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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1/02 18:40:02
Name 중년의 럴커
Subject [일반] 애플 컴퓨터 개발사 (자체번역)
얼마전 스티브 잡스의 추모기사를 보다가 황당한 댓글을 보았습니다.  

기사 내용중 애플 컴퓨터는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에 컬러 디스플레이를 도입하여 게임 개발을 불러 일으켰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댓글은 "소설 쓰고 있네 내가 애플을 써봐서 아는데 흑백만 되고 IBM-PC 에서 '허큘레스' 카드가 나올 때까지 컬러 사용이 안되
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헛웃음만 나오더군요.    '허큘레스' 카드야말로 흑백 전용 카드였다는 것을 알기나 하고 저런 댓글
을 달았는지 궁금하더군요.    

애플 컴퓨터는 컬러가 지원되었었습니다.    요즘 컴포지트라고 불리는 단자를 통해 컬러 모니터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여기
서 컬러 모니터란 요즘 모니터가 아니고 컬러 TV에 방송 튜너는 없고 비디오 입력단자만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컬러 모니터는
가격이 비쌌기 때문에 RF 모듈레이터를 통해 신호를 변환하여 일반 컬러 TV의 안테나 단자에 연결하여 3번 혹은 4번으로 채널
을 맞추어 볼 수 있었습니다.  스테이크 바이트라는 초창기 대박 게임을 카세트 테이프로 로딩하면 로딩 도중 멋진 컬러 타이틀
화면을 볼 수 있었습니다.   (타이틀만 컬러.   그대신 게임은 흑백이에요)  

저는 좀 고급 애플 복제품을 써서 모노크롬 모니터를 썼습니다.   애플의 컬러 구현은 워낙 초창기니 만큼 좀 처량한 수준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그게 어딥니까.   요즘 같은 픽셀별 컬러 대응이 아니라 블럭별 짝수 홀수 픽셀 색상 자동 배치라는 희안한
방식을 쓰긴 했지만 말입니다.     한글자를 가로8 세로 8 픽셀로 구현하기 때문에 한줄에 40자만 표시되어서 (영문기준입니다.)
비지니스 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80자 표시가 가능한 바이덱스 카드라는 멋진 확장 카드도 있었죠.   (8*80=640.  640*480
이라는 해상도는 괜히 탄생한 것이 아니죠)

제일 답답한 것은 어디선가 잘못 얻은 정보가 진리라고 알고 진짜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틀렸다고 지적하면 거짓말이라고 매도
하고 지금의 기준으로 이전을 판단하여 정의함으로서 과거 실제 일어났던 일도 부정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애플의 개발과 관련하여 좋은 글이 있어서 자체 번역하여 올려드립니다.   원래는 사진도 있고 해서 훨씬 멋진 글인데 제가
글 사이사이에 그래픽 넣는 능력이 없어서 무미 건조한 텍스트만 넣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래아한글 파일로는 사진을 포함한
문서가 있으니 혹시 원하시는 분은 쪽지에 이메일 주소를 적어주시면 보내드리지요.

Origin of the Apple I and Apple II Computers
Tom Hormby - 2005.05.09
Popularity:
Short link: http://bit.ly/O7eRP
• • Prehistory
• • The Creation of Apple
• • Apple II
• • Wozniak's Floppy Solution
• • Early Software
이전의 역사
최초로 “컴퓨터”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컴퓨터는 거의 50여년전에 만들어졌다.  그것은 괴물과 같은 기계로서 136 평방미터의 크기에 들어서서 18000개의 진공관 (트랜지스터의 조상격)을 사용하였다.  그 것은 1초에 10자리 숫자 5000개의 덧셈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그 이름은 ENIAC, 개발 년도는 1946년이었다.

그것의 성능은 현대의 휴대용 계산기 수준이었다.

ENIAC 개발 후 2년이 지나서 맨체스터 마크 1이 완성되었다.  요한 폰 노이만과 알란 튜링이 디자인한 이 제품은 ENIAC과 마찬가지로 진공관 기반이었으며, 더 많은 숫자가 사용되었고, 선배의 성능을 훨씬 뛰어넘었다.  그 후에는 필요한 공간과 발생하는 열을 처리하는 문제로 인하여 진공관을 사용하는 컴퓨터는 그 이상의 제품이 개발되지 않았다.

1948년 벨 연구소에 의해 트랜지스터가 개발되면서 컴퓨터 시대의 막이 올랐다.  최초의 트랜지스터는 몇 평방 센티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으면서 3개층의 반도체로 만들어져서 하나의 진공관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었다.


이 직접 회로의 크기 축소를 위한 경쟁이 이루어져 1960년에는 하나의 트랜지스터는 1평방 밀리미터의 실리콘 크기로 줄어들었다.   1970년에 인텔사는 4004라는 225개의 트랜지스터를 60밀리미터에 집적시킨 제품을 발표하였다.   이 새로운 칩은 초당 60개의 연산을 실시할 수 있었고, 코든 무어는 앞으로 18개월마다 칩 당 트랜지스터의 숫자가 2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을 하였고, 199년 파워PC G4가 개발될 때까지 법칙처럼 지켜졌다.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로서 보급된 제품은 알타이어(Altair)로서 인텔칩을 사용하였고,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매우 초보적인 것으로서 기본적으로 키보드나 모니터를 지원하지 않는 제품이었다.   사용자는 전면부의 16개의 스위치를 통해 명령어를 입력하였으며, 결과는 일련의 램프를 통해 읽어야 하였다.   진정한 출력을 위해서는 텔레타이프 (전기 타이프라이터형태의 기계) 인터페이스를 알타이어에 붙여야 했는데, 매우 비싸고, 시끄러웠고 느렸다.  

애플의 창조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넓게 보급되면서 이들을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를 요구하는 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애플사는 바로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제품이었다.   애플은 두명의 캘리포니아 인인 스티브 잡스 (당시 21세)와 스티브 워즈니악 (당시 26세)에 의해 만들어졌다.  

잡스는 당시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시피했던 비디오 게임 머신의 제작사인 아타리사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워즈니악은 미니 컴퓨터와 계산기를 만들던 HP 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 일부 제품들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만큼이나 강력하고 복잡한 제품이었다.)   이 둘은 매우 친한 친구였으며, 아타리사에서 일하던 잡스에게 워즈니악이 종종 도움을 주고 있었다.   워즈니악은 잡스가 아타리사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인 Breakout의 한 버전을 제작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워즈니악은 개인용 컴퓨터를 오랬동안 원하고 있었지만, 당시 구할 수 있었던 모토롤라나 인텔의 프로세서는 너무 가격이 높았다.   하지만 모토롤라 출신 기술자들이 새롭게 6502라는 CPU를 (모스테크놀러지) 개발하여 20달러 수준에 발표하였다.  이것은 인텔 8080이나 모토롤라의 6800의 비용의 8분의 1정도밖에 안되는 것이었다.  

워즈니악은 이 기회를 포착하여 6502를 위한 BASIC 언어를 디자인하고 그것을 돌릴 수 있는 간단한 컴퓨터를 만들어내었다.   잡스는 이 기계에 감명 받아 워즈니악으로 하여금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도록 설득하였다.   워즈니악이 이에 동의하여 애플 I이 탄생하였다.  
바로 직후 (심지어는 팔 제품을 완성하기도 전에) 잡스는 이 아이디어를 BYTE 매장의 소유주인 폴 테렐에게 가져가 영업을 하였고, 아이디어가 마음에든 그는 50대의 선주문을 하게되었다.  

개발 뉴스 소제목 :
애플이 처음으로 비디오 터미널과 8KB의 램을 단일 PC 카드에 장착한 저가형 마이크로 컴퓨터를 소개하였다.   비싼 텔레타이프라이터가 필요 없다.   스위치도 필요 없다.  램프도 필요없다.   16개의 칩에 8KB 램을 장착하였다.


애플 I은 혁신적인 기계로서 조립이 끝난 상태로 판매된 최초의 컴퓨터의 하나로서 사용자는 그에 맞는 케이스만 필요하였다.  (바이트 매장에서 애플 I을 구매한 사용자는 동네 철물점에서 만든 전용 캐비넷을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컴퓨터들의 사용자는 자신이 직접 컴퓨터를 조립하여야 했다.  

당시 다른 기계들과는 달리 애플 I은 텔레타이프 터미널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신 TV 연결 장치를 포함시킴으로서 다른 컴퓨터가 사용한 매우 느린 디스플레이 (초당 60자)로부터 사용자를 해방시켰다.   또한 애플 I은 키보드 지원을 포함하였다.  

하지만 애플 I에는 큰 약점이 있었다.  정보를 저장할 수단이 없었다.   3000줄에 달하는 베이직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했다면 다음 번에 컴퓨터를 다시 켰을 때 이것을 일일이 다시 입력할 수 밖에 없었다.  

폴 테렐이 워즈니악에게 해결책을 찾을 것을 제안하자 워즈니악은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를 사용하여 정보를 저장할 수 있는 아답타를 만들어내었다.   테럴은 이 아답타를 75달러에 판매하면서 3000줄짜리 베이직 언어로 만들어진 스타트렉 게임을 같이 제공하였다.    
이 아이디어는 흥미로웠지만 효율적은 아니어서 매우 고수준의 레코더만이 기계가 인식할 수 있는 정보가 담긴 테이프를 만들 수 있었다.  
Apple II
애플 I이 아직 판매중인 시점에서 워즈니악은 애플 II의 디자인을 시작했다.   그의 구상은 애플 I과 거의 비슷한 제품이지만 컬러 디스플레이를 지원하고 사운드지원, 기능 확장을 지원하는 제품이었다.  이렇게 만든 컴퓨터에서 BREAKOUT 게임이 돌아갈 수 있기를 희망했다.   베이직 언어에 컬러와 사운드 명령을 사용하고 확장 슬롯을 통해 패들을 연결하여 게임을 하는 것이다.   (패들이란 다이얼이 달린 손잡이임)

이러한 모든 기능을 통해 애플 II는 훌륭한 BREAKOUT 용 머신이 되고 좋은 개인용 컴퓨터가 될 것이란 희망이었다.

워즈니악과 잡스는 한가지 면에서 이견을 보였다.   워즈니악은 새로운 기계에 8개의 확장 슬롯을 장착하기 원했고, 잡스는 2개만을 원했다.  잡스는 사용자가 모뎀과 프린터만 연결하면 되지 않겠다는 의견이었다.   워즈니악이 이겨서 (전문가들은 다양한 기기연결을 원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애플 II는 8개의 확장 슬롯을 가지게 되었다.  
애플 II는 당시 마이크 마큘러 회장이 운영하던 애플컴퓨터 회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제품으로서 그후로 10여년을 넘게 지속한 애플 II 시리즈는 2백만대 넘게 판매되었으며, 이 성공에 고무된 IBM 사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뛰어든 계기가 된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다른사람들과 같이 일하는 대신 자신의 본능에 따라 컴퓨터를 디자인하였다.  기본 애플 II 모델은 4KB의 RAM (48KB 업그레이드 가능)과 카세트 인터페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컬러 디스플레이 기능을 포함한 것은 게임 개발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란 의견도 있었지만, 그 결과는 거의 황금률처럼 시장을 지배하여 많은 비즈니스용 프로그램도 컬러 디스플레이를 사용하였다.  
.
애플 II는 매우 재미있는 기계였을 뿐 아니라 품격 높은 디자인을 가진 제품이었다.   워즈니악은 디자인 과정에서 모든 필요 없는 칩들을 제거하여 애플 II에 들어가는 칩의 개수를 최소화하여 가격 하락을 꾀하였다.   결과로 탄생한 제품은 대부분의 사용자가 지불할 능력이 있는 저렴한 가격을 갖게 되었다.  

잡스가 애플 II 디자인 부분에서 기여한 것은 워즈니악보다는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한눈에 애플컴퓨터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게 만든 그 독특한 케이스를  디자인하였다.  잡스는 모든 연결 케이블을 케이스 내부에 숨김으로서 기계의 외향에서 친근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1977년 애플 II 컴퓨터는 서부해안 컴퓨터 박람회를 통해 첫선을 보였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문제가 있었다.   케이스가 불량이었다.  사용을 20분정도 하면 키보드가 끼는 문제가 있었다.   다른 제품으로 교체하였는데 교체품은 박람회 겨우 2일전에 도착하였다.  

애플은 초기로고를 버렸다.  (우측)  원래 로고는 아이작 뉴튼이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서 있는 것이었으나 이것을 버리고 유명한 줄무니에 한입 베어 물은 사과로 바꾸었다.  애플사의 pr부서에서 일하던 레지스 맥케나가 만든 로고는 5개의 컬러 줄무늬로 애플 II의 컬러 디스플레이 기능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한입 베어물은 것은 토마토로 오인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새로운 로고와 멋진 디스플레이 기능으로서 애플 제품은 훨씬 전문가적 제품처럼 보였으며 다른 전시자들을 압도하였다.   애플 전시부스는 입구에서 가깝게 있어서 모든 방문자는 들어서면서 바로 애플 제품을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당시 뉴스 미디어들은 애플을 다루지도 않았었다.  

그후 몇 개월간 애플사는 자신의 컴퓨터가 단지 비즈니스 용도가 아닌 대중을 위한 제품인 것을 강조하였다.  다른 컴퓨터 제조사들이 일부 애호가와 소규모 사업 시장을 목표로 한것에 반하여 애플사는 자신들이 진정한 개인용 컴퓨터라는 것을 강조했다.  

애플 II가 발표된 시점에서 2개의 다른 컴퓨터들도 발표되었다.   라디오 새크사의 TRS-80과 커모도어 사의 PET 이다.  (프랑스어로는 방귀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들이 애플 II와 견주어 가지는 장점은 가격이었다.   그들의 가격은 애플 II의 절반정도였다.  또한 두 제품 모두 테이프 드라이브를 기본으로 장착하여서 데이터를 기록하기 위해 사용자가 카세트 레코더를 조심스럽게 손볼 필요가 없었다.  

워즈니악의 플로피 해결책
마이크 마큘라는 워즈니악에게 애플 II를 위한 좀 더 신뢰성있는 저장장치를 개발하도록 독려하였다.   그는 신년에 맞추어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가전제품 박람회에 발표할 수 있도록 독촉하였다.  

스티브 워즈니악과 랜디 위징톤은 크리스마스 주간 몇날 몇일을 새서 애플의 최초 플로피 드라이브를 만들어 내었다.  라스베가스로 출발하기 몇시간 전에 제품이 완성되었다.   워즈니악의 명성에 걸맞게 그 제품은 매우 고상하고 경쟁사 제품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었다.  박람회가 끝나고 워즈니악은 이 디스크 드라이브를 1978년 6월 발매에 맞추어 준비하였다.  최초로 판매된 2개의 제품은 워즈니악과 위징톤이 직접 손으로 만든 제품이었다.

1979년 6월 애플사는 애플 II+를 발표하였다.   16KB RAM을 갖춘 이 제품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애플 II+와 함께 애플사는 최초의 애플사의 프린터인 사일런트타이프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열전사형 프린터로서 연전사 전용 용지가 필요하였다.  

마이클 스코트는 타이프라이터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포하였는데 이는 애플 II+가 소문자나 악센트 기호를 인식시키려면 해킹을 해야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좀 무리가 있었다.  

초창기 소프트웨어

애플 II용 소프트웨어로서 최초로 빅 히트를 한 것은 비지칼크였다.   그것은 개인용 컴퓨터에서 사용된 최초의 스프레드 시트 프로그램이다.  (미니컴퓨터용의 비슷한 프로그램은 전부터 사용되었다.)

워드 프로세서로서는 애플 WRITER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도 애플의 성공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의 텍스트 편집기와는 달리 애플 라이터는 매우 사용하기 쉽고 마크로 제작이 가능하여 반복적인 작업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었다.   대문자와 소문자들을 구현하기 위해서 프로그램 제작자인 폴 루터스는 소프트웨어 해킹을 통해서 애플 머신으로 하여금 대문자와 소문자를 모두 표시하도록 하였다.  

비지칼크는 애플사의 킬러 프로그램으로서 애플 II 판매를 급성장 시켰다.   이렇게 얻어진 현금을 이용하여 애플사의 미래를 열 3가지 제품 개발을 시작하였다.   사라, 라이자 맥킨토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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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phobia
11/11/02 19:06
수정 아이콘
허큘리스... 추억의 이름이군요. 허큘리스가 컬러였다고 어디서 주워들은 사람인지...
컴퓨터 학습 등의 잡지도 기억나지만 학생과학에서 부록으로 딸려나오던 컴퓨터랜드? 라는 조그만 책이 떠오르네요.
CGA EGA VGA... VGA는 도대체 누가 쓰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었죠.
허큘리스를 제대로 지원하는 게임 종류가 많지 않아서 돌리던 SIMCGA...!!! 그땐 이게 무슨 역할인지도 모르고 썼었던...

근데... 그 당시 그래픽 선택지를 보다 보면 Tandy 어쩌구가 있었는데 이것의 정체를 지금까지도 뒤져봐도 모르겠단 말이죠-_-
김연우
11/11/02 19:42
수정 아이콘
제 기억에 허큘러스는 이미 컬러가 나온 상황이었는데, 문자기반 (특히 한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의 고해상도 출력하기 좋아서 쓴게 허큘러스로 기억합니다.

생각해보니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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