됩니다.
이는 결국 병사로 참가하던 자영농민층이 몰락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고
동맹시 전쟁과 마리우스와 술라의 내전을 겪으면서 굉장한 혼란을 겪게 됩니다.
내전에서 승리한 마리우스는 결국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바로 그 유명한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이죠.
기존의 시민들이 의무로 군 복무를 하던 것과는 달리 로마 군단병을 직업군인으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자영농민층이 대거 몰락하고 무산 계급인 4,5 계급이 늘어나면서 하게 된 선택입니다.
이러한 무산계급층이 군인으로 쓰면서 사회적 혼란을 막고자 하기 위함이었죠.

군대 편제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일단 기존에 나눠져 있던 병종을 프린키페스, 다시 말해 중장 보병 하나로 퉁치게 됩니다.
이로써 경직된 전술 체제에서 좀더 유연한 전술 체제로 바뀌게 되게 되는거죠.
기존의 백인대는 비슷합니다. 100명이 하나의 마니풀루스를 이루며 이러한 마니풀루스 6개가 모여 하나의 대대(cohort)가 되고
이러한 대대 10개가 모여 하나의 군단이 됩니다. 총 6000명이 일개 완편 로마 군단인거죠.
로마군에 대대라는 전술 단위가 명확히 제시되게 된것은 이때가 처음입니다.
물론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가 대대를 전술 단위로 인식하고 사용하기도 했었지만요.
이런 변화는 앞서 말한 병종의 통일화와 맞물려 로마 군단병에 있어서 굉장한 전술적 유연성을 가져다 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군단에는 주 전력은 군단병들과 맞먹는 보조병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궁병, 공병 등등 말이지요.

완편이라곤 해도 이건 막 편성이 끝난 군단이고 실제로 마리우스 군제 개혁 당시의 일개 마니풀루스는 50-100명 사이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참고로 아직까지 로마 군단병의 무장은 앞서 말한 로리카 세그먼타타가 아닌 사슬 갑옷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에도 한가지 단점이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군단병의 봉급은 썩 좋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로마 병사들의 주된 수입원은 약탈에서 얻은 전리품이나 노예 판매가 됩니다.
이는 결국 로마 군단병들이 국가에 대해 충성하기 보단 사령관에게 충성하게 되는 결과를 불러옵니다.
로마 군단병에게 있어선 일종의 사병화가 진행되게 된 것이죠.
결국 이는 이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전, 아우구스투스와 안토니우스의 내전을 불러 일으킵니다.
카이사르의 군단병들은 로마로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반감 없이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체제는 갈리아나 게르마니아 등 야만족과의 전투에서도 큰 효과를 보게 됩니다.
일정한 편제 없이 덤벼드는 야만족 부대의 특성은 바로 폭발력입니다.
이러한 폭발력의 장점은 적이 조금이라도 물러나는 모습을 보이면 폭발력이 유지가 되면서 적을 척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고 적이 계속해서 버텨낼 경우엔 폭발력은 금새 사그러지고 사기가 떨어져 잡병만도 못하게 된다는 점이지요.
하지만 스큐툼으로 잘 무장된 로마 군단병은 이러한 야만족의 공격에도 잘 버티면서
그 전술적 유연함 때문에 방어적 전술과 반격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시 시대에서 군대의 방어력과 기동성을 타협하여 나온 것이 바로 로마 군단병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이후 아우구스투스가 내전에서 승리하면서 로마를 차지하게 되자 아우구스투스는 내전으로 인해 비대화 되어있던
로마 군단을 감축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로마 군단에 있어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전과는 달리 방어와 국경 유지가 주요 임무가 되는 거죠.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부터 리메스(국경선)가 건설되기 시작합니다.
이 리메스는 일종의 종심 방어진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선만으로 방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경선 수 키로미터 전부터 각종 장애물과 보조병이 배치되어 있었고,
마침내 리메스를 넘는다 하더라도 로마 군단과 상대하게 되야 했죠.

하지만 이러한 리메스도 점점 한계에 다다르게 되고 결국 기동성이 느린 중보병 보다는 기병 위주로 체제를 개편하게 됩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야만족들은 도시를 함락시키기 보단 약탈에 더 큰 중점을 두었고
이를 따라잡기 위해선 기병이 더 나을 수 밖엔 없는 것이죠.
물론 지속적인 침공이 있었던 소아시아 지역은 여전히 과거와 같은 중보병 체제를 유지하게 되었지만요.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 우리가 주로 알고 있는 로마 군단병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게다가 군단의 숫자를 늘리는 대신 군단병 자체의 숫자를 줄이는 방법을 택하게 됩니다.
1,2천명 수준, 다시말해 대대 수준으로 말이죠.
필룸과 글라디우스도 유물로 전락하게 되구요.

그후 결국 아드리아노 폴리스에서 고트인 기병과의 전투 중 로마의 중보병이 고트인 중기병에 패퇴당하게 되면서
로마도 점차 기병을 주력으로 삼게 되었고 서양의 전쟁은 기병의 시대로 돌입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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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1: 필룸은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 이후에 등장하였고, 그전엔 일반적인 투창javelin을 썼다.
기존의 투창과 필룸이 다른 점은 필룸의 창날은 얇고 낭창낭창하게 제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번 사용되면 창날이 부러지거나 구부러져 적의 손에 들어가더라도 재사용이 불가능했다는 것이 필룸의 장점이다.

참고 2: 글라디우스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모습의 검만이 아니라 로마에선 검을 통칭하는 단어였다.
협의의 글라디우스는 이베리아에서 수입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그전에도 로마 군대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글라디우스가 사용된 흔적이 있으나
글라디우스 히스파냐(스페인 검)는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 이후 제식화됬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점이다.
단어 자체는 검투사란 뜻의 글라디에이터나 글라디우스의 모습을 닮은 꽃 글라디올라스의 어원이 되기도 한다.
참고로 왼손에 든 스큐툼이 지나치게 커서 글라디우스를 꺼낼 때 방해가 되기 때문에
보통 자신의 주로 쓰는 손 반대편에 검집을 차는 것과는 달리 로마에선 일반적으로 오른쪽에 검집을 찼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참고 3: 로마의 군단에는 300명의 기병이 편제 되어있었으나 로마는 좋은 말 산지가 아니었으므로 기병의 유지가 힘들었다.
게다가 고대의 기병은 등자없이 말 위에 올라타서 다리힘으로 버티는 것이므로(등자는 중세에 등장한다)
유목 민족이나 귀족이라 어렸을 때부터 기마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말을 타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었이다.
그래서 로마는 기병 전력을 주로 누미디아 동맹국 기병이나 갈리아 용병으로 유지했다.

참고 4: 그렇다고 해서 장창을 이용한 밀집 방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전히 창은 기병의 돌격 저지하는 데 유효한 무기 였으며
기병이 득세하게 된 중세부턴 가벼운 무장에 창을 들어 기병을 저지시키는 방법도 팔랑크스의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스페인의 테르치오도 팔랑크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

포에니 전쟁과 마케도니아 전쟁 당시의 로마 군단병의 모습을 살펴보려다가 글이 지나치게 길어졌네요.
허접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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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크롬
10/02/02 06:29
수정 아이콘
좋은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TheCompletedCircuit
10/02/02 08:01
수정 아이콘
직접 쓰신건가요 ?
대단하시군요 ! 잘 읽고 갑니다 .
marchrabbit
10/02/02 08:17
수정 아이콘
어디선가 팔랑크스가 근접전에도 약해서 로마병사들이 근접전에서 글라디우스로 찌르면 속절없이 죽었다고 읽었는데, 이 말이 맞나요?
10/02/02 08:24
수정 아이콘
marchrabbit님// 그렇진 않습니다. 피드나 전투에선 위에 썼다시피 요철 때문에 팔랑크스들 사이에 생긴 틈을 로마 군대가 찌른 것입니다. 초근접하여 백병전을 일으켜서 로마 군단병이 자신의 전황으로 유리하게 이끌고 간거죠. 그런데 정면으로 달려들어서 무슨 만화나 영화처럼 창을 글라디우스로 휙휙 다 쳐내며 백병전을 유도한게 아니라 팔랑크스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틈을타 측면을 주로 친거죠. 글에도 썼지만 모든 부대는 측면과 후방이 약점이고 팔랑크스는 그 점이 더 심한 것 뿐이었습니다.

만약 넓다란 평지에서 제대로 회전으로 붙었다면 모르는 일이긴 했습니다.
필룸을 던져 혼란을 야기시키고 스큐툼과 글라디우스가 아무리 기동성을 확보해줬다고 해도 5-6m되는 창을 단체로 들고 병사 각각은 중장갑으로 떡칠한 채로 앞에서 버티는 호플리테스들한텐 제 아무리 로마 군단이라고 해도 힘을었을 거란 의견이 많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창을 들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적이 지나치게 근접할 경우 창을 버리고 칼을 들고 싸웁니다. 물론 바로 뒤에 병사가 그 포지션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버티는 겁니다. 그래도 팔랑크스의 미덕이야 미칠듯이 버텨서 아예 근접시키지 않는 것이긴 합니다만.

물론 이러한 상황으로 이끌고 간 로마는 미리 이겨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죠.
10/02/02 08:46
수정 아이콘
대강 정리하자면 접근시키지 않고 잘 버티면 팔랑크스의 승리 vs 어떻게든 측면이나 후방으로 접근하면 군단병의 승리 정도 되겠네요.
설탕가루인형
10/02/02 09:47
수정 아이콘
로마 토탈워에서 팔랑크스모드의 홉라이트와 로마군단병의 싸움을 확대해서 보던 기억이 나네요.
공격도 못하고 방어도 못하고 앞에서 우왕좌왕...^^:
하지만 아주 극 소수라도 우회해서 측면을 공격하면 갑자기 홉라이트의 진형이 붕괴되면서 학살이 시작되죠.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amoelsol
10/02/02 09:58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또 상식이 조금이나마 증가하는 걸 느끼겠네요. 투창 외의 원거리 무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시기까지는 아직 활이 전술적 무기로서의 가치를 갖기 전인 건가요? 물론 영화적 과장이겠지만, 글레디에이터 같은 영화의 초반 전투신에서는 불화살의 일제 사격 같은 장면도 나오다 보니 그런가 했습니다. 원거리 투사무기가 한정적이라면 요새나 도시에서의 농성전이 전개될 경우 공격 수단도 성벽에 근접한 적을 상대로만 상당히 제한될 것 같아 흔히 생각하던 과거의 전쟁신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 같아요.
10/02/02 10:10
수정 아이콘
amoelsol님// 아닙니다. 물론 궁병이나 투석기도 모두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궁사는 워낙에 익히기 어려운 기술이고 투석기 같은 경우엔 제작이 어려운지라 많이 사용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에 비하면 일반적인 투창 기술은 굉장히 빨리 배울 수 있는 것이라 더 많이 운용된 것 뿐이지요.
그리고 서양의 활 제작 기술은 아직 조악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멀리나가지 못했기도 했구요.
일반적인 발리스타나 투석기도 공성용 무기로는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병이 대세가 된 제정 말기 부턴 궁병이 조금씩 많아지기기 시작합니다.
기병 상대로 가장 효과적인 전술은 창으로 돌격 저지 + 활로 화망 형성 or 메이스등 중장비로 때려 잡기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어떠한 병기든 전술적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대량 운용 가능해야 한다는것을 전제로 합니다. 예외라면 핵이나 생물 병기 정도일까요. 아 핵이나 생물 병기는 정치적 가치가 높다는 부분이 더 옳겠군요.
어쨌건 이러한 측면에서 원거리 무기가 대량 운용이 가능해질 정도로 전술적 가치가 높아진 것은 화포의 등장 이후 입니다. 영궁 장궁 부대가 유명하긴 했지만 결국 중세를 지배한 것은 기병이었고, 화포와 총이 등장하기 전까진 원거리 무기보다 기병의 전술적 가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아마 이 얘기는 swordfish 님의 글 중에 댓글로 논의가 된 부분이 있을겁니다.

그리고 고대나 중세 전투에는 시가전 같은 건 그다지 많이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시가전이라는 이름 보단 잔당 소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더 낫겠지요. 대부분 방어 입장에선 기반 시설이 파괴되는 농성을 싫어하고 왠만히 맞붙을 만한 전력이면 성밖으로 나가 야전을 유도하죠. 농성을 한다는 것 자체가 방어자의 입장에선 극히 절망적인 상황이란 얘기고 그만큼 방어 병력도 적고 여타 제반 상황도 나쁠 수 밖엔 없었습니다. 문이나 성벽이 점령되면 거의 끝이라고 봐야했지요. 화포가 등장한 이후엔 성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고,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시가전은 역시 총이 발명된 이후에나 등장하고 그 극치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입니다.

마지막으로 원거리 투사 무기가 조악하다고 해서 농성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끓는 기름이나 낙석이라는 훌륭한 공격 수단이 있었지요.
amoelsol
10/02/02 10:31
수정 아이콘
kapH님// 친절하신 설명 감사합니다. 마지막 단락에 대한 건데요, 물론 야전으로 깨끗하게 이기면 좋지만 야전의 경우 병사의 수나 역량 등에 따라 미리 어느 정도는 승패의 예측이 가능하지 않나요? 어떤 세력의 침략이 있을 경우, 이러한 면에서 우세하다는 확신이 있으니 가능한 것일 테고 방어하는 쪽에서는 성벽을 끼고 싸운다면 높이와 방어력의 이점 + 야전에서는 동원 불가능한 민간인의 전투 참여가 가능해지는 것이니(돌을 던지든, 기름을 끓이든) 군사력의 우위를 갖지 못했을 때에는 자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해서요. 제가 그나마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전투가 주로 '~~성 전투/대첩'이라서 이러한 인상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싫어하시는) '먼나라 이웃나라' 밖에 읽은 적이 없으니 자신이 없는데, 거기서는 3차 카르타고 전쟁도 그런 식의 농성전처럼 묘사된 것으로 기억나네요.
10/02/0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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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elsol님// 3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에 의한 카르타고의 완전 멸절이 로마 군단의 목표였습니다. 게다가 1,2 차 포에니 전쟁 패배로 인해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한 카르타고는 비교적 수세에 몰리는 상황일 수 밖에 없으니 그러한 농성이 자주 나온 것은 당연합니다. 어떻게든 버텨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전쟁은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죠. 따라서 농성을 선택하게 된쪽은 그만큼 수세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깁니다. 다른 나라 땅에서 싸우는 대신 자신의 땅에서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을 선택하는 겁니다. 아니 선택을 강요당하는거죠.

물론 수세에 몰린 자가 공세를 이겨내고 역전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다 따져보면 그럴만한 요인이 있었던 것이지요.
10/02/0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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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은 나가봐야 해서 댓글을 더 달수가 없네요. 저녁 때 돌아올 예정이니 댓글 남겨주시면 계속해서 답변해도록 하겠습니다.
10/02/0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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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은 로마인 이야기란 책이 생각나네요.
로마에 대해서 꽤 자세히 설명된거 같아서 재밌게 읽었는데 말이죠.
예전 기억으로는 후반에 군단병을 줄이는 과정에서 보조병인가를 수비에 이용한거 같던데 맞나요?
10/02/0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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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때부터 기병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하는데 너무 후대에 활약한거로 서술하신듯합니다
2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이 초반에 로마 군단 몇만을 전멸시킬때도 기병의 압도적인 숫자와 기동력으로 승리하죠
스키피오가 한니발을 잡을때도 기병이 큰 역할을 하죠

물론 로마군의 주력은 중장보병이지만 양측이 중장보병일때는 승패의 열쇠는 동맹국의 기병을 얼마나 확보하느냐 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는 말산지에만 기병이 존재하던시기였으니요

로마인이야기를 보면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전을 봐도 기병숫자에 대한 글이 많이 나오죠
카이사르는 기병숫자는 적었지만 갈리아,게르만출신의 정예기병이 있었고 말의 특성을 이용한 깡따구 전략으로 이기기는 했지만요
내일은
10/02/02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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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정시대에서나 제정시대에서는 기병은 기본적으로 기사계급(에퀴타스)에서 나왔습니다. 등자가 보급되기 이전까지는 말을 탄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받아야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사 계급은 특정한 계급이 있는게 아니라 일반적인 부유층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야 기사계급을 총동원하는게 가능하지만, 중요한 전투가 아니면 가급적 기사계급을 동원하는 일은 자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유층의 비율은 고대로 갈수록 떨어지는게 상식인데, 보병과 기병 비율이 10:1이라는 것은 대강 인구 비례를 따져봐도 봐도 기사계급이 조금 많이 차출된겁니다. 따라서 야만족과의 소소한 전투에서는 기병이 쓰이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말은 장교들(그러니까 귀족, 부유층)의 지휘용, 뽀대용이었고 주력은 역시 중장보병이었습니다.
나중에 동방에서 밀려온 말을 주력으로 삼은 부족들과의 전쟁이 일상화되거나, 글에 있듯이 적의 기습에 맞서는 기동타격대에서만 기병이 주력으로 나서게 됩니다. 알렉산더나 시저 같은 경우에는 좀 따로 분류해야 하는 것이, 이들이 유명해진 것은 정복전쟁을 수행하는 등 일단 쌈질을 많이 했고, 쌈질에 특화된 부대를 편성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특수 사례이지, 보편화 시키기는 어렵습니다.
10/02/02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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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군의 주력이 중장보병인것은 사실이지만 군단병만으로 전쟁이나 수비를 한것은 아닙니다
로마는 전쟁을 할때 보급을 중요시하고 그에 따라 동맹국들을 전쟁에 참여시키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대제국이 된후에는 현지인들에게 군복무를 마치면 로마 시민권을 주는 댓가로 현지인보조군단을 만들어 군단병을 보조하지요

즉 로마군대=군단병+동맹국&현지인으로 일반화가 가능합니다
크레타 궁병이니 누미디어기병이니하는 타민족 군대명칭을 자주볼수있죠
기사계급의 기병만을 생각하면 특수사례이고 큰 전력이 되지 않지만 기병산지의 기병은 당시 큰 전력이었습니다
2차포에니전쟁때부터 당시 최대기병산지인 누미디아 기병을 확보한 한니발이나 스키피오가 전쟁에서 승리하지요

3두정치의 일원인 크라수스가 동방원정을 갈때 폼페이우스는 자신의휘하 장수들을 부관으로 보내고 카이사르는 젋은 크라수스에게 기병을 500 주어 보내는데 이것만 봐도 기병이 당시 얼마나 중요한 전력이었는지 알수있죠
새벽오빠
10/02/0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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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이 가득 담긴 좋은 글 감사합니다.
10/02/0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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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지금 돌아왔네요...

청염님// 병기나 병종이 주전력이나 아니냐는 두 가지 측면에서 판단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뢰성입니다. 어떤 병종이나 병기가 사용될때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안정성 있게 사용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기병의 신뢰성을 따지자면 어떠했느냐? 그다지 높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등자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때문인데, 기병의 병과 특성상 충격력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제일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돌격할 거리를 얻는 것이 기병으로선 선결과제이기도 했구요.
이때 충격력을 전달한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의 충격력을 다시 기병에게 반작용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고대 기병은 등자가 나오지 않았고 그 때문에 말등 위에 두터운 천을 깔고 다릿심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결국 기병이 돌격하면서 전달한 충격력이 다시 기병에게 반작용할 때 그것을 버티게 해줄 안정적인 장치가 없었다는 거지요.
이로인해 기병들의 돌격은 중세 시대의 기병과는 달리 돌격시 상당수의 낙마를 동반하게 됩니다.
또한 등자가 없었기에 생각외로 창병의 공격이나 화살의 공격에도 약했습니다.
중장갑으로 떡칠해도 등자를 밟고 버틸 수 있었던 중세 기병과는 다르게 고대 기병은 가벼운 무장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만큼 기병을 노린 공격 자체에도 취약했다는 점이죠.
따라서 기병의 신뢰성은 로마 군단병보다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이로써 고대 기병의 활약에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일단 보병이 버텨줄 것.' 물론 로마는 군단병이고 그리스는 호플리테스겠죠.
사용에 있어 전제가 붙은 병종이 주전력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죠.

둘째로, 원활한 보급이 가능한가입니다. 어떤 병종이나 병기의 전술적 가치가 높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만큼의 대량 운용을 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대 기병은 굉장히 보급이 어려운 존재입니다. 일단 누미디아 동맹국 기병이나 갈리아 용병 기병은 군단병들과는 달리 이탈리아 본국에서 마음대로 편성하여 전방으로 제때 보낼 수 없었던 건 당연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본국에서 길러내는 기병 자체는 꽤나 휼륭하긴 했습니다만, 당시 생산력으론 어렸을 때부터 승마 훈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귀족층 혹은 부유층임을 뜻합니다. 이러한 계층은 극소수 였고 따라서 대량 운용할 만큼 기병의 안정적인 생산이 불가능했다는 점이지요. 끊임없이 생산, 훈련, 편성, 치료, 재훈련하여 계속해서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병종과 병기를 주전력이라고 말하지 계속적인 보급이 어려운 병종을 주전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고대 기병이 그 기동성으로 인해 알렉산더 이래로 총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꽤 유효한 전술이었던 '망치와 모루'에서 효과적인 망치 역할을 할 수 있었음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좀 극단적인 비유를 들자면 모루와 모루로 가운데 있는 철을 안정성있게 때릴 순 있습니다만 망치와 망치로 가운데 있는 철을 안정성있게 두들길 수는 없습니다. 결국 고대의 주전력은 기병이 아닌 중보병이었죠.
10/02/0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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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님// 예, 맞습니다. 제가 글쓰는 마지막에 힘이 딸려 서술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결국 지나치게 광대한 영토와 넓어진 전선을 모두 방어할 수 없었던 로마는 군단을 실제로는 대대 수준으로 격하시키면서 속주민을 보조병으로 대거 기용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조병으로 대거 기용할 수 있게 된 정치적 배경에는 카라칼라 황제의 칙령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 시민과 속주민의 차이를 없애버린 것이지요.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제는 더 이상 팍스 로마나를 유지할 수 없게 됨을 뜻합니다. 로마의 힘으로 속주민들을 보호하던 우월한 자의 위치가 아닌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할 동료가 됐음을 뜻하죠. 물론 이러한 현상이 제정 말기의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임은 분명합니다만 그것을 공식화했느냐 안했느냐의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팍스 로마나가 무너졌음을 지도자가 인정하게 된 거니까요.

이후 또 하나의 군제 개혁이 일어나게 되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코미타텐세스comitatenses란 이름의 중앙 예비군을 편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리메스의 종심 방어진으로는 로마에 대한 침략을 막을 수 없음을 뜻하죠. 이는 전력을 중앙에 집중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국경선의 로마의 영향력이 약화되게 되고 곧 국경의 불안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후 콘스티아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인정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론 이 순간부터의 로마는 이전의 로마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네요.
10/02/02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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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기병의 역할은 중세의 기병과는 역할이 다릅니다
중세의 기병은 중갑입고 돌격이엇으나 로마시기에는
중무장 밀집보병이 가운데 있고 양날개 역할을 하여 측면과 후방을 교란하거나 적을 포위하는데에 그 용도가 있었습니다
알렉산더를 시작으로 한니발 스키피오를 거쳐서 이미 로마 군대에서 기병 활용은 정석이 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당시 이름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기병의 활용을 극대화해서 포위섬멸전으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른시간에 전투를 마무리하지요
안토니우스 정도 되는 애들이야 보병끼리 정면충돌 할정도..

그리고 카이사르 같은 경우는 이를 역이용해서 카르타고 지역에서의 폼페이우스 잔당 과의 전투에서 기병으로 중앙돌파를 합니다 -.-;;;
그리고 그 기병이 둘로 갈라져서 후방을 급습하지요 매우 정예한 기병이엇던 것과 지휘권이 불세출의 천재였기 때문에 가능하기는 했지만요

그리고 군단병이라고 다 같은 군단병이 아니지요
그 군단병이 얼마나 경험이 많은가도 중요합니다
카이사르의 경우는 각 군단의 개성을 중시해서 갈리아 정벌 때 처음 조직한 군단을 암살 당하기 전까지 10년넘게 개편하지 않습니다
결원을 보충하지 않아 군단 크기는 작지만 팀웍을 더 중시한거지요
군단병이라도 정예병으로 키워지는데는 수차례의 전투와 몇년간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당시 의료기술을 생각하면 부상병의 재투입이 매우 어렵고 숙련과정을 생각하면 군단병도 즉각즉각 뽑아서 댈 상황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보병이 주력이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병의 역할을 너무 낮게 보시는듯하군요
10/02/02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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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염님// 기병의 역할이 변해왔을진 몰라도 기병의 특징은 드라군을 제외하면 항상 일정했습니다. 돌격 거리를 얻어 그 거리만큼의 충격력을 상대 부대에 전달시키는 것이지요. 저는 이 특징이 가지는 고대 기병의 신뢰성이 '상대적으로' 군단병보다 떨어지기에 기병의 주전력이 아님을 이야기하는거지 기병을 아주 낮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댓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기병을 망치로 사용할 때의 효용성은 저도 당연히 인정은 합니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전투를 언급하시며 기병이 강력하다는 것의 예를 드시는데 그건 카이사르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것이지 당시의 기병이 중보병보다 '상대적으로' 주력임을 입증하는 데는 불충분합니다.

예를 드신 전투는 일종의 '종심 돌파-전과 확대'의 현대적인 종심 전투 교리의 일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전차가 기병으로 바뀌었다 점이 다르겠네요. 물론 완벽히 같은 것은 아니겠지만요. 어쨌든 이러한 현대적인 전술 비슷한 것을 그 옛날에 사용할 정도의 카이사르가 천재이고 그가 육성한 기병부대가 강력한 것이지 일반적으로 고대 기병이 중보병보다 우위에 있음을 입증하는 예는 아닙니다.

청염님과 제가 고대 기병을 보는 관점의 차이는 '강력함vs신뢰성'인듯 하네요. 저도 계속 말씀드리다시피 기병의 강력함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무기라도 기본적인 신뢰성이 없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강력한 무기가 아니게 됩니다. 무기(더 넓게 봐서는 병종까지)의 신뢰성은 어느 누가 사용하더라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때 확보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신뢰성에서 군단병이 고대 기병에 비해 상대적으로 앞서 나가기에 고대의 주력은 중보병이었음을 주장하는 겁니다.
나이트해머
10/02/02 20:56
수정 아이콘
글쎄요. 이미 로마군은 3세기에 보병 중심에서 중장기병 중심으로 체제를 전환했고, 그 힘으로 위기를 극복했으며, 로마제국 전체로는 한세기를, 동로마제국으로 한정지으면 7세기 헤라클레리우스 황제때 재차 체제개혁을 할때까지(이것도 테마 설치를 포함한 행정적인 개혁이 주됨) 버틸 수 있었습니다.
후기 로마제국, 구체적으로는 3세기 이후의 로마제국의 주력은 보병이 아니라 기병입니다. 숫적 비중도, 전력적 비중도 기병에 맞춰져 있지 보병에 맞추져 있진 않습니다. 이는 필요에 따른 것이며, 더 효율적이었음을 증명합니다. 최소한 시대에 맞는 수준에서는 말이죠.
10/02/02 21:02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님// 저도 그 이후부턴 기병이 강력하고 신뢰할만한 병종이었음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저와 청염님의 논의는 그 부분이 아닐 그보다 더 앞서의 고대 기병이 주력이었느냐 아니었느냐란 부분입니다. 아마도 제가 고대 기병을 좀 협의로 사용하다보니 이런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청염님의 첫 댓글을 읽어보시면 청염님은 제가 쓴 것처럼 기병의 활약은 너무 뒤에서부터 나타나지 않았다, 그전부터 기병은 주력이었다란 부분에서 논의가 일어나는 거지요.
나이트해머
10/02/02 21:22
수정 아이콘
이는 395년 로마군의 구성을 나타내는 정부 문서인 Notitia Dignitatum에 나타나는데, 이때 로마군의 구성을 보면.

소속부대 기병수 보병수 기병비율
-----------------------------------------------------------
서로마제국 야전군 21,000명 92,000명 18.5%
서로마제국 국경군 58,500명 77,000명 43,2%
서로마 근위기병 2,500명 100%
동로마제국 야전군 21,500명 82,500명 20.7%
동로마제국 국경군 97,500명 98,000명 49.9%
동로마 근위기병 3,500명 100%

합계 204,500명 349,500명 36.9%

이렇게 되어 있으며, 보시다시피 기병의 비율이 평균 36%대로, 기병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이정도 비율의 기병 비율은 곧 기병이 주력임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전문 궁병부대인 sagatarii의 명칭이 들어가 있는 부대의 숫자가 동서로마를 합처 69개. 총 34,500명에 달하는 '전문 궁병대' 가 존재합니다. 여기다가 베게티우스의 병서에 이르면 일반 병사들도 1/4~1/3 정도는 궁술 훈련을 시키라고 되어 있는 등 전문 궁병들을 제한 일반 부대도 다수의 궁병을 운용했음이 확인되고 있고, 궁수대가 아닌 'auxilia platina'의 보조병들도 적과 궁병 사격전을 벌인 기록이 있는 등 실제로 그러한 운용 기록이 많습니다.
나이트해머
10/02/02 21:29
수정 아이콘
kapH님// 보병대의 신뢰성, 이란 것 자체가 그닥 끌리는 말이 아니란 느낌이 드는 군요. 로마군도 만약 기병이 일찍부터 필요했다면, 그리고 그러한 기병을 구하기 쉬웠다면 3세기가 아니라 그 이전에 기병을 대량으로 확보했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만약 강력한 기병 보유국인 페르시아나 도나우강 하류 유역의 유목민족들을 처음부터 마주첬다면 로마군이 계속 보병 중심의 군단체계를 갖추었을까요? 전 부정적이라 봅니다. 대신 마케도니아나 기타 동지중해식의, 강력한 중기병을 주축으로 하는 부대를 꾸렸을 겁니다. 단순히 신뢰도의 높고 낮음을 따진다면 전면 공세와 방어에 있어서는 모든 고참 베테랑 병사들을 다 소모해 버리고 신병 중심이었던 말기에도 레기온을 압도해 버리던 마케도니안 팔랑크스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신뢰도가 문제가 아닌, 그때그때의 필요와 상황에 맞는 체제를 갖추었을 뿐입니다.
하이브
10/02/02 22:20
수정 아이콘
본문에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자면....

글 앞부분에 그리스의 전술에 대해 기술하신 부분입니다.
그림으로 묘사된 '팔랑크스' 방진은 호플리테스 가 아니라 '페체타이로이'들이 형성한 방진입니다.

호플리테스 :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등등... )의 중장보병입니다.
큰 청동 방패(무릎 부터 목까지 보호할 수 있는 상당히 큰 원형방패) 와 2~3미터 정도의 창(한손으로 드는 창), 가죽 혹은 청동 흉갑 밑 정강이 보호대, 청동 투구, 청동 검 등으로 무장했습니다.
영화 300의 배경인 페르시아 전쟁때 그리스 연합군의 무장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물론 300은 주인공들이 갑옷 대신 갑빠(?)로 때우는 등 현실과 동떨어졌죠. 하지만 큰 방패를 겹쳐서 벽을 형성하는 방진의 형태는 실제와 유사합니다. )

그리고 이보다 100~200년쯤 후 마케도니아(그리스 북부의 나라입니다. 사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성기때 야만인 취급을 받았던 나라죠.) 군의 주력이었던 장창병들을 '페체타이로이'라고 불렀습니다.

페체타이로이 : 4~5미터 이상의 '사리사' 장창(후기로 갈수록 길이가 더 늘어납니다.), 작은 방패( 장창은 양손으로 들어야 했기 때문에, 왼손을 자유롭게 하기위해 방패를 왼팔에 걸고, 목에 끈으로 다시 걸어서 고정했습니다. 크기는 당연히 작아질 수밖에 없었고요.)
그 외 투구, 흉갑 등.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침공하여 멸망시킬때 마케도니아 군의 주력이 페체타이로이였습니다.
그림과 본문에 묘사된 것은 이들이 형성한 방진 '팔랑크스' 입니다.
10/02/02 23:14
수정 아이콘
하이브님//제가 알기론 페체타이로이는 귀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마케도니아 정예부대로 알고 있습니다.
제 지식으론 넓게 봐서는 호플리테스에 속한다고 봅니다. 일단 자료를 더 검색해보겠습니다.

나이트해머님// 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알겠습니다. 제가 처음엔 BC 3-2 세기경의 군단병에 대하여 말하려다 글이 길어져서 제정 말기까지 이끌어간 것과 논의 자체를 아우스투스 이전으로 한정지었어야 했는데 아마도 제가 고대란 말을 계속해서 쓴 것 때문에 혼란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실제로 중세로 넘어가지 않더라도 고대 말의 기병의 득세는 사실이었죠. 용어를 불명확하게 쓴 점 사과드립니다. 논의를 잘 못 이끌어간 제 불찰이 크네요.

그래서 다시 명확히 해서 시대를 아우구스투스 이전으로 한정 짓겠습니다. 나이트해머님이 쓰신 댓글에도 있듯이 어떠한 병종의 득세는 환경 적응의 산물이죠. 기본적으로 말 산지가 부족하지만 좋은 철은 나오는 로마의 특성상 중보병이 득세하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덧붙여 로마 군단은 여러 차례의 체질 개선을 통해 호플리테스의 경직성에서 벗어나고, 잡병들을 없앴으며 병종의 통일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전술적 유연성을 강화해 나갑니다. 물론 영토의 확장은 로마의 뭇 영웅들에 의해 이루어지긴 합니다만 이를 통해 로마 군단병 자체를 왠만한 장수들이 운영하더라도 무리없이 큰 실패를 겪지 않고 지배권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점에서 저는 당시의 로마 군단병의 신뢰성이 기병보다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기병을 잘 활용한 알렉산더, 한니발, 카이사르 등은 전술의 선구자였으며 그들이 아니라면 그렇게 큰 이득을 보지는 못 했겠지요.
따라서 누구라도 무리없이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제가 말하는 신뢰성은 이 부분입니다. 단순히 어떤 병종을 믿을만하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로마 군단병이나 호플리테스와 같은 중보병이 그 시대의 주전력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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