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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9/15 13:13:00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낙동강 - 11. 다부동 전투의 끝
한국에 투입됐을 당시 미 1 기병사단은 약 1만여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3개 연대로 구성돼 있긴 했지만 각 연대가 대대 2개로 이루어져서 실질적으로는 2개 연대 수준이었죠. 이 중 후퇴 과정에서 1개 대대를 잃었구요. 이런 상황에서 이들은 적 3사단과 10사단을 맞이하게 됩니다.


배치는 그냥 여길 참고하세요 ( - -)

적 3사단이 노린 곳은 5, 8 기병연대 사이의 금무봉, 도하할 수 있는 다리를 모두 끊고 경계를 했음에도 9일 기습 도하를 허용했죠. 이 때가 8월 9일이었습니다. 여기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죠. 적은 후방으로 진출해 포위를 노렸고, 미 1 기병사단 지휘부를 노렸습니다. 부사단장, 참모장, 정보참모 등 정말 사단장만 빼고 전사하거나 부상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미 1 기병사단장 게이 소장. 잘생기고 착하고 똑똑했던 모양입니다.

사단장 게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병력을 집중해 역습, 북한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 때가 13일, 북한군 2군단장 무정은 큰 피해를 입은 3사단 대신 남쪽의 10사단을 투입했죠. 7 기병연대가 이들과 맞섰고, 끝없는 포격과 공중 폭격 끝에 물리치는 데 성공합니다. 14일 하루 포병대가 쏜 포탄만 1860발이라고 하죠. 8월 15일까지 승리를 다짐했던 10사단은 하루 전인 14일에 포기하고 물러나야 했습니다.

무정은 14일에 다시 3사단을 투입, 국군 1사단과의 접경지대인 작오산을 공격합니다. 여기서 미군은 밀렸고 북쪽의 국군 15연대가 포위되는 상황에 처했죠. 탈환을 노렸지만 계속 실패했고, 그냥 미친 듯이 포를 쏴재낄 수밖에 없었죠. 17일까지 끝없이 쏜 후에 다시 보병을 투입 탈환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 때 미군 포로가 학살된 현장을 발견하고 바로 북한의 잔학행위를 비난했죠. 북한에서도 포로를 죽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목표했던 15일까지 대구 점령, 미군은 월등한 화력으로 이를 막아냅니다. 북한군은 더 무리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그들의 주공은 다부동 일대였으니까요. 다부동에서 격전이 계속 벌어지는 동안 미 1 기병사단의 전면은 소강상태가 유지됩니다.

이후 다부동 방면의 전투가 일단락되면서 워커는 이 방면을 미 1 기병사단에 맡깁니다. 국군의 다부동 전투가 끝나고 미군의 다부동 전투가 시작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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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다부동 방면에 배치되자마자 워커는 역습을 펼쳐 적을 유인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9월 공세가 시작되면서 낙동강 돌출부가 다시 위험해졌으니까요. 저번 편에 적었듯 영산이 다시 점령되는 상황에 처했을 때였죠.

게이는 이를 따르려 했지만 사단의 참모와 연대장들은 모두 반대합니다. 적 방향으로 치고 나가다가 역포위될 가능성 때문이었죠. 킨 TF 때 그랬듯이요. 대신 국군이 미처 탈환하지 못 했던 수암산을 공격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고, 게이 역시 그걸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북한군이 좀 약해지긴 했지만 대구를 포기한 건 아니었죠. 공세 직전, 북한군 13사단 19연대 작전참모 김성준 소좌가 귀순합니다. 그는 이렇게 진술합니다.

"2군단은 9월 2일 18:00시를 기해 총공격을 개시할 것이다."

워커의 계획대로 돌격했으면 킨 TF 때처럼 카운터 어택이 됐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죠. 미군은 이런 총공격을 대비하긴 했지만 수암산 탈환은 그대로 하게 합니다. 그리고 미군은 왜 국군이 그렇게 고생했는지를 알게 됐죠.

공군이 네이팜탄을 뿌리며 적을 공격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은 너무 좁았고 적의 포격 역시 건재했죠. 여기다 북한군이 밤에 미군 사이를 뚫고 후방으로의 침투를 계속했습니다. 5일이 되면서 7 기병연대 전체가 포위될 상황에 처했고, 왜관과 다부동 사이의 길이 차단됐으며, 우측의 가산도 뚫립니다. 이 가산의 경우 동쪽에 치우쳐 있어 아직 제대로 배치가 되지 않은 게 컸죠.

이렇게 북한군이 다부동으로의 진격에 성공합니다.

9월 6일, 모든 전선에서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남쪽에서도 미군이 계속 밀리고 있었고 동쪽에서는 영천이 이 날 점령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적은 다부동 남쪽 4.5km, 대구 북쪽 12km 지점인 570고지까지 점령했죠. 결국 미 1 기병사단은 후퇴를 결정합니다. 사실 후퇴만이 아니라 데이비드슨선으로의 철수까지 얘기가 나오는 상황이었죠.

대구가 위험하다는 판단 아래 3일부터 대구를 막는 최후의 방어선이 준비됩니다. 1 기병사단에서는 군악대까지 동원해 부사단장 앨런의 이름을 딴 '앨런 특수임무부대'를 편성했고, 대구의 치안을 맡던 경찰들을 모두 긁어모아 대구 외곽에 배치합니다. 그리고 5일에는 미 8군 주 지휘소와 육군본부가 부산으로 이동했다는 것이죠. 대구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적은 대구 정면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었고 영천을 점령한 적이 대구로 진격할 경우 국군은 두동강 나고 부산-대구, 포항-대구의 보급로가 모두 끊기는 것이었고 서쪽의 미군의 후방도 차단되는 것이었죠.

워커 중장은 다시 방어선 전체를 조정하면서 가산 일대를 국군 1사단에게 맡깁니다. 그래도 공군의 활약 속에 8일까지 적의 진출이 멎었죠. 하지만 미군의 상황도 최악이었습니다. 미군이 포탄이 부족했어요. orz 하루에 쏘는 탄을 25발로 제한해야 될 정도였죠. 어째 남쪽에서 미친 듯이 쏴재끼더니...

그래도 서쪽의 왜관 지역을 계속 맡고 있던 5 기병연대가 무려 7차례나 고지를 뺏고 뺏기는 전투를 반복하면서도 방어선을 지켜내는 데 성공했고, 국군 1사단 역시 가산 일대의 방어선을 지키면서 상황은 호전돼 갔습니다. 게이는 대구에서 6~9km 떨어진 곳에 마지막 방어선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방어만 할 틈은 없었죠. 들어온 적을 몰아내야 했으니까요. 포탄도 탄약도 부족한 상황에서 육박전이 계속됩니다.

이 부분에서 이해할 수 없는 점이 백선엽의 회고록에서 나옵니다.

"우리로부터 다부동을 인계 받은 미 1기병사단은 다른 작전을 펼쳤다. 유학산과 수암산 등 고지를 내주고 평지에서 기계화 부대가 뒤를 받쳐주는 방어작전을 구사했다."

위에서 보시다시피 미군은 시작부터 수암산을 탈환하는 작전을 세우다가 밀린 것이었는데 말이죠. 미군 쪽에서 이렇게 변명하는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_-a 아무튼 미군의 패배를 가려주는 부분입니다.

이 때 1사단은 원래 6사단이 맡은 팔공산 방면을 맡고 있었습니다. 상대는 적 1사단, 임진강에서 싸운 이래 두번째 맞상대였죠. 다행히 적의 공격이 거세지 않았는데, 2군단장 무정의 명령을 받고도 어떻게 해야 될 지 몰라 망설여서라고 합니다. 8월에도 6사단의 전면과 1, 6사단의 사이를 노렸던만큼 불쌍하기도 합니다. 만난 상대가 1, 6사단이니까요 =_=;;

영천이 위기에 빠지면서 1, 6사단에서도 한 개 연대씩이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방어선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적 1사단이 정면보다는 미군과의 접경지인 가산 쪽으로 침투한 것도 있지만요. 다부동에서의 지옥에 비할 바가 아니었죠. 가산이 1사단으로 다시 돌려지면서 탈환전이 계속됐고, 지휘의 효율을 위해 미 1군단에 배속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15일에 가산을 완전히 탈환하는 데 성공했죠.

"낙동강까지 이어지는 적의 보급선은 길었다. 미군은 그들 머리 위로 자주 전폭기를 띄워 적의 보급선을 집요하게 흔들었다. 무기와 장비·음식을 포함한 모든 보급물자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더 이상 공격을 감행하기에는 모든 방면에서 힘이 달리는 상태, 군사용어로는 공세종말점에 그들이 와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나는 그 역력한 흔적들을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15일까지 격전은 계속됩니다. 하지만 곳곳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왔죠. 남쪽부터 동쪽 영천까지 북한군의 공세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북한군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죠.

대구 방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북한군은 후퇴하고 있었습니다. 14일이 되면서 적은 다부동과 가산산성 북쪽으로 철수했고, 다시는 내려오지 못 합니다. 대구 북쪽으로 약 10km, 미군과 국군 1사단은 마침내 적을 막아냅니다. 이렇게 다부동 전투는 완전히 끝납니다.

"내 머릿속은 어느덧 반격의 그림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낙동강에서 이제는 일어서는 일만 남은 것이다. 자, 이제 나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전쟁 직후의 임진강 방어, 한 달 남짓의 지연전, 다부동의 사수 작전 등이 스치는 그림처럼 내 머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나아가서 적을 물어뜯어야 할 때다. 마음속으로 뜨거운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곳이 남아 있죠.

8월에 있었던 기계-안강 전투는 국군의 승리로 끝 났지만, 비학산에 있는 적은 아직도 강하게 저항하고 있었고 전선의 구멍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이미 40km나 후퇴했던 곳인만큼 어떻게 될 지 몰랐죠. 미군은 국군을 불신했지만 이 곳에 미군을 투입하기엔 자기들도 병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나마 다부동을 미 1 기병 사단이 맡으면서 동쪽의 국군 역시 힘을 최대한 집중시킬 수 있게 됐죠. 이들에게 북한군의 총공세가 시작됩니다. 소련군 교리는 뚫린 곳에 최대한의 지원을 하는 것,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잘 되는 쪽에 병력을 집중하는 건 당연할 겁니다. 뭐 이렇게 따지기엔 북한군은 너무 병력을 산만하게 운용했습니다만 ㅡ_ㅡa 이건 나중에 얘기하죠.

9월 초부터 날씨는 계속 흐렸고, 공군의 출격은 크게 줄어듭니다. 출격하더라도 미군에게 우선순위가 돌아갔죠. 사실 이것이 9월 공세 때 아군이 수세에 빠진 큰 이유였습니다만.


"자기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귀관도 알다시피 지원할 여력이 없다. 한국군은 싸울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왜 밤에는 싸우지 않고 물러서기만 하는가?"

뚫느냐 뚫리느냐, 미군은 이 모든 걸 국군에 맡깁니다. 자기 코가 석자기도 했죠. 모든 전선이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 병력을 줄 수도 없었거든요.


"나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결론을 꺼냈다. 9월 15일로 예정된 인천상륙작전이 취소되고 미8군이 일본으로 철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이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국군이 잘 싸우면 미군도 그대로 잘 싸울 것이고 인천상륙작전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국군이 망하면 인천상륙작전은 취소될 것이고, 데이비드슨선으로 철수할 것이며, 아예 한국을 포기할 수도 있었겠죠.


"나의 각오는 확고부동하다. 2군단의 명예와 나 자신의 무운을 걸고 영천을 기어이 지켜낼 것이다. 내가 하양에 없을 때엔 영천의 최전방에 나가 있는 것으로 알아주기 바란다."

이렇게 국군은 마지막일 줄 알았던 시험대에 놓이게 됩니다. 장소는 영천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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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그대로 끝났으면 유재흥의 평가가 어땠을지 참 궁금해지는 전투이기도 합니다.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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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레브
12/09/15 13:13
수정 아이콘
인제 몰아서 봐야겠네요 핡
12/09/15 14:15
수정 아이콘
미 기병1사단장 이름을 보는 순간 빵 터져서 집중이 안된다는...;;;;;;
HealingRain
12/09/15 15:39
수정 아이콘
오와;; 결과야 알고 있지만 왤케 긴장감이... 덜덜덜;; 국군에게는 가혹한 시련끝에 마지막 벽까지 내몰린 느낌이었겠군요.
Je ne sais quoi
12/09/15 16:17
수정 아이콘
아 정말 긴장감이 고조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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