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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1/30 13:54:35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단 군

어렸을 때 땅꾼 할아버지가 뱀 잡으시고를 밀어봤는데 인기 없더군요 에휴.

아마 지금까지 쓴 글 중 어떤 글보다 소설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그 점을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1, 두 가지 신화

고조선에 대한 건국신화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단군 신화, 둘째는 기자동래설이죠. 단군 신화야 굳이 설명할 필요 없을 것이고, 기자 신화는 은나라의 왕족인 기자가 주의 무왕에 의해 조선후에 봉해졌다는 내용입니다.

그 둘 중 중심으로 삼은 것은 단군이 아니라 기자였습니다. 이 기자 숭배는 고구려에서도 나타나고, 고려 때도 강화됐으며, 조선에 와서도 계속됐습니다. 우리가 아는 고조선의 대부분이 단군이 아니라 기자에서 나왔죠.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 8조 금법 등이죠.

이에 대해 고려나 조선이 사대모화 사상에 빠져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렇게 친다면 그 시작은 고구려입니다. 지금이야 자주적인 게 더 좋다고 하지만 당시에 그걸 따지는 건 무리죠. 둘 중에 하나가 가짜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신화라는 것은 처음 만들어졌다고 끝까지 내려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지배층이든 피지배층이든 자기가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고려 후기부터 조선에는 고조선에 대해 2단계의 건국신화가 정립됩니다. 단군이 나라를 세운 후 기자에게 나라를 물려주고 신선이 된다든가, 신선이 된 후 164년간 왕이 없다가 기자가 와서 왕이 되었다는 식이죠. 이런 방식은 다른 나라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 신화를 볼까요?

일단 크로노스가 제우스에게 쫓겨난 후 로마로 와서 그 지역을 다스립니다. 제우스가 다스리는 그리스보다 오히려 이 사투르누스가 다스리는 로마가 더 살기 좋았다고 하죠. 그 다음은 아이네이아스, 트로이에서 빠져나온 사람입니다. 여신 비너스와 트로이 왕족 안키세스의 아들이죠. 이후 그 후손 중에 레아 실비아라는 여사제가 있었는데, 마르스가 와서 애를 두 명 낳습니다. 그 아들들이 로물루스와 레무스, 후에 그들은 로마를 세웠죠.

로마는 이런 3단계의 건국 신화를 가지고 있었고, 모두 그리스와 연결됩니다. 그렇다면 로마는 그리스에 사대했던 걸까요?

이런 사대 얘기는 당시의 상황보다는 현재의 상황에 더 영향을 받습니다. 만약 현재의 이탈리아나 그리스가 유럽의 한 절반 이상을 차지한 강대국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유럽의 각 나라들은 오히려 그리스, 로마는 별 것 아니고 우리는 받은 게 없다고 할 겁니다. 마치 종교 개혁 운동처럼요. 하지만 지금 이탈리아와 그리스는 그 때에 비해 약하고, 오히려 역사 내내 유럽에서는 이들을 계승한다는 명분을 내걸었고 (따라서 이 지역을 자기들이 차지해야 한다는 명분도 같이) 그 뿌리를 이들에서 찾고 있습니다. 동아시아와는 참 다르죠. 동아시아의 역사 동안 중국이 그 중심을 내준 적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중국과 일본 등이 현실적인, 나라가 점령당할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는 이들에 뿌리를 연결하기는 힘들죠. 특히 우리는 식민지를 겪은 나라로, 과거에 중국인이 와서 우리를 통치했다는 식민지의 느낌이 나는 기자 신화를 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다릅니다. 어찌됐든 중국은 아시아 문명의 시작이었고, 주변국들은 모두 그 영향을 받았죠. 이 때문에 자기들 건국을 중국에 연결시키는 것은 고려 때까지도 계속됐습니다. 이런 점에서 삼국시대부터 계속된 기자 숭배 사상을 사대주의로 모는 것은 부당하다고 봅니다.

2. 천손강림
이런 점에서 단군 신화와 기자 설화 중 후자를 선택한 것은 큰 무리가 아닙니다. 유교를 받아들이면서 그나마 좀 합리적인, 천신이 아니라 사람이 나오는 후자가 나았고, 주나라 무왕이 직접 와서 가르침을 받았다는 점에서 문화적으로 중국에 딸리지 않았다는 것을 내세울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었죠.

하늘의 자손을 단군으로 시작하면, 자기들은 2등이 되거든요.

여기서 다시 생각해 봐야 될 것이 있습니다. 단군 신화는 창세 신화가 아닙니다. 고조선이라는 나라의 건국 신화죠. 고조선을 잇든 말든, 그 뒤에 나타난 나라가 자신의 정통성을 주장하려면 먼저 있던 건국 신화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아예 없애버리거나, 자기 신화에 흡수해야죠.

"[단군기]에 이르기를 단군이 서하 하백 의 딸과 상관하여 아이를 낳으니 이름을 부루 라고 하였다.” (삼국유사)

"단군은 당요와 같은 날에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불렀다., 처음 도읍지는 평양이었고 뒤의 도읍지는 백악산이었다. 비서갑 하백의 딸에게 장가 들어 부루를 낳았는데 이분이 동부여왕이다." (응제시주)

이렇게 단군=해모수가 됩니다.

단군 신화에서 볼 수 있는 토템은 호랑이와 곰입니다. 이 중 곰이 우세를 점하죠. 하지만 이외에 곰이 중심이 되는 신화나 설화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다른 토템에 대해서는 찾을 수 있죠.

"[제대조기]에 이르길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박산 신단 아래에 내려와 거처하였다. 환웅이 하루는 백호와 교통하여 (백호가) 아들을 낳으니, 이가 곧 단군이다"

이외에 환웅이 거시기가 너무 커서(채록담을 그대로 옮기자니 너무 직설적이네요) 처음엔 곰이랑 해서 단군을 낳고, 여우와 해서 기자를 낳았다는 전승도 있습니다. 이를 보면 기자 설화도 처음엔 단군처럼 천손강림 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쪽이든 고구려의 지배층은 한나라 때부터 시작된 기자동래설을 고조선에 대입시켰다고 봐야겠죠. 단군이 가진 천손강림은 자기들이 가져오구요.

신라의 경우는 아예 토템이 달랐습니다. 그들의 토템은 닭이었으니까요.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고, 석탈해도 배 위에 까치가 앉아 있었으며, (까치의 한자에서 새를 뺀 석을 성으로 삼았고) 김알지도 알에서 태어났습니다. 신라의 별칭은 계림이었죠. 자기들만의 천손강림 신화가 있었던만큼 (단군신화가 전해졌더라도) 굳이 받아들일 이유가 없었죠. 신라에서는 기자 숭배도 보이지 않습니다. 최치원이 기자의 동래를 얘기한 것 정도죠. 신라는 고조선 계승 의식이 보이지 않는 삼국사기에서도 "고조선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라고 했는데도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리스 로마 신화와 북유럽 신화에서도 각 도시, 혹은 각 지역에서 믿었던 주신은 각기 달랐고, 그 신화를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서 현재의 체계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북유럽 신화(.... 죄송합니다. 곧 연재 재개할게요)의 경우만 봐도 티르, 토르부터 뇨르트 등 바나 신족들이 오딘보다 낮게 된 건 나중의 일이라고 하죠. 일본에서도 각 지역에 믿는 신들이 달랐고, 나중에 일본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현재의 복잡하게 정리된 신화가 완성됩니다. 우리라고 다를 건 없습니다. 여러 가지의 신화, 그것도 고조선 멸망 후에 남은 여러 신화 중에 자기들에게 좋은 걸 찾아야죠. 특히 고구려와 백제가 내세운 천손강림에 위배되지 않는 쪽으로요.

참고로 좀 더 현실적인 설화도 있습니다.

"단군이 거느리는 박달족이 마고할미가 족장인 인근 마고성의 마고족을 공격했다. 싸움에서 진 마고할미는 도망친 후 박달족과 단군의 동태를 살폈는데, 단군이 자신의 부족에게 너무도 잘해주는 것을 보게 된다. 마고는 단군에게 진심으로 복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단군은 투항한 마고할미와 그 아래 아홉 장수를 귀한 손님으로 맞아 극진히 대접했다. 아홉 손님을 맞아 대접한 곳이 구빈마을이고, 마고가 항복하기 위해 마고성으로 돌아오면서 넘은 고개를 왕림고개라고 한다." (평양시 강동군 구빈마을 설화)

이제까지의 신화들과 비교하면 너무 현실적이어서 낯설죠 ( ..);;

3. 단군 신화의 원형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王儉)이 살던 곳이다. 다른 기록에는 『(그가) 왕이 되어 왕험(王險)에 도읍하였다.』고 하였다." (삼국사기)

"평양의 선조는 선인왕검으로 /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백성이 남아 있으니 당당한 사공(조연수)이 그 분이시네
평양의 군자는 삼한 전부터 있으면서 / 수명이 천 년을 넘고 장수하여 신선이 되었도다." (조연수 묘지명 1325년)

"묘청은 왕에게 권하여 임원궁성을 축성하고 궁중에 팔성당을 설치했는데 팔성이란 첫째는 호국 백두악 태백선인인바 실체는 문수사리 보살이요, (중략) 넷째는 구려평양선인인바 실체는 연등불이요" (삼국사기)

이런 기록들은 단군의 원형을 보여줍니다. 선인 왕검, 즉 이 때의 모습은 신선으로서의 모습이죠. 이 때까지는 딱히 고조선을 세웠다거나 하는 서술은 없습니다. 이것이 대몽항쟁 후 쓰여진 삼국유사에 의해 고조선의 시조로 바뀌죠.

"[위서]에 이렇게 말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단군 왕검이 있었다. 그는 아사달(경에는 무엽산이라 하고 또는 백악이라고도 하는데 백주에 있었다. 혹은 또 개성 동쪽에 있다고도 한다. 이는 바로 지금의 백악궁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이라고 불렀으니 이것은 즉 고(요임금)와 같은 시기였다."

이 다음에 나오는 것이 고기(古記)에서 인용한 우리가 잘 아는 단군 신화입니다. 일단 문제는 저 위서가 뭐냐는 거겠죠. 중국에서 위나라가 한두개가 아니었고, 그 중 남은 것 중에 이런 단군에 대한 기록이 남은 건 없습니다. 후에 삼국지의 주를 달은 배송지가 인용한 책 중에 위서가 있는데 그 때문에 아마 춘추전국시대 때 나온 게 아닌가 하기도 하죠.

아무튼, 이렇게 단군은 고조선의 시조로 나타납니다. 문제는 이것이 일연의 주장대로 전승에 따른 것이냐, 아니면 창작이냐는 것이죠. 물론 단순한 창작은 아닙니다. 단군, 단웅, 선인왕검 등 여러 가지로 불린 신선이 평양 지방의 신으로 모셔졌으니까요.

일연이 인용하고 이후에도 인용된 [단군고기]를 보면, 이미 그 이전부터 단군을 시조로 하는 세력은 확실히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평양 지방을 중심으로 했겠죠. 또한 삼국유사 이전에 나온 기록들에도 한국의 다른 신화에 비해 차이점이 보입니다. 신화 치고는 구체적이라는 것이죠. 삼국사기 동천왕의 말에도 그가 왕이 되어 도읍했다는 말이 나오며, 일연이 끌어다 쓸 수 있을 정도의, 천손강림과 출생, 건국과 승천이라는 고대의 건국 신화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죠.

평양의 토속 신앙이라고 하지만 그 땅은 다름 아닌 평양입니다. 고조선의 수도였고, 고구려의 수도였죠.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가 아닌 나라의 건국 신화가, 고구려의 수도였음에도 고려 때까지 남아 있었다는 것, 그리고 고려 때도 소중히 여겼던 그 평양에서 그걸 기록한 책이 나올 정도로 잘 알려져 있었다는 것, 이것은 정말 그 예전 고조선의 신화가 남은 게 아닐까 추측해 볼 근거가 됩니다.

김부식은 "아나 이거 믿을 수 없는데 ㅡㅡ" 하면서도 부여부터 삼국의 건국 신화는 모두 넣었습니다. 최대한 합리적으로 간추리긴 했지만요. 어쨌든 고려가 삼국을 계승했다는 얘기를 하려면 신화를 뺄 순 없었거든요. 반면 일연은 고조선과 가야의 신화도 넣었죠. 신화라는 것에 그다지 구애받을 필요가 없었기도 하고, 그 때에는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신화가 필요하던 때였습니다. 신화와 종교는 한 집단의 정체성을 만드는 운영체제입니다. 신화가 아니라 불교로도 그렇게 할 수 있었고, 유교적인 신화인 기자동래설로도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몽골에 의해 나라가 먹힐 뻔 했고, 자주성은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릴 때였습니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과 수도를 차지했고, 단군과 해모수를 동일시 했습니다. 백제의 전신인 마한은 고조선에서 밀려난 준왕이 세운 나라였죠. 신라 역시 고조선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예맥과 삼한으로 나누더라도 이들의 뿌리를 고조선으로 올려도 상관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완전히 되지 않았을 때는 신라는 박혁거세로, 고구려와 백제는 해모수나 기자로 밀어도 크게 상관 없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그들을 모두 하나로 모을 불교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라의 위기에, 우리 모두가 같은 뿌리라는 것과 중국에 꿀리지 않는 역사가 있다는 것을 자랑하기에는 부족했죠. 그래서 선택된 것이 단군 신화입니다.

4. 단군 신화의 완성

(단군 할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로운 공.휴.일. 개천절을 내려주셨습니다)

결국 팩트로 볼 수 있는 것은 평양 일대에 단군에 대한 전승이 있었다는 것, 그것을 고조선의 시조로 보는 무리가 있었다는 것, 고구려에서 그를 해모수와 동일시하려 했다는 것, 그리고 일연이 그것을 차용해 삼국유사를 썼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이는 비단 일연만이 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전체적인 흐름으로 봐도 될 것입니다. 제왕운기에서도 마찬가지였거든요.

"처음에 누가 나라를 열고 풍운을 시작했는가 제석의 손자 이름은 단군이다. 본기에 말하기를 상제 환인에게 서자가 있어 웅이라 하였다...삼위 태백으로 내려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겠다고 하였다. 웅이 천부인 3개를 받아 귀(鬼)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에 내려오니 이 분이 단웅천왕이다"

제왕운기에서의 모습은 조금 다른데, 이 단웅의 손녀가 약을 먹어 사람이 됐고 단수, 박달나무의 신과 결혼해 아들을 낳아 단군이 됐다고 적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아는 단군 신화가 완전히 확립된 것은 조선 초, 권근의 응제시주입니다. 삼국유사와 제왕운기를 섞어 놓은 듯 한 모습을 보이고 있죠. 환웅의 성을 환 또는 단이라고도 한다고 하여 둘 다 취했고, 곰과 호랑이에게 떡밥을 던져 사람으로 만드는 건 삼국유사인데 박달나무에서 빈 것은 제왕운기에서 빌렸죠.

이렇게 단군 신화는 완성됩니다. 그리고 조선은 그 이름답게 이를 크게 강조하죠. 단군은 물론 환인, 환웅의 무덤을 만들어 제사지냈고, 단군-기자-동명성왕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확립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신화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불교와 도교의 영향입니다.

코끼리에 탄 제석천왕

인도 신화의 인드라는 불교로 옮겨가 제석천, 제석천왕 등으로 불립니다. 삼국유사 등에 기록된, 환인에 대한 설명이 바로 제석이죠. 이렇게 제석에게서 환웅과 단군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불교의 영향입니다. 또 이 제석은 상제라 불리기도 하는데 바로 옥황상제죠. 이것과 단군이 신선이 되었다는 것에서 도교의 영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한국의 남아 있는 창세 신화에서 세상을 만든 것은 미륵이고, 세상의 주인이 되어 대별왕 소별왕을 내려보낸 것은 옥황상제입니다. (신과 함께를 봅시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합리주의에 딴지를 받기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단군은 단목(檀木) 곁에 내려와서 태어났다 하니, 지금의 삼성(환인, 환웅) 설은 진실로 믿을 수 없다. ’고 합니다."

"그 뒤로 사람이 생겨나서 모두 형상을 서로 잇게 되었으니, 어찌 〈사람이 생긴 지〉 수십만 년 뒤의 요임금 때에 다시 기가 화하여 사람이 생겨나는 이치가 있었겠습니까. 그 나무 곁에서 생겼다는 설은 진실로 황당무계한 것입니다." (우의정 유관의 상소)

이를 보면 기존의 단군 신화와 박달나무 근처에서 저절로 태어났다는 신화가 혼동되고 있었으며, 유관은 둘 다 허황된 것이라 믿을 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그냥 무시하자면 모르겠는데 그건 또 아니었죠.

"신이 살펴본 바로는, 단군은 요임금과 같은 때에 임금이 되었으니, 그 때부터 기자에 이르기까지는 천여 년이 넘습니다. 어찌 아래로 내려와 기자묘와 합치하여야 한단 말입니까? (당연히 기자 윗자리에 앉아야지 ㅡㅡ) (중략)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감으로 헤아려 결정하시고, 유사에 명하여 도읍한 곳을 찾아내어 그 의혹을 없애게 하소서"

더 정확히 찾아보자는 거였죠. 하지만 -_-a 아마 여기까지가 한계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어쨌든 단군 숭배는 조선시대에 확고히 자리잡았고, 일제강점기로 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바로 지금, 우리 민족의 시조로 역사를 논하는 자리에서는 언제나 첫머리를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5. 정리
위에서 토템 내지 천손강림을 얘기했지만, 사실 제 상상이 큽니다. 다만 고구려에서 단군과 해모수를 동일시 했다던가, 곰과 다른 토템을 가진 이들이 나라를 세우면서 곰 토템이 묻혔다는 가설은 어느 정도 있더군요.

단군 신화가 언제 생겼을지, 혹은 단군이라는 이름은 둘째 치고 이 신화의 모태가 언제 생겼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고조선의 수도인 평양에서, 수천년이라는 고조선밖에 떠오르지 않는 신을 모시는 집단이 있었고, 그것이 국가에서 공식으로 지정되었다는 것은 확실하죠. 기존에 단군을 숭배하는 이들이 만들었든, 일연이 만들었을 가능성도 크긴 합니다. 다만 위에서 말한 것들로 갑자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 확실한 모티프와 나름의 근거를 가졌다고 생각하구요. 그리고 그것은 수백년 이어지면서 전통이 됐습니다. 어차피 따지고보면 모든 신화나 설화도, 신라의 삼국통일이나 발해의 고구려 계승 같은 것도 자기들이 외친, "보고 있나 미래인?" 수준의 이야기들일 뿐이거든요. 우리가 중시해야 할 것은 이들이 우리의 조상이라는 것, 그들이 뭉치기 위해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방법을 썼냐는 것일 겁니다. 마치 산타처럼, 이런 신화들은 우리 조상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상징하는 소중한 이야기입니다.

몽골의 침략으로 인한 자주성 문제를 거론했지만 이미 단군고기라는 책이 나온 것으로 봐서 그 시작은 훨씬 일렀다고 봅니다. 그리고 조선이 어떤 식으로 세워졌든 그 국호가 조선이고 고조선을 잇는다고 했다면 이 단군 신화를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구요.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갈수록 사람들은 동화돼 갔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마 고대부터 수많은 중국인과 여진, 거란, 몽골, 일본인들이 흡수됐겠지만 그들은 결국 조선인, 지금의 한국인으로 뭉쳤습니다. 이런 단일민족 의식이 현대에 와서는 여러 문제를 낳았지만 어쨌든 단일민족이라 부를 정도로 피가 섞인 것도 사실이죠. 뭐 폐쇄성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만.

후... 그럼 여기까지. 단군 신화의 형성 과정에 대해 상상력을 보태서 적어 봤습니다 @_@)

어떤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단군의 자손인 게 아니라 우리 조상 중의 리더가 단군이다"라구요. 간단한 말이었지만 뭔가 괜찮은 말인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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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펄이
12/01/30 14:07
수정 아이콘
매우 허구한 사람이며 데면데면합니다. 학교 교과에서만 배우니 그리스 로마 신화가 더 살갑습니다.
abstracteller
12/01/30 15:07
수정 아이콘
동상 목을 부실만 하군요.
12/01/30 16:06
수정 아이콘
대체 이 글의 어디에서 동상 목이 부서질 만 하다는 근거가 나오는지 의견을 들을 수 있을까요.;;
12/01/30 16:42
수정 아이콘
그리스 신화같은 경우에는 로마가 확실히 계승을 했고 로마의 지배층들은 그리스 철학자를
선생으로 두어야 교양있는 집안으로 쳐주니 그리스신화가 없어지지 않고 서양문화에 녹아들였지만
우리나라는 참 할말이 없게 만들지요
어그제 기사를 보니 훈민정음 해례본를(신세경 아닙니다;;;) 훔친 사람이 잡혔는데
해례본이 어디있는지 밝혀지지 않고 징역만 선고된 상태더군요
현시대에도 훈민정음 해례본같은 국보가 사라지는데 단군신화라고 제대로 남아있을리가 없겠지요
교과서에서 주구장창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가르치지만 관리는 형평없으니 부끄럽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도 절에 보관되었다가 절 주지인지 누군가가 장물아비에게 팔아먹고
장물아비의 해례본을 훔친 사람이 잡힌건데 그사람은 누구한테 팔았는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국보급 관리를 절에 맡길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눈시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12/01/30 17:08
수정 아이콘
잘 읽고 갑니다.....^^
역사관련해서는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들 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들을 눈시님 글을 통해서 알게 되는군요
지금까지 내가 배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헷갈립니다...
아마도 제가 배운 국사는 너무 시험위주의 암기 되어 나이 들수록 잊어먹는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의미들을 눈시님의 글을 통해서 배우게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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