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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8/20 01:15:48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낙동강 - 3. 위기의 끝, 노병의 퇴장

8사단장 이성가 대령은 포항지구전투사령관이 됩니다. 대신 8사단은 최덕신이 맡게 되죠.

적이 시시각각 들어오고 있는 상황, 포항사 예하에는 투입 가능한 잡다한(-_-) 병력이 들어옵니다. 먼저 들어온 것은 해군육전대, 해병대였죠. 하지만 이들은 수백 정도였고, 그 뒤를 이어 급히 창설된 25연대가 오고 있었습니다.


10일 유해준 중령의 25연대가 도착했지만 급히 만든 부대를 급히 투입한 상황에서 전투력을 기대하긴 힘들었죠. 의정부 전투의 재판이었습니다. 연대는 큰 피해를 입고 연대장도 이성가로 교체됐죠. 하지만 이들이 벌어준 시간 덕분에 정예 17연대가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17연대장 김희준 대령은 11일에 도착, 격전 끝에 적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격은 힘든 상황이었죠. 포항 쪽의 전황도 악화돼 가는 가운데 전세는 북한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1연대장 한신 중령. 용맹과 성깔(...)로 유명합니다.

육본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는 심정으로 의성에서 경주로 이동한 1연대를 투입합니다. 여기에 26연대까지 투입되면서 그나마 해 볼 만하게 되었죠.


"제26연대와 제17연대 그리고 제1연대 및 해군 육전대로 하여금 기계 남쪽과 동쪽에서 적을 견제(牽制)케하고 새로이 제18연대와 기갑연대를 기계 서측작전에 참가시켜 적의 후방을 기습 공격한다."

군단장 김홍일의 작전 하에 반격이 시작됩니다. 원래 정예였던 17연대와 한신이 이끄는 1연대는 적의 강력한 방어에도 진격을 계속했고 그렇게 적이 그들에 신경 쓰는 사이 수도사단의 18연대와 기갑연대는 18일에 기계에 돌입하는 데 성공했죠. 이 기계 탈환전에서 사살한 17명의 포로를 잡았고, 1245명을 사살했다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초기에 큰 피해를 입은 25연대는 해체됩니다. 이것이 기계-안강 전투입니다.


북한군은 북쪽 비학산으로 쫓겨났고, 이제 아군은 이들을 확실히 격멸해야 했죠.




한편 포항에서도 탈환 작전이 진행됩니다. 이미 포항 터널 근처까지 진격한 1연대는 민기식의 민부대와 교체, 민부대는 브래들리 특수 임무부대와 함께 포항 남쪽을 방어하다가 17일에 정찰대를 보내 적을 확인합니다. 적은 이미 포항을 점령했지만 3사단의 해상 철수를 허용해 목표를 잃었고, UN 해공군의 공격에 밀려 포항 북쪽 흥해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민부대는 19일까지 적과 작은 교전을 치르면서 포항 탈환에 성공, 후퇴했다가 다시 왔던 3사단과 임무를 교대했죠. 이후 이들은 5연대로 개편돼 8사단을 지원하게 됩니다.

이렇게 큰 위험이 지나갑니다.

북한군의 문제점은 산악지대를 행군했기에 보급이 어려웠다는 점, 그리고 5, 12사단과 766부대가 합동 작전을 폄에도 서로 연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면 국군은 잡다한 부대를 모았음에도 합동작전을 무사히 치렀죠. 여기에 동해안이니만큼 UN 해공군의 지원이 훨씬 더 쉬웠구요.

북한군 766부대는 이것으로 완전히 해체됐고, 안동사단이라는 명예를 얻은 12사단 역시 이들을 받아들여 재편하고서야 다시 전투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 의성에서 보현산, 영천 북쪽까지 지연전을 펼친 8사단 역시 숨은 공신이었습니다. 측면이 완전히 뚫린 상황에서도 이들은 버텼고, 5연대가 증원되면서 전투력도 보강됐죠. 하지만 이 활약은 딱히 강조되지 않습니다. 이후 영천 전투도 있고 격전지가 아니어서 그렇겠지만, 이 때 사단장이 최덕신이었거든요 -_-; 이후 포항사 임무를 마친 이성가가 돌아옵니다.

하지만 상황은 아직 어려웠습니다. 18일부터 국군은 비학산까지 탈환하려 했지만 지지부진했고 결국 실패합니다. 한편 포항 부근에서도 적의 남진이 재개돼 격전이 계속됐죠.

이 때 소소한 에피소드가 있는데 수도사단이 원래 예정된 1연대 대신 17연대에 포격 지원을 해 준 것이었습니다. 열 받은 한신은 권총을 들고 수도사단장 백인엽을 찾아갑니다.

"수도사단이 17연대의 사단이냐? 공격 중에 화력지원을 전환해도 되는 거냐? 이런 법이 있느냐?"

백인엽은 원래 17연대장이었고 자기 연대가 이뻤던 모양입니다. 한신이 권총을 들이대자 당황하면서 대답도 못 했다고 하죠. 이게 치명적이기도 했습니다. 1연대가 잘 진격하다가 막힌 것이었거든요. 그 개차반 백인엽이 쫄았다는 게 참 재밌고, 솔직히 고소해요. (...) 이렇게 전투 지휘라면 모를까 사단장은 못 하는 게 드러나서인지 9월에 들어 송요찬으로 교체됩니다.


잘 나가다가 국군의 반격에 큰 피해를 입은 상황, 하지만 그래도 그리 나쁘지 않았던 상황, 북한군 2군단장 무정은 주력을 대구 정면에서 이 곳으로 옮깁니다. 애초부터 그랬다면 어떤 큰 일이 벌어졌을지 모르겠지만 이 덕분에 죽어라 싸우던 1사단은 겨우 여유를 얻게 되었죠. 전투는 계속됐고, 9월에 낙동강 방어선 마지막 위기였던 영천 전투가 벌어지게 되죠.

어찌됐든 기계와 포항을 탈환하면서 전선은 안정됩니다. 그리고 한 노장은 전장을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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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평전 "오성장군 김홍일"에서는 이 때 그가 은퇴를 결심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보면 정말 그럴까 싶습니다. 미군은 그를 쫓아내려고 했으니까요. 일단 정식으로는 기계를 다시 적에게 빼앗긴 9월 1일자로 물러난 것이었죠. 스스로 물러났든 내쫓긴 것이든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고 봐야 될 겁니다.

여기에 이승만이 얼마나 개입돼 있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전쟁에 참가한 노장들의 평전이나 회고록은 이승만을 최대한 옹호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모신 주군이라서 그런 것일지, 어쨌든 군인 출신이니 대통령을 욕 할 수 없어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김홍일의 평전 역시 그 점에서 다를 바 없습니다. 여기서 이승만은 그가 낸 사표를 최대한 거부하다가 전쟁이 끝날 때를 대비해 제대하지는 말라고 했다고 하면서 종합학교장으로 임명합니다. 온갖 좋은 말들이 다 들어 있죠.

일단 이승만이 미군의 요구에 김홍일을 계속 보호할 수는 없었을 거라는 생각은 듭니다. 그래서 애매한 거죠. 애초에 김구파였던 김홍일을 얼마나 진심으로 생각했을지요. 아무튼 이승만 자신은 몰라도 그 밑에 있었던 신성모, 김백일은 이걸 좋아했을 겁니다. 이제 완전히 자기들 세상이라 여겼겠죠.

그리고 이 과정에서 또 한 명의 노병이 쫓겨나게 됩니다.


김석원은 이 인사에 대해서 "아연실색했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 대상에는 자기 역시 포함돼 있었습니다. 9월 1일자로 그 역시 3사단장에서 물러났고, 이종찬이 그 자리에 앉습니다. 이종찬은 이 때 김석원이 건강이 좋지 않아 물러났다는 말을 들었죠. 다음 보직은 특명검열단장, 하지만 휘하에는 운전병 둘밖에 없는, 그의 표현대로 "부하도 책상도 없는 특명검열단장"이었습니다.

그가 물러날 만한 이유는 있었습니다. 잘 싸우긴 했지만 방법이 너무 구식이었고, 미군과 너무 많이 부딪혔으니까요. 그리고 김백일과도 너무 부딪혔습니다. 안동에서 물러날 때부터 계속 그랬죠. 김백일에게 온갖 욕을 했다고 하는데, 양 쪽의 나이부터 경험 등의 차이가 크긴 하지만 그래도 그 때 김백일은 부군단장, 김석원의 상관이었습니다. 김백일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건 진짜 "꼴통" 수준이죠 -_-; 그가 잘 대우한 것은 김홍일 정도, 하지만 이런 행동이 김홍일에게 해가 됐으면 됐지 도움은 안 됐을 겁니다. 이후 김석원은 한직만을 떠돌다 56년에 육군 소장으로 예편합니다. 뭐 앞으로도 그 성깔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은 있습니다.

전역 후,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건 4.19 때입니다.

"서울 용산 네거리 / 성남고교생 4백여명이 쏟아져 나왔다 (중략) 학생들이 외쳤다 / 마산의거 학생 즉시 석방하라 / 부정선거 무효 / 발포경찰 처벌하라 / 살인경찰 처단하라 (중략) 경찰복이 덮쳤다 / 곤봉으로 때리고 / 총대로 치고 / 구둣발로 깠다 (중략) 학생복들이 쓰러졌다"

"성남고교 교장 콧수염 김석원이 나타났다 / 학생들을 제지하기는커녕 / 경찰을 꾸짖었다 / 경찰을 두려워하기는커녕 / 학생을 격려했다
너희들 용감하다 정의의 길 누가 막느냐 / 용산경찰서장이 교장을 노려보았다 / 어디 보자 저 신종 빨갱이 늙은이 노망든 콧수염을 뽑아줄테다" - 만인보, 고은

일제 때부터 계속 멸공의 길을 걸었던 사람인데, 이 때는 드디어 빨갱이도 돼 본 것이죠.

이후 그는 인기를 발판으로 60년에 무소속으로 민의원에 당선되지만 5.16으로 해산, 그 이후 학교를 운영하는 데만 집중합니다. 박정희가 그를 교육부장관으로 부르려 했지만 거절했죠. 특히 전쟁 때 희생된 학도병들의 추모를 위해 남은 인생을 바쳤다고 합니다.

"어떤 경우는 무지했던 탓으로 또 어떤 경우는 올바른 인생관과 올바른 세계관을 못 가졌던 탓으로 그동안 내가 저지른 잘못은 많다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이유야 어쨌든 일제식민지시대에 오래토록 일본군인 노릇을 했다는 것은 나의 생애 중에서 가장 큰 불명예라 생각되는 것이다. (중략) 나는 오랜 군인생활을 통해 수 없이 전우들의 죽음을 접촉하면서부터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릇 생명이란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는 것인 즉,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이나 없던 것이 있게 되는 것이나 결국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중략) 이런 생각을 하면 나도 얼른 내 처자가 있는 고향(무)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다."

한국전쟁 때 이미 구식 노장일 뿐이었고, 참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참 많은 사람들과 싸웠던 그, 전장에서의 용맹이라는 단점과 온갖 단점들을 가지고 있었던 그에 대한 평가는 참 극단적입니다. 글쎄요... 이제까지 말을 많이 했으니 더 이상의 평가는 하지 않겠습니다.

1977년, 그는 자서전 "노병의 한"을 내고 다음해 85세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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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김홍일, 그는 육사 생도들을 교육하다 51년 3월 15일 예편합니다. 중장 예편이었습니다. 일단 3성장군까지 됐지만 아래의 일화를 보면 그가 제대로 대우받았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 직후 있었던 김백일의 장례식에 노장들도 참가했는데, 신성모는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 했다고 하죠.

"그 중 한 대목의 말투를 상기하면 (중략) 이 따위 늙은 사람들이 우리 군을 지휘했더라면 우리들은 벌써 저 부산 앞 바다로 들어갔을 것이 아닌가라는 악담이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모략이요, 중상이었다. 장례식이 끝나는 대로 나는 항의의 공격을 하려 했지만 신 장관은 그 즉시 자리를 떴다." - 회고 90년, 이응준

김홍일이 떠난 것은 곧 노장들의 완전한 몰락을 의미하는 것, 그리고 신성모는 이런 노장들에게 참 굴욕을 안긴 것이었죠.

이후 그는 자유 중국, 대만의 대사로 떠납니다. 장개석과 친했던 그라는 걸 생각하면 적절하긴 했습니다. 그 때 이승만은 이렇게 말 했다고 합니다.

"김 장군이 군인으로서 우리나라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한다면 오성장군으로 제대시켜야 했는데 우리 군에 그런 제도가 없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할 수는 없었지만, 그러나 김 장군은 우리나라 별 세 개에다 중국 별 두 개를 보태면 곧 오성장군이니까."

이 이후부터 그의 별명이 오성장군이 된 건지 원래 그렇게 불렸던 것인지는 모르겠군요. 이후 그는 10년 동안 대사로 지내다가 백선엽과 교대합니다. 이런 일화들을 보면 이승만과 친했던 것 같긴 한데 그가 쿠데타를 계획했다는 말 역시 있습니다. 이런 점으로 보면 그의 영향력을 두려워해서 일부러 외국으로 보낸 것일 수도 있구요. 그 이후로도 영향력 있는 장군들은 제대하면 외국 대사로 많이 나갑니다. 정치력은 낮은 편이지만 명성은 있으니 이해는 가지만, 반면 영향력 때문에 국내에 둘 수 없을 거라는 점도 있죠.

4.19 때는 오히려 이걸 빨갱이의 난동이라고 했지만 (...) 뭐 이건 확실히 비판할 부분이지만 대만에 있어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는 측면도 크죠. 5.16 때는 "혁명 내각"에서 외무부 장관에 재직하기도 했고, 그 이후에도 이런 저런 활동을 하다가 갈라서게 됩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를 반대한 것이었죠. 이후 야당에 몸 담고 박정희와 맞서다가 유신 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납니다. 77년에는 광복회 회장으로 일 하다가 80년에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뜹니다. 그 때 그의 유산은 효창동 3번지의 자택 한 채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글쎄요... 만약에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전쟁 전만 해도 미군과의 관계는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전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최대한 물러나지 않으려 했던 그와 물러나야 이긴다고 여긴 미군은 대립할 수밖에 없었죠. 둘 다 떠안고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쉽고 또 아쉽습니다. 오성장군이라는 호칭이 별명이 아닌 진짜가 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조인은 쾌락지본이라(助人快樂之本)"

남을 돕는 것이 기쁨의 근본이다는 것, 이게 그의 좌우명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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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얘기는 영천 전투로 대표되는 북한군의 9월 공세에서 하겠습니다. 이제 미군이 맡은 서부전선으로 가 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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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체프
12/08/20 03:51
수정 아이콘
역사에는 8월 위기라는 짤막한 얘기로 나오는 숨가뿐 순간이군요. 저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손에 한 나라와 민족의 운명이 걸려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런 것들이 '혈전'이나 '격전'이라는 짧은 단어로만 표현된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독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Je ne sais quoi
12/08/20 10:42
수정 아이콘
사람에 대한 평가가 정말 쉽지 않긴 하죠..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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