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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9/08 08:55:25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단종애사 - 완. 태백산으로


1. 승자
(1) 한명회

수양의 치세 때 가장 큰 권력을 휘두른 자는 역시 한명회일 겁니다. 신숙주와 함께 역사는 아는 조합이지만, 의외로 한명회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나쁘진 않습니다. 사육신의 난을 "감"으로 막았다든가, 신숙주가 술김에 세조의 팔을 꺾었을 때 "오늘은 책 보지 말고 자라고 해라"고 해서 신숙주를 위험에서 구해줬다는 등의 에피소드가 있죠. 그의 능력 및 처세술에 관련된 에피소드입니다. 신숙주나 정인지와는 다르게 애초에 수양의 사람이었고 때를 잘 타고 자기의 능력으로 출세했다는 점에서 그런 게 아닐까 싶네요. 거기다 학자들만 가득한 조선의 인물들 중에서 유일하게 군사, 참모 타입의 인물이죠. 한국사에서 가장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비슷한 인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추한 용모, 처세술, 최고의 권세를 누린 면 등에서요. 수양의 장량. 이 말에서 그의 위치가 어땠을지 알 만 하죠.

여담이지만 역시 저한테는 왕과 비의 최종원씨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2) 신숙주

변절의 대명사로 남은 신숙주. 하지만 그는 조선사에서 역대급 재상에 들어갈만 합니다. 일본은 물론 여진, 위구르어까지 알고 그들의 사정도 잘 알고 있었다고 하며 군사적으로도 능해 수양은 그에게 북방의 일을 자주 맡겼습니다. 상업의 진흥에 대해서도 주장을 한 모습 등을 보면 조선사 최후의 먼치킨급 재상이라고 봐도 될 정도죠. 그 이후의 인물들은 아무래도 문 쪽에서만 능하니까요. 이씨 성을 가진 어떤 장군님이라든가 먼치킨급 인물들이 없진 않았지만요. 그래서인지 그의 시호는 문충(文忠). 정몽주 이래로 시작된 문관계에서 최고급 시호입니다.(무관계는 당연히 忠武) 재밌는 건 성삼문의 시호는 충문이었다는 거죠. 수양은 그를 자신의 위징이라고 했습니다. 당 태종을 따르던 명신이었죠. 이 때 수양은 신숙주를 "지장"이라고 했는데, 이전 편에서는 그가 한 일이 없다고 적었지만 그 역시 이 과정에서 꽤나 큰 역할을 한 모양입니다. 어쨌든 그의 권력지향적인 면은 컸으니까요.

그가 이렇게 까이는 이유는 역시 성삼문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만큼 유능해서 전면에 보였다는 거겠죠. 뭐 -_-a 능력 좋은 건 좋은 거고 깔 건 까야죠.

(3) 정인지
그런 신숙주에게 묻히는 게 정인지입니다. 태종 때 세 명의 후보가 너무 비슷해서 장원을 고를 수 없다고 하자 즉석에서 "내가 집는 사람이 장원"이라 하며 한 명을 뽑았는데, 그 주인공이 정인지였죠. 그 역시 먼치킨 급으로 여기저기 활동합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을 지은 사람으로 유명하고, 과학 쪽에도 다양하게 활동을 했죠. 조선에 사신으로 온 중국 학자 예겸이 "10년 동안 공부하는 것보다 님이랑 하루 대화하는 게 나을 듯"이라는 극찬을 듣기도 한 인물입니다. 세종대왕 황금기의 주인공 중 하나고, 사림이 집권한 이후로는 이런 사람 찾기가 참 힘들어졌죠.
그랬던 그가 계유정난 후 공신으로 올랐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남은 노신으로 수양은 그가 자기를 지지해주길 바랬고, 그는 거기에 충실하게 수양의 딸랑이가 됩니다. 술에 약해서 술자리를 좋아한 수양에게 심심할 때마다 실수하는데 수양은 그를 최대한 감싸주었다고 하네요. 자기 정권의 기반이었을 테니까요. 이런 저런 면에서 신숙주보다 욕 먹어도 부족할 텐데 많이 묻힌 것 같습니다.

(4) 수양

그리고 수양. 그는 이렇게 자기의 적들을 쓸어버린 후 자기가 하고 싶던 정치를 합니다. 수령고소금지법을 없애면서 백성들을 최대한 생각했고, 명에도 최대한 강경한 자세를 보이며 조선만의 길을 걸으려 했죠. 신숙주를 보내 북방을 안정시키면서 골칫거리였던 이만주를 죽이는 쾌거를 이루었고, 불교부터 각종 잡학에 유학자들을 임명하면서 유학 일변도의 길을 걷지 않았죠. 어찌 보면 세종대왕 황금기를 이은 거겠습니다만... 태종 때부터 이어진 척신 정치를 오히려 조장해 버렸죠. 이후 정계에 진출한 사림들과 이들 훈구, 척신들이 싸웠고 이는 선조 때까지도 계속됐습니다.

검소한 생활을 했다던지 애민을 실천하려고 한 걸 보면 그가 최소한 부귀영화를 위해서 그런 일을 벌인 것 같진 않습니다. 정말 왕이 돼서 정치를 제대로 해 보려고 했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봐 줄 필요는 없습니다. -_- 그리고 공신 사랑으로 그 애민도 제대로 하기 힘든 것도 분명 비판받아야 될 점이죠.

재밌는 점은 이렇게 종친들의 힘을 얻고 일어난 그가 죽은 후, 종친들의 정치 활동은 금지되어 갔다는 점입니다. 특히 정권을 잡은 훈구파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죠. 다시는 그와 같은 불행한 종친이 생기면 안 될 테니까요.

2. 패자
상왕을 폐하라는 주장은 의외로 반 년이나 늦게 나옵니다. 그 정도로 여론이 안 좋았던 거겠죠. 앞장선 이는 정인지와 양녕대군, 수양은 이번에도 할아버지 태종을 따라하며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동안 참은 적이 많던 태종에 비해 수양은 더 기다릴 틈이 없었죠. 삼사는 완전히 수양의 것이 되어 그들도 상왕을 폐하라고 허구헌 날 주장했죠.

단종의 장인 송현수는 사육신의 난 직후 수양이 직접 술을 내리며 위로했습니다. 상왕을 폐하라는 요청이 계속 내려지던 와중에 그가 군사권을 가지고 있으니 파직하라는 건의가 있었습니다. 이 때 수양은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송현수와 단종의 후궁 권씨의 아비 권완이 역모를 저질렀다는 보고가 들어옵니다. 근거는 딱 하나, 김정수라는 백성이 윤사윤에게 말했다는 거였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돼서 그 둘은 하옥되고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등, 영월로 가게 됩니다. 이 때 권완은 한 참 후에나 자복했고, 송현수는 끝내 부인했습니다. 권완은 처형당하고 송현수는 유배당했죠. 그리고 유배지에서 역시 처형 당합니다. 뭐... 이게 시작이었죠.

(1) 금성대군

송현수와 권완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던 중 순흥부에 안치된 금성 대군의 역모 사건이 들려옵니다. 관노가 이를 고발했고, 금성이 끌어들이려고 했던 이보흠 역시 그에 대한 보고를 올리죠. 이미 몰릴 때까지 몰린 상황에서 마지막 발악에 가까웠을 겁니다. 수양이 주장한 "역모" 중에서 그나마 실제로 있었다고 할 만한 거겠죠.
이후 안동에 갇혀 있었다가 죽게 되는데, 이 때 알몸으로 도망쳐서 잡지 못 했다고 합니다. 한참 후에야 돌아와서는 하는 말이 이거였죠.
"너희들이 비록 무리는 많으나, 하잘 것 없구나. 내가 어찌 진실로 도망할 사람이냐. 우리 임금이 영월에 계시다"
이후 옷을 바로 입고 북쪽에 절한 후 죽었다고 합니다.

이 때 연루돼 같이 죽은 사람이 이보흠인데... 뭔가 애매하네요. 실록을 보면 그는 강직하고 할 말 하는 사람의 모습인데, 이 사건에 대해서 "금성에게 끌려갔다"와 "금성과 공모했다"는 게 얽혀 있습니다. 정작 실록에는 이보흠이 금성의 역모를 보고한 장계가 있고, 같이 죽은 것도 있죠. 음... 같이 일을 꾸미다가 마지막에 배반했는데 그 때는 이미 발을 빼기 힘든 상황이었던 걸까요? 아니면 음모는 같이 꾸몄는데 들키니까 모르는 것처럼 보고했는데, 알고보니 자기도 엮여 있던 그런 상황일까요. 아무튼 이 때 이보흠에 대한 평가는 크게 갈리네요.

(2) 정종


영양위 정종. 그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았습니다. 엮여서 유배를 당했을 때도 수원이라는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고, 수양이 노비나 먹을 것을 챙겨주라고 직접 말 할 정도였죠. 이유야 간단합니다. 마누라가 경혜공주였으니까요. 표면상 상왕은 죄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후환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산군으로 강등시킨 거였죠. 그렇다면 그의 친누나이자 역시 문종의 피가 섞인 경혜공주는? 크게 우대하지 않으면 여론이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없었겠죠.

그는 의외로 오래 삽니다. 세조 7년까지요. 유배지야 금산부터 광주까지 내려갔지만, 옷을 챙겨주라느니 하는 말들이 남아 있죠. 하지만, 이게 산다고 할 수 있는 걸까요? 자기가 구하려던 사람, 그와 뜻을 함께 한 사람들이 모두 죽었고, 그 자신이 살아남은 건 어디까지나 민심 때문이었습니다. 세조 7년, 그는 역모죄로 잡히게 됩니다. 이 때도 그가 병이 나자 의원을 보내라는 호들갑까지 나왔지만, 결론은 간단했죠. 그는 성탄이라는 중을 협박했다고 하는데... 빨리 안 죽이고 나중에야 죽인 걸 보면 진짜 한 바탕 일을 벌이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 역시 수양의 하늘 아래 살 수 없던 사람이었으니까요.

(3) 경혜공주

그렇게 혼자 남은 경혜공주. 십수명씩 애를 낳던 시대에 단 둘밖에 없는 남매지간이니 그 우애가 오죽했겠습니까. 계유정난 당일에도 단종은 그녀의 집에 가 있었다고 하죠.
계유정난 이후 남편 정종이 죽을 때까지 그녀가 무얼 했는지는 당연히 적혀 있지 않습니다. 여자의 일이 적힐 가능성은 적고, 그녀가 뭘 했다 하더라도 여론을 위해서 그녀에게는 최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려 했겠죠. 자기 동생이 그렇게 죽었는데 그녀라고 오죽했을 리가요.

그녀가 노비가 되었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자기 남편이 죽은 후에 말이죠. 그 때 그녀는 당당하게 "나는 왕의 딸이다. 죄가 있어 귀양 왔지만 어찌 일을 시킨단 말이냐?" 고 하는 당당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합니다. 정종을 죽이기로 결정한 직후에 그녀를 광주에서 데려 왔고, 후에도 정종의 친척들을 연좌하지 말라고 한 걸로 봐서 이 기간도 그리 길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12월에는 그녀에게 집과 토지, 노비를 주었다고 하는데 이 대 이미 노비에서 해방되었다고 봐야겠죠. 그 기간은 길어야 두 달, 아예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공주의 남자에서 주연이나 다름 없는 두 사람, 하지만 이 시대의 다른 인물들에 비해 두 인물들은 꽤나 대접받은 편입니다. 뭐... 그렇다구요. 그렇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는 상상하기 힘드네요. 동생을 보호하던 이들이 죽고, 동생을 다시 보호하려 했던 이들도 죽고, 동생도 죽고, 남편도 죽고... 차라리 죽여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나마 멸문 당하지도 씨가 끊기지도 않은 게 다행일 겁니다. 그녀의 아들 정미수는 연좌 없이 관직에 올랐고, 중종반정에서 공신에 오르기도 했죠.

(4) 정순왕후

그런 그녀보다 더 안타까운 이가 있으니, 단종의 비 정순왕후입니다. 폐서인 된 그녀였지만 경혜공주와 마찬가지로 수양이 어느 정도 돌봐주었습니다. 수양의 페이크를 위해 어린 나이에 국모의 자리에 올랐고, 이용가치가 떨어지자 죽지만 않았을 뿐 모든 것을 잃은 그녀. 하늘이라는 게 얼마나 재미 없는 장난을 좋아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82살, 중종반정부터 그 문정왕후가 중종과 결혼하는 것까지 보고 죽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모진 삶이었을까요.

그녀와 경혜공주를 도운 이가 수양의 아내 정희왕후였습니다. 실록에서 "중전이 말 했다"고 직접 드러나 있기도 하죠. 뭐... 남편의 죄를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조차도 하나의 계산이었을까요. 모르겠습니다.

공주의 남자의 모티프가 되는 야사도 각기 다르다고 합니다. 김종서의 서자라느니 손자라느니 하면서요. 글쎄요... 왠지 수양의 인간으로서 생각할 수 없는 면을 욕 하면서도 어떻게든 죄책감을 가진 부분이 있다고, 인간으로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는 시도 속에서 나온 전설이 아닐까요.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비정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허무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3. 그리고 단종

10월 21일. 송현수와 금성대군, 정종 등의 벌이 정해진 날 실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 노산군이 이를 듣고 또한 스스로 목매어서 졸하니, 예로써 장사지냈다" (세조 3년 10월 21일)

뭐 그랬다고 합니다.

병자록에는 금부도사로 온 왕방연이 차마 들어가지 못 하고 엎드려 있자 그가 스스로 목을 묶고 자기를 따르던 이에게 밖에서 잡아당기라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한 사람도 문 밖을 나서지 못 하고 피를 흘리며 죽었다고 하죠. 여러 가지 말이 있는데, 억지로 죽였다는 것과 자살했다는 게 있지만 결론은 똑같은 거죠 뭐.
그를 죽인 후 시체를 강물에 던졌는데 멀리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는 말, 그가 죽은 날 저녁 그를 만난 사람이 있었는데, 백마를 타고 있어서 어기 가느냐고 했더니 "태백산으로 놀러간다"고 했다는 전설, 그가 죽은 후 영월 부사로 오는 사람마다 죽었다는 뭔가 장화홍련 설화의 모태 중 하나가 아닌가 하는 설화들이 있습니다.

이 때 그의 나이 열일곱살. 흔히 말하는 이팔청춘이었죠. 마음이 어땠을까요.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찾아 온 감당할 수 없었던 중임, 자기에게 힘이 돼 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역적이 돼서 죽은 것,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지키려 했지만 그 때문에 자기를 지켜주던 사람만 죽어가던 나날들... 어쩌면 후련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가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거니까요.

어린 왕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결코 어리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할 것이 뭔지 알았고, 자기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알았죠. 사육신의 난 때 지지를 표명했다는 것부터가 그가 아무 생각 없이 죽은 게 아니라는 걸 말 해 줍니다. 아마, 자기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였다는 쪽이 더 맞지 않을까요.

그의 죽음이 정치사에서 딱히 드문 건 아닙니다. 심심하면 있어 왔죠. 그도 그들 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왕족 하나가 죽은 것일 뿐이죠. 하지만... 세상은 그를 기억해 냈습니다. 잊힌 사람들이 많다 해도, 기억되는 사람은 기억해야죠.

단종애사라는 제목을 쓸 때 고민을 좀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광수가 쓴 소설 제목이니까요. 그래도 이만큼 어울리고 애잔한 제목은 없는 것 같아서 썼습니다. 어차피 그에게서 배울 건 권력이란 건 무섭다, 희생자를 낸다라는 고식적인 것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기억해야죠. 이 어린 왕을.

그가 죽은 후 버려져 있던 시체를 수습해서 무덤을 만든 이가 아전 엄홍도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문제가 되자 파서 버렸다고 핑계 대고 그대로 묻어 두었다고 하죠. 나중에야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 때 그는 "옳은 일 하고 해를 당하는 건 상관 없다."고 했다고 하네요.

그에 관련된 기록들을 읊어보면서 단종애사 마치겠습니다. 그 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에 조신들이 노산을 처형하여 그에게 향한 백성의 마음을 단념시키자고 청하였는데, 사관이 기록하기를, “노산이 듣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하였다"
"수상 정인지가 백관을 거느리고 노산을 제거하자고 청하였는데, 사람들이 지금까지 분하게 여긴다."
"그 죄를 논한다면, 정인지가 으뜸이 되고 신숙주가 다음이다."

"사기에 말하기를, “노산이 영월에서 금성군의 실패를 듣고, 자진하였다.” 하였는데, 이것은 당시의 여우나 쥐 같은 놈들의 간악하고 아첨하는 붓장난이다. 후일에 실록을 편수한 자들이 모두 당시에 세조를 종용하던 자들이다."

"이것은 특히 여우와 쥐 같은 무리의 간악하고 아첨하는 기록으로서 후일에 실록을 편찬한 자들이 모두 당시에 세조를 따르던 자들이니, 실록을 모두 믿을 수는 없다"

천만 리 머나먼 길 고운 님 여의옵고 / 내 마음 둘 곳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 저 물도 내 마음 같아 울어 밤길 예는구나
금부도사 왕방연이 단종을 영월에 두고 돌아오는 길에 지었다는 시조. 후에 사약을 들고 가는 이도 그였죠.

원통한 새 한 마리 궁에서 쫓겨 나와 / 외로운 몸 그림자 푸른 산 헤매네
밤마다 자려 해도 잠은 오지 않고 / 해마다 한을 없애려 해도 없어지지 않는구나
울음소리 끊어진 새벽 산엔 어스름 달 비추고 / 봄 골짜기엔 피 토한 듯 떨어진 꽃이 붉어라
하늘은 귀 먹어서 이 하소연 못 듣는데 / 어찌하여 서러운 이내 몸 귀만 홀로 밝았는가

영월에서 단종이 지었다는 시

"노산이 항상 객사에 있으므로, 촌 백성들로서 고을에 가는 자가 누 아래에 와서 뵈었는데, 해를 당하던 날 저녁에 또 일이 있어 관에 들어가다가 길에서 만나니 노산이 백마를 타고 동곡으로 달려 올라가는지라 길가에 엎드려 알현하며, “관가께서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하고 물었더니,노산이 돌아다보며 말하기를, “태백산으로 놀러간다.” 하였다. 백성이 절하며 보내고 관에 들어가니, 벌써 해를 당하였다."

그렇게 그는 태백산으로 가서 신선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역사에 남았구요.

=====================================================

지금까지 제 글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글을 못 쓸 거 같네요.











... 문명했거든요.

다음에 쓸 글은 이전에 같이 예고했듯 사도세자의 이야기입니다. 기대해 주시구요. 그 때 다시 뵙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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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 ne sais quoi
11/09/08 09:25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잘 읽었네요. 다음 이야기도 기대할께요. 그리고 그 다음은 송시열... ^^;;;
hm5117340
11/09/08 09:45
수정 아이콘
이미지 사이즈 조절은 Shrink-O-Matic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변경하시면 될듯..
http://toki-woki.net/p/Shrink-O-Matic/ 에서 받으시면 될겁니다 사용법은 초간단이니 따로 설명할 필욘 없을거 같네요.
글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11/09/08 10:10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보았습니다. 요즘 공주의남자 보구있는데 단종볼때마다 불쌍해죽겠어요 분명 현군이 되었을텐데.. [m]
코큰아이
11/09/08 10:53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신숙주에 대한 여러가지 비난이 있지만 전 숙주나물의 명칭으로 한방에 정리되었다고 봅니다. 신의 한수랄까요?
배신의 아이콘, 변절의 대부

성삼문 사육신등은 멸문지화와 남은 식솔들이 노비가 되는 끔직한 일을 겪지만 만고의 충신이 되었고
신숙주는 한명회와 함께 성종 초기까지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천년 만년의 변절자가 되고 --- 왜 김문수와 이재오가 생각나지요?크크크
오히려 한명회보다 더 못한 간신의 대표 인물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에 여쭤보았던 단종의 비 정순왕후를 신숙주가 공신의 전리품으로 자기 첩으로 달라고 수양에게 요청했다는 구절이 있다는데 사실인가요? 전에 신동아에서 연재했던 수양대군의 내용에서 읽었던거 같은데요...
사실이라면 정말 쳐죽일 역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리수마자용
11/09/08 11:36
수정 아이콘
정치사에서는 흔한 일이지요 뭐.. 개중에는 현군이 된 인물도 있는데 세조보다는 어째 평가가 다 좋은 것 같습니다. 아마 세조가 아니었어도 태평성대였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물여우
11/09/08 11:50
수정 아이콘
또 하나의 시리즈가 완성되었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이미지는 태그 상으로 조절이 가능합니다.
<img src="이미지 주소" width="크기 지정" height="크기 지정">
예-> <img src="http://arrestlove.tistory.com/test.jpg" width="400" height="400">
혹시 이미지에 테투리를 추가해서 깔금하게 하고 싶으시면 border="두께 지정" 을 추가하시면 되요. 두께는 보통 1-3 정도?
11/09/08 12:26
수정 아이콘
지금까지 제 글을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글을 못 쓸 거 같네요.



아니 어찌 이런 일이 !! 하면서 스크롤을 내렸더니.. 다행입니다 크크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지니쏠
11/09/08 13:10
수정 아이콘
잘 봤어요~
11/09/08 13:59
수정 아이콘
앞으로는 글을 못 쓰신다고 하신 데서 덜컥 했습니다!!

수고 많으셨어요 :)
11/09/09 00:11
수정 아이콘
너무 재밌어요. ㅠㅠ
눈렐루야
11/09/09 00:54
수정 아이콘
더이상 글을 안 쓴다고 해서 순간 철렁했네요 크크

사도세자, 장조에 대한 내용을 EBS였나 KBS였나 이번 여름 한국에 있을 때 어떤 강의를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자세하게 설명을 하더라고요. 분명 실록만의 기록은 아닌 거 같고 다른 기록을 참고한 거 같은데
그 중 하나가 한중록인 거 같더군요.

한중록이 과연 사서로서의 가치가 있긴 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론 정말 흥미있긴 했거든요.
SperoSpera
11/09/09 16:39
수정 아이콘
쭈욱 정독했습니다, 여전히 필력이 대단하시군요,

요즘 백동수이니 뭐니 해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는 사도 세자의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
Francesc Fabregas
11/09/09 17:26
수정 아이콘
글 잘읽었습니다. 전 이글을보고 공남을 봤을뿐이고 정주행중이고..
앞으로도 재밌는글 많이 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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