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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9/16 18:57:04
Name 눈시BBver.2
Subject [일반] 낙동강 - 12. 적은 영천으로
... 생각해보니 각 사단 부대마크 맨 처음에 넣고 시작했던 걸 까먹고 있었군요. 지금부터 다시 하죠 뭐.
6, 8사단의 전투는 8월 공세 때 설명하려고 했는데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했던 부분입니다. 영천 전투의 배경삼아 간단히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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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창에서 지연전을 펼치던 6사단은 2일 04시를 기해 낙동강 방어선으로 이동합니다. 우선 19연대를 낙동강 남쪽으로 보내서 진지를 편성한 후 2, 7연대의 철수를 엄호하게

19연대의 엄호 속에 후퇴한 2, 7연대가 후방에서 병력을 재편하는 동안 19연대는 3일부터 시작된 적의 공격에 맞섭니다. 4일까지 맞서다가 버틸 수 없다는 판단에 사단장 김종오는 지연전을 명령했고, 2연대는 서쪽을, 7연대는 동쪽을 방어하게 했죠. 이 때 6사단을 공격한 것은 13사단 21연대와 1사단, 국군 1사단보다야 적었지만 6사단이 맡은 전면도 32km나 됐습니다. 춘천-홍천에서부터 중부전선의 주력으로 계속 싸워 온 6사단에게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죠. 낙동강 방어선으로 후퇴하기 전에 적의 맹공에 사단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죠. 병력은 70% 정도로 충원되긴 했지만 신병이 늘어나면서 훈련도도 떨어져 갔구요. 하지만 쉴 틈은 없었습니다.


군필인 분들에겐 설명이 필요 없겠지만; 윗부분의 1xx6과 6xx8 사이가 6사단의 방어지역이었습니다. 표시야 저렇게 돼 있지만 인접사단과 방어선을 연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됐고 북한군은 집요하게 그 중간 지점을 노립니다. 이러니 삼면에서 공격 받은 거죠.

10~11일까지 6사단은 전투와 후퇴를 반복합니다. 13일에는 Y선의 전선을 조정하면서 전면 철수하게 됐죠.


이것저것 표시를 하려다가 저도 머리 아플 거고 보시는 것도 어려울테니 지명만 확인하세요. '-') 대략 가산-우보-의홍 쪽으로 보시면 됩니다.

서쪽으로는 적 1사단이 북쪽의 매봉산부터 남쪽의 가산까지 이르는 지역으로 6사단의 방어선을 뚫으려 합니다. 이에 맞선 것은 춘천바위 7연대, 20일까지 전투가 계속되는 가운데 육본에서는 7사단 5연대와 독립 기갑연대를 6사단에 지원했죠. 한편 중앙의 우보 방면을 맡은 2연대와 동쪽 의홍 방면을 맡은 19연대는 적 8사단과 맞섭니다.

서쪽은 다부동 전투의 위기에 따른 국군과 미군의 증원 속에 상황이 호전됩니다. 하지만 동쪽은 20일 이후 적의 주공이 옮겨가면서 상황이 더 악화됐죠. 적 8사단은 전차를 집중해 신녕으로의 진출을 시도했고, 2연대의 방어진지가 돌파되고 연대본부까지 위기에 처하게 됐으며 19연대는 통신이 끊기는 불상사가 일어나면서 큰 피해를 입습니다. 김종오는 19연대를 후방으로 철수하게 했지만 이게 안 됐죠. 다행히 다부동의 위기가 끝나고 1사단의 15연대를 6사단에 배속시키면서 방어선이 안정됩니다.

이런 가운데서 8월 말에 서쪽, 팔공산 전면을 1사단에 맡기면서 6사단은 신녕 전면에 병력을 집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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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사단은 안동을 도하하면서 많은 피해를 입습니다. 특히 16연대가 큰 피해를 입었죠. 그래도 16연대를 배속받으면서 휘하에 3개 연대를 두고 약 8천여명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낙동강에 방어선을 형성하려 했지만 여기서도 적은 이미 아군의 공백지대로 도하에 성공한 상태였습니다. 사단장 이성가는 의성 북쪽에 방어선을 만들기로 했죠. 이 무렵 사단장이 최덕신으로 교체됩니다. 또한 8사단을 2군단에서 1군단으로 옮겼죠.

전면에 있던 적 12사단은 아직 움직이지 않은 상황(이들은 동쪽으로 돌려집니다), 8사단은 적 8사단을 잘 막아냅니다. 하지만 좌우의 아군이 무너지고 있었죠. 서쪽의 6사단도 계속 철수하고 있었지만 동쪽에서는 안강-기계 전투로 아군이 크게 밀리고 있었습니다. 육본에서는 의성은 어떻게든 지켜야 된다는 심정으로 사단장 최덕신에게 역습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실패했고 오히려 적의 강력한 반격에 처해 버렸죠. 다행히 이것도 막아내는데 성공했고 군단장 김홍일은 8사단에 수도사단 18연대를 배속시키면서 반격을 맡깁니다.

이 반격작전은 성공해 잃었던 지역을 탈환하긴 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8사단 자체의 피해도 적지 않았지만 더 이상 홀로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13일에 있었던 전선 조정으로 8사단은 의성을 포기하고 영천 북쪽으로 후퇴합니다.

안강-기계의 탈환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8사단에는 동쪽 보현산의 방어 임무도 맡겨집니다. 18연대는 빼앗긴 고지들을 탈환하면서 적 유격대와 싸우던 1, 2유격대대와 만났고 보현산을 방어하는데 성공했죠. 이후 이들은 포항지구전투사령부에 배속돼 안강-기계 탈환 작전에 동원됩니다. 8사단의 10연대 역시 여기 편입됐죠. 안강-기계 전투가 끝난 후에는 1사단에 배속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참 잘 싸웠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좌우가 다 뚫리는데 혼자 버티고 안강-기계 전투에서도 큰 도움을 줬으니까요. 하지만 이게 딱히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어시스트 역할이었던 것도 있겠지만, 이 때 사단장이 최덕신이었다는 게 클 것 같습니다. 뭐 그 후 영천 전투가 더 주목받아서도 있겠지만요. 아무튼 그는 22일자로 다시 이성가와 교체됩니다.

상황은 20일 이후로 급격히 악화됩니다. 북한군은 15사단을 영천 방면으로 돌렸고 8사단은 10연대를 1사단에게 보낸 상태였으니까요.

8월 25일, 적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8사단과 수도사단은 전선을 뒤로 물립니다. 사단 지휘소를 옮긴 곳은 바로 영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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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공세로 불리는 북한군 5차 작전은 5개의 공격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1 공격집단은 6, 7사단과 105 기갑사단의 일부로 미 25사단을 돌파, 마산->김해->부산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2 공격집단은 2, 4, 9, 10사단과 16기갑여단으로 미 24사단을 돌파(실제 있던 건 2사단), 영산-밀양에 진출해 대구-부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것이었죠. 여기까지가 북한군 1군단입니다.
3 공격집단은 1, 3, 13사단과 105 기갑사단 주력으로 미 1 기병사단과 1사단을 돌파, 대구를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전 편에서 설명했죠.

4 공격집단은 8, 15사단과 17기갑여단으로 6, 8사단을 돌파, 영천을 점령한 후 대구나 경주를 공격하는 것이었습니다.
5 공격집단은 5, 12사단으로 수도사단과 3사단을 돌파, 포항을 점령하고 경주->부산으로 가는 것이었죠.

영천 전투에서 항상 염두에 둬야 되는 것은 그 동쪽, 동해안의 상황입니다. 북한군 2군단장 무정이 동해안으로 시선을 옮긴 것은 사실입니다만, 다부동에서처럼 압도적인 병력이 영천에 몰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5개 사단을 대구에 집중시킨 8월 공세에 비해 9월 공세 때는 비교적 병력을 고르게 배치했고, 오히려 미군 지역에 병력을 많이 배치한 것을 볼 수 있죠.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할게요 ^_^);

북한군은 언제나 아군의 약한 지점을 찔렀고 후방으로의 포위를 노렸습니다. 그렇다면 영천 전투가 그렇게 커진 것은 그 곳에 아군의 약점이 있었고, 북한군이 그걸 노렸다고 봐야겠죠.

8월 공세의 안강-기계 전투는 아군의 승리로 끝났지만 아직 불씨는 남아 있었습니다. 좀 크게 말이죠.



기계 탈환 후 북한군은 비학산에 몰렸습니다. 아군 역시 비학산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고 17일부터 계속 맹공을 퍼부었지만 탈환에는 실패했죠. 이 과정에서 1연대장 한신이 공격 잘 하고 있는데 포격 지원을 17연대에 돌린 것 때문에 수도사단장 백인엽에게 권총을 들이대기도 했습니다. (...); 그 개차반 백인엽이 쫄았죠. 이런 모습 등 사단장으로서는 영 아니다는 평가를 받았는지 9월 1일에는 송요찬으로 교체됩니다. 뭐 이 양반도 별명이 석두(굳히 해석할 필요 없죠?)였지만요. -_-;

+) 이 송요찬이 4.3 사건 때 중간산에 선을 그은 사람입니다. 뭐 윗선의 명령이긴 했지만요. 반면 4.19 때는 이승만의 명령을 거부하고 군의 중립을 지키기도 했죠. 이 때 군이 이승만과 많이 틀어진 상황이긴 했지만요. 많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 많은 사람을 살렸다... 극단적인 두 개의 평가가 가능한 사람이죠.

적에게 있어서도 이 비학산은 정말 중요했습니다. 앞으로의 공세에 대비하는 불씨니까요. 적 12사단은 766부대 등을 모아 재편했고, 비학산을 끝까지 지키면서 9월 공세를 준비합니다. 오히려 아군이 적의 야습에 당해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었죠. 여기다 적이 아군인 척 하고 들어와 패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용전분투가 보이긴 합니다. 역시 정예였던 17연대에서였죠.

아무리 화력을 집중해도 안 된다, 정면 공격도 안 된다, 남은 건 특공대 뿐이었습니다. 이 임무는 17연대 중에서 지원을 받았는데 그 중 먼저 자원한 이들이 김용식, 홍재근 이병이었습니다. 둘 다 신병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적 766부대를 기습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군관 1명을 포함한 15명의 포로를 생포하는 어이 없는 전공을 세워 버립니다. 홍재근은 1931년생, 김용식은 1928년생이었습니다. 그들의 죽음도 여기서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김용식은 9월 19일, 홍재근은 29일 전사합니다. 이들에게는 1951년 7월 26일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됐고, 일계급 특진으로 일병으로 기록됩니다.

그나마 김용식은 사진이라도 찾을 수 있겠는데, 홍재근은 찾지 못 하겠군요.

이런 활약들도 전세를 뒤집지는 못 했습니다. 오히려 9월 공세가 시작되면서 적 12사단에 밀려갈 뿐이었죠. 곳곳에서 혈전이 계속됩니다. 피아의 시체가 한 곳에 섞였고, 아군 부상병들 주변에서 "동무, 동무" 하는 북한군 부상병들이 있었습니다.

9월 4일이 되면서 아군은 후퇴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또 골 때리는 일이 벌어지는데, 17연대에 사단장 송요찬의 명령이 온 것이었죠. 그런데 그 내용이 참 간단했습니다.


[->○로 전진하라. 이상. 송요찬]

표시된 곳은 전진이 아닌 후퇴하는 지점이었습니다. -_-; 연대장을 비롯한 참모들은 회의 끝에 철수하고 그 곳을 지키라는 명령으로 이해하고 철수했죠. 알고보니 그건 前進이 아닌 轉進이었습니다. 일본군이 차마 후퇴하라고는 못 해서 만든 용어였죠. 누가 일본군 출신 아니랄까봐는 둘째 치고 그냥 한자로 적었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17연대에서 이걸 잘 해석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육군에서는 이를 "명령이 지나치게 간단하면 의도를 확실히 이해할 수 없게 된다"면서 나름 미친듯이 까고 있습니다.

... 다시 그의 별명을 기억해 봅시다. "석두"예요.

http://www.army.mil.kr/history/낙동강방어선작전/주요전투/영천/요도1.htm

수도사단은 이렇게 비학산 탈환에 실패했고, 적 12사단의 공세에 계속 후퇴합니다. 문제는 운주산이었습니다. 8사단은 9월 2일 시작된 15사단의 공세에 보현산을 잃고 기룡산으로 후퇴합니다. 헌데 수도사단은 그 오른쪽에 있는 운주산까지 잃고 경주 북방으로 후퇴하고 있었죠. 이렇게 8사단 우측에는 10km가 넘는 공백지대가 생깁니다.

"12사단은 안강을 돌파했는데, 15사단은 왜 영천을 돌파하지 못 하느냐?"

북한군 2군단장 무정은 이렇게 성을 내며 15사단장을 교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피해가 생기든 정면돌파밖에는 방법이 없었죠. 헌데 타이밍이 딱 좋게 기회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15사단은 정면으로 맹공을 펼치면서 8사단의 우측으로 침투하는 데 성공했죠.

9월 5일, 쏟아지는 비 속에서, 공군이 뜨기는커녕 적이 어디로 오는지 파악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적 15사단은 영천으로 진군해 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영천을 점령하는 데 성공하죠.

영천은 북쪽은 산악지대가 많지만 남쪽으로는 평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남서쪽으로는 대구로, 남동쪽으로는 경주로 갈 수 있었죠. 국군에게는 1, 2군단이 만나는 곳으로 이 곳이 뚫린다면 국군이 두동강 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구로 간다면 미군의 배후를 칠 수 있고 경주로 간다면 부산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부산-대구 보급로에 버금가는 포항-대구 보급로가 차단되는 곳이죠. 적이 어느 쪽을 향하든 아군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꽃놀이패였습니다.

총사령관 정일권은 영천이 점령되는 날, 미군이 한국을 포기할 수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가 믿을 건 2군단장 유재흥 뿐이었죠.


8사단장 이성가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됩니다. 유재흥이 힘쓰고 있었지만 어쩄든 그 지역을 맡고 있는 건 그였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태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21연대장 김용배는 다가오는 적의 대군에 맞서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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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9/16 19:35
수정 아이콘
마지막 줄에서 뭔가 장판파의 스멜이 나네요. 럴커 에그인가(...)
blue wave
12/09/17 09:31
수정 아이콘
엄청납니다. 대한민국이 엄청나게 몰려있었군요...ㅠㅠ
이라니
12/09/19 17:27
수정 아이콘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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