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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12/18 09:33:03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신라 vs 백제 (7) 진흥왕, 가야 멸망

1. 한성을 신라의 땅으로
어떤 비문에는 "삼국의 경계가 개이빨처럼 돼 있었다"고 합니다. 한 쪽이 그 지역을 먹었지만 그 거점만일 수도 있고 패해서 물러나도 어느 정도 거점은 지키거나 그런 식이었겠죠. -_-; 뭐 확실한 고증은 서울 땅이라도 다 뒤엎지 않는 이상에야 불가능하겠죠.

어느 수준일지는 몰라도 신라가 한강 유역을 다 점령한 건 아닌 모양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성을 쌓고 쌓아 거점 방어를 해서 패하더라도 절대 잃지는 않는 쪽으로 간 모양입니다.

진흥왕은 두 방면으로 진출했습니다. 강 두 개를 신라가 확실히 차지해야 했죠. 낙동강과 한강이었습니다.

북쪽으로는 하늘재부터 남한강을 거슬러올라가서 한강에 이르기까지의 구역이었습니다. 하늘재는 후에 문경새재가 개통된 이후에는 안 쓰인다는군요. 삼년산성, 관산성 등으로 대표되는 충청북도의 우주방어는 완료된 지 꽤 됐죠. 이 상황에서 북쪽은 강릉까지 탈환한 지가 꽤 됐으니, 여기서 진흥왕의 1차 계획은 완료됐을 겁니다.

고구려도 그렇고 신라도 그렇고, 이렇게 우방으로 적과 맞서 온 것 같습니다. 반면 백제는 이런 식의 우방이 별로 안 보이죠. 그 차이가 또 보이네요.

2. 가야 멸망
북쪽에서 거칠부,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 등의 활약이 보인다면 남쪽에서는 역시 이사부와 사다함입니다.

성왕의 아들 위덕왕, 그는 자기가 나섰다가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에 머리 깎고 산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를 이을 사람도 자기밖에 없었죠. -_-; 재밌는 건 그가 즉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고구려가 쳐들어왔다는 겁니다. 신라는 길을 열어주거나 아무튼 적대 행위를 하지 않은 것 같구요. 뭐 성왕 죽었으니 찔러보기 혹은 약탈용으로 보입니다만.

위덕왕은 신라를 계속 공격합니다만, 실패합니다. 아버지의 복수도 있고, 신라가 가야를 완전히 집어삼키려 해서였겠죠. 신라는 위덕왕의 공격을 손쉽게 막아내고 562년, 가야를 멸망시킵니다. 이 가야는 북부의 대가야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남부의 가야도 여기서 그리 다르지 않게 먹힌 걸로 보입니다. 이 때 사다함의 나이가 15~16세, 꽤 큰 전공을 올린 것으로 보이는데 가야인 300명을 노예로 준댔는데 거절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친구 무관랑이 죽자 슬퍼하며 7일 후에 따라 죽었다고 하죠. 뭔가 서로 사주는 느낌도 납니다만 -_-a

일본서기에는 이 때 가야의 멸망을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신라는 긴 창과 강한 활로 임나를 멸망시켰고 강한 잇빨과 갈고리 같은 손톱으로 잔인하게 백성을 죽였다. 간을 꺼내고 발목을 끊어도 마음에 흡족해하지 않고 뼈를 드러내고 주검을 태워도 혹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중략) 또 다른 사람 곡식을 먹고 다른 사람 물을 마시면서 누가 차마 이것을 듣을 수 있겠으며 누가 마음으로 슬퍼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태자·대신이 형제 친척에게 피눈물을 흘리고 원한을 머금고 부탁하여, (중략) 쓸개를 마시고 창자를 꺼내어 함께 간악한 역적을 죽여 천지의 큰 아픔을 씻고 임금과 아비의 원수를 갚지 못하면 죽어서도 신하와 아들의 도리를 이루지 못하는 한이 있다고 함에 있어서랴"

참 충격이긴 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후 왜는 신라에게 아무런 군사적 행동을 보이지 못 합니다. (...) 일본서기 내용대로라면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키지 못 한 이유가 [천황이 계속 꾸짖어서]라고 돼 있는데 말이죠. 이 자뻑정신이란...

진흥왕은 이렇게 늘어난 영토를 정비합니다.

3. 진흥왕 순수비

555년, 성왕이 전사한 다음해에 진흥왕은 완산주를 설치합니다. 설마 전라북도 전주일 리는 없고 -_-; 경남 창녕의 비사벌주로 비정합니다. 다음 해에는 비열홀주를 설치하는데, 함경남도로 비정됩니다. 정신 못 차린 순간에 함경남도까지 진출했다는 것이죠. 대체 신라의 진격이 어디까지 이뤄졌는지 궁금할 지경입니다.

다음해에는 국원, 현재의 원주를 소경으로 삼아 북쪽에 새로 점령한 지역, 특히 한강 유역을 총괄하게 했습니다. 국원은 후에도 소경으로 남아 양길의 근거지가 되죠. 그 해에 사벌주를 폐지하고 감문주를 설치했고, 신(新)주를 폐지하고 북한산주를 설치합니다. 이어 귀족의 자제들과 그 백성들을 동원해 국원경에 보내죠. 신도시 개발입니다.

가야 멸망 후인 565년, 완산주를 폐지하고 대야주를 설치합니다. 현 경남 합천, 후삼국시대까지 이어진 신라의 단단한 빗장이 만들어졌습니다.

568년에는 북한산주를 폐지하고 남천주를 삼았는데, 경기도 이천입니다. 또 비열홀주를 폐지하고 강원도 고성의 달홀주를 설치하죠.


이 지역을 다~ 먹었다기보다는 영향력 발휘이고, 특히 한강 유역은 다 먹었다기보단 거점 위주로 방어용이 더 강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를 보면 고구려의 반격 혹은 압박이 이루어진 듯 합니다. 그가 함경남도까지 먹은 게 전투라기보다는 고구려의 힘이 약한 틈을 타서 깊게 찌른 것으로 보여요. 다만 진흥왕 순수비가 568년에 만들어졌고, 이게 진흥왕이 직접 이 지역을 둘러본 다음에 만들었다는 걸로 봐서 고구려의 압박이라기보다는 진흥왕이 늘어난 영토 하악하악하다 정신차리고 제대로 방어가 될 만한 곳으로 옮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산->남천, 비열홀(함경)->달홀(강원)에서 볼 수 있듯 뒤로 후퇴했거든요. 아무튼 지도를 보면 딱 강원도부터 길주까지, 동북지방에 유일하게 있는 평야지역입니다. 동북 9성이 길주 이남까지로 생각되는 것도 이를 보면 이해가 가죠.

이렇게 신라가 잘 나가는동안 고구려와 백제는 제대로 대응을 못 했습니다. 위덕왕이 신라를 치긴 했지만 소용 없었고, 고구려는 괜히 백제만 쳤죠. -_-; 위덕왕도 신라도 밉지만 고구려와 화친할 생각은 못 한 모양입니다.

신라가 죽령 이북으로 진출할 때 세운 단양 적성비와 더불어 전국 곳곳에 있는 진흥왕 순수비는 진흥와의 순수함...이 아니라 진흥왕이 어디까지 진출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경남에 하나, 경기에 하나, 함경남도에 둘이죠. 하지만 이게 꼭 좋진 않았습니다. 특히 함경남도는 고구려 평양 바로 동쪽, 고구려가 이걸 좌시할 리가 없겠죠. -_-; 이렇게 늘어난 영토를 후의 왕들은 감당하지 못 합니다.

다만 한강 유역, 거기만큼은 성을 새로 세우고 기존의 백제나 고구려가 쓴 성들을 석성으로 최대한 개축하면서 거점 방어를 확립하죠.

참고로 이 때 진흥왕이 김씨라는 성을 내세웁니다. 이전의 신라의 성씨들은 모두 여기서 만들어져 위로 소급된 거죠. 황룡사가 세워진 것도 그 때입니다.

4. 슈퍼파워의 재림

진흥왕의 뒤를 이은 둘째 아들 진지왕은 술 먹고 놀기만 한다고 단 3년뒤에 폐위됩니다. -_-; 화랑세기의 배경이기도 한 시대가 시작된 거죠. 그의 손자가 바로 김춘추입니다. 대신 왕위에 오른 게 진흥와의 첫째 아들 동륜태자의 아들 진평왕입니다.


신라 왕족이 성골, 진골로 나뉜 게 이 때부터라고 추측되기도 합니다. 보통 성골로 쭉 이어지다가 진골인 김춘추가 이어받았다고 하는데, 이 때 진평왕이 자기가 원조라는 걸 확고히 하기 위해 아버지 동륜태자 계열을 성골로 민 것이라는 거죠. 뭐 맞든 아니든 역시 권력 다툼이 있지 않았나 하는 부분입니다. 미실은 뭐 하고 있었을지 모르겠군요.

한편 양원왕에 이어 고구려의 왕이 된 평원왕은 고구려의 부흥을 꾀합니다. 뭐 그 이름보다야 온달의 장인, 평강공주의 아버지로 더 잘 알려졌죠. 온달이 그냥 바보가 아니라 평민이나 하급 귀족 출신으로 평원왕이 등용해서 그렇다는 말도 있습니다. 아니 이 쪽이 요새 더 유명해진 듯. 그는 궁을 대성산성에서 장안성으로 옮겼고, 남북으로 닥쳐오는 고구려의 위기를 이겨내려 했습니다. 활약한 건 역시 온달, 그는 북주의 공격을 격퇴하고 신라를 공격합니다.

"죽령 이서 땅을 되찾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

이는 고구려 땅 회복을 위한 의지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자기 위치가 불안했다는 뜻도 되겠죠. 결국 온달은 아차산성에서 전사합니다.

하지만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 더 힘을 쓸 시간은 없었습니다. 중국에서 큰 일이 벌어지고 있었거든요. 그 여파는 삼국에게도 이어집니다.


... 만들 때는 재밌었는데..........

수 문제는 통일 과정에서는 평원왕에게 대장군을 주면서 잘 대접했지만, 통일이 되자 본격적으로 고구려에게 시비 걸기 시작합니다. 평원왕을 이은 영양왕 때는 온갖 시비를 걸면서 고구려왕의 직위도 박탈하고 하죠. -_-; 헌데 이에 열받은 영양왕의 대답은...

수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 거란군을 이끌고 말이죠. 열 받은 문제는 30만 대군을 이끌고 공격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막혀버리죠.

한편 신라의 진평왕과 백제의 위덕왕은 경쟁적으로 수에게 고구려를 칠 것을 요구합니다. 고구려가 수를 선제공격한 것도 이런 위기감에서였겠죠. 물론 고구려가 막아내자 고구려는 열 받아서 백제와 신라를 칩니다. -_-; 위덕왕은 다시 고구려를 공격해 달라고 하지만...


"에이 쟤네가 용서해 달라고 해서 용서해 줬지. 알고보니 착한 애던데? 니들끼리도 잘 지내~"

... 위덕왕의 마음이 어땠을지...

5. 마지막 삼국시대의 개막
진흥왕이 나제 동맹을 깨뜨리고 함경도까지 먹은 후 신라는 승승장구했으며, 고구려와 백제는 동맹을 맺고 신라를 갈궜고, 신라가 당을 끌어들였다고 보통 얘기하죠.

하지만 그 이후의 모습은 꽤나 다릅니다. 진평왕은 어느 정도 정치를 잘 하긴 했지만, 후대에 신라는 혼란에 빠집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공격에 기껏 얻은 땅들을 계속 뺏기고 있었죠. 썩어도 준치라고 고구려는 중국에 맞서면서도 백제와 신라를 갈궈댔습니다. 오히려 백제와 신라가 수, 당에 고구려 치라고 하니까 그 화풀이를 한 것에 가까울지도요.

백제와 고구려가 화친이면 모를까 동맹을 맺은 정도의 흔적은 없고, 오히려 위덕왕도 수나라더러 고구려 쳐 달라고 했습니다. 당 때도 그리 다를 게 없어요. 신라가 당을 끌어들인 게 민족을 팔아 넘긴 거면, 백제도 하려고 했다가 능력에서 신라에 밀린 게 될 뿐이죠. -_-a

아무튼 위덕왕은 54년 동안 오래오래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혜왕, 법왕의 짧은 통치가 지났고, 백제는 여전히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신라에서는 여자가 왕이 됐습니다. 그녀의 밑에는 김유신, 김춘추라는 인물들이 있었죠. 그 전, 백제의 왕족 하나가 신라에서 마를 팔면서 희한한 노래를 퍼뜨렸고, 덕분에 신라 공주와 결혼에 성공하는 희대의 스캔들을 벌였습니다. 그가 백제로 가서 왕이 됐죠. 하지만 이런 훈훈한 (...) 설화와는 별개로 그는 신라를 신나게 공격합니다. 그 아들, 해동증자라 불리며 신라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던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죠.

수나라에서는 문제의 아들 양제가 고구려를 어떻게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구요.

슈퍼파워의 재림, 고구려의 마지막 뚝심, 백제의 마지막 불꽃, 신라의 혼란... 7세기, 삼국의 정세는 다시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삼국시대의 최후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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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8 09:44
수정 아이콘
아.. 슈퍼 파워의 재림 ㅠ.ㅠ;;; 저 슈퍼 파워가 요즘도 재림 중이라는...
11/12/18 09:51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저 당시 신라 지도를 보면 지금의 남한보다 영토가 더 넓어요! 옆에 중국이 있어서 우리나라가 작아보일 뿐 사실 저게 절대로 작은 땅이 아닌데, 당시 기술로 어떻게 보고를 받고 명령을 전달했을 지, 참으로 신기한 고대인들입니다.
Je ne sais quoi
11/12/18 10:20
수정 아이콘
미스테리 조사반 ^^;; 저 황당한 만화가 눈시님 글에도 등장하는군요.
우던거친새퀴
11/12/18 17:23
수정 아이콘
눈시BBver.2 님은 서동요의 설화대로 백제무왕과 신라선화공주가 맺어진게 맞다고 보시나요?
우던거친새퀴
11/12/18 19:10
수정 아이콘
대가야는 고대국가의 문턱까지 컸다가 정말 한순간에 훅 간거 같아요.
덩치만 커졌지 내실이 없었고 저때까지 순장하고 후진적인 풍습이 남아있었던거 보면 당연한것도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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