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곰입니다.
지난번 썼던 글의 후속글입니다. 하지만 지난 글이라는 게 무려 반 년 전의 이야기라, 기억하고 계신 분이 있을런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네요.
그래도 시작한 것 끝은 내야겠다 싶어서 실로 오랜만에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다음과 같습니다. 난해한 과학적 이론을 늘어놓으면서도 의외로 어렵지 않게 읽히는 딱딱한 하드 SF 두 편과, 스타크래프트의 모태가 되었다고 할 만한 닥치고 때려부수는 신나는 전쟁활극 한 편, 마지막으로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라는 오래되고도 심오한 테마에 대한 SF적 고찰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별의 계승자] / 제임스 P. 호건
[쿼런틴] / 그렉 이건
[스타십 트루퍼스] / 로버트 하인라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 필립 K. 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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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글 링크입니다.
여러분에게 SF를 추천합니다 (1.단편집)
https://pgrer.net/?b=8&n=26185
두 번째 글 링크입니다.
여러분에게 SF를 추천합니다 (2.작가별 단편집)
https://pgrer.net/?b=8&n=26272
세 번째 글 링크입니다.
여러분에게 SF를 추천합니다 (3.장편 첫 번째)
https://pgrer.net/?b=8&n=26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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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의 계승자 Inherit the Stars] / 제임스 P. 호건
인류의 기원. 그 영원한 의문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의 답변
인류의 기원은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의문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라는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은 실로 간단하지 않았고, 어찌 보면 온갖 신학과 철학과 과학이 이 질문에서 탄생하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현재 가장 너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유인원의 한 종류로부터 인간이 진화해 왔다는 이론이지요. 즉 진화론입니다. 적어도 어떤 절대적인 존재가 스스로의 모습을 따서 인간을 만들어냈다는 설보다는 훨씬 더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했고, 그 대표적인 예가 소위 말하는 미싱 링크Missing Link입니다.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이어지는 진화의 고리 중간에 공백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독창적인 가설을 제시해 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가설이 사실인지, 혹은 그 가설들 중에 과연 사실이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는 결코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제임스 P. 호건은 다양한 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여기에 자신의 상상력을 듬뿍 첨가하여 나름의 대답을 제시합니다. 달에서 발견된 인간의 시체가 5만년 전의 인류라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의 사실로부터 추론의 토대를 쌓아 나가 결국 올바른 결과에 도달하는 과학적 즐거움을 이 책을 통해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쿼런틴Quarantine] / 그렉 이건
세상에서 가장 괴상한 과학이론을 바탕으로 창조해낸 평행우주
세상에서 가장 괴상한 과학이론이라면 응당 양자역학이 꼽힐 겁니다. 고양이가 죽은 동시에 죽지 않았고, 보지 않을 때는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던 녀석이 보는 순간 사실은 한 가지 일만 하고 있었고,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 그 답은 정해져 있지만 사실 정해져 있지 않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조차 당최 알아먹을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주의 신비 중 많은 부분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해내는 이론이지요.
이런 괴상망측한 이론을 가지고 소설을 쓰면 이런 괴상망측한 작품이 탄생하게 됩니다. 양자역학에서도 소설가들에게 가장 매혹적인 상상거리를 가져다준 가설인 평행우주론을 바탕으로 하여 온갖 머리아픈 이야기들을 잔뜩 집어넣은 후 부글부글 끓여서 나온 결과물에 소설의 탈을 씌운 것이 바로
[쿼런틴]입니다. 그러나 또한, 머리 아픈 과학적 이론들을 배제하고 읽는다면 의외로 신나는 하드보일드 스릴러물이기도 합니다. 자. 양자역학의 바다에 한번 풍덩 뛰어들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스타십 트루퍼스Starship Troopers] / 로버트 하인라인
저그를 물리치는 테란 이야기
많은 분들이 소설보다도 오히려 폴 버호벤 감독의 동명 영화로 더 잘 알고 계실 작품입니다. 많은 분들이 지구인의 요새로 몰려오는 적들(Bugs)의 모습을 보며 테란의 벙커로 돌진하는 저글링+럴커 부대를 떠올리셨을 것 같은데요. 사실 스타크래프트는 이 작품에게 상당한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저그라는 종족명부터 시작해서 테란과 저그의 수많은 유닛들이 스타십 트루퍼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렇듯 이 작품은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몰려드는 외계 괴물들을 닥치는 데로 때려잡는 전쟁물입니다. 그래서 가볍게 읽기에 좋으며, SF초심자에게 권하기에 딱이라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강화복이라는, 이후 수많은 SF에서 그 컨셉을 차용한 뛰어난 아이디어를 처음 선보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해 주는 강화복을 입고 인류의 원수를 무찌르는 주인공 일행의 이야기라고 하면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어쩌겠습니까. 사실인데.
그러나 동시에 이 소설은 파고들수록 논쟁거리가 많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과연 이 작품이 군국주의 사상을 설파하는 것인가 아니면 조롱하는 것인가? 언뜻 보면 하인라인은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절대적인 군국주의 사회를 찬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만 놓고 보자면 그는 빼도박도 못할 파시스트지요. 그러나 그의 다른 작품들, 특히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나
[낯선 땅 이방인]을 보면 하인라인은 오히려 아나키즘적인 자유주의자로 보입니다. 과연
[스타십 트루퍼즈]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던 그의 진의는 무엇이었을까요?
어쩌면 하인라인은 그냥 별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Do Androids Dream of Electronic Sheep?] / 필립 K. 딕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앞서 소개드린
[별의 계승자]가 ‘인간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라면, 이 작품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루고 있는 소설입니다. 주인공 데커드는 안드로이드, 즉 한없이 인간에 가깝게 만들어진 인조 생명체를 사냥하는 것이 직업인 경찰 소속 안드로이드 사냥꾼입니다. 또한 애완동물로 양 한 마리를 키우는 것이 소원인 소박한 미래의 소시민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기술의 발달 하에 안드로이드는 한없이 인간에 가까워지고, 반면 인간들은 종교나 가상현실 등 현실로부터의 도피를 선택하면서 인간성을 잃어 갑니다. 안드로이드는 인류의 고향인 지구로 와서 인간처럼 살려고 하고, 인간은 지구를 떠나려 애를 씁니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을 다른 존재보다 더 뛰어나고 가치있는 소중한 존재로 인정할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이 작품은 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독자에게 묻지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이 작품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역시 원작 못지 않은 걸작이니 꼭 챙겨보시기 바랍니다.
반 년만에 짤막한 연재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한번 시작한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하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반성할 계기도 되었고, 수십 편에 걸친 글을 꾸준히 연재하는 분들에게 새삼스럽게 감탄과 존경을 느끼게도 되었습니다. 어쨌든 이 글로 인해 PGR의 회원 중 다만 몇 분만이라도 SF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SF는 참 뭐랄까...... 재미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