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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8/15 12:34:55
Name Neandertal
Subject [일반] [허클베리 핀의 모험] - "나는 자유인이다!!!"
"내 맘대로 고전 읽기 네 번째"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입니다.
개인적인 감상을 적은 글이라 평어체를 쓴 점 많은 양해 바랍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마크 트웨인 저 김욱동 역 민음사

영미권 작가 125인이 선정한 19세기 및 20세기 최고소설 20선 가운데 읽은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눈앞에 두고 꽤 당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평소의 독서 습관으로 보건대 (혹 오해가 있을까 봐 하는 얘기지만 네안데르탈의 독서량은 대한민국의 평균은 상회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간 고전 읽기를 거의 등한시 해왔으므로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에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눈을 잘 비비고 목록을 훑어 내려가다 보니 만만한 놈이 하나 걸렸다. 바로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그것이었다. 이곳 피지알에서 그 목록을 소개하면서 “문고판 [허클베리 핀의 모험] 하나 읽었네요”라고 수줍은 듯(?) 말했지만 이제 와서 양심 선언을 하자면 기실 내가 읽었던 것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아니라 [톰 소여의 모험]이었을 것이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네안데르탈이 어렸을 때 TV에서 해주던 만화 영화를 드문 드문 본 것일 확률이 매우 높다. 지금도 기억난다 그 애니메이션 주제곡…아마 “앞니 빠진 허크 씩씩한 소년~~유유히 흐르는 미시시피강~~저 멀리 증기선이 부웅~붕…” 이렇게 시작했었지?...

어두운(?) 과거야 어찌 되었든 이제 정식으로 책을 읽었으니 된 거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마크 트웨인은 우리가 어렸을 땐 꽤나 익숙한 이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동용 고전 목록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작품들인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그리고 [왕자와 거지]를 쓴 작가가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미국의 셰익스피어” 또는 “미국 문학의 링컨”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니 그에 대한 설명은 이러한 별칭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마크 트웨인 거품 쩌네요…”이런 글은 읽어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으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그를 높게 평가하는 데 큰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 것 같다…


I have no bubble.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그가 1884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이 소설의 전편이라고 할 수 있는 [톰 소여의 모험]에서 주인공 톰과 함께 어떤 사건을 해결하고 큰 돈을 벌게 된 허클베리 핀에게 그 소문을 들은 술 주정뱅이 아버지가 찾아오게 되는데 허크의 돈을 노린 아버지는 그를 감금하다시피 하면서 어떻게든 그 돈을 자기 수중에 넣고자 한다. 이에 허크는 아버지로부터 탈출을 감행하고 때마침 남부의 먼 마을로 본인을 팔아버리려고 한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어 주인으로부터 도망 나온 흑인 노예 짐과 함께 땟목을 타고 미시시피 강을 따라 여행하면서 겪게 되는 이런 저런 모험담이 소설 내용의 축을 이루고 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19세기 중반 미국 남부 지역의 생활상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 흑인 노예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데 본인의 자유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인의 결정에 따라 가족들과 헤어져 먼 곳을 팔려가기도 하고 주인을 대신해서 힘든 노동을 하거나 청소나 음식 시중과 같은 집안 일을 하는 그들의 삶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소설에서 마크 트웨인은 흑인 노예들을 무식하고 어수룩하며 미신을 곧잘 믿는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희화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흑인들을 멸시하거나 비천한 존재로만 그리고 있지는 않다. 이 소설의 중요한 등장 인물 가운데 하나인 흑인 노예 짐만 보아도 그는 정직하고 착하며 동정심도 많고 어떤 의미로는 소설에 등장하는 다른 백인들 보다 인간적으로 더 나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가 이 소설에서 흑인 문제를 중심에다 두고 강력한 문제 제기를 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즉 이 소설에서는 흑인 노예에 대한 마크 트웨인의 시각의 한계와 긍정적인 평가가 같이 들어 있다고 보겠다.

또 개인적이거나 집안 사이의 원한이나 갈등을 법에 호소하여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형태로(결투나 집안간의 전쟁)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와 내 가족은 내 손으로 지킨다”라고 하는 생각이 오늘날 까지도 개인적인 총기류의 소지가 허가되는 미국의 총기 문화를 이어오게 한 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들에게 총을 빼앗는다는 것은 이러한 중요한 개인적인 권리를 박탈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상대편 원수 집안의 10대들까지 총으로 살해해 버리는 모습을 좋게만 보기는 어려웠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허크는 자못 흥미롭기까지 하다. 그는 그 당시 미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청교도적인 도덕률이나 기독교적인 윤리에서 많이 벗어나 있으며 남의 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느끼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자유인’의 표상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같은 말썽꾸러기이지만 톰과 허크가 분명히 구별된다. 이 소설에서 허크가 마음대로 남의 물건을 슬쩍 한다거나 비속어를 쓴다거나 하는 이유로 그리고 “내 양심에 거리끼는 행동을 하느니 차라리 ‘지옥’으로 가겠다”고 할 정도로 개인적인 직관과 참다운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캐릭터로 그려지는 바람에 오히려 이 소설이 출간 당시에 좋지 못한 평을 많이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허크가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그 조르바와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자유인”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은 우리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진정 “자유인”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까지 읽었던 고전들 (위대한 개츠비, 안나 카레니나, 위대한 유산) 가운데서 가장 소설적인 재미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혹시 아동용 문고판으로만 읽고 완역판을 읽어보지 못한 피지알 회원들이 있다면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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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8/15 13:51
수정 아이콘
이 책은 마크 트웨인이 얼마나 대단한 작가인지를 느낄수 있는 책인거 같습니다.
특히 허크와 톰의 대화에서 특유의 비판적인 유머나, 혹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원문에서 보면 슬랭을 쓰고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게
표현하면서 위트감등 정말 읽는동안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시시피 강을 따라 흐르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는 지루할 틈도 없구요.
이 책은 원어로 읽어보면 정말 감탄이 나옵니다.
Thanatos.OIOF7I
12/08/16 16:31
수정 아이콘
이런 좋은 글에 댓글이 적어서 슬프네요^^
추천까지 하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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