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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8/31 06:33:49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단종애사 - 2. 역사의 주역들
에휴 드디어 개강이네요. 마지막 학기라... -_-; 국문과 수업을 더 들을 수 없는 게 아쉽지만... 일단 눈 앞에 있는 사학과 끝판대장들이라도 잘 넘겨야죠 ㅠㅠ



노산군일기가 단종실록이 된 것은 숙종 대의 일입니다. 이 때에 이르러서야 단종이 신원되죠. 하지만 그 내용까지 바뀌진 않아서 전체적으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수양은 세조로 적힙니다. 하지만 곳곳에 [수양 대군]이라는 이름이 보이죠. 단종 때 실제 사관이 썼던 기록과 수양 측에서 적은 기록이 혼동된 결과라고 봐야 될 것입니다. 일단 이름은 실록이고 수양이 사관을 들였을 리도 없는데 수양과 그 추종자들의 기록이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그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겠죠. 때문에 어디까지가 조작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일지 알기도 힘듭니다.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김종서 등의 권신들과 안평 대군이 왕위를 찬탈하려 했다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 시대 사람들의 합성 실력이 너무나도 떨어졌던 것인지 그 증거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관들의 마지막 양심이었던 걸까요? 다행히도 사육신들의 행동은 완전히 묻히지 않았습니다. (이게 역사는 승자의 거라는 것에 최고의 반론으로 써도 될지도요) 수양이 한 짓거리도 묻을 수 없었구요.

그나마 좋은 점은, 한명회 같이 물밑에 있던 인물들도 실록에서 차례대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지금부터 수양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역사의 주연들을 하나씩 만나러 가 보죠.

1. 김종서

"이 김종서가 눈을 뜨고 있는 한, 더는 종친이 정사에 관여해서는 안 될 것이오. 이를 거스르는 자는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이오이다."
"수양. 지하에서도 네놈을 용서치 않으리라!"

http://www.kbs.co.kr/zzim/player/html/vmplayer/index.html?markid=2165892
공주의 남자 최고의 명장면이죠. 하아...

"예전 제도에 종성 중에 유복지친 으로 본부에 천망하여 직을 제수하는 것을 허락하였으나, 선조의 시마 입을 종친은 지금 복이 없으니, 청컨대 천망하지 말게 하소서" (단종 즉위년 5월 26일)

천망이라 함은 벼슬의 윗자리에 천거하는 것, 시마는 임금과 가까운 종친이 입는 상복입니다. 이걸 해석하면 지금 임금과 가까운 종친에게는 벼슬자리를 주지 말라고 하는 거라고 보면 될 겁니다. 이게 의미하는 것은 간단하죠. 종친 견제입니다. 당시 영의정은 황보인이고 김종서는 우의정이었습니다. 얼마 안 가 죄의정 남지가 물러나면서 좌의정까지 올랐죠. 그런 가운데서도 김종서는 최고의 실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수양 측에서 가장 견제한 것이 김종서였으니까요.

세종대왕의 밑에서 그리도 힘들었던 동북면 개척을 완수했던 인물, 자신의 무예는 모자랐으나 이징옥 같은 당대 최고의 무인의 인정을 받은 카리스마의 사나이, 문무 양쪽으로 최고의 활약을 보여 주었던 인물... 그는 문종의 사후 최고의 실력자로 떠올랐습니다. 단종실록에는 일관적으로 그와 황보인이 권세를 휘둘렀고 그의 자식들을 마구 요직에 앉혔다고 욕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재물을 모았다는 기록도, 무언가 구체적으로 왕을 핍박했다는 기록도 찾을 수 없죠. 그렇게 까고 싶었을텐데도 깔 수 있었던 건 겨우 그 정도였던 겁니다. 그리고 그 정도는 권신이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수준, 딱히 그가 큰 부정을 저질렀다고 생각할 것은 그 단종실록에서도 찾을 수 없으며, 수양이 뒤집어 씌운 "왕위를 찬탈하려는 음모의 수괴"에는 더더욱 모자랍니다.

그럼에도 그가 영의정 황보인을 넘어 수괴로 지목받았다는 것은 그 자신이 단종의 가장 큰 보호자였다는 거겠죠.

2. 안평 대군 이용

"제 2 왕숙인 내가 친히 전하께 받은 교지일세. 어서 온 종친과 백관들 앞에서 읽으시게"

안평 대군의 기록에서는 뭔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문종이 죽은 직후 혜빈 양씨를 견제하는 거나 분경을 금지할 때 수양과 같이 행동했었죠. 아니 오히려 그가 앞장 선 듯한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둘 중 하나겠죠. 꾸며낸 거든가 진짜든가 -_-; 만약 진짜라면 이 때 둘이 그렇게까지 대립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이 될 겁니다.

그는 세종대왕 때부터 언제나 수양과 함께 쌍두마차로 움직여 왔습니다. 문종 때도 수양과 쌍벽으로 욕 먹죠 -_-;; 둘 중 안평에 대한 욕이 더 많습니다. 주로 뇌물을 받고 권력을 남용했다는 것인데, 단종실록으로 가면 스케일이 더 커지죠. 그런데 어이 없이 커져 버립니다. 단종 즉위년 6월 30일. 문종이 죽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뜬금 없는 기사가 나옵니다.
"이것은 김종서가 비밀히 이용더러 인심을 수습하여 반역을 꾀하라고 재촉한 것이다"
김종서가 멋 나게 그에게 반역을 촉구하는 시를 지어줬다고 하네요. 이렇게 그의 죄는 김종서와 손 잡은 반역죄로 급이 크게 올라갑니다.

뭔가 애매합니다. 수양과 동급으로 움직였던 종친, 단종 즉위 직후까지 수양과 함께 움직였던 그가 어느 순간 김종서와 결탁했다는 것이죠. 영조 대에 이르러 신원될 때도 딱히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이 없어서 진실을 파고 들기가 애매합니다.  

뭐, 가장 좋은 것부터 나쁜 것까지 나열해 보죠. 그가 정말 단종을 보호했다는 것, 자신의 야망 및 능력과는 별개로요. 그 때문에 수양을 배제하고 권신과 손 잡은 것이죠.
그 다음은 그의 권력욕과 권신들의 필요가 맞아 들어갔다는 것. 그 역시 권력욕은 수양과 비등했고 권신들은 이를 이용했다는 것이죠. 수양에 대한 대항마로요. 얼굴마담일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혹은 그냥 평판 안 좋은 종친이어서 "반역"이라는 것에 맞추기 위해 죽인 종친일 뿐이라는 것. 성삼문 등 대간들도 그를 죽이는 데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들 입장에서야 단종을 보호하기 위해 꼬리를 잘라낸다는 심정으로 했을지 모르겠지만, 죽여도 상관 없을 정도로 단종 보호와는 관련 없었을 수도 있죠.

좋게 좋게 보는 것부터 그냥 일개 희생자였을 뿐이었다는 것까지 그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단종실록에서 이걸 구체적으로 좁힐 수 있는 부분은 아직 못 찾았구요.

확실한 건 김종서와 그가 꾸민 게 있기나 한 지 의문이라는 것, 그리고 대신들과 손 잡은 것 치고는 같은 편인 종친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찌됐든 저 위의 기사 이후로 김종서, 황보인, 안평에 대해서는 욕으로만 구성돼 있습니다.

3. 신숙주와 한명회
역사는 아는 조합이죠. _-)b



"잔치에 모실 귀한 손님들입니다."
"누군들 김종서가 자기 집에서 대군에게 칼을 맞아 죽을 거라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처음 수양의 편으로 언급되는 인물은 권람입니다. 과거에 별 관심이 없이 세상을 떠돌았지만 그 재주는 세상에 알려져서 "백의 재상"이라 불렸다고 하죠. 이후 벼슬자리에 올라 5품 교리에 오른 상황이었습니다. 그가 사귄 벗이 있었으니, 바로 한명회입니다.

나름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칠삭동이에 어려서 부모를 잃은 쉽지 않은 삶을 살던 자였습니다. 재주와 뜻은 있었지만 과거에는 번번이 낙방, 결국 음서를 통해 개성에 있는 경덕궁을 관리하는 궁지기였습니다. 서울 출신으로 개성에서 벼슬하는 자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무시당했다고 하죠. 그랬던 그가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권람과 수양은 역대병요를 지으며 이미 알던 사이, 한명회는 동래 온천에 갔다 돌아온 권람을 통해 수양과의 만남을 시도합니다. 권람 역시 뜻을 함께 했죠. 실록에서는 이 얘기를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권남이 한명회의 말을 세조에게 고하고, 또 말하기를,
“한명회는 어려서부터 기개가 범상하지 않고, 포부도 작지 않으나, 명이 맞지 않아 지위가 낮아서 사람들이 아는 자가 없습니다. 공이 만일 발난(난을 정리함?)할 뜻이 있으시면 이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니, 세조가 말하기를,
“예로부터 영웅은 또한 둔건(살기 어려움)함이 많으니 지위가 낮은들 무엇이 해롭겠느냐? 내가 비록 그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나, 이제 논하는 바를 들으니 참으로 국사로다. 내가 마땅히 대면하여 상의하겠다.” (단종실록 -_-; 즉위년 7월 28일)

두 야심가의 대결은 9개월 후에나 이루어집니다. 그 동안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열심히 공작했던 거겠죠. 수양이 자신의 장량이라고 칭했던 한명회는 이렇게 역사에 등장합니다. 그 옳고 그름을 빼고 본다면 조선사에서 보기 드문 책사였죠.


"이 아비는 이 나라 조선을 누구보다 잘 경영할 자신이 있다. 나 신숙주는 수양대군을 성군으로 만들 것이다."

그에 반해 변절의 대명사로 나오는 신숙주는 딱히 한 게 보이지 않습니다. 재밌는 기사는 있죠. 즉위년 8월 10일, 제목도 좋아서 "신숙주를 불러 그를 떠보다"입니다. 신숙주가 수양의 집 앞을 지나가는데 수양이 그를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세조가 부르기를, “신 수찬!”
하니, 신숙주가 곧 말에서 내려 뵈었다. 세조가 웃으면서 말하기를,
“어찌 과문불입하는가?” (문 앞에 가면서 섭섭하게 집에도 안 들어오냐 ㅡㅡ)
하고, 이끌고 들어가서 함께 술을 마시면서 농담으로 말하기를,
“옛 친구를 어찌 찾아와 보지 않는가? 이야기하고 싶은 지 오래였다. 사람이 비록 죽지 않을지라도 사직에는 죽을 일이다.”
(나라 위해서 뭔가 하나 해 보지 않을래?)
하니, 신숙주가 대답하기를,
“장부가 편안히 아녀자의 수중에서 죽는다면 그것은 ‘재가부지(집에 있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는 것)라고 할 만하겠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고 가만 있을 순 없죠)
하므로, 세조가 즉시 말하기를,
“그렇다면 중국으로나 가라.”

그 때 수양은 중국으로 가는 사은사에 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수양 최고의 페이크이기도 했죠. 이 때 신숙주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그가 뭘 했다는 건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수양의 뒤를 따른 것 뿐이죠. 그런 사람은 너무나도 많구요. 그가 변절의 대명사가 된 것은 세종대왕 때부터 인정받은 능력자였다는 것, 세종대왕이 기른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의 거두였다는 것, 그리고 그 동료였던 성삼문의 일갈 때문이겠죠. 어쨌든 그는 수양 대에 엄청난 활약을 보여 줍니다. 그 능력과 업적으로만 따진다면 문무 양쪽으로 최고의 재상이요 조선 역사상 최고의 일본통이었으며 역사에 길이 남을 명신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변절자로서의 모습이 더 강조됐겠죠.

공주의 남자는 신숙주의 포스가 한명회보다 더 나은 초유의 드라마입니다만, 그의 모습은 이전처럼 나약한 지식인의 모습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합니다. 혹은 충성보단 자기 능력을 펼치는 것에만 신경 쓴 인물이던가요.

한명회가 배후에서 움직였듯이 그가 맡은 임무는 집현전을 장악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본다면 그가 그리 성공한 것 같지는 않네요. 그의 동료들은 생각이 달랐으니까요.

4. 성삼문과 박팽년, 하위지

다른 사람은 없으니 이개라도...

"네 놈의 성가신 행패를 집현전은 더는 용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력으로라도 너의 탄압받은 백성들을 자유롭게 하고 깨우치게 해주리라!"

-_-; 에 뭐;

집현전의 젊은 학자 성삼문과 박팽년, 하위지. 후에 단종 복위 운동의 주도자였던 이들은 수양의 행동에 정면으로 맞서지는 않습니다. 안평을 죽이라고 요구한 것 역시 이들이었죠. 위에서 적었듯 안평이 단종 보호 자체와는 별 관계 없는 인물이라서 그랬거나 그를 감싸기 힘들어서 먼저 꼬리를 자른 거라고 보면 되겠죠. 수양은 그들 역시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대간들도 심심하면 대신들을 비판하던 상황, 안 그래도 비판하는 게 일인 그들이 자기 편을 들면 유리해지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수양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습니다.

수양은 정난을 일으키기 전, 편찬이 완료된 역대병요에 관련된 이들의 자급을 하나씩 올려주라고 요청합니다. 큰 공을 세웠다는 거죠. 하지만 정작 그 혜택을 받을 그들이 그걸 거부합니다.

"이달 20일에 엎드려 성상의 은혜를 받았는데, 신에게 《병요》를 수찬하는데 참여하였다고 하여 특별히 한 자급을 더하여 주시니, 신은 놀라고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중략) 엎드려 바라건대, 내리신 명령을 빨리 거두어서 공기를 중하게 하신다면, 신은 지극한 소원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단종 1년 4월 24일) - 성삼문
"《병요》·병서를 수찬한 사람들에게 모두 가자하도록 명하였는데, 신도 또한 이에 참여하였으나, 신은 이 책에 진실로 상을 받을 만한 공이 없습니다 (중략) 곧 들으니 수양 대군이 《병요》로 수찬한 공을 논하여 아뢴 때문이라 하니, 황공하고 놀라서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단종 1년 4월 22일) - 하위지

박팽년의 경우 여기에는 관련 없지만 후에 이들과 일을 함께 합니다. 안평을 죽이는 것까지는 이들이 모두 신숙주와 행동을 함께 하지만 그 이후에는 달랐죠. 수양의 횡포를 막지는 못 했지만 대간들의 눈은 여전히 시퍼렇게 떠 있었습니다. 이들은 수양이 자기 친척들을 마구 등용하는 것을 비판했고, 공신을 남발하는 것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수양이 왕이 된 후, 이들은 큰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4. 종친 - 수양의 편
수양이 중국으로 가는 게 결정된 이후, 종친들은 양녕의 집에 모여 잔치를 엽니다. 고생하고 오라는 거였죠. 이 때 보이는 인물들이 양녕과 효령대군, 세종대왕에 밀린 후계 1, 2순위 대군들이었습니다. 양녕은 세종대왕의 오랜 노력으로 마침내 서울로 돌아 와서 종친의 큰 어른 역할을 했고, 효령 역시 조용한 듯 하면서도 불교 보호에 앞장 선 인물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이 죽은 상황에서 그들의 힘은 무시할 수 없었죠. 이들이 수양의 집에 모인 겁니다. 이 날 술에 취한 양녕의 말이 의미심장하죠.

"이는 천하의 호걸이다. 중국 사람이 그것을 알 것인가?"

별 일 아니었는데 수양 측에서 강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들이 그 후에도 쭉 수양의 편을 든 것은 확실합니다. 이들은 후에는 단종을 죽이는데도 앞장 섰죠. 왕실의 큰 어른 둘이서 그걸 주도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요? 세종대왕이 왕 자리에 올랐다는 것에 대한 뒤늦은 복수였을까요?

여기서 잠시 고려시대의 왕들 중에 특이점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혜종-3정종-4광종 (동생)
5경종-6성종 (사촌동생)
9덕종-10정종-11문종 (동생)
12순종-13선종-15숙종 (동생)

14대 헌종은 선종의 어린 아들, 15대 숙종은 그 어린 왕의 숙부였습니다. 지금 다루는 일과 똑같은 일이 고려 때도 일어났었죠. 어차피 이 이후는 무신정권과 몽골의 침략으로 별 의미가 없어지니 생략하죠. 이렇게 고려 때는 형제끼리 계승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재위기간이 짧았던 것도 이유가 있지만 죽은 왕의 아들이 있었던 경우도 있었죠. 성종의 경우 아들이 없어서 사촌형 경종의 아들이 다음 왕위를 이었는데 이게 천추태후로 유명한 목종입니다. 사촌형의 아들에게 왕위를 돌려주기 위해 일부러 아들을 안 낳았다는 말도 있더군요.

조선에서야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졌지만 (그래놓고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았지만 ㅡㅡ) 고려 때 형제 상속은 이렇게 많았습니다. 이걸 잘 알고 있는 종친들입니다. 거기다 조선 초에도 계승은 적통이 아닌 힘으로 이루어졌죠. 마침 문종 대에 고려사도 완성됐네요. 역사가 말 해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건 힘이라는 것을요. 유교 논리에 집중한 대신들이라면 몰라도 종친들에게 이게 마음에 와 닿았을까요? 문종의 마음과는 달리 종친들은 힘 있는 둘째 아들이 왕위를 잇기를 기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계유정난은 이들 종친의 묵인 속에 행해진 것이기에 쉬웠다고 봐야 될지도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수 없는 상황, 거기에 유교의 정신과도 맞 닿은 상황에서 종친들이 배제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세종대왕 대부터 힘이 강해진 종친들이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겠죠. 수양이 사은사로 가기를 자청했을 때 한 말이 왠지 의미심장해서 옮겨봅니다.

"만약 우리 종친이 공이 없이 녹만 먹고 (있는데) 임금을 위해 사신이 되지 않는 것이 옳겠는가?"
"나는 국정에 참여하지 아니하고 또 여러 재상이 있으니, 비록 두어 달 원행을 하더라도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뭔가 은근슬쩍 "나는 지금 할 일이 없다"는 걸 강조하고 있죠. 권력에서 밀린 종친들의 불만, 일의 원인 중 하나를 이걸로 봐도 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안평의 역할이 궁금해지죠. 대신들이 안평을 끌어들인 건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게 수양과 그의 권력 다툼이 아니라, 종친을 분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요? 안평의 편으로 분류된 종친들은 모두 단종 복위와 관련된 사람들입니다. 안평이 원한 게 자기가 왕이 되는 거였다면 이들과도 상극이었죠. 종친 중 강력했던 안평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였고, 그래서 다른 종친들이 안평을 적으로 여기고 수양을 묵인한 게 아니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밑에서 다시 논해 보죠.

양녕이 수양의 편을 들어서 자신의 위치와 명성을 회복하려 했다는 말도 있더군요. 수양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양녕의 모습은 아첨꾼 수준이죠. 왠지 그럴듯 합니다.

5. 종친 - 어린 왕의 보호자

"저들이 역모를 꾀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형님?"
"누군가 역모를 꾀했다 하면 지엄한 국법에 따라 추국을 하여 그 진의를 밝혀야 함을 모르십니까?"

"문종의 상이 있을 때 안평 대군과 금성 대군, 화의군, 의창군이 모여 잔치를 열었다."
"혜빈양씨·상궁박씨·금성 대군 이유·한남군 이어·영풍군 이전· 등이 난역을 도모하여"
"임금이 그대로 따라서 의금부에 명하여 혜빈양씨를 청풍으로, 상궁박씨를 청양으로, 금성 대군 유를 삭녕으로, 한남군 이어를 금산으로, 영풍군 이전을 예안으로, 정종을 영월로 각각 귀양보내고, 조유례는 고신을 거두고 가두었다

금성 대군은 세종대왕의 6남, 혜빈 양씨는 단종의 유모, 상궁 박씨 역시 단종과 가까운 상궁이었고 정종은 뭐... 다들 아시죠?

이들이 이른바 안평의 파로 분류된 종친과 주변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힘을 모아 무언가를 했다는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수양에 의해 각개격파였죠.

과연 "안평의 무리"라는 게 존재하기나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안평이 단종을 보호하려 했든 아니든 그를 필두로 하나하나 제거당하죠. 각기 반격을 시도하거나 하긴 했지만 이 역시 각자 한 거였죠.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단종과 친했다는 것 뿐입니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단종 보호의 움직임을 보인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저 폐위되는 것만을 막으려 했겠죠. 단종 보호의 중심이 되었던 것은 역시 김종서, 그리고 그가 맨 처음 당한 이후로 확실한 구심점이 없어졌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7
"너희가 모셔야 할 주군은 수양대군이 아니라 전하가 아니더냐!"

공주의 남자에서 주역이 되는 것은 단종의 누이 경혜 공주와 그 남편 정종이죠. 뭐... 이들의 결말이 어떨지는 차차 얘기해 보죠.

6. 斷

"그만 참형을 중지하세요."
"난 지금 숙부한테 상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에게 어명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왕, 단종은 그렇게 적만이 가득한 궁궐에 홀로 남게 됩니다.

수양이 벌인 짓은 왕조국가에서 흔히 일어나는 권력 싸움에 불과했습니다. 사육신이 없었다면 단종이 그렇게 주목받기나 했을지 궁금하네요. 예. 뭐 그런 거죠. 흔히 있는 일 중 하나였을 뿐이예요.

그런데 역사는 참 희한하게 어른들의 싸움에 애들을 끌어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대까지도 마찬가지죠. 역사가 바뀌는 순간, 어른들의 싸움이 극에 달하는 순간에는 언제나 어린 피가 뿌려집니다. 고려가 멸망할 때도 그랬고, 광해군 때 영창대군도 그랬고, 소현세자의 아들들도 그랬으며, 뭐... 현대의 혁명들에서도 불씨를 지핀 건 언제나 어린이들의 희생이 아니었던가요.

권력은 순수한 피를 탐내는 걸까요. 드래곤이나 유니콘 같은 강함의 상징들이 순결한 처녀를 탐하는 것은 괜히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네요.

그래도 그 일련의 과정을 보면 그가 쉽게 물러난 것 같진 않습니다. 그 역시 세종대왕의 손자요 문종의 아들이었으니까요. 차차... 다뤄보도록 하죠.

다음 편부터 계유정난과 그 이후의 일들에 대해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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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자달리자
11/08/31 07:47
수정 아이콘
아침부터 멋진글 잘 보고 갑니다. 다음글 역시 기대할게요! 추천!
Je ne sais quoi
11/08/31 08:53
수정 아이콘
마지막 문장에 기대감이 더욱 급상승하는군요. 좋은 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승리의기쁨이
11/08/31 08:59
수정 아이콘
역시 공남을 재미있게 보고있는 저로써는 덩실덩실 ~
코큰아이
11/08/31 09:20
수정 아이콘
아하 흥미 진진!!
아침 일하기 전부터 정독하고 갑니다. 감사요
Montreoux
11/08/31 11:32
수정 아이콘
오늘 공남 본방 날입니다~
금욜부터 화욜까지 본방 기다리며 똥마려운 강아지로 똥줄이 탑니다.
순달프옹이랑(이젠 안 나오심 흙) 영철짜응 연기력이 후덜덜해서 극 전개에 닥빙하다보니
政史까지는 생각이 미칠틈이 없더라고요.
눈시BB님 글에 언제나 자연스럽게 빨려들어갑니다만
단종이야기라 더 몰입이 잘 됩니다.

개강.
씐난다? 모드로 재미있게 지내세요~
백마탄 초인
11/08/31 11:33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언제나 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
지니쏠
11/08/31 13:51
수정 아이콘
이번 시리즈 특히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제 성씨 시조가 김종서이기도 하고, 공남은 안보지만 계유정난 다룬 사극들 워낙 재밌게 봤기도 하고.. 크크. [m]
11/08/31 17:11
수정 아이콘
공주의 남자는 제목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당연히 로멘스 퓨전 사극이겠거니..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아주 좋네요.
한 번 봐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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